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법 적용 제외 장애인 노동자 9,000명
보호작업장서 받는 37만 원, 최저임금 20% 불과
최저임금 국고로 지원해도 보호작업장은 그대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제도화가 근본적인 대안”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장애인을 헌법적 권리의 예외로 둘 것인가-장애인 최저임금법 제도 개선 토론회’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국가인권위원회,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이날 좌장을 맡은 염형국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국장(왼쪽 첫 번째)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장애인을 헌법적 권리의 예외로 둘 것인가-장애인 최저임금법 제도 개선 토론회’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국가인권위원회,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이날 좌장을 맡은 염형국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국장(왼쪽 첫 번째)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여기 한 중증발달장애인이 있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장애인 보호작업장에 나와 일한다. 주로 상자를 접거나, 전기 콘센트를 조립하거나, 빨래를 하는 단순노동이다. 한 달 동안 그가 일해서 받는 임금은 37만 원. 기초생활수급비를 합하더라도 100만 원 안팎이다. 몇 년째 그 액수를 넘지 못한다. 법정 최저임금 월 환산액이 200만 원이 넘는 지금, 장애인 노동권의 현실이다.

‘장애인 최저임금법 제도 개선 토론회’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국가인권위원회,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장애인 노동자가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현실을 지적하고, 최저임금법 제7조 폐지 이후 장애인 노동권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관련 법제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 보호고용 장애인 9,000명,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해

최저임금제가 국내에 처음 도입된 건 1988년 최저임금법이 시행되면서다. 임금의 최저 수준을 법으로 보장해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한다는 것이 제도의 취지다. 최저임금은 노동자·사용자·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다. 1988년 462원이던 시급은 매년 올라 2023년 기준 9,620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장애인은 법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최저임금법 제7조 1항에 따르면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거쳐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할 수 있다. 국회는 2000년부터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최저임금제를 확대 적용했고, 2005년에는 최저임금법 제외 대상에서 ‘수습 노동자’를 삭제하는 등 적용 범위를 손보기도 했다. 그러나 9,000명에 가까운 장애인은 여전히 최저임금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시급을 받으며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와 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근로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장애인 노동자는 2019년 8,971명, 2020년 9,005명, 2021년 9,475명, 2022년 8월 말 기준 6,691명으로 나타났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장애인을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장애인 차별을 공고히 하고 장애인 노동을 평가절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월평균 임금 현황과 금액별 현황을 추정한 표. 2019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월평균 임금은 37만 원을 웃돌았고, 금액별 구간으로는 10만 원~30만 원이 가장 많았다. 토론회 자료집 일부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월평균 임금 현황과 금액별 현황을 추정한 표. 2019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월평균 임금은 37만 원을 웃돌았고, 금액별 구간으로는 10만 원~30만 원이 가장 많았다. 토론회 자료집 일부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 과정 중 작업능력평가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 비율(2017~2021년)을 나타낸 표. 2017년 99.5%, 2018년 97.1%, 2019년 97.2%, 2020년 98.5%, 2021년 8월 기준 98.8%를 기록했다. 토론회 자료집 일부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 과정 중 작업능력평가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 비율(2017~2021년)을 나타낸 표. 2017년 99.5%, 2018년 97.1%, 2019년 97.2%, 2020년 98.5%, 2021년 8월 기준 98.8%를 기록했다. 토론회 자료집 일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 대다수는 직업재활시설이라는 보호고용 영역에서 일하는 중증발달장애인이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2005년 개정된 최저임금법 시행규칙에 따라 장애인고용공단에 작업능력평가를 의뢰해 장애인의 근로 능력에 따라 최저임금 적용 제외 여부를 결정한다. 이때 인가 신청을 한 사업장의 96.7%가 중증장애인만 일하는 직업재활시설이다(2019년 기준). 직업재활시설에서는 상자 포장, 휴대전화 부품 조립 등 단순 작업을 한다. 이들의 월 평균 임금은 37만 원 안팎으로, 최저임금의 20% 수준이다.

정부는 2018년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 기준을 작업능력 90%에서 70%로 낮췄다. 그러나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된 장애인 노동자 수는 전년도 대비 300명 이상 늘어났다. 2021년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이 전국 5개 시도 장애인 보호작업장(직업재활시설의 일종)을 조사한 결과 대다수는 10~30만 원 사이의 임금을 받고 있었고, 수급비를 합친 월 소득은 100만 원에 그쳤다. 이에 대해 명숙 활동가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사업장 신청을 하면 97% 넘게 허가가 나는 상황에서 작업능력평가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며 “최저임금법 제7조는 보호고용이라는 분리된 노동시장을 만들어 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최저임금법 제7조 폐지·권리중심공공일자리 함께 가야”

