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전체적으로 붉은빛이 도는 그림, 구름이 많이 낀 파란 하늘 아래 도로 위에 차 한 대가 서 있고, 그 옆에는 긴 원피스를 입은 사람 한 명이 서 있다. Midjourney bot 생성. 프롬프팅 안희제. 
전체적으로 붉은빛이 도는 그림, 구름이 많이 낀 파란 하늘 아래 도로 위에 차 한 대가 서 있고, 그 옆에는 긴 원피스를 입은 사람 한 명이 서 있다. Midjourney bot 생성. 프롬프팅 안희제. 

할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가족끼리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조용한 주택가를 따라, 봄이면 아카시아 향기가 가득해지는 곳으로 가서 차를 댔다. 어머니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는 차를 더 타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내 생일에는, 할머니 없는 시간이.

할머니의 알츠하이머는 점점 진행이 빨라지고 있다. 할머니는 작년에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았고, 얼마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올해 초에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두 사람을 집 근처로 모신 뒤로 우리의 일상은 완전히 재조직되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운전을 할 수 있는 아버지는 세브란스, 적십자, 성모병원을 번갈아 오갔고, 본인도 아픈 어머니는 자신의 아픈 부모를 신경 쓰느라 종종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이 상황에 큰 영향을 받지 않길 바랐지만, 그건 누구의 뜻대로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밥을 먹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은 계속해서 생긴다. 우리가 함께 말을 나누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은 계속해서 생긴다. 나와 어머니와 할머니는 모두 처음 발견한 의사 이름이 붙은 질병을 갖고 있다. 이미 죽은 지 한참 된 알츠하이머와 크론과 메니에르라는 세 명의 의사는 그렇게 한 집안에서 난데없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에게 식사 시간은 가장 중요한 휴식 중 하나다. 떠들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밥을 먹을 때마다 별 이야기를 다 꺼내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하지만 할머니가 함께하면, 식사는 노동이 된다. 원래도 마른 할머니는 알츠하이머 발병 이후 과도한 소식과 편식으로 더 말라갔고, 우리는 어떻게든 다양한 음식을 할머니가 드시게 해야만 했다.

할머니는 우리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우리는 할머니께 거짓말을 한 적이 없지만, 할머니는 모두를 의심한다. 추정컨대, 알츠하이머는 원래도 있던 할머니의 의심을 더욱 노골적으로 만든 것 같다. 먹을 것을 드리면 몇 초가 지나지 않아서 그것을 우리 쪽으로 밀어 버린다. 우리 먹을 것이 있다, 더 먹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려도 큰 의미는 없다.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 가장 어려운 건 밑도 끝도 없는 의심과 불신, 그리고 우리가 하는 말에 대한 무시였다.

하지만 할머니의 탓을 할 수는 없다.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만 해야 한다’는 성차별을 깊이 내면화한 할머니는 나와 아버지의 집안일을 어머니의 집안일에 비해 과장하여 기억하고 미안해하며 자신이 할 가사노동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할머니는 원래도 가사노동을 싫어하고, 잘하지 못한다. 설거지를 할 때 세제를 안 쓰는 할머니가 닦은 숟가락은 결국 우리가 다시 씻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할머니에게서 모든 걸 앗아가고 가사노동을 강요한 시댁이 있었다. 원래도 좋아하기 힘든 가사노동을 더더욱 싫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시어머니처럼 되기 싫어서 우리에게 어떤 것도 받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지금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다. 돌봄을 이렇게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또 거부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설득을 해도 그 설득이 몇 초가 채 유지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 걸까.

요양등급 심사는 받았지만 결과가 아직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도가 이 상황을 온전히 해결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할머니의 증상은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노인정이라고 부르는 (혹은 생각하는) 치매안심센터는 좋아하시지만, 그 외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건 귀찮은 할머니가 요양보호사를 반길 리 없다. 부산에서 서울로의 이사, 남편의 사망도 이미 환경의 급격한 변화였다. 또 다른 변화가 증상에 어떤 영향을 줄지 미리 알 수는 없다.

식사 때마다 할머니는 휴지로 밥상을 닦는다. 닦을 게 없어도 일단 닦는다. 그게 정말 우리를 위한 것인지, 몸에 익숙해진 것인지, 항상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쓰듯 우리에게도 그러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밥은 많다고 하고, 반찬은 우리 쪽으로 모두 밀어버린다. 이게 적응될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직 적응하지 못한 우리는 매번 설명을 반복한다. 아직은 할머니를 설득할 수 있다는, 그 설득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어쩌면 희망의 탈을 쓴 체념일지도 모른다.

어둑어둑한 숲속, 한 가족이 불이 켜진 차 안에서 함께 앉아 있다. Midjourney bot 생성. 프롬프팅 안희제.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나는 생일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의미를 두고 싶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 가족만의 시간이었다. 단 10분이라도 할머니 없는 드라이브를 떠나고 싶었다. 생일이니까 빵도 채소도 더 먹으라고 양보 받을 수 있는 날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쉴 시간을 조금 빼앗더라도 함께 음악을 틀고 드라이브를 가고 싶었다.

“we can go hi-i-i-i-i-igh 말해봐 yeah 느껴봐 mm-mm”

나는 말했다. 북악스카이웨이 잠깐만 다녀오자. 아버지는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뉴진스의 ‘Hype Boy’를 틀었고, 우리는 모두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이미 어두워져 나무만 간신히 보이는 도로를 찬바람을 맞으며 달렸다. 돌봄이 필요한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배부르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식사를 거부하는 할머니와의 지난날들이 눈 뜨면 잊는 꿈이 되길 바라며 창문 앞에 얼굴을 갖다 대고 숨을 들이쉬었다.

거의 매일같이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질병과 돌봄을 이야기할 때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고 말했는지. 돌봄이 할머니에게 샌드위치 하나를 거의 다 먹이는 데 성공할 때의 기쁨과 매일 반복되는 의심을 견디는 일이 중첩되고, 때로는 할머니가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일이라는 것도 모르면서 나는 무엇을 말하고 써왔는지. 아직 시작조차 안 했는데 벌써 이토록 지긋지긋한 일이 돌봄이라는 걸.

할머니를 미워하기는 쉬웠다. 할머니께 화를 내는 일은 한번 시작된 이후로 미워하기보다도 더 쉬웠다. 이제 나는 밥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를 미워하거나 할머니께 화를 내는 손자가 되어 버렸다.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게 어떤 일인지 아는 것처럼 떠들곤 했다. 그러나 이 혼란스러운 엉킴 속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내가 할머니 없는 식사, 할머니 없는 드라이브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뿐. 나의 질병보다 타인의 질병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지금, 질병과의 삶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며, 질병과 장애를 중심으로 사회를 고민하려 노력한다. 책 《난치의 상상력》, 《식물의 시간》, 《과학잡지 에피: 16호-장애와 테크놀로지》(공저), 《아픈 몸, 무대에 서다》(공저), 《몸이 말이 될 때》(공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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