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장과 열차 사이 넓은 틈… ‘위험천만’
이동식 안전발판 요구했더니 널빤지 가져온 코레일
“빨리 타라고!” 휠체어 밀며 강제로 끌어내 열차 지연
국회 예산안 처리는 19일도 불발
전장연 “매일 비공개 지하철 선전전, 절대 포기 안 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경찰은 휠체어 뒷부분을 잡고 참가자들을 강제로 끌어내려 했고, 이 때문에 휠체어에 탄 사람의 몸이 뒤로 기운 채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직원은 준비해 놓은 이동식 안전발판이 없어 허둥지둥했고, 열차는 더욱 지연됐다. 한 시민은 “그 정도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틈을 왜 못 지나가냐”고 소리 지르면서, 휠체어 이용자에게 안전발판 없이 하차할 것을 종용했다.
5분 넘게 기다린 끝에 한국철도공사 직원이 가져온 건 안전발판이 아닌 낡은 널빤지였다. 휠체어 이용자가 올라서니 널빤지에서 ‘우지끈’ 금 가는 소리가 났다. 몇 사람은 금이 간 널빤지를 밟고서도 열차에 탈 수 없었다. 직원이 고성을 지르며 무력으로 휠체어 이용자 셋을 강제로 분리해 한 명만 태우고 나머지는 낙오시켰기 때문이다.
19일 오전 8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251일 차 지하철 선전전 현장은 이랬다. 서울시의 무정차 통과 방침에 대응하기 위해 지하철 역사를 알리지 않고 진행한 첫날이었다. 1호선 시청역에서 노량진역까지 3개역을 휠체어 이용자 3명이 역마다 타고 내렸는데, 한국철도공사 때문에 열차는 용산역에서만 30분간 지연됐다.
- 이동식 안전발판 요구했더니 ‘낡은 널빤지’가
8시 15분경, 지하철 선전전은 시청역에서 순조롭게 시작됐다. 시청역에서 승차하고 서울역에서 하차한 후 다시 승차하기까지 별다른 마찰과 충돌은 없었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열차 내에서 서울시의 무정차 통과 방침을 규탄하고 국회가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열차 지연은 남영역에서부터 일어났다. 전장연 활동가들이 하차하려는데, 서울교통공사 직원과 남영역 역무원 모두 이동식 안전발판을 깔지 않았다. 서울교통공사 직원은 “남영역부터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장연 이동 경로 중 1호선 남영역, 용산역, 노량진역은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한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한국철도공사 직원에게 이동식 안전발판을 지원하라고 요구했다. 휠체어 바퀴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 넓은 틈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식 안전발판은 통상 금속 재질로 제작된 덮개 같은 것이다. 역무원 2명 정도가 이를 깔아 승강장과 열차 사이를 잇고 발판이 움직이지 않도록 발로 밟고 있으면, 그 위를 휠체어 이용자가 안전하게 지나가는 방식이다.
남영역에서 근무하는 한국철도공사 직원 중 누구도 발판을 소지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발판을 찾으러 간 사이 열차는 더욱 지연됐다. 한 시민은 “그 정도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틈을 왜 못 지나가냐”고 고성을 질렀다. 박 대표는 “이 작은 틈에 휠체어 바퀴가 빠져 장애인이 다친다. 손님께서는 걸으실 수 있으니까 이 틈이 작아 보여도 장애인에게는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의 말은 사실이다. 실제로 지하철을 타다 휠체어 바퀴가 빠지는 사고가 수차례 있었고, 피해자가 소송도 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2명은 지난 2019년,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지하철 단차 공익소송’을 제기했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휠체어 바퀴가 빠진 사고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고, 이동식 안전발판이 아닌 ‘자동안전발판’ 설치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이동식 안전발판은 지하철역마다 수도 부족하고, 이용하려면 해당 역에 미리 전화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게다가 한국철도공사처럼 교통약자 편의제공에 무지한 경우, 발판을 아예 구비하지 않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반면 자동안전발판은 승강장 하단부에 접이식·슬라이딩 방식 등으로 설치돼, 자동으로 발판이 튀어나와 단차를 3cm 이하로 줄이는 편의시설이다. 승객의 발 빠짐과 휠체어 바퀴 빠짐 등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에서 장애인들은 패소했다. 2심 재판부는 “이동식 안전발판 서비스는 휠체어 이용자가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승하차할 수 있는 정당한 편의라고 보기 어렵다”며 장애인 차별임은 인정했으나, 서울교통공사가 차별을 하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자동안전발판은 안전성 검토가 필요하기에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승강장 구조 자체를 변경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는 서울교통공사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현재 장애인이 휠체어 바퀴 빠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은 이동식 안전발판이 유일하다. 조선일보는 19일 보도를 통해 “휠체어를 탄 전장연 활동가들이 사용할 때 쓰는 ‘발판’”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이동식 안전발판은 모든 휠체어 이용 장애인, 유아차를 끄는 사람 등이 정당하게 제공받아야 할 교통약자 편의시설 중 하나다. 법원이 “장애인 차별”이라고 인정했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어 ‘이거라도’라는 마음으로 이용해야 하는 시설이다.
