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증장애인특별법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안 돼
고용노동부‧복지부 “복지부 장애인일자리사업과 동일하다”며 반대
직업재활시설협회 “중증장애인 일자리, 이미 활성화되어 있어” 반대
최중증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에 발의됐으나, 고용노동부는 여전히 보건복지부 핑계만 대며 장애인 노동권 보장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시혜적인 복지 일자리 수준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묻어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증장애인공공일자리 특별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29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실에서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아래 전권협) 등의 주최로 열렸다.
지난 5월,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 및 고용활성화를 위한 공공일자리 지원 특별법안’(우원식 의원 대표발의, 아래 중증장애인공공일자리)이 발의됐다. 현재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근거해 이뤄지는 고용장려금, 의무고용제도는 일할 수 있는 경증장애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중증장애인 고용 촉진에는 아무런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중증장애인은 경증장애인에 비해 고용률뿐만 아니라 노동시간과 근속기간이 짧고 월평균 임금 수준도 낮다. 지난 10여 년간 전체 국민의 고용률은 60% 내외였지만, 중증장애인의 고용률은 20% 내외, 경증장애인 고용률은 40% 내외였다. 따라서 장애계는 정부에 중증장애인 고용 보장을 위한 특별법안 제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해 왔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특별법안에는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이 중증장애인의 사회 참여 촉진과 노동권 보장을 위해 장애인 권리증진과 같은 사회적 가치 생산 직무를 일자리로 개발해 중증장애인에게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일자리는 2020년 7월 서울시를 시작으로 경기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강원도 등에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라는 이름으로 시행 중이다. 하지만 법적 근거 없이 지자체 조례에 근거해 지자체가 전액을 부담하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자체 재량에 맡겨지다 보니 이번 서울시 사태처럼 시장이 바뀌면 사업 자체가 폐지될 위험도 높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김기룡 중부대학교 교수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도 중증장애인 고용을 민간에만 의존하지 말고 공공부문이 직접 나서서 일자리 여건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면서 “1990년에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제정됐지만 지난 30년간 중증장애인 고용을 해결하지 못했다. 이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법 제정의 필요성을 밝혔다.
또한 김 교수는 “복지부 장애인일자리사업은 중증장애인에게 특화되어 있지 않으며, 양질의 일자리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적 성격을 가진 일자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가치생산업무를 수행하는 공공일자리사업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며 특별법의 최종 책임자는 고용노동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반대 입장 밝힌 고용노동부,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중증장애인 위한 제도’
그러나 이 법에 이해관계를 두고 있는 모든 정부 기관이 법안 제정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 6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전문위원 김원모)가 제출한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일자리사업과 동일한 직접 일자리 형태”라면서 “고용노동부에서 별도로 추진하는 것은 복지부 사업과 중복되어 비효율적”이라며 반대했다. 보건복지부도 “중증장애인공공일자리는 기존 장애인일자리사업과 유사하다”면서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장애인 보호작업장 등을 운영하는 직업재활시설협회도 강한 반대를 표했다. 직업재활시설협회는 “중증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재정지원 일자리 제도가 이미 활성화되어 있다”면서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참여가 일반노동시장으로의 전이에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있으므로 제도의 효과성 검토 및 재정비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이란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취업취약계층의 고용안정을 지원하는 사업을 말한다. 복지부 장애인일자리, 직업훈련, 고용장려금 지급 등이 재정지원 사업에 해당한다. 즉, 직업재활시설협회는 정부가 예산을 통해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경석 전권협 대표는 “고용노동부의 의견은 중증장애인 일자리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손을 뗄 거면 1조 원 가까이 적립해 놓은 (장애인고용촉진)기금도 복지부로 이관해서 중증장애인 일자리를 더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체계적이다”라면서 “고용노동부는 지금 비장애인들만의 노동부, 시장에서만 기능하는 노동부의 역할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박 대표는 직업재활시설협회 의견에 대해서도 “재정지원 일자리가 활성화되어 있으면 이런 토론회가 왜 필요하겠나”라고 되물었다. 이어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미 ‘노동시장에서 버린 사람들’이다. 시장에서 버렸기에 최저임금도 안 주고 무능력자로 판별해버렸다. 이들에게 어떤 훈련을 통해 시장으로 이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있나”라면서 “이 일자리는 일반노동시장으로의 전이가 목표가 아니다. 보호작업장에서도 일반노동시장으로의 전이가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직업재활시설협회의 의견은 자기 모순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회기가 반년도 남지 않은 21대 국회에 특별법안 통과를 간절히 호소했다. 박 대표는 “다수 야당이 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중증장애인 노동의 문제를 언제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회기 내에 꼭 통과시켜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고용노동부 측은 여전히 강고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조은비 고용노동부 장애인고용과 사무관은 현재 제안된 직접 지원 형식의 중증장애인공공일자리는 고용노동부의 역할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조 사무관은 “정부 부처 내 역할 분담이 있다. 복지부에선 직접 고용해서 임금 주는 방식을, 고용노동부에선 의무고용률을 제정하고 고용장려금을 지급해서 민간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대에 못 미칠 수는 있지만 고용노동부도 중증장애인 고용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기업에서 강한 규제로 느낄 수 있는 의무고용률을 시행하는 국가는 전세계에 몇 없다”면서 여전히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중증장애인을 위한 제도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