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면담 예정… “대통령, 이동권 예산 ‘결단’해달라”
시청역 중심으로 지하철 시위 예고
“탈시설 공격하는 오세훈에게 책임 묻겠다”

23일 오후 2시, 전장연은 대통령실 인근에 있는 삼각지역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을 선언하면서 지하철행동 향후 계획을 알렸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23일 오후 2시, 전장연은 대통령실 인근에 있는 삼각지역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을 선언하면서 지하철행동 향후 계획을 알렸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대통령실이 여기 있어서 이제까지 4호선을 중심으로 탔습니다.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을 탔는데요, 2001년 1월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 이후 22년을 외치고 있다는 것 또한 꼭,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22년을 기다렸습니다. 또 기다리겠습니다. 4호선 지하철은, 타지 않겠습니다.”

“타지 않겠습니다”는 말에 마침표를 찍고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침묵한다. 고개를 한 번 푹 숙였다가 다시 든다. 무채색의 눈동자는 잠시 허공을 서성인다. 입술을 달싹이곤 다시 말을 잇는다. 그는 대통령의 ‘결단’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를테면 최근 한일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결단’이라던가, 노동 개혁에 대한 ‘결단’ 같은 것 말이다.

박 대표는 “굴욕외교라고 불리는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노동개혁의 방향성이 옳은지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만 장애인들이 1년 내내 아침 출근길에 나와서 시민들에게 혐오와 욕설을 먹어가면서도 장애인권리예산을 외쳤다는 것을 기억해달라. 대통령이 ‘결단’해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그는 이동권 예산만은 보장해달라고 강조했다.

새파란장미시민행동이 “같이 탑시다 쫌!” “같이 삽시다 쫌!”이라고 적힌 피켓을 손에 들고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새파란장미시민행동이 “같이 탑시다 쫌!” “같이 삽시다 쫌!”이라고 적힌 피켓을 손에 들고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1호선 시청역 집중 투쟁 예고 “탈시설 공격하는 오세훈에게 책임묻겠다”

23일 오후 2시, 전장연은 대통령실 인근에 있는 삼각지역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을 선언하면서 지하철행동 향후 계획을 알렸다. 전장연은 최근 국회 의원모임 ‘약자의눈’을 통해 국무총리 면담이 예정된 사실을 알리면서 삼각지역을 중심으로 한 4호선 지하철 탑승 시위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탈시설과 전장연을 공격하며 갈라치는 행위에 대해선 책임을 묻겠다며 1호선 시청역을 중심으로 지하철행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전장연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정부예산에 관한 1차 재정전략회의를 오는 27일 열 계획이다. 전장연은 23일까지 내년도 장애인권리예산에 관한 기재부 답변을 기다렸으나 어떠한 답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사이, 국회 의원모임 ‘약자의눈’을 통해 종교계 지도자를 만났고 현재 국무총리 면담이 예정된 상황이다.

박 대표가 강조한 ‘이동권 예산’은 지난해 6월 28일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을 의미한다. 개정안엔 특별교통수단 운영범위 확대, 정부가 운영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무조항 명시, 비휠체어 이용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특별교통수단 외 지원차량에 대한 운영비 지원 등이 담겼다. 그러나 운영범위 확대를 제외한 나머지 내용에 대해선 기재부 반대가 워낙 강경해서, 해당 내용들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폐기된 채 수정된 안이 통과됐다. 결국 예산 문제다.

23일 오후 2시, 전장연은 대통령실 인근에 있는 삼각지역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을 선언하면서 지하철행동 향후 계획을 알렸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23일 오후 2시, 전장연은 대통령실 인근에 있는 삼각지역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을 선언하면서 지하철행동 향후 계획을 알렸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불법 감수하면서까지 투쟁하게 만드는 현실 봐달라”

이날 기자회견에는 휠체어 탄 사람들 머리 위로 “같이 삽시다, 쫌! 쫌! 쫌!”이라고 적힌 작은 피켓이 말풍선처럼 등장했다. 연대단체로 온 새파란장미시민행동이 준비해온 피켓이다. 그 외에 희망연대노조,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홈리스행동 등이 함께했다.

기자회견에선 22년간 지속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규탄하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20년 동안 안 해본 투쟁이 없다. 그런데 20년의 투쟁보다 지난 한 해 진행한 출근길 지하철 투쟁에 대한 반응이 더 뜨거웠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장애인과 시민을 갈라치면서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장애인권리예산 1조 3천억 원에는 나라 망한다고 하면서 부자 감세는 손쉽게 해준다”고 규탄했다.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김재왕 인권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김재왕 인권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김재왕 인권변호사는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제정된 법들을 나열하면서 “이렇게 수많은 법이 제정됐지만 장애인의 삶은 얼마나 바뀌었나.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만들어졌다고 휠체어 탄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시외‧고속버스가 지금 몇 대나 되나”라고 되물었다.

그는 “정부는 돈이 없다면서 장애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장애인이 울부짖고 거리에서 투쟁해야만 예산을 찔끔찔끔 올려준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이 어떻게 이 자리에 나서지 않을 수 있나. 장애인이 불법 저지른다고 탓할 게 아니라, 불법을 감수하면서까지 투쟁하게 내모는 이 현실을 봐달라”고 외쳤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탈시설에 가하는 공격에 대해 지적했다. 최 회장은 “시설은 장애인 권리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시설은 모두 폐쇄하고 개인별 지원체계를 구축해서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도 오세훈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장연의 시위를 겨냥해 “불법 행위는 반드시 바로 잡도록 하겠다”고 남겼다. 최근 오세훈 시장은 전장연 소속 단체를 중심으로 탈시설장애인 전수조사, 활동지원 서울시 추가 수급자 조사,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현장 실사 등을 진행하며 탈시설을 압박하고 있다.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한편, 전장연은 2002년 이후 매년 3월 26일부터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거쳐 5월 1일 노동절까지 장애인차별철폐를 위한 집중 투쟁에 돌입한다. 3월 26일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을 폭로하며 자결한 최옥란 열사의 기일이다.

정다운 전장연 정책실장은 “정부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면 장애인에게 헌신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고, 장애인들 목욕시켜서 바깥 구경 한 번 시켜준다”면서 “그런 시혜와 동정이 아닌, 1년 365일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고자 전장연은 4월 20일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선포하며 투쟁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장연에 따르면, 올해 420공투단에는 147개의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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