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장애인의 날 1박 2일 투쟁 둘째 날
특별교통수단 예산 증액 요구하며 침묵 선전전
서울교통공사, 초강경 대응하며 전부 퇴거시켜
전장연 “매일 아침 8시, 시민사회 연대 기자회견 진행”

휠체어 이용 활동가들이 경찰 울타리에 막혀 오도 가도 못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휠체어 이용 활동가들이 경찰 울타리에 막혀 오도 가도 못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휠체어 이용자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이 가로막혔다.

1일 오전 7시경, 경찰과 서울교통공사는 4호선 혜화역과 마로니에 공원 곳곳에 울타리를 치고 방패로 무장한 인력을 배치했다. 이들은 시위자를 색출하듯 휠체어 이용자만 보면 출입을 단속했다.

당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8시부터 1시간 동안 혜화역에서 침묵 선전전을 진행하고, 11시에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마지막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었다.

그렇게 1박 2일간의 세계 장애인의 날(12월 3일) 투쟁을 마무리 지으려 했으나 8시 침묵 선전전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침묵조차 철도안전법에 위반된다며 퇴거 조치했다. 항의만 해도 사람들을 끌어냈다. 엘리베이터와 장애인 화장실에는 별안간 ‘수리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기도 했다.

문애린 이음센터 소장이 “이동권”이라 적힌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진 하민지
문애린 이음센터 소장이 “이동권”이라 적힌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전장연 “제발 이동권만이라도”, 서울교통공사 “얼마나 비용이 많이 드는데”

오전 7시 50분, 전장연 활동가들은 침묵 선전전을 진행하기 위해 혜화역 승강장으로 향했다. 침묵 선전전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선전전을 뜻한다. 대부분의 활동가는 “이동권”이라 적은 흰색 마스크를 착용했다. 이 마스크를 쓰고 시민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곳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이날 선전전의 내용이었다.

특별히 이동권을 강조한 이유는 다음 해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예산 때문이다. 전장연은 특별교통수단 차량 1대당 16시간 운행(8시간 근무하는 운전원 2명)을 위해 운전원 인건비를 포함한 3,350억 원의 예산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운전원 인건비를 제외하고 운영비 일부만 반영한 470억 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현재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아래 국토위)가 소폭 증액한 예산이 예산결산위원회의 심사를 받고 있다. 전장연은 “국토위가 증액한 예산만이라도 국회가 통과시켜 주기를 기다린다. 또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께 면담을 요청하며, ’56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유보하고 침묵 선전전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마른 세수를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마른 세수를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교통공사는 침묵 선전전 시작 전부터 제동을 걸었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려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등을 막아서고선 “침묵 선전전도 불법시위”라고 고지했다.

이에 박 대표가 “혜화역은 이동권 투쟁이 촉발된 상징적인 곳이다. 이후 서울시는 2004년부터 1역사 1동선 100%를 약속해 왔지만 20년이 된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사과부터 해라”라고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막혀 승강장으로 내려가지 못한 휠체어 이용 활동가들. 박경석 전장연 대표를 향해 손을 뻗은 사람이 최영도 서울교통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장이다. 사진 하민지
서울교통공사에 막혀 승강장으로 내려가지 못한 휠체어 이용 활동가들. 박경석 전장연 대표를 향해 손을 뻗은 사람이 최영도 서울교통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장이다. 사진 하민지

그러자 자신을 “전장연 대응 총괄 담당자”라고 소개한 최영도 서울교통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장은 “아니, 지하철 시설물에 얼마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데 275개역을 다 1역사 (1동선) 설치할 수 있나? 그 당시 시장(2004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한테 가서 따져라. 우린 전장연이 요구하는 1역사 1동선 다 갖췄다. 2004년을 말하는 건 억지 아닌가?”라고 대답했다.

