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비장애인 활동가 생애기록 - 두 번째 사람들

삼각지역 벽면에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스티커들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3월부터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삭발 투쟁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문상민 활동가도 지난 5월 9일 삭발 투쟁을 했다. 사진 현다혜

- 우리는 민들레, 서로를 돕는다

탈시설한 지 얼마 안 되는 어떤 장애인 분이 활동지원서비스를 너무 적게 판정받은 적이 있어요. 이의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아주 두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을 때 민들레 회원들이 국민연금공단에 쳐들어가 1박 2일 점거농성을 했어요. 그 당사자분이 너무 감동하셨어요. 영유아 시절부터 쭈욱 시설에서 살아오셨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을 위해 대가 없이 애써주는 경험을 처음 해보신 거예요. 그분이 너무 고마워하니까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신들도 민들레가 있어 이렇게 생활할 수 있게 된 거라며 오히려 힘을 주시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내가 그토록 원했던 현장성, 대중성, 투쟁성을 모두 가진 조직이 바로 민들레란 생각이 들어요.

민들레의 강력한 공동체성의 비결 중 하나는 자조모임이에요. 시설에서 나오신 분들은 처음엔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겨워하세요. 그러다 1년 정도 지나 어느 정도 사회생활의 감각을 갖게 되면 다른 이유로 괴로워하는데 바로 심심함이에요. 자유는 얻었는데 외로운 거예요. 그런데 우리 민들레는 외로울 겨를이 없어요. 저희는 시설에서 나오신 분들께 의무적으로 자조모임 한 개 이상은 꼭 가입하라고 하는데 그런 모임이 일곱 개예요.

김재학 민들레장애인야학 학생과 함께. 두 사람 다 ‘불나비’ 티셔츠를 입고 활짝 웃고 있다. 둘은 동갑내기 친구다. 사진 현다혜

제가 속한 모임은 ‘불나비’예요. ‘불꽃같이 나의 인권을 찾아 비상한다’는 뜻인데, 집회 나가서 제일 잘 싸우는 사람들 중심으로 만든 모임이에요. 뇌병변 장애인들의 스포츠인 보치아 모임도 있는데 이름은 ‘민유’예요, 민들레 유나이티드의 줄임말이죠. 시설에서 나온 사람들의 모임 ‘시나모’도 있어요. 이 모임은 ‘시설에 있는 친구를 소개합니다’라는 사업을 주도하는데, 아직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과 이미 탈시설한 장애인이 만나서 2박 3일을 함께 보내는 거예요. 자립한 사람들의 집에 가서 밥도 먹어보고 잠도 자 보면서 직접 체험하는 거죠. 비장애 활동가들이 탈시설에 대해 번드르르하게 강의하는 것보다 더 큰 자극과 용기를 줘요. 이 사업을 통해 탈시설하신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시나모 회원들의 자부심이 대단하죠. 박길연 대표도 시나모 회원으로 서기를 맡고 있어요. 전동휠체어 축구팀도 있어요. 이름하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줄여서 ‘난쏘공’이라고 부르는데 다들 너무 재밌어서 뿅 간 상태예요. 이번에 모 기업으로부터 3천만 원을 지원받아서 경기 전용 전동휠체어도 구입했어요. 그 밖에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연사모)’도 있어요. 연극수업에서 영화를 찍어 장애인인권영화제에 출품했는데 상금도 받고 호평도 받으면서 자발적으로 만든 거예요. 그밖에 장애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전동휠체어 축구 모임 ‘스피디’, 여자들이 수다 떠는 모임 ‘여수다’도 있어요.

사람들이 스스로 운영하는 이런 모임은 아주 중요해요. 자립생활센터가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단기간 진행하고 끝내는 방식에서 장애인은 그저 대상일 뿐이에요. 센터는 도움을 제공하고 회원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받는 관계에 머물 수밖에 없어요. 자조모임은 모두가 주체가 되어 서로를 도와요. 물론 처음엔 어려워하세요. 역할을 나누고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그런 경험 자체가 없으니까요. 안건지 만드는 법, 회의 진행하는 법부터 차근차근 알려드리고 연습도 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알아서 해요. 어떤 사람은 문자 공지, 어떤 사람은 총무, 어떤 사람은 생일 챙기기 등등 두세 개씩 모임을 하다 보면 정신없이 바빠서 외로울 새가 없어요. 그 과정에서 자기가 잘하는 것도 알게 되고 욕심도 생기죠.

