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중생보위 또 비공개로 열고 최종 의결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 7.25% 인상
생계급여는 9만 원(14.4%) 인상돼 약 71만 원
수급자들, 회의 앞서 정부청사서 기자회견
“원칙 지킨 계산일 뿐, 수급자 삶은 무너져”

홈리스야학 학생 꺽쇠 씨가 땀을 흘리며 “통계상 중위소득 1인 가구 244만 원, 복지용 중위소득 1인 가구 208만 원! 전 국민의 복지 권리 약탈하는 기준중위소득 도둑 잡아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 적힌 중위소득은 올해를 기준으로 한다. 사진 하민지
홈리스야학 학생 꺽쇠 씨가 땀을 흘리며 “통계상 중위소득 1인 가구 244만 원, 복지용 중위소득 1인 가구 208만 원! 전 국민의 복지 권리 약탈하는 기준중위소득 도둑 잡아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 적힌 중위소득은 올해를 기준으로 한다. 사진 하민지

보건복지부가 28일 오후 2시 30분, 내년도 기준중위소득을 1인 가구 기준 7.25%(222만 8445원), 4인 가구 기준으로는 6.09% 인상(572만 9913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복지부는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제70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에서 이 같은 내용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또한 생계급여를 중위소득의 30%에서 32%로 2%p 상향하고, 1인 가구 14.4%(71만 3102원), 4인 가구 13.16% 인상(183만 3572원)하겠다며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수급자들은 앞서 오전 9시 30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장애인과가난한이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은 “작년에도 ‘역대 최고 수준 인상’이라며 자화자찬 했지만 중위소득은 실제 소득의 중윗값에 미치지 못했다”며 “비공개회의부터 공개로 전환하고, 부양의무자기준을 반드시 폐지하라”라고 요구했다.

매년 수급자들은 중생보위가 열리는 회의장 앞으로 찾아가 요구사항을 전달해 왔다. 그러나 올해 정부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생보위를 연다’는 것만 밝히고 몇 층에서 하는지 구체적인 회의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다. 수급자들은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씨에 정부서울청사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돌아서야 했다.

공동행동이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하민지
공동행동이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하민지

- 당정 “중위소득 획기적으로 확대”, 수급자들 “생색내지 말라”

정부는 지난해 중생보위에서 올해 중위소득을 5.47% 인상하며 “역대 최고 수준”이라 칭한 바 있다.

올해 중생보위에서는 지난해 이상의 인상률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2024년도 복지사업기준 설정 당정협의회’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박 의장은 “올해 중위소득은 윤석열 정부 약자복지 기조에 따라 역대 최대인 5.47% 인상됐다. 내년에도 올해 이상의 증가율을 적용해 2년 연속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려 약자복지 기조를 강화해 달라”고 보건복지부에 요청했다. 이에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획기적인 확대가 필요하다. 오늘(26일) 당정에서 합의한 기준을 바탕으로 (중생보위에서) 잘 논의해 나가겠다”고 화답했다.

브리핑 직후, 여러 언론에선 “당정이 중위소득을 2년 연속 역대 최고 수준으로 인상하기로 뜻을 모았다”며 “중위소득을 복지수급자 선정기준으로 삼기 시작한 2015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28일 복지부가 중생보위 의결 내용을 발표한 현재에도 “역대 최대 규모의 생계급여 인상” 속보가 쏟아지고 있다.

공동행동은 복지부 발표 즉시 성명을 내고 “기준중위소득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인상률이지만 여전히 통계청 중윗값과는 차이를 보인다. 2021년 실제 소득 중윗값보다 조금 높고 2022년 중윗값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역대급이라 자찬하는 인상률에도 여전히 실제보다 3년 정도 뒤처져 있다”고 비판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중위소득은 기본 산식을 지켜 산출한 것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올해 소득의 중윗값은 1인 가구 244만 원, 4인 가구 610만 원이다. 그러나 내년도 중위소득은 각 222만 8445원, 572만 9913원에 불과하다.

