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인상’은커녕 기본 증가율 깎아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은 또 ‘완화’에 그쳐
의료급여, 정률제로 개악… 빈곤층 의료비 부담↑

보건복지부는 25일 오후 2시 30분,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같은 날 오전에 열린 제73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에서 내년도 중위소득 증가율을 1인 가구 기준 7.34%, 4인 가구 기준 6.42%로 정했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역대 최대 인상”이라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가 만든 중위소득 관련 그래픽. 
보건복지부가 만든 중위소득 관련 그래픽. 

- “역대 최대 인상” 뒤에 숨겨진 숫자

1인 가구 중위소득은 올해 222만 8445원에서 내년도 239만 2013원으로, 4인 가구 중위소득은 올해 572만 9913원에서 내년도 609만 7773원으로 책정됐다.

이에 따라 내년도 생계급여는 1인 가구 76만 5444원, 4인 가구 195만 1287원으로 결정됐다. (관련 자료: 보건복지부, 2025년도 기준 중위소득 6.42%로 역대 최대 인상)

빈곤사회연대는 같은 날 오후 5시 30분경 성명을 내고 “‘역대 최대 인상’ 뒤에 ‘사기와 기만’이 숨겨져 있다. 중생보위는 최소한의 원칙도 지키지 못한 결정을 했다”고 비판했다.

중위소득 증가율은 통계청에서 발표한 최근 3년 치 ‘가계금융복지조사’ 상의 중위소득 평균 증가율을 ‘기본 증가율’로 한다. 원래는 ‘가계동향조사’ 상의 자료를 기본으로 했는데 2020년 중생보위에서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기본으로 한다고 변경했다.

이같은 변경 때문에 복지부가 발표하는 중위소득과 가계금융복지조사 상의 격차 12.49%가 발생하게 됐다. 2020년 당시 중생보위는 이 격차를 6년에 걸쳐 해소하기로 결정했다.

즉, 2026년도까지 한시적으로 추가되는 ‘추가 증가율’에 3년 치 가계금융복지조사 상의 중위소득 평균 증가율인 ‘기본 증가율’과 ‘올해 중위소득’을 곱한 값이 내년도 중위소득이 되는 것이다.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최근 3년 치(2020~2022) 중위소득 증가율 평균값은 7.81%다. 이 숫자만 봐도 오늘(25일) 중생보위가 결정한 증가율을 뛰어넘는다. 중생보위는 적어도 7.81%가 넘는 증가율을 제시했어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복지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기본 증가율’을 고작 2.77% 반영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가 제시한 2%대 증가율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상에선 빈곤층이지만 실제로는 수급을 못 받는 빈곤 사각지대 양산의 악순환이 내년에도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 또 ‘완화’

중생보위는 가난한 사람들이 요구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도 무시했다.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의 소득 기준을 기존 1억 원에서 1억 3천만 원으로, 재산 기준을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상향 조정했을 뿐이다.

빈곤사회연대는 “이로 인해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이 (중생보위가 기존에 정한 기준의) 경계에 있던 이들이 수급권을 보장받게 되겠지만 그 경계는 허물어지지 않았다. ‘폐지’ 아닌 ‘완화’로는 사각지대를 없앨 수 없다”고 규탄했다.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25일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중생활보장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25일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중생활보장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

- 의료급여, 정률제로 개악… 수급자 “너무 화가 난다”

제일 심각한 것은 의료급여가 개악됐다는 점이다. 기존의 의료급여 수급자의 본인부담 체계는 정액제였다. 기존의 1종 수급자는 의원 외래 진료 시 본인부담금 1천 원, 병원·종합병원은 1500원, 상급종합병원은 2천 원을 낸다.

중생보위는 이제부터 진료비가 2만 5천 원이 넘어가면 정률제로 변경하겠다고 결정했다. 예를 들어 의원 외래 진료 시 진료비가 30만 원이 나올 경우, 1종 수급자는 진료비의 4%인 1만 2천 원을 지불해야 한다. 상급병원으로 갈수록 본인부담금은 6%(병원·종합병원), 8%(상급종합병원) 등으로 늘어난다.

복지부는 “그간의 물가, 진료비 인상 등을 감안할 때 의료 이용에 대한 실질적 본인부담 수준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비용의식이 점차 약화돼 과다 의료이용 경향이 나타났다”며 “정률제 도입으로 본인부담금이 진료비에 비례하도록 해 수급자의 비용의식을 제고하고 합리적 의료이용을 유도하고자”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빈곤사회연대는 “이는 명백한 의료급여 수급자의 급여 보장성과 경제적 접근성을 악화시키는 효과로 나타날 것”이라며 “재정 안정만을 위해 빈곤층의 건강 불평등을 확대할 명백한 의료급여 제도 개악”이라고 성토했다.

의료급여 수급 당사자는 “앞으로 병원비가 많이 들겠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의료급여 수급자이자 동료지원가로 일하는 박경인 활동가는 25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해당 소식을 듣고 “의료급여 수급자인데도 그렇게 적용되는 게 정말 맞느냐”고 되물었다.

박 활동가는 “기분이 나쁘다. 동료지원가로 일하면서 월급을 100만 원 조금 넘게 버는데 앞으로 병원비가 많이 들면 생활비를 줄여야 할 것 같다. 비염이 심해서 이비인후과에 다니고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정신과에도 간다.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고 (복용을) 중단하면 안 된다. 그런데 의료비가 오르게 된다니 너무 화가 난다. 투쟁해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 등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25일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중생활보장위원회’를 열고 △중위소득 현실화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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