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약 위반 시, 유엔에 진정하면 직권조사할 수 있어
“장애인 권리 실현 위해 싸울 수 있는 무기 하나가 쥐어졌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기쁘다 CRPD 선택의정서 14년 만에 오셨네”라는 문구가 적힌 케이크 커팅식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장애포럼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기쁘다 CRPD 선택의정서 14년 만에 오셨네”라는 문구가 적힌 케이크 커팅식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장애포럼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아래 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이 9일 오후 1시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렸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한국장애포럼 등 장애계 활동가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기쁘다 CRPD 선택의정서 14년 만에 오셨네”라는 문구가 적힌 케이크 커팅식을 했다.

지난 8일,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 선택의정서 가입동의안’이 제400회 국회 제14차 본회의를 통과했다. 총 197명의 재석 인원 중 기권 1명을 제외한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선택의정서는 당사국이 협약을 위반한 경우 개인진정과 직권조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협약 부속문서다. 선택의정서를 비준한 국가가 협약을 위반했을 때, 개인이나 단체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에 진정하면 위원회가 직권조사를 한 후 당사국에 권고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당사국은 협약 이행의 수준을 높이게 된다. 즉, 국내 장애인권을 견인하는 주요 수단인 것이다.

한국 장애인권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 장애계는 정부와 국회에 선택의정서 비준을 꾸준히 촉구해왔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협약 이행에 대한 2·3차 심의를 앞둔 2019년에서야 국가보고서에서 선택의정서 비준 계획을 밝혔다. 이후 한국 정부는 2021년 12월 국무회의 의결을 마치고 선택의정서 가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국회에 또다시 1년간 계류되었다가 한국 정부가 협약을 비준한 지 14년만인 올해 마침내 선택의정서가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한국은 선택의정서를 비준한 102번째 나라가 되었다.

 윤종술 한국장애포럼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한국장애포럼
 윤종술 한국장애포럼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한국장애포럼

이처럼 선택의정서를 비준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종술 한국장애포럼 상임대표는 한국 정부의 ‘늦장 대응’을 지적했다.

윤 대표는 “14년간 협약 가입이 되어 있으면서도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것은 한국 장애인권 수준이 너무 미약해서는 아닌가. 위원회는 2014년 1차에 이어 이번 2·3차 협약 이행에 대한 최종견해에서도 한국 정부에 선택의정서 비준을 권고한 바 있다”면서 “한국이 102번째로 선택의정서에 가입한 나라가 되었는데 장애인권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102번째인 나라”라고 꼬집었다.

이어 윤 대표는 “협약에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야 할 권리와 탈시설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면서 “복지서비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젠 하나의 서비스가 아니라 국가가 당연히 보장해야 하는 ‘권리’로 이를 당당히 받아내자”라고 말했다.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 또한 “국회에서 선택의정서가 1년이나 계류한 것은 아쉬운 일이나, 기다린 만큼 보람찬 선물을 받게 됐다. 국가가 말로만 장애인권을 지키는 시대는 끝났다”며 벅찬 마음을 전했다.

선택의정서 비준을 위해 국회 내에서 애쓴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도 기자회견에 참석해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했다. 김 의원은 “당사국이 협약을 위반했을 때 개인은 위원회에 진정을 할 수 있다. 이때 이를 누가 맡아서 어떻게 할지는 앞으로 또다시 논의해서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실효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서 “앞으로도 지금처럼 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이 9일 오후 1시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렸다. 사진 한국장애포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이 9일 오후 1시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렸다. 사진 한국장애포럼 

- “장애인 권리 실현 위해 싸울 수 있는 무기 하나가 쥐어졌다”

조상지 노들장애인야학 활동가는 중증장애인 맞춤형 권리중심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는 문화예술, 권익옹호, 장애인식개선강사 등을 통해 협약을 홍보하며 ‘장애인의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을 한다.

이날 조 활동가는 AAC(의사소통보조기기)를 통한 발언에서 자신을 “시민들을 직접 만나 장애인의 지역사회 완전한 통합과 참여가 명시된 협약을 알리는 홍보대사”라고 소개했다.

조 활동가는 “아직까지 협약은 장애인 당사자에겐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장애인차별금지법만큼 잘 알지 못한다”면서 “정부도 협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탈시설에 대한 정치인들의 망언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활동가는 “지하철 선전전을 할 때면 사람들로부터 ‘이런 식으로 하니깐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기 싫다. 너희를 누가 도와주겠냐’는 이야기를 듣는다.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면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로서 협약과 선택의정서를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앞으로도 성실히 홍보하겠다”고 다짐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상임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한국장애포럼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상임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한국장애포럼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상임이사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잘 실현될 수 있도록 싸울 수 있는 무기 하나가 쥐어졌다. 그 무기란 바로 개인진정제도와 직권조사”라면서 “이 무기를 쥐고 최소한의 시민의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는 이 비참한 구조 속에서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회부된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당부도 이어졌다. 장애계는 지난 1년간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하며 지하철 시위를 이어왔다. 최근 서울시는 장애인 지하철 시위가 이뤄지는 지하철역을 무정차 통과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박 이사는 “지하철 무정차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대책보다 장애인권리예산이 반영되어서 우리가 지하철에서 혐오와 욕설을 견디는 이 문제도 함께 살펴졌으면 한다”면서 “선택의정서를 비준한 이 기쁨이 장애인의 권리가 실현되는 그 길로 함께 가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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