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전장연 대표, 집시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
장애계, 1심 선고 앞두고 법원 앞 기자회견 열어 집회 정당성 주장
1심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 선고한 재판부 “헌법상 기본권 남용”
계단버스는 장애인 이동권 무시한 ‘차별버스’… 박 대표 즉시 항소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퇴근길 버스 운행을 방해했다는 이유(집시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8일 열린 1심 판결에서 박 대표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4월 8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 앞 버스정류장으로 들어오는 160번 버스를 막아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버스 출입문과 자신의 휠체어를 쇠사슬로 단단히 묶은 채 15분간 기습 시위를 벌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페이스북 영상 캡처

“(버스기사) 아저씨, 저를 좀 태워주시죠.” 지난해 4월 8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 앞 버스정류장으로 들어서는 160번 버스의 출입문이 열리자 박 대표가 말했다. 휠체어를 탄 박 대표가 오를 수 없는 계단형 버스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탈 수 없다”는 버스기사의 대답이 돌아오자, 박 대표는 버스 출입문과 자신의 휠체어를 쇠사슬로 단단히 묶은 채 15분간 기습 시위를 벌였다. 박 대표와 동행한 20여 명의 장애인 활동가들은 버스를 멈춰 세우고 ‘노선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를 정부에 요구했다.

검찰은 신고 없이 집회를 열고 버스 운행을 방해한 혐의로 박 대표에게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이에 박 대표는 “15분 버스를 막고 6개월간 교도소에 가라는 구형이 정말 평등하고 공정한가. (당시 방해 시위는) 불법이 아니라,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이 사회에 저항하기 위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전장연 측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지지하는 시민 2만 3,749명의 탄원서 연서명, 195명의 자필 탄원서를 모아 재판부에 제출했다.

18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법원 삼거리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은 박경석 대표의 1심 선고에 앞서 재판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복건우

- 무죄 주장했지만… 재판부 “승객 불편 초래”했다며 유죄 선고

18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법원 삼거리에서는 이날 10시에 있을 박 대표의 1심 선고에 앞서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전장연 주최로 열렸다.

김두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검찰의 구형에 반박하며 “피고인(박 대표)은 저상버스가 충분히 도입되지 않아 장애인들이 버스로 이동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이자 인권 활동가로서 당연한 권리를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박 대표의 행동이 업무방해죄 구성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재판부에 무죄 선고를 촉구한 것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양환승 부장판사는 이날 1심에서 박 대표에게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퇴근길 버스 운행을 방해한 피고인의 행위는 당시 버스를 이용하던 승객들에게 상당한 불편을 초래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를 남용해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박 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7월 7일 양 판사는 이 사건에 대한 변론을 종결하며 “집회의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집회 방식을 재고해달라”고 박 대표에게 당부한 바 있다.

박경석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휠체어가 오르지 못하는 계단버스가 장애인의 이동권을 고려하지 않는 ‘차별버스’라고 비판했다. 박경석 대표 뒤로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이 ‘차별버스가 불법이다’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복건우
박경석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휠체어가 오르지 못하는 계단버스가 장애인의 이동권을 고려하지 않는 ‘차별버스’라고 비판했다. 박경석 대표 뒤로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이 ‘차별버스가 불법이다’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복건우

- “여전히 저상버스보다 차별버스가 더 많아”… 이동권 보장 더딘 현실

1심 선고가 끝난 뒤 박 대표는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재판부는 버스 운행을 막은 15분이 시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면서, 지난 21년간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가 지켜지지 않은 현실은 철저하게 무시했다”고 밝혔다.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비장애인 중심으로 해석한 판결이 장애인을 배제하고 있어 “일방적이고 차별적”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 제3조는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지만, 이동권은 여전히 현실에서 보장되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0년 교통약자이동편의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도입은 27.8%에 불과하며,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은 시외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수 있는 시외·고속버스도 사실상 전무하다.

1심 선고가 끝난 뒤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들과 만난 박경석 대표(사진 왼쪽)와 김두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오른쪽). 박 대표는 1심 선고에 불복해 항소할 계획이다. 사진 복건우
1심 선고가 끝난 뒤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들과 만난 박경석 대표(사진 왼쪽)와 김두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오른쪽). 박 대표는 1심 선고에 불복해 항소할 계획이다. 사진 복건우

장애인들은 이동할 수 없어 모든 권리가 박탈되는 현실을 알리며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 21년간 이동권 보장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변화는 더디다. 박 대표는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교통약자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저상버스보다 차별버스(휠체어 이용자는 탑승할 수 없는 계단버스)가 더 많다”면서 법에 명시된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는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는 재판부를 규탄했다. 박 대표는 1심 선고에 불복해 항소할 예정이다.

전장연은 오는 19일 아침 8시 교대역에서 국회까지 차별버스 운행 방해에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를 규탄하고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제4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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