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재가 마치고 국회 통과만 남은 선택의정서
1년째 한 차례의 논의도 없이 지지부진
위원회는 선택의정서 비준하라고 한국에 수차례 권고
국민의힘 의원은 권고도, 비준도 무시하고 탈시설 왜곡만 일삼아
장애계 “수치스러운 일… 연내 비준하라”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 선택의정서 가입동의안이 국회에서 1년째 계류 중이다. 이에 한국장애포럼 등 장애계는 17일 오전 11시,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을 향해 “12월 정기회 때 통과시키기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 협약 이행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선택의정서… 국회서 논의 한 차례도 없어
선택의정서는 개인통보제도와 직권조사제도를 명시한 협약 부속문서다. 개인통보제도는 협약 당사국이 협약을 위반해 권리를 침해당한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민형사상 소송,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국내 구제절차를 모두 거쳤음에도 피해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 피해를 본 장애인 당사자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에 당사국의 협약 위반 사실을 알릴 수 있다.
직권조사제도는 권리침해 상황에 대한 신빙성 있는 정보를 위원회가 접수한 경우, 당사국에 직접 방문해 조사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피해를 입었다는 근거가 충분하고, 당사국이 동의하면 위원회는 당사국의 협약 위반 사항을 직권조사할 수 있다. 조사 후에는 협약에 근거한 권고안을 도출해 당사국에 통지한다.
예를 들어, 협약은 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생활 권리를 보장하라고 분명하게 명시한다. 그러나 2008년에 협약을 비준해 놓고 아직까지도 장애인거주시설을 운영하며 시설에 막대한 예산을 퍼붓는 한국 정부는 협약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
한국이 선택의정서에 비준한 국가라면 이 같은 협약 위반 사항을 위원회에 알릴 수 있다. 피해를 본 시설 거주 장애인이 국내 여러 구제 절차를 거쳤음에도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을 경우, 당사자는 개인통보제도를 통해 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진정서가 따로 접수된 게 없어도 위원회가 한국의 장애인거주시설 실태에 관한 정보를 접수한다면, 한국에 방문해 직접 조사하는 게 가능해진다. 즉, 선택의정서는 협약 이행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장애계는 그동안 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을 지속해서 요구했다. 또한, 위원회도 2014년 1차 최종견해에 이어 올해 2·3차 최종견해에서도 한국 정부를 향해 선택의정서에 비준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협약에 비준한 지 15년, 1차 최종견해를 받은 지 8년이 지났지만 한국은 아직도 선택의정서에 비준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6월 29일,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촉구 결의안’이 재석의원 만장일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러한 국내외 목소리에 마침내 가입동의안이 지난해 12월 14일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이후 문재인 당시 대통령 재가까지 마친 상태다.
이제 국회가 가입동의안을 통과시키는 것만 남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9일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아래 외통위)에 회부된 가입동의안은 1년이 다 돼가도록 단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7일에서야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됐다.
같은 날, 제400회 국회 정기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가입동의안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조기열 외통위 수석전문위원은 검토 보고서에서 가입동의안 통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조 위원은 “선택의정서 비준을 통하여 국내 장애인의 문제에 대하여 국가의 책임을 다툴 수 있는 새로운 경로가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장애인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증진·보호·보장하고 장애인의 고유한 존엄성을 실질적으로 제고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므로 선택의정서 비준은 적절한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체회의에 참석한 박진 외교부 장관 또한 선택의정서 비준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박 장관은 “그동안 국내 제도 정비가 필요하여 선택의정서 가입을 유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의 법적·제도적 환경이 성숙되어 가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선택의정서에 가입함으로써 협약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행하며 장애인의 인권 보호 및 증진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제 정말 국회 통과만이 남았다. 12월 본회의는 1~2일, 8~9일에 열리며 9일은 정기회 마지막 날이다. 9일까지 가입동의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이는 내년으로 넘어가게 된다.
- 장애계, 책임 없는 국민의힘 강력 규탄… “선택의정서 비준은커녕 뻔뻔하게 탈시설 왜곡”
국회 앞에 모인 장애계는 가입동의안을 1년간 외면해 온 국회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은 “8년 전 1차 견해와 올해 2·3차 견해에서, 선택의정서를 비준하라는 권고를 똑같이 받았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대통령 재가만 마치면 금방 끝날 줄 알았다. 국회에서 1년이나 지지부진 시간 끌 줄 몰랐다. 올해 안에 가입동의안을 통과시키기를 강력히 요구한다”라고 강조했다.
정다혜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나?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받은 직무를 유기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한국은 고문방지협약, 인종차별철폐협약 등 다른 협약에 가입하면서도 선택의정서와 비슷한 제도에 이미 비준했다. 장애인권리협약만 유보할 이유가 없다”고 성토했다.
또한 정 변호사는 “개인통보와 직권조사 제도를 통해 한국이 위원회 권고를 받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성숙해질 것이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이해도와 성숙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선택의정서 비준은 반드시 필요하다. 국회는 시급히 가입동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한국은 협약에 명시된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를 이행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국민의힘 의원을 중심으로 탈시설에 대한 가짜뉴스가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을 규탄하는 발언도 있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선택의정서 비준을 국회가 책임져야 하는 마당에,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은 탈시설 권리 자체를 부정한다. 이종성 장애인 비례대표조차도 장애인을 장애인거주시설에 보내는 게 정당한 조치라고 뻔뻔하게 말하면서 사기 친다. 또한 마치 장애인 단체끼리의 갈등인 것처럼 묘사하며 자신의 책임을 무한히 미룬다”며 “선택의정서 비준하고 유엔에 가서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보자. 올해를 넘기지 말고 비준할 것을 요구한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소장도 “한국에선 장애인 한 사람의 일생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권한이 모두 장애인거주시설에 있다. 안전과 보호를 명분삼아 억압을 일삼는 것은 명백한 협약 위반”이라며 “위원회의 권고와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선언쯤으로 아는 시도를 중단하라. 국회는 이제라도 정부가 협약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도록 가입동의안을 통과시키는 책임을 져라”라고 요구했다.
장애계는 선택의정서 가입동의안 연내 통과를 요구하는 서한을 윤재옥 외통위 위원장(국민의힘)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