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삼각지역서 기자회견 열고 30분간 출근길 선전전 진행
‘이동권 약속’ 두 번 어긴 서울시, 리프트 참사에는 사과 없어
무정차 대응해 19일 서울 지하철 곳곳서 비공개 출근길 선전전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의 ‘무정차 통과’ 조치 사흘째인 16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서울시청을 찾아 ‘장애인 이동권 보장’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전장연은 이날 오전 8시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외면하는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출근길 선전전을 마친 뒤에는 21년간 지하철역 리프트를 타다 떨어져 죽은 장애인들에 대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 ‘무정차’ 세 글자 “장애인들 평생 당한 차별과 폭력 압축한 말”
이날 전장연의 입장 표명은 출근길 시위로 지하철 운행이 지연될 경우 12일부터 해당 역사를 무정차 통과하기로 한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앞서 공사 측은 “대통령실에서 관련 문의가 있었고, 시위 강도에 따라 무정차 통과까지도 검토하고 있다”고 알린 바 있다.
예고 이틀 뒤, 무정차 통과는 실제로 일어났다. 14일 전장연 활동가들이 삼각지역에서 출근길 선전전을 벌이자, 서울교통공사는 오전 8시 50분께 들어오는 열차를 한 차례 무정차 통과시켰다. 전장연 시위가 시민에게 극심한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열차 운행은 평소보다 7분 정도 지연된 상태였다.
공사 측은 역사 내 사다리 반입도 제한했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철제 사다리를 목에 걸고 지하철 선전전과 시위를 지속해오고 있다. 이들은 시위 도중 끌려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다리와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묶으며 싸워 왔다. 사다리는 장애에 대한 억압과 장애인 투쟁 그 자체를 상징한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의 이 같은 방침은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는 전장연의 요구를 외면한 채 이뤄졌다. 이에 대해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는 “서울시와 정부는 대통령실 공무원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무정차 통과를 장애인을 협박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며 “도대체 뭐가 기발하다는 것이냐. 장애인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기막힌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냐, 아니면 정부가 손쓰지 않고 시민을 갈라쳐서 싸움 붙이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그는 “‘무정차’라는 세 글자는 장애인들이 평생 당해 온 차별과 폭력을 압축하는 말”이라며 “우리는 서지 않는 버스, 택시, 열차 앞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 온 사람들이다. 이 열차가 달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앞에 정차하는 열차가 들어오고, 우리의 기다림이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우리는 서지 않는 열차 앞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들이다)
- 서울시 약속 어기는 사이, 끝없이 반복된 리프트 추락사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시작된 것은 2001년이다. 그해 1월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70대 장애인 노부부를 태운 수직형 리프트가 추락했다. 설을 맞아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한 명이 숨지고 다른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 장애인들은 휠체어를 타고 거리로 나와 지하철을 막고 버스를 점거했다.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고, 모든 시내버스를 저상버스로 교체하라고,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을 도입하라고 21년 동안 외쳤다.
서울시는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그러나 모두 말뿐인 약속이었다. 2002년 8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2015년 12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은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 및 세부 실천 계획’을 발표해 2022년까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겠다고 한 번 더 약속했지만, 올해 초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 기한을 2024년으로 다시 미뤘다.
그 사이 리프트 추락 사고는 끊임없이 반복됐다. 2001년 오이도역, 2002년 발산역, 2004년 서울역, 2006년 회기역, 2008년 화서역, 2012년 오산역, 2017년 신길역 등에서 장애인은 리프트를 타다 떨어져 죽거나 크게 다쳤다. 장애인들이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 100% 설치’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들이 추락사한 리프트는 우리에게 살인 기계나 다름없고, 그걸 이용하게 한 서울시는 살인자와 마찬가지”라며 “서울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장애인 단체 내부를 갈라치는 방식의 무정차 통과를 즉각 중단하고 그동안 리프트를 타다 죽은 장애인들에게 사과하라”고 외쳤다.
다른 시민사회단체들도 장애계 주장에 힘을 보탰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2008년 촛불집회 때도 서울교통공사는 경복궁역을 무정차 통과해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통제한 전력이 있다. 이 같은 무정차는 장애인의 무권리 상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 서울시청 찾은 전장연 “오세훈 시장, 장애인에 공개 사과하라”
이날 전장연 활동가 10여 명은 무정차 통과로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를 강하게 비판하며 21년간 미뤄 온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출근길 선전전을 진행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진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은 이날로 250일 차를 맞았다.
박 대표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철제 사다리를 목에 걸고 오전 8시 56분께 삼각지역에서 숙대입구역 방면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타려 시도했다. 그러자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들은 여객운송약관에 따라 사다리의 가로, 세로, 높이의 합이 158cm를 넘으면 반입할 수 없다며 이를 막았다. 일부 활동가들이 반발하는 과정에서 공사 측과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전장연은 사다리를 내려놓고 9시 정각에 들어오는 두 번째 열차를 탔다. 이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약속을 지키지 않는 서울시에 책임을 묻기 위해 서울역에서 내려 1호선 시청역으로 갈아탄 뒤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이날 서울교통공사는 안내 방송과 공식 어플리케이션 ‘또타지하철’ 등으로 무정차 통과를 예고했지만, 별도의 지연이나 정차 없이 선전전은 30분가량 이어졌다.
활동가들은 선전전을 마친 뒤 서울시청 정문 앞에 모여 서울시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라고 외쳤다. 오 시장에게는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아 발생한 참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서울시는 장애인 이동권 약속 위반 사과하라’,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정차 폭력보다 책임과 대화를 통해 해결하라’ 등이 적힌 스티커를 시청 외벽과 바닥에 붙여가며 서울시의 약속 위반과 무정차 통과 조치에 항의했다. 경찰이 이를 막아서자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벽에 스티커 하나 붙이는 것보다 서울시가 장애인의 권리를 외면해 온 것이 더 큰 잘못”이라며 “힘없는 사람들이 권력에 항의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까지 이렇게 막아서야 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장연은 이날 오전 서울시의 책임을 촉구하는 공문을 오 시장에게 보낸 뒤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들은 다음 주부터 무정차 통과에 대응하기 위해 역사를 알리지 않고 서울 지하철 곳곳에서 출근길 선전전을 벌일 계획이다. 오는 19일 삼각지역에는 무정차 통과 조치를 비판하는 251일 차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이 예정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