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내년도 중위소득 인상률 2% 제시
‘부자감세’ 하는 사이 하위 10% 1인 가구 적자비율 70%
여전한 부양의무자기준, 빈곤 사각지대 양산 중
중생보위, 올해도 비공개? 가난한 사람들 “공개하라”
생계급여, 의료급여 등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 기준선’이 되는 중위소득.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중위소득 인상률을 고작 2%로 제시한 가운데, 매년 중위소득을 현실과 달리 낮게 결정해 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는 올해도 비공개로 열릴 모양이다.
이에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 등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23일 오전 11시,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를 향해 △중위소득 현실화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 △‘주거안정’을 위한 주거급여 개선 △중생보위의 폐쇄적 운영 완전 철회 등을 요구했다.
- 중위소득 빼고 다 오른다… 기재부, 올해도 ‘세수 부족’ 운운하며 삭감 시도
중생보위는 지난해, 올해 중위소득을 1인 가구 기준 7.25%(222만 8445원)로 인상했다. 윤석열 정부는 “역대 최대 인상률”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토대로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이 추산한 올해 1인 가구 소득의 중윗값은 약 271만 2천 원이다. 중생보위가 정한 1인 가구 중위소득이 이보다 48만 3천 원 정도 적은 셈이다.
이런 차이 때문에 생계급여 수급자는 더 적은 급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생계급여는 중위소득의 32% 선에서 결정되는데, 중생보위가 발표한 1인 가구 중위소득이 낮게 설정되니 수급자의 생계급여도 적어진 것이다. 이같은 차이로 인한 생계급여 삭감액은 대략 15만 5천 원 정도로 짐작된다.
이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수급자 자격 자체를 획득하기도 어렵고, 수급자가 되더라도 적은 수준의 생계급여로 한 달을 보내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매년 세수 부족,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한다며 중위소득을 현실과 다르게 낮게 설정해 왔다. 가난한 사람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올해도 이런 사태가 반복될 거라 예견한다. 실제로 기재부는 내년도 중위소득 기본 증가율을 2%대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달 열린 중생보위 생계·자활급여소위원회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한다. 경향신문은 “이는 지난해 기본 증가율 3.47%보다 낮고, 기본 증가율 계산의 토대가 되는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위소득 최신 3년치(2020~2022년) 증가율 평균값인 7.81%보다는 한참 낮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약자 복지’ 하겠다던 정부··· ‘세수 부족’ 이유로 저소득층 복지 기준 후퇴하나)
정부가 이렇게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은 악화일로 중이다. 특히 심각한 건 소득 1분위(하위 10%)의 ‘적자가구 비율’이다. ‘적자가구 비율’은 소득보다 지출이 많은 가구의 비율을 뜻한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21년에서 지난해까지 소득 1분위 가구 중 적자가구 비율은 70%에 이른다. 이에 반해 전체 적자가구 비율은 약 25%다.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뜻이다.
생계급여 수급자인 요지 홈리스야학 공동학생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생계급여를 받으면 외상(값)을 갚고 (한 달 생계를) 시작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외상(값)을 만들고 있다. 이 쥐꼬리만한 생계급여로 앞으로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물가가 오르는 속도에 비해 생계급여 오르는 속도는 느리기만 하다. 수급비가 올라도 오른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리버 홈리스야학 공동학생회장 또한 적은 생계급여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리버 회장은 “고시원의 공동 주방이 불편하기 때문에 주로 사서 먹는 습관이 들었다. 고시원 월세를 내지 않고 그 돈을 식비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8개월 월세가 밀려버렸다”며 “매달 들어오는 생계급여가 내 통장을 스쳐지나간다. 무료급식소 (이용이)나 폐지 줍는 걸로 (부족한) 생계비를 채우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의식주는 해결되는 현실적인 급여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의료급여 탈락한 사람들 월 수입 ‘44만 원’
여전한 부양의무자기준도 문제다. 중생보위는 중위소득뿐만 아니라 기초생활보장제도 운영 전반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 아직도 남아있는 부양의무자기준에 대해선 제대로 된 논의를 안 하고 있다.