최 센터장은 박 대표에게 거듭 “퇴거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박 대표는 몇 번이고 “9시까지 침묵 선전전을 진행하고 자진해서 퇴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 센터장은 “교통방해죄, 퇴거불응죄, 주거침입죄로 해서 퇴거시키겠다”고 고지했다.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이 “이동권”이라 적힌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진 하민지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이 “이동권”이라 적힌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선전전 현장을 찾은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이 “우리는 법치가 무너진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에 비준한 국가다. 협약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동등한 인권을 보장하라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는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아갈 책무를 지키지 않는 중”이라고 항의했지만 최 센터장은 “지금까지는 지하철 역사 내 시위가 관행적으로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이젠 바로 돌려놓을 거다. 그렇게 아시라고”라고 대답했다.

현장의 인권침해 상황을 모니터링하던 인권변호사가 “제가 설명해 드리겠다.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에 한해서 퇴거 조치를 할 수 있는데 (침묵 선전전은 그렇지 않다)”는 취지로 말하자 최 센터장은 “듣고 싶지 않다. 대화 필요 없다. 끼어들지 말아라. 나도 법학 전공했다”고 말했다.

최영도 서울교통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장이 박경석 전장연 대표에게 퇴거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최영도 서울교통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장이 박경석 전장연 대표에게 퇴거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오전 8시 40분경, 최 센터장이 “분리해”라고 말하자 서울교통공사 직원 수십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활동가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결국 침묵 선전전은 단 1분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 한 채 모든 사람이 최 센터장과 언쟁만 벌이다 전부 퇴거당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400명 해고 철회 전국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하민지
마로니에 공원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400명 해고 철회 전국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하민지

-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해고예정자들 “내가 오세훈 해고하고파”

오전 11시부터는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400명 해고 철회 전국 결의대회’가 진행됐다. 결의대회에서는 해고예정자의 규탄 발언이 이어졌다.

김홍기 씨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김홍기 씨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해당 일자리에서 근무 중인 김홍기 씨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서 일하면서 버스 모니터링도 하고 청소년 인권 강의도 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며 장애인 인권을 널리 알리는 직무여서 더 의미 있다. 한 달에 75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여행도 다니고 여가도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런데 갑자기 내년부터 이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한다.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변경된 일자리는 나 같은 중증장애인은 결코 할 수 없는 찜질방 수건 개기, 복지관 청소 등의 직무다. 오세훈 서울시장, 너무하다. 장애인거주시설 지원예산은 늘렸으면서 중증장애인 일자리를 폐지하는 게 너무 열받는다. 중증장애인 보고 다시 시설이나 집구석에서 가만히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성토했다.

이창영 씨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이창영 씨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이창영 씨도 분노했다. 이 씨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서 댄스도 배우고 동료들과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이동권 모니터링을 하며 시민에게 알리기도 하고 장애인편의시설 관련 홍보물을 나눠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했던 일 중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가장 좋다. 전엔 봉제공장에서 일했는데 시키는 일이 많아서 너무 힘들었다”며 “동료들과 맛있는 걸 나눠 먹으며 관계를 쌓아가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이제 없어지다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관계는 오 시장만 쌓는 게 아니다. 장애인도 사회활동을 하며 관계를 쌓을 수 있다.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연대발언에 나선 문석영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활동가는 “오 시장은 장애인을 왜 이렇게 괴롭히고 못살게 구나. 진짜 너무하고 짜증 난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중증장애인에게 아주 중요한 일자리다. 장애인도 사회에 적응하고 자립해서 살아가려면 일해야 한다. 일자리 없으면 수당이나 연금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건 자립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라며 “오 시장도 입장바꿔 생각해 봐라. 내가 오 시장이 일 못 하게 잘라버리면 어떤 기분이겠나? 중증장애인의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당장 되돌려 놔라”라고 요구했다.

활동가들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활동가들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전장연은 4일부터 한 주간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연속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함께 평등열차를 타겠다’는 이름으로 평일 오전 8시에 4호선 혜화역(동대문역 방향)에서 진행한다.

4일 월요일, 공권력감시대응팀을 시작으로 민변 집회시위인권침해 감시단,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x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종교인 기자회견 등이 연속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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