민들레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게 뻥 뚫린 넓은 공간이에요. 특별한 일 없이도 와서 누구나 와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센터 실무자들이 마치 주민자치센터 민원실 공무원처럼 높은 창구 너머에 앉아서 찾아오는 회원들에게 서비스만 제공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민들레의 그 공간엔 칠판이 하나 있는데 어느 날 칠판 한켠에 누군가 “나는 민들레”라고 써놓았어요. 그 아래 또 다른 사람이 “너도 민들레”라고 써놓았어요. 사람들이 민들레를 나의 것이면서 동시에 너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좋았어요. 그 밑에 나도 썼어요. “우리는 민들레”라고요. 민들레라는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아요. 민들레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아무 데나 피어요. 일본에 갔더니 장애인이 거리에 흔하게 보였어요.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제일 중요한 건 민들레 홀씨예요. 호- 불면 홀씨가 날아가 여기저기에 퍼지는 것처럼 민들레를 거쳐 간 교사, 학생, 회원, 활동가, 활동지원사들이 모두 장애해방의 씨앗 같은 존재가 되길 바라요.

문상민 활동가가 “투쟁”을 외치며 오른손 주먹을 들고서 싱긋 웃고 있다. 그의 뒤로는 초록 칠판에 “나는 민들레 너도 민들레 우리는 민들레”라고 적힌 글자가 보인다. 사진 현다혜

- 오늘 조금 더 장애해방

저는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배제당하지 않는 세상을 바랍니다. 그게 제가 꿈꾸는 장애해방인데요, 그런 세상은 먼 미래의 그 무엇처럼 추상적이고 저 높은 곳의 구름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이동권 투쟁, 활동지원서비스 투쟁, 탈시설 투쟁을 통해 그런 세상을 조금씩 만들어왔어요. 학식 있는 교수들도 힘센 장애인단체들도 모두 불가능하다고 코웃음 쳤던 장애등급제 폐지도 1,842일간의 농성으로 이루어냈고요. 2021년부터는 4대 법안(권리보장법·탈시설지원법·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과 특수교육법 개정)의 제·개정과 권리예산 보장을 위해 매일 아침 삭발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전개하고 있어요.

장애해방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 저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우리 불나비 단원들이 사람들 앞에 나서서 당당하게 발언하고 교육도 할 수 있는 활동가로 성장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 2주에 한 번씩 모여 공부를 하는데 얼마 전엔 쿠팡 노동자를 초대해 그분들의 이야기도 들었어요.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한여름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일한다는 현실에 분노하면서 단원들과 함께 쿠팡 물류센터에 가서 피케팅을 했어요. 저는 우리가 장애문제에만 갇히지 않고 다양한 현장에서 차별받고 투쟁하는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운동(데모)을 잘하기 위해 몸을 단련하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50세가 넘으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많이 느껴요. 지난봄 경찰과 가벼운 몸싸움을 했는데 갈비뼈에 실금이 가서 한 달 가까이 고생했어요. 이제 옛날처럼 몸을 막 쓰면 안 되겠구나, 뼈아프게 느꼈죠. 그 후에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을 하고 점심시간엔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는 운동을 시작했어요. 나만 건강하면 안 되니까 상근자들을 꼬셔서 점심 먹고 계단 타는 사람들의 모임도 만들었어요. 비장애 활동가들이 튼튼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역시 이 운동의 당사자들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박길연 대표가 좀 덜 아팠으면 좋겠어요. 몇 년 전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 투쟁을 한 뒤 급격히 안 좋아졌어요. 길연은 이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매일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나를 안 만나고 민들레를 안 만났다면 조금 더 편하게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내가 꼭 죄인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내가 운동이란 걸 하면서 제일 잘한 일을 꼽으라면 바로 박길연이라는 사람을 조직한 거예요. 민들레가 이렇게 튼튼한 공동체로 성장하고 더 많은 장애인들의 삶을 지원할 수 있게 된 데엔 그의 몫을 빼놓을 수 없어요. 추진력도 책임감도 따라올 자가 없는데 무엇보다 장애감수성이 뛰어나죠. 사소하게 치부할 수 있는 장애인들의 말이나 행동도 길연은 유심히 바라보고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이나 고통을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데 길연 덕분에 항상 배우죠.