사회보장정보원에 따르면 올해 6월을 기준으로 생계급여 수급자는 165만여 명, 의료급여 수급자 수는 146만여 명이다. 약 20만 명 차이가 난다. 이는 생계급여 선정기준(중위소득의 32%)이 의료급여(중위소득의 40%)보다 낮기 때문에 벌어진 차이다. 약 20만 명이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음에도 못 받고 있단 뜻이다.
이같은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은 완화조차 되지 않아 더 많은 사각지대가 양산되고 있다. 건강보험으로는 빈곤층의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없다. 2014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였다. 지병이 있었지만 병원을 이용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 보도된 세 식구의 가계부에는 식비 위주로 적혀 있었다. 병원비보다 생활비가 더 급하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짐작된다.
강은미 정의당 전 국회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의료급여 수급을 신청했다가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탈락한 사람은 2만 4157명이다. 이들의 월 평균 소득은 고작 44만 3420원뿐이었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2017년, 유엔사회권규약위원회는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정부 차원의 약속도 있었다. 하지만 주거급여에서만 폐지됐고 생계급여는 폐지됐다고는 하지만 소득 및 재산 기준을 기존보다 높인 것뿐이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각지대가 여전히 많다”고 규탄했다.
양영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또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유지한다는 건 국가가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부양의무자가 아니라 빈곤을 겪는) 당사자의 소득만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누구나 빈곤에 처했을 때 최저 생계 수준을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 주거급여 낮아서 공공임대주택 당첨돼도 포기하고 쪽방으로
주거급여는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됐다곤 하지만 주거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주거급여는 1인 가구 기준으로 1급지인 서울의 경우 34만 1천 원이 지급되고 있다. 그러나 해당 급여로는 서울의 웬만한 월셋방조차 구하기 어렵다. 2024년 국토부 실거래가 자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평균 월세는 무려 75만 원선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주거급여를 받아도 고시원, 쪽방 등 비적정주거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공공임대주택에 당첨돼도 낮은 주거급여 때문에 입주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쪽방에 살던 ㄱ 씨는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게 됐지만 관리비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한 달의 절반은 빈 통장으로 보내야 했다. ㄱ 씨는 공공임대주택을 포기하고 결국 쪽방으로 돌아왔다.
김지선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 성북주거복지센터 활동가는 “현재 주거급여는 임대차계약서상 월세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관리비’와 같이 주거 유지를 위한 필수요소가 빠져 있다. 관리비는 매달 일정 금액 이상 발생한다는 점에서 주거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월세와도 같다”며 “주거급여가 임대료 일부 지원이 아닌, 시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현실적인 제도가 될 수 있도록 개선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외에도 소득인정액이 생계급여 기준선을 초과해 부과받는 자기부담금 폐지, 전기 및 도시가스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에너지바우처 지급 대상을 전체 필요 가구로 확대 등을 요구했다.
이처럼 중생보위가 논의하는 여러 사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사항이 많지만 이들은 회의 내용을 알 수도 없고 회의에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도 없다. 중생보위가 비공개로 열리기 때문이다.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상근변호사는 “중생보위는 그 중대성에도 매년 밀실에서 이뤄진다. 국민이 알 수 있는 건 회의가 끝나고 발표되는 내년도 중위소득 인상률뿐”이라며 “중생보위는 회의 결과가 어떤 과정을 거쳐 도출됐는지 밝힐 의무가 있다. 해당 결과가 삶의 변화로 직결되는 사회구성원은 이를 알 권리가 있다. 중생보위는 여러 법에서 규정된 회의록, 속기록, 녹음기록 의무생산 지정 회의들에 비해 절대 그 중요성이나 필요성이 덜하지 않으므로 법적으로 공개 관련 사항이 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25일, 중생보위를 열고 내년도 중위소득을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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