낮은 중위소득은 가난한 사람의 삶을 옥죈다. 중위소득은 13개 부처의 73개 복지제도 기준선으로 활용되는데, 생계급여 수급자는 중위소득의 32%(내년 기준)를 받는다. 즉, 중위소득이 낮게 책정되면 수급비도 낮아지는 것이다. 2024년 생계급여는 1인 가구 기준 71만 3102원으로 올해보다 약 9만 원 늘었다.

동자동 쪽방 주민 김정길 씨가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멈추자. 의미 없는 발굴 말고 제대로 된 개선을!”이라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객관적으로 산정해야 할 중위소득을 기획재정부가 쥐락펴락하면서 해마다 부당하게 인상률을 하향 조정한 게 문제의 원인”이라며 “약자복지 운운하며 정부가 생색내기 할 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규탄했다.

동자동 쪽방에 거주하며 생계급여를 받는 차재설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교육홍보이사는 “수급비 인상을 위해 중위소득을 올려서, 사는 데 희망을 얻을 수 있게 만들어라. 62만 원(2023년 1인 가구 생계급여)으로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성토했다.

수급자들은 “확대되는 불평등과 물가 인상, 실제 국민의 소득 수준을 반영해 중위소득을 더 많이 인상해야 했다. 당정은 가난한 시민의 마지막 사회안전망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위기에 빠뜨렸고 수급자의 일상을 옥좼다”고 비판했다.

조상지 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조상지 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부양의무자기준 언제 폐지하나… “돈 없는 사람은 죽으라는 것”

중생보위는 8월 중 3차 기초생활보장제도 종합계획(아래 종합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2차 종합계획은 2020년에 수립됐지만 복지부는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 2차 종합계획에 따르면 올해 생계급여 수급자는 153만 명 이상, 의료급여 수급자는 인구의 3.1%가 돼야 한다.

생계급여의 경우 부양의무자기준이 완화돼 올해 6월 기준 159만 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은 완화되지 않았다. 의료급여 수급자는 143만 명으로, 2020년보다 고작 1만 명 늘었다.

노들장애인야학에 다니는 조상지 씨는 의료급여 수급자였다가 탈락했다. 조 씨의 어머니가 재개발 보상금에 대출금을 더해 주택을 구입했는데, 이로 인해 의료급여에서 탈락한 것이다.

현재 조 씨는 한시적으로 의료급여를 받고 있다. 갑상샘항진증이라는 의료급여 탈락 예외조항 질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급여는 갑상샘항진증 치료가 끝날 때까지만 유지된다. 이 질병이 나으면 더는 의료급여를 받지 못한다.

조 씨는 “생계급여로 생활하는 중인데 이 돈에서 병원비가 나가면 내 생활은 더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의료급여를 계속 받으려면 병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돈 없는 사람들은 그냥 죽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며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비가 무서워 병원을 못 가고, 약이 있어도 못 먹고 산다. 더는 죽이지 말라. 부양의무자기준을 완전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공동행동은 “부양의무자 소득이나 재산 변화 때문에 수급자마저 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자녀가 성인이 돼 취직하면 수급에서 탈락해 가족의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어떤 건지 복지부는 아는가. 3차 종합계획에서는 부양의무자기준이 반드시 완전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자동 쪽방 주민인 정대철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사업이사가 피켓을 머리에 올리고 땀을 흘리고 있다. 사진 하민지
동자동 쪽방 주민인 정대철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사업이사가 피켓을 머리에 올리고 땀을 흘리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한편 이날 중생보위 회의도 비공개로 진행됐다. 구체적인 장소까지 비공개 처리돼 수급자들은 중생보위 위원들에게 요구안조차 전달하지 못했다. 지난달, 중생보위 회의록을 공개하도록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강은미 정의당 국회의원 대표로 발의됐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희의록을 공개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 등과 비교했을 때 중생보위가 비밀유지 필요성이 크다고 볼 수 없다. 회의록이 공개될 경우 업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한다고도 볼 수 없다”며 “최종 의결 내용을 브리핑이나 보도자료를 통해서만 발표하는 건 행정 편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