지난 8월 25일, 삼각지역 삭발 투쟁에 참석한 박길연 민들레장애인야학 교장. 그의 앞에는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 함께 살자. 윤석열 정부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고 적힌 피켓이 놓여 있다. 사진 현다혜

*                       *                       *

2007년 9월 어느 날 37세의 문상민은 춘천 교육청 앞에서 열린 장애인 교육권 확보를 위한 전국결의대회에 있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조직국장이었던 상민의 중요한 임무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집회가 열릴 때마다 서울의 장애 당사자 활동가들을 조직해 연대하러 가는 것이었다. 춘천 교육청 앞에선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한 달 넘게 농성을 하고 있었다. 집회가 끝난 뒤 사람들이 교육청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은 건물 1층 유리문을 닫아걸어버렸다. 꽉 막힌 세상처럼 굳건히 닫힌 강화유리 앞에 서본 자라면 다음 대사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우리 화장실 가야 돼!!!! 문 열어!!!”

교육청 안엔 교육감만 있는 게 아니라 장애인 화장실도 있는 것이다. 대치가 길어질수록 교육받을 권리보다 오줌 눌 권리가 더 절박해진다. 싸움은 점점 동물적으로 변해간다. 한 어머니가 상민에게 검지만 한 작은 실톱을 건네며 잠금쇠를 건드려 문을 따보자고 주문했다. 아이가 방문을 잠글 때를 대비해 어머니가 휴대하던 것이었다. 남의 말을 순둥순둥하게 잘 듣는 상민은 톱을 받아 쇠 잠금장치를 썰기(?) 시작했다. 장애인들 화장실도 못 가게 하다니, 파렴치한 놈들 같으니라고. 슥슥, 슥슥, 어린애가 장난하듯 정성스럽게 잠금장치를 썰던 그는 이내 실톱을 집어던졌다.

“에잇, 팔만 아파.”

그게 썰릴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순간 대체 왜인지 문이 열렸다. 경찰도 시위대도 잠시 당황했지만 그들은 각자 하던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시위대는 진입을 시도했고 경찰은 진압을 시도했다.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경찰은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람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상민은 특수공무집행 방해 및 상해혐의로 구속되었다. 상민 인생에 두 번째 구속이었다.

2007년 9월, 문상민 활동가는 춘천에서 장애인 교육권 투쟁을 하다가 연행됐다. 당시 활동가들이 문상민 활동가 석방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피켓에는 “죄 없는 문상민 동지를 즉각 석방하라!” “강원도 교육청은 문상민 동지 구속에 대하여 책임을 져라!”고 적혀 있다. 사진 제공 문상민
2007년 9월, 문상민 활동가는 춘천에서 장애인 교육권 투쟁을 하다가 연행됐다. 당시 활동가들이 문상민 활동가 석방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피켓에는 “죄 없는 문상민 동지를 즉각 석방하라!” “강원도 교육청은 문상민 동지 구속에 대하여 책임을 져라!”고 적혀 있다. 사진 제공 문상민

그때 상민은 비밀연애 중이었다. 상대는 박길연, 상민보다 7살 많은 장애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2006년 여름 인천시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농성에서 만났고 가을에 연인이 되었다. 데모를 하랬더니 연애를 하는 일은 흔한 일이고 연애는 데모를 더 불타오르게 만드는 법이다.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얼굴로 뻔질나게 인천을 드나드는 상민을 동료들은 의혹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냄새가 나…” 상민은 수다쟁이였지만 이번만큼은 꾹 참았다. 그것이 길연과 사귀는 조건이었다. 상민이 구속되자 동료들은 연일 규탄 집회를 열고 춘천구치소에 있는 상민을 면회할 사람들을 조직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그들은 술을 마시다가 안주가 떨어지자 ‘문상민의 애인은 누구인가’를 안주 삼아 왈가왈부했고 기가 막힌 방법을 찾아냈다.

‘면회를 제일 많이 간 사람이 애인이다!’

그간의 행적으로 보아 그는 이성애자로 추측되었으므로 사람들은 여성 면회자들의 명단을 면밀히 훑어보았다. 두 여성이 눈에 띄었다. 한 사람은 인천에서 활동하는 비장애여성 ㄱ이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박길연이었다. 조사 결과 ㄱ은 이미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동료 활동가 ㄴ은 매의 눈을 하고 박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연 동지, 혹시 상민이랑 연애…할 만한 비장애여성이 인천에 있어요?”

길연은 자신이 비밀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그만 파르르 떨고 말았다.

