전장연 ‘제4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
박경석 유죄 선고한 재판부 규탄하며 교대역서 진행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향해 권리예산 면담 촉구

19일 아침 8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은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승강장 앞에서 ‘제4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선전전을 진행했다. 사진 복건우
19일 아침 8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은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승강장 앞에서 ‘제4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선전전을 진행했다. 사진 복건우

19일 아침 8시, 10여 명의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포함한 40여 명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이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승강장 앞에 모였다. 장애인들이 출근길 지하철 연착 투쟁을 벌이며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외친 지 열 달째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12월 광화문역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선전전을 시작한 장애인 활동가들은 이날 40번째 지하철을 탔다.

2시간가량 진행된 선전전에 등장한 구호는 크게 두 가지다. ‘차별버스(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수 없는 계단버스) 운행 방해에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각성하라’, ‘국회는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가 그것이다.

당초 전장연은 5호선 광화문역에서 선전전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날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버스 운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있는 교대역으로 선전전의 방향을 틀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장애인이 이동할 수 없어 모든 기본권이 억압받는 현실을 외면하는 재판부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교대역에서 국회의사당역으로 향하는 경로는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는 장애계의 요구와 맞아떨어진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교대역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법부를 규탄하고, 국회의사당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내에선 윤석열 정부가 삭감한 내년도 장애인권리예산(이동권‧평생교육‧노동권‧탈시설 예산)을 국회가 책임지고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사다리를 목에 걸고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 출입문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사진 복건우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사다리를 목에 걸고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 출입문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사진 복건우

- 일부 승객들 욕설 쏟아내도… 장애인들 “비용의 문제 아닌 시민의 권리” 호소

오전 8시 30분, 장애인 활동가들은 교대역 승강장 세 칸에 걸쳐 서초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박 대표와 최 회장은 사다리를 목에 걸고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 출입문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휠체어 이용자가 없다면 역 한 곳에 통상 20초 정도 머무는 열차가 이 과정에서 10분 넘게 멈춰 섰다. 경찰들은 출입문 근처에 있는 장애인들을 지하철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활동가들을 밀어내며 “업무 집행 중”이라 목소리를 높였고, 활동가들은 “우리도 업무 중”이라 맞받아치며 둘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활동가들은 서초역에서 내린 뒤 다시 같은 지하철에 승차하는 연착 시위를 벌였다.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은 휴대폰과 카메라를 이용해 시위 현장을 채증했고, 서초역장은 업무방해 등 형사처벌 가능성을 경고하며 시위대를 제지했다. 경찰들이 휠체어를 탄 박 대표를 출입문 밖으로 끌어내려고 하자, 그는 “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에서 21년간 평등을 외쳐온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며 “저를 끌어내리든 죽이든 마음대로 하시라”고 반발했다. 불평등한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서초역에서 연착 시위가 진행되자, 경찰들은 휠체어를 탄 박 대표를 출입문 밖으로 끌어내려 활동가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사진 복건우
서초역에서 연착 시위가 진행되자, 경찰들은 휠체어를 탄 박 대표를 출입문 밖으로 끌어내려 활동가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사진 복건우

이날 2호선 열차는 1시간 8분 지연됐다. 연착 시위가 이어지자 지하철 내 승객들의 욕설과 고성이 커졌다. 이들은 “일도 안 하고 세금도 안 내면서 왜 우리한테 이러냐” “지하철 말고 국회 가서 시위해라” 같은 말들을 장애인에게 쏟아냈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비장애인 시민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장애인권리예산을 비용의 문제가 아닌 시민의 존엄한 권리로 바라봐 달라.” “장애인 권리에 무관심한 국회에 우리 함께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자.” 서재현 전장연 활동가는 승객들을 향해 “정부와 국회가 장애인의 지연된 정의를 실현하고,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외치며 울먹였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오전 10시 40분경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에 대한 집권 여당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복건우
전장연 활동가들은 오전 10시 40분경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에 대한 집권 여당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복건우

- 장애인권리예산 외면하는 정치… “지하철 투쟁 멈출 수 없다”

9시 45분, 2호선 당산역에서 활동가들의 대열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대열 선두에 있던 박경석 대표를 비롯한 세 명의 장애인 활동가는 9호선으로 갈아탄 뒤 국회로 이동해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면담을 가졌다. 다른 대열은 지하철 연착 시위를 지속하다가 영등포구에 있는 국민의힘 당사로 이동해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에 대한 집권 여당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윤실 전장연 활동가는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쳐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은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며 “김 정책위의장은 상임위원회 예산안 심의를 책임지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장애계 사이의 면담을 주선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에 대한 면담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전장연 측은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서 주 원내대표를 만나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위한 간담회 요청서를 전달했지만, 아직 아무런 답변이 없는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당과 면담 일정이 잡혔거나 이미 면담이 진행 중인 것과 대조적이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는 “수많은 장애인이 여전히 이동하지도, 교육받지도, 일하지도 못한 채 시설에서 살아가고 있다. 평생을 기다렸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국가가 이 차별의 고리를 끊어내지 않는 한 지하철 투쟁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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