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에서 20년, 어머니와 10년 살다가 가까스로 자립
노모 주택 구입하자 부양의무제 적용 받아 의료급여 탈락
예외조항 덕에 한시적으로 수급 유지 중
갑상샘항진증 다 나으면 다시 의료급여 중단
“제 병 고쳐야 하나요? 아니면 고치지 말까요?”

[편집자 주] 28일, 보건복지부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를 열어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을 의결했다. 중위소득이 정해짐에 따라 생계급여도 정해졌다. 내년에 1인 가구는 생계급여로 71만 3,102원을 받는다. 올해 62만 3,368원에서 9만 원가량 올랐다. 인상률로 치면 14.4%다. 생계급여가 역대 최대로 올랐다는 기사가 쏟아지는 이유다.

이날 중생보위가 열리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초생활수급자들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위소득을 현실화하고, 무엇보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하라’고 말했다. 비마이너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관한 조상지 씨의 발언 전문을 싣는다. 정부의 자화자찬에 가려 말해 지지 않는 가난의 족쇄에 관한 이야기다.

조상지 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조상지 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반갑습니다, 동지들! 저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상지입니다.

저는 철원에 있는 장애인시설에서 20년간 살다 나와 어머니와 10년을 같이 살았습니다. 저는 시설과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부양의무제가 뭔지, 자립이 뭔지 몰랐습니다.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어머니가 손으로 떠주는 밥을 먹어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자립하기 전까지 저와 어머니의 소원은 어머니보다 제가 하루 먼저 죽는 거였습니다. 어머니의 지인으로부터 노들야학을 소개받고 학교에 다니면서 활동지원제도와 기초생활수급제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고 저는 고민 없이 바로 자립했습니다. 험난한 과정이 있었지만 기초생활수급자도 됐습니다.

제 어머니는 시설에 있는 저를 데리고 나오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셨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구리시 인창동에 성일장이라는 여관을 임대했습니다. 같이 살 집을 구하더라도 중증장애인인 저를 데리고 있으면 돈을 벌러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여관을 임대하셔서 집과 일자리를 동시에 구하신 것이었습니다.

여관이 있는 인창동에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어머니는 조합이 주는 보상금으로는 주변에 상가는커녕 이사할 집도 구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죽나, 나가서 길거리에서 죽나 어차피 죽는 건 똑같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면서 철거투쟁을 하셨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조합과 합의가 되었고, 그나마 올려받은 보상금으로 아파트가 있는 서울은 싫다면서 전 재산인 보상금과 은행대출을 더 해 강원도 평창에 주택을 구입해 이사하셨습니다.

그 후에 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등기를 하나 받았습니다. 부양의무자의 재산에 변동이 있어 의료급여에서 탈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바로 연락이 온 게 아니고 어머니가 주택을 구입한 지 반년이 넘어서 통보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제 몸 상태를 체크하고, 저에게 맞는 운동요법을 가르쳐주시는 주치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저는 당연히 의료급여가 적용되는 줄 알고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고 있었는데, 의료급여가 탈락된 시점으로부터 제가 병원에서 치료받았던 모든 것이 소급 적용돼 그동안의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노원구청에 찾아가서 항의했습니다. 구청은 제가 진료받는 것 중에 갑상샘항진증이 있는데, 그게 의료급여 박탈의 예외조항이라면서 수급을 유지하고 싶으면 6개월 이상 치료받아야 한다는 의사 처방이 있는 진단서를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진단서를 제출하였고, 의료급여에서는 탈락했지만 예외조항에 있는 병이 있으니 치료가 끝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급여를 적용해 주겠다는 내용을 공단으로부터 다시 통보받았습니다.

28일, 중생보위가 열리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시민사회단체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하민지
28일, 중생보위가 열리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시민사회단체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하민지

동지들, 저는 제 병을 고쳐야 할까요, 아니면 고치지 말아야 할까요? 약을 꾸준히 먹고 병이 좋아져야 하는데 좋아지면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의료급여 탈락에서 한시적 유지까지 6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동안에도 저는 감기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병들로 병원에 다녀야 했습니다. 한 번 갈 때마다 약값 포함해서 만 원 이상의 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저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합니다. 한 달에 쓸 수 있는 생활비는 뻔합니다. 이 돈에서 병원비로 나가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저는 생활이 더욱더 곤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장애인인 저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몸이 더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병원 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지출해야 하는 병원비가 늘어나는 건 불 보듯 당연합니다. 이건 돈 없는 사람은 그냥 죽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부양의무의 족쇄를 차고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에게 더 이상의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 저는 의료급여 수급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평생 병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부양의무제가 완전 폐지되는 날까지 저는 약을 먹을지 말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제 경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병원비가 무서워 병원에 못 가고, 약이 있어도 못 먹고, 약이 없어도 못 먹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정말 많습니다. 우리는 신문, 방송을 통해 힘든 현실 때문에 죽어가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국가는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을 죽이지 마십시오.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는 지금 당장 실행되어야 합니다.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되는 그날을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지치지 않고 동지들과 함께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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