“왜 비장애인 중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죠?”

ㄴ도 장애인이었다. ㄴ은 자신의 문제적 발언을 깨닫고 황급히 사과했다.

“앗, 미안합니다. 그럼 혹시… 장애여성 중에 짚이는 사람이 있나요?”

길연이 냉정을 되찾고 능청스럽게 웃었다.

“글쎄... 나도 참 궁금하네요. 혹시 먼저 알게 되면 서로 연락해주기로 해요. 오호홍홍”

전화를 끊은 뒤 동료들은 생각했다.

‘인천에서 가장 열심히 투쟁하는 박길연마저 모르다니… 상민은 상상연애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우리 상민이 많이 외로웠구나…)’

졸지에 가상의 존재가 되어버린 길연은 40대 여성이었고 장애인이었고 결혼과 이혼 경력이 있었고 아들이 있었다. 현재의 길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우리 활동가들 참…… 꽉 막혀 있다니까. 흥.”

민들레장애인야학에서 박길연 활동가와 함께. 사진 현다혜

세상의 편견에 힘입어 순항을 거듭하던 비밀연애는 상민이 출소한 뒤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춘천의 어느 술자리에서 탄로 나고 말았다. 그 자리에 길연도 있었다. 술집은 2층이었고 길연은 업혀서 올라갔다. 새벽녘 술자리가 파했을 때 길연은 일찌감치 뻗어 자고 있던 상민을 깨웠다. 상민은 비몽사몽간에 몸을 일으켜 길연 앞에 등을 내밀며 쭈그리고 앉았다.

“자기야, 업혀.”

사람들의 눈과 손이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상연애는 공개열애로 전환되었다. 2008년 길연의 건강이 나빠지자 상민은 조직(전장연)이냐 사랑이냐의 기로에서 사랑을 택해 인천민들레장애인야학으로 활동공간을 옮겼다. 내가 아는 가장 순한 남성과 가장 센 언니의 환상적 연대로 인천지역 장애인운동도 활활 타올랐다. 나의 또 다른 인터뷰이 임소연은 인터뷰 내내 거의 미스코리아 수상소감 하듯 많은 사람들의 공을 치하하기 바빴는데 이런 말도 했다.

“은전아, 내가 지난번에 빠뜨린 사람이 있었어. 바로 박길연과 문상민, 그리고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야. 탈시설운동 초기에 우리한테 집이 있어 뭐가 있어. 그런데도 시설에서 나오려는 장애인들은 꾸준히 계시잖아. 그러면 우리가 사방팔방 전화를 돌려. 단체들에선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어렵다, 그러지. 그런데 길연과 상민은 아무것도 없어도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사람들을 받아줬어. 탈시설운동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두 사람이 혁혁한 공을 세웠어. 너무 고마워.”

나는 2년 전에 장애해방운동가 박길연의 생애를 기록했다. 신비하고 용감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박길연의 생애기록에서 내가 의도적으로 삭제했던 길연의 말로 상민의 생애기록을 마무리하고 싶다.

“내가 세상으로 나와 활동가라고 불릴 만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건 다 탐(상민) 덕분이야. 탐이 내 옆에서 인도하고 손잡아주고 뒤에서 밀어줬기 때문이야. 탐이 없었다면 나는 이런 식으로 활동할 생각을 아예 안 했을 것이고 했어도 일찌감치 포기했을 거야. 그렇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어떤 면에선 지금보다 편안했겠지. 하지만 육체가 편하다고 그걸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고개를 숙이고 살던 장애인들이 점점 어깨를 펴고 상대의 눈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자기를 멸시하는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는 그런 변화를 지켜보는 것, 그것이 행복이지. 나는 지금이 행복해.”

이 말을 길연의 생애에서 삭제했던 이유는 비장애남성 문상민의 등장이 장애여성 박길연의 주체성과 용기, 성취를 깎아 먹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걱정된다. 비장애 활동가의 주체성과 신념이 그저 ‘장애인을 위한 사랑과 헌신’으로 납작해져 보일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장애인운동이 이 세계에 건네고자 하는 말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서로에게 더 많이 더 잘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언젠가 한 번은 이런 우정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임소연은 장애인운동을 만나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라 10도 되고 무한대도 된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나는 상민과 길연을 보며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언제나 한 사람을 바꾸는 일로부터 시작되고, 그건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여 나를 부수고 확장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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