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협 20주년 기념식 성료
탈시설 자립왕, 12개 지역 15명 수상
환호 속 수상소감 릴레이
“너무 행복… 다들 나처럼 자립하길”

조인제 씨가 상을 받고 환히 웃고 있다. 사진 하민지
조인제 씨가 상을 받고 환히 웃고 있다. 사진 하민지

조인제 씨가 상을 받고 환히 웃었다. 3개 정도 남은 그의 치아가 밝게 빛났다. 인제 씨는 이내 입을 다물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누군가를 쳐다봤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이다. 인제 씨는 탈시설 자립왕 상패를 꼭 끌어안고 복지부 공무원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인제 씨는 가족과 지인의 반대에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는데도 탈시설했다. 21년간 요양시설에 갇혀 살았던 삶을 끝내고 자립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는 만 65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인제 씨는 불합리한 제도에 굴복하기보다 맞서 싸우면서 자립하기로 결심했다. 수상 직후 복지부를 질타한 것은 존엄한 투쟁의 첫 순간이었다.

인제 씨처럼 위태롭고도 존엄한 자립의 삶을 이어가는 장애인들이 상을 받았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는 지난 20일 오후 4시, 서울시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20주년 기념식에서 탈시설장애인 15명에게 ‘탈시설 자립왕상’을 수여했다.

- 한자협, 12개 지역의 자립왕 15명 선정

한자협은 매년 창립기념일에 자립생활운동의 산증인인 탈시설 장애인에게 ‘탈시설 자립왕상’을 수여하고 있다. 올해에는 한자협 산하 12개 광역 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센터)로부터 수상 후보를 추천받았다. 이에 15명의 자립왕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자는 △반성훈 강원도 춘천호반센터 △고철영 경기도 김포센터 △권성은 경기도 상록수센터 △이영문 경상남도 김해서부센터 △정기열 경상남도 양산센터 △김유미 경상북도 경산센터 △배영준 광주시 오방센터 △김태완 대구시 다릿돌센터 △조인제 부산 함세상센터 △조인구 서울시 은평센터 △이수미 서울시 노들센터 △박성호 인천시 민들레센터 △김광민 전라남도 여수센터 △김정순 전라북도 전주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 △김일환 충청북도 직지센터 소속 탈시설 장애인들이다.

시상은 김동예 수지센터 소장이 맡았다. 김 소장은 2013년, 한자협 10주년 기념식에서 첫 번째로 탈시설 자립왕상을 받았다. 10년이 지나 시상자가 된 김 소장은 “수상하신 모든 분께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자립을 시작하시고 오늘(20일) 수상에 이르기까지 크나큰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셨을 겁니다. 그래서 더욱 값진 상입니다”라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에서 자긍심을 가지고 여러 활동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한자협 20주년 슬로건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 함께합시다”라고 전했다.

- 수상소감 릴레이… “조금 힘들지만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시상식은 환호와 카메라 플래시 세례로 물들며 연말 방송국 행사장을 방불케 했다. 사회자인 김준우 송파솔루션센터 소장이 수상자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의 동지들이 큰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수상자 호명 후 각양각색의 수상소감 릴레이가 이어졌다. 우선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 건지 이야기하는 수상자가 많았다.

김태완 씨가 양손에 상패와 꽃다발을 들고 만세를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김태완 씨가 양손에 상패와 꽃다발을 들고 만세를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다릿돌센터의 김태완 씨는 탈시설 후 질라라비야학에서 공부 중이다. 태완 씨는 수줍은 표정으로 “감사합니다. 탈시설 자립왕 수상해서 기쁩니다. 현금도 받아서 좋습니다. 센터 선생님들,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또한 “받은 상금은 회식하고 남은 돈을 저축할 겁니다”라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친구를 호명하며 “철수야, 나도 이제 자립왕이다!”라고 외쳤을 때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배영준 씨가 무릎 위에 상패를 올려놓고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배영준 씨가 무릎 위에 상패를 올려놓고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휠체어레이싱 선수로 활약 중인 오방센터 배영준 씨는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탈시설장애인당 경선 후보로 출마해 ‘장애인예산 OECD 평균 보장, 지역사회 접근성 완전 실현’ 등의 공약을 내건 적 있다. 영준 씨는 “광주 지역에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활동한 덕분에 이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당한 사회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필요한 곳에서 목소리를 높이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김정순 씨가 상패를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하민지
김정순 씨가 상패를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하민지

전주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에서 온 김정순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소감을 전했다. 정순 씨는 “조금 떨리지만 틀려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빨래도 잘하고 설거지도 잘합니다. 옷 정리도 잘합니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행복하게 지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반성훈 씨가 꽃다발을 안고 미소 짓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반성훈 씨가 꽃다발을 안고 미소 짓고 있다. 사진 하민지

- “다들 나처럼 자립하길!” 탈시설 권한 수상자들

수상자들은 아직 시설에 거주 중인 장애인 동료에게 자립을 권하기도 했다.