그동안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을 폐지하는 법안이 여럿 발의됐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며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크게 세 가지 방안이 거론되었다. 최저임금을 덜 주는 대신 부족분을 정부가 고용보조금으로 지급하는 것, 해당 조항을 폐지하고 장애인의 최저임금을 국가가 전액 보전해주는 것, 그리고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토론회에서는 앞서 두 가지 방안대로 최저임금을 국고로 메우게 되면 직업재활시설이 늘어날 뿐 장애인의 노동권을 온전히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직업재활시설의 경우 정부 지원을 받으면 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고도 사업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작업능력평가가 존재하는 이상 장애인은 ‘작업능력이 떨어져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낙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2022년 9월 28일 국회 앞 장애인권리예산·권리입법쟁취 한국판 T4 철폐 농성장에서 ‘이것도 노동이다’라는 글귀가 적힌 조끼를 입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가 주먹을 번쩍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2022년 9월 28일 국회 앞 장애인권리예산·권리입법쟁취 한국판 T4 철폐 농성장에서 ‘이것도 노동이다’라는 글귀가 적힌 조끼를 입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가 주먹을 번쩍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에 따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지난해 9월 장애인을 분리·배제하는 보호작업장을 폐쇄하고, 장애인만 일하는 ‘보호고용’에서 장애인·비장애인을 아우르는 ‘개방고용’으로 전환해 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명숙 활동가는 “국가 재정을 통해 장애인의 임금을 보전하자는 접근만으로는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이 늘어날 수 있다”며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실현하려면 최저임금법 제7조 폐지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창출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그동안 자본주의 시장에서 ‘노동할 수 없는(disabled) 몸’으로 여겨져 온 최중증장애인과 탈시설장애인을 우선적으로 고용하는 일자리다. 2020년 7월 서울에서 중증장애인 260명을 대상으로 시작돼 현재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등에서 1,200여 명의 장애인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한다. 발제자로 나선 정다운 전장연 정책실장은 “장애인에게 최저임금도 주지 않으면서 ‘정상 노동’을 훈련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최저임금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시범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된 상태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중증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대로 보호고용이 아닌 개방고용을 지향한다는 의의가 있다. 정다운 실장은 “이와 별도로 전장연에서 중증장애인공공일자리지원특별법이라는 독립된 형태의 법안 제정을 검토 중”이라며 “국가의 역할은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직무를 개발하고 최저임금 이상의 적정임금을 지급하는 공공일자리를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2021년 9월 대표 발의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일부개정법률안’ 일부. 이 법안은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대로 보호고용이 아닌 개방고용을 지향하고 있다. 토론회 자료집 일부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2021년 9월 대표 발의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일부개정법률안’ 일부. 이 법안은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대로 보호고용이 아닌 개방고용을 지향하고 있다. 토론회 자료집 일부

- 독일·호주 보호고용 폐지 “국제 기준 부합하는 고용정책 필요”

토론자로 나선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최저임금 제7조 폐지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유일한 해법이 될 수는 없다고 봤다. 중증장애인 위주의 공공일자리 외에도 현행 최저임금제와 보호작업장 폐지와 관련해 다양한 방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미연 변호사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과 보호작업장을 폐지하고 있는 협약 가입국들의 여러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의 경우 최저임금 적용 제외 기간을 두어 3년이 지나면 장애인에게도 최저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스웨덴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 없이 최저임금 이상을 보장하되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를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스웨덴 정부는 개방고용을 분명한 목표로 삼고 보호고용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고용 자금은 정부가 100% 출자한다.

한편 독일은 2017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로부터 보호작업장을 폐지하라는 권고를 받은 이후 그 개념을 ‘포용작업장’으로 바꿔 장애인·비장애인 노동자가 함께 일하는 지역사회 통합을 추구하고 있다. 호주 역시 보호고용 제도를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있다. 조미연 변호사는 “현재 우리나라는 장애인 노동자의 최저임금도, 기본적인 생활도 보장하지 못하는 분리된 노동 환경에 마주하고 있다. 보호고용을 즉각 없애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장애인 고용 정책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장애인을 헌법적 권리의 예외로 둘 것인가-장애인 최저임금법 제도 개선 토론회’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국가인권위원회,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사진 복건우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장애인을 헌법적 권리의 예외로 둘 것인가-장애인 최저임금법 제도 개선 토론회’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국가인권위원회,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사진 복건우

이어 토론자로 나선 한인상 국회 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장은 “최저임금법 적용 제외 조항을 급격하게 폐지하면 중증장애인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으니 폐지보다는 전환 지원을 모색하자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며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은 장애인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좌장을 맡은 염형국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국장은 “수년 전부터 논의가 반복됐지만 최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가 나오는 등 의미 있는 진전도 있었다. 국회가 귀 기울여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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