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투표용지도 없고 알기 쉬운 선거공보물도 없다
발달장애인들이 국가에 소송 걸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이 졌다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이 무시당했다
발달장애인들은 법원에 다시 재판을 열라고 할 예정이다
이 기사는 발달장애인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언어로 썼습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해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의 ‘이해하기 쉬운 정보 제작 기준’을 참고했습니다.
- 한 문장에 하나의 정보만 담는다.
- 단순한 문장 구조로 짧게 작성한다.
- 구어체로 작성한다.
- 줄임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 복잡한 단어, 어려운 단어, 전문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 어렵지만 사용해야 하는 단어는 쉬운 설명을 함께 제공한다.
- 어려운 단어가 많은 경우 별도의 단어목록을 만들어 설명을 제공한다.
-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로 기재한다.
- #, &, ~, % 등의 문장부호 사용을 자제한다.
발달장애인인 박경인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소송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박경인 씨는 크게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경인’ 내 이름만 부르고 재판이 10초 만에 끝났습니다. 판사는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투표장에서도, 재판장에서도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건 인권침해입니다!”
박경인 씨는 작년에 국가를 향해 “선거 기간에 그림투표용지, 알기 쉬운 선거공보물 등의 편의를 제공하라”며 차별구제청구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발달장애인의 외침을 무시했습니다. 재판조차 발달장애인의 접근권을 무시한 채 끝나버렸습니다.
박경인·임종운 씨 등 소송을 건 발달장애인들(원고)과 변호사들, 활동가들은 16일 오후 2시 3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외면한 법원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법원에 “이 선고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 항소(다시 재판을 열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발달장애인들이 국가에 소송을 건 이유
발달장애인들은 작년 1월, 대통령선거를 50일 앞두고 소송을 걸었습니다. 전 국민이 윤석열이 괜찮은지 이재명이 괜찮은지 고민하고 있을 때, 발달장애인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선거공보물에 어려운 말이 많아서 누구의 공약이 나은지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발달장애인들은 투표장에 가서 투표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정당의 로고나 후보자 사진이 포함된 그림투표용지가 있으면 훨씬 투표하기 쉬운데 우리나라 투표용지에는 글자만 있습니다. 글자만 봐서는 누가 누군지 빨리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아무나 찍고 나온 적도 많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발달장애인들은 국가에 소송을 걸었습니다. 국가에 4개를 요구했습니다.
1. 알기 쉬운 선거공보물 가이드북을 만들어라.
2.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직선거관리규칙을 바꿔라.
3. 발달장애인에게 알기 쉬운 선고공보물을 제공하라.
4. 그림투표용지를 제공하라.
발달장애인들은 1년 넘게 재판에 참여하면서 많은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국가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발달장애인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고 판사에게 여러 번 말했습니다.
- 그러나 법원은 발달장애인 참정권을 외면했다
속상한 재판 결과가 나와 버렸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이 졌습니다. 법원(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 이원석 부장판사)은 박경인·임종운 씨가 낸 소를 각하했습니다. ‘각하’는 소송의 요건을 갖추지 않았으니 재판하지 않고 절차를 끝내는 걸 의미합니다.
법원은 자꾸 “공직선거법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규칙을 바꾸면 된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법원은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들의 요구가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고 했습니다.
1. 알기 쉬운 선거공보물 가이드북을 만들어라. => 법원: 발달장애인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정보 제작 가이드라인은 이미 있다. 그걸 쓰면 된다.
2.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직선거관리규칙을 바꿔라. => 법원: 공직선거법부터 바뀌어야 한다.
3. 발달장애인에게 알기 쉬운 선고공보물을 제공하라. => 자유로운 선거운동 규정에 위반, 선거공보물을 1가지 종류만 제공해야 된다는 공직선거법 규정에 위반된다.
4. 그림투표용지를 제공하라. => 법원: 공직선거법에 그림투표용지 규정이 없어서 안 된다.
법원은 자꾸 이렇게 판단하면서 “공직선거법이 바뀌지 않으면 법원이 발달장애인 편을 들더라도 국가가 따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 발달장애인들은 분노하며 다시 재판을 열라고 했다
재판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발달장애인들과 변호사들, 활동가들은 크게 화가 났습니다. 법원이 장애인을 차별했다고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박경인 씨는 “투표장에서 저는 이 사회의 시민이 아니라고 외면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이 사회의 시민이 아니라고 하니 나는 왜 태어났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알기 쉬운 선거공보물을 만들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는 안 된다는 건가요! 항소하고 계속 싸우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박경인 씨와 함께 피플퍼스트서울센터에서 활동하는 문석영 씨는 “5번이 넘도록 재판장에 찾아갔습니다. 판사를 만나 발달장애인 투표 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법원에서 발달장애인 손을 들어달라고 외쳤습니다. 법원은 국민을 차별하지 마십시오! 장애인도 인간이고 국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번 소송에 함께한 김윤진 변호사는 “법원은 국가가 알아서 하라고 하고, 국가는 국회가 법을 바꾸라 하고, 국회는 법적 의무가 없다고 합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는 우리 사회에서 설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법원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법원은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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