춘천호반센터의 반성훈 씨는 모든 시설거주 장애인에게 자립을 망설이지 말라고 했다. 성훈 씨는 “주변 사람이 제게 물어보곤 합니다. ‘너 자립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겠냐’고요. 자립을 꿈꾸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립을 망설이는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자립은 도전입니다. 망설이지 마세요. 꿈꾸시고 도전하세요!”라고 전했다.

권성은 씨가 카메라를 보며 브이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권성은 씨가 카메라를 보며 브이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권성은 씨는 상록수센터에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성은 씨는 “자립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하루하루 행복한 마음으로 지냅니다. 저처럼 자립하고 싶어 하는 동료가 많을 겁니다. 그분들도 빨리 자립하셔서 자립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피부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고철영 씨가 상패를 안고 미소 짓고 있다. 사진 하민지
고철영 씨가 상패를 안고 미소 짓고 있다. 사진 하민지

김포센터 고철영 씨 또한 “모든 장애인이 저처럼 행복을 느꼈으면 합니다. 저는 자립생활을 시작하고, 장애인수용시설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행복을 만끽하고 있습니다”라며 시설거주 장애인에게 자립생활을 권했다.

- “모든 장애인을 자립왕 만드는 게 내 꿈입니다”

시설에서 겪은 학대 피해를 증언하면서 주변 동료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 수상자도 있었다.

은평센터의 조인구 씨는 지난해 7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는 삭발식에 참여한 적 있다. 당시 인구 씨의 동료들은 ‘따뜻한 남자 조인구’, ‘인구형 삭발한다’ 등의 피켓을 만들어 와서 인구 씨를 응원했다. 동료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눈시울이 붉어진 인구 씨는 “자립은 소중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은평센터 소장님을 비롯한 모든 분을 사랑합니다”라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줬다.

박성호 씨가 활짝 웃으며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성호 씨가 활짝 웃으며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성호 씨는 탈시설 한 지 5년 됐고 현재는 민들레센터에서 활동 중이다. 성호 씨는 “시설에 있을 때는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지. 매일 똑같은 생활이 싫어서 그랬나 봐요. 그런데 탈시설하니 시간이 얼마나 잘 가는지, 눈 감았다 뜨면 한 달이 가버린 답니다. 행복해요”라고 전했다.

김광민 씨는 여수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광민 씨는 “많은 동료의 친절함과 끝없는 관심으로 오늘 이상을 받았습니다. 좋은 동료들을 만난 건 큰 행운이고 행복입니다. 앞으로도 활기차고 행복하게 자립생활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양산센터 정기열 씨는 시설에서 겪은 학대를 증언하기도 했다. 기열 씨는 “경남 통영시의 한 시설에 있을 때 목사님이 시키는 일만 했어요. 말 안 들으면 크게 혼나고 맞기도 했습니다. 시설 거주인을 돌보는 것도 내가 해야 했고, 오줌통 치우고 강제로 밭일도 했어요. 그렇게 일하고도 10원짜리 하나 받지 못했어요”라며 “지금은 내 이름으로 아파트 계약해서 살고 있어서 좋아요. 양산센터에서 일하고, 월급도 받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영화도 보러 가고, 멀리 여행도 가니까 좋아요”라고 증언했다.

이수미 씨가 꽃다발을 받고 웃고 있다. 그의 뒤로 “나눈 너모 햄보캐(나는 너무 행복해)”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이수미 씨가 꽃다발을 받고 웃고 있다. 그의 뒤로 “나눈 너모 햄보캐(나는 너무 행복해)”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노들센터의 이수미 씨가 수상소감을 하려 하자 노들센터 동료들이 알록달록한 현수막을 들고 등장했다. 수미 씨는 늘 쓰던 모자를 벗고 말간 얼굴을 드러냈다. 환하게 웃던 그는 “어둠을 헤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공부하고 노들센터에서 권익옹호활동가로 일하는 중입니다. 인생이 마냥 행복하고 만족스럽진 않지만 나는 다 이뤘습니다”라며 “마지막 꿈이 있다면 모든 장애인을 자립시켜서 다 자립왕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모든 장애인이 탈시설해서 모든 시설이 폐쇄되는 그날까지 노들이여, 영원하라!”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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