5분 넘게 기다린 끝에 직원이 가져온 건 안전발판이 아닌 낡은 널빤지였다. 세로가 짧고 가로가 길어서 휠체어 이용자가 지나가기에 적절하지 않았고, 전장연 활동가들이 올라서니 ‘우지끈’ 금 가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사고를 당할 순 없으니 낡은 널빤지라도 밟고 지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 “뒷사람은 안 돼!” 한국철도공사 직원, 반말과 고성에 휠체어 밀기까지
용산역에서는 불필요한 마찰과 고성이 극에 달했다. 한국철도공사 직원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과잉 대응했기 때문이다. 한국철도공사 직원과 경찰이 각자 대응 방침이 달라 “여기 책임자가 누구냐”고 서로에게 따져 묻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8시 30분경, 권영창 용산역 역무팀장이 나타나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에게 반말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권 팀장은 전동휠체어를 강제로 밀면서 “뒷사람은 안 돼! 빨리 타시라고!”라며 고함을 질렀다. 뒷사람은 박 대표와 배재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의원이다. 이 회장이 “일행인데 왜 같이 못 타나”라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경찰도 이 회장만 강제로 승차시키려 했다. 휠체어 뒤를 잡고 열차 안쪽으로 끌어냈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의 몸이 뒤로 기울어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이 같은 소란으로 인해 열차는 더욱 지연됐다.
마침 맞은편에 동인천 급행이 오자, 열차를 갈아타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비장애인 승객이 전원 하차한 후에도 이 회장이 탄 열차는 한참을 서 있었다. 한국철도공사 직원이 오더니 “왜 다들 하차하지 않나. 이 차는 차고지로 간다”라며 경찰을 향해 “여기 책임자가 누구냐”고 따져 물었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용산역에 도착한 지 30분이 지나서야 노량진역으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었다.
- “매일 비공개 지하철 선전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
전장연이 이 같은 선전전을 매일 진행하는 이유는 2023년도 장애인권리예산 때문이다. 정부가 폐기한 장애인권리예산이 국회 각 상임위 심의를 거쳐 일부 증액돼 통과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국회는 예산안 통과 법정시한인 2일을 훌쩍 넘겼다. 정기국회 회기 종료인 9일마저 넘기고, 김진표 국회의장이 통보한 15일과 마지막 기한으로 정한 19일까지 모두 넘겨버렸다.
국회 예산안 처리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법인세 인하율 때문이다. 부자 감세를 둘러싼 여야 정쟁 속에, 장애인권리예산은 일부라도 증액이 되는지, 결국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의 동의를 얻지 못해 정부안대로 통과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9시 50분경,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한 전장연은 국회 정문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열었다. 박 대표는 “지하철 시위가 정당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법에 적혀 있는 장애인의 권리를 외면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뭘 기준으로 정당성을 논하나? 정부·국회는 법에 있는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지만, 우리의 지하철 시위는 불법이라며 17명이 기소된 상태다. 정당성의 기준이 뭔가?”라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또 “우리는 내일 아침에도 지하철 역사를 알리지 않고 선전전을 할 것이다. 무정차 통과를 하더라도, 오늘처럼 열차를 세우고 모든 시민을 하차시켜 우리를 고립시키더라도, 우리는 매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헌법이 보장한 저항권을 끝까지 행사할 것”이라며 “오늘 같은 일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경찰과 지하철역 직원은 과잉 대응하지 말아 달라. 국회가 장애인권리예산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함께 힘써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전장연은 20일 오전 8시에도 252일 차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어느 역에서 진행할지는 7시경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