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전장연에 “집시법, 철도안전법 등 위반” 주장
오히려 불법은 공사가… 일반교통방해죄, 감금죄 등
전장연, 장콜 예산 271억 요구하며 침묵선전전 예정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오는 20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4호선 혜화역 지하 1층 대합실에서 침묵선전전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전장연은 국회에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예산 증액분 271억 원 보장을 요구하며 승강장에서 선전전,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연속 기자회견 등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아래 공사)의 막무가내 폭력진압이 극심해지면서 선전전은커녕 별도의 신고가 필요 없는 기자회견까지 시작도 못 해보고 전부 역사 밖으로 끌려나야 했다. 이 과정 중 중증장애인 활동가들이 인권침해적인 방식으로 체포되다가 다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전장연은 12일 오후 1시, 서울시 성동구에 있는 공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사의 폭력적인 강제퇴거를 규탄했다. 또한 승강장이 아닌 대합실에서 침묵한 채 선전전을 이어갈 것이라 밝혔다.
공사 직원들은 기자회견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그들은 팔짱을 끼고,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나눈 후 미소를 짓고, 하품을 하기도 하면서 기자회견을 쳐다봤다.
- 공사 “집시법 위반, 업무방해, 철도안전법 위반” 주장… 사실일까?
전장연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승강장에 모이면 최영도 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장은 활동가들에게 거듭 큰 소리로 묻는다. “퇴거하실 겁니까? 거듭 퇴거 요청을 드렸는데도 퇴거 안 하신다는 거죠?”
활동가들이 선전전 혹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퇴거할 거라고 대답하면 최 센터장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 퇴거 안 하신다는 거죠? 보안관들! 자, 분리해!” 이 명령이 떨어지면 활동가들은 즉각 강제퇴거당한다. 경찰에 체포당하기도 한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다치고, 휠체어가 파손되고, 구급차가 와서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은 모두 이때 일어난다.
집회시위 인권침해 감시 변호단(아래 집회시위감시단)으로 활동하는 변호사들이 공사의 위법성을 지적하려고 하면 최 센터장은 즉각 대답한다. “듣고 싶지 않아요. 저도 법학 전공한 사람이에요.”
변호사들은 공사 앞 기자회견장에서야 공사의 위법적 태도를 차분히 지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박남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아래 민변) 변호사는 “센터장이 직접 와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아래 집시법) 위반이다. 업무방해다. 시설 관리자의 허가를 받아야 역 안에 들어올 수 있다. 철도안전법 위반이므로 퇴거조치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센터장이 경찰에게 ‘이 사람들 당장 퇴거불응죄로 체포하라’고 지시까지 했다. 법을 들이미니 저희도 법으로 대답하겠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 집시법을 위반했다?
박 변호사는 “집시법에는 옥내집회를 제한하는 규정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집시법에는 옥외집회에 대한 규정만 있다. 지하철 역사 내 집회는 옥내집회에 해당하므로 집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 공사의 업무를 방해했다?
박 변호사는 “공사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열차에 탈까 봐 경찰을 동원해 방패로 열차 문을 막고 다른 시민의 승하차도 어렵게 했다. 굳이 혜화역을 무정차 통과할 이유가 없었는데 억지로 무정차를 지시한 건 바로 공사다”라고 말했다.
전장연은 올해 1월부터 열차에 한 번도 탑승하지 못했다. 공사와 경찰이 강경대응하며 탑승거부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에는 열차가 전장연으로 인해 지연된 적도 없다. 애초에 열차 진출입을 차단당했기 때문에 열차가 지연될 일이 없으므로 공사는 열차를 무정차 통과시킬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공사는 역사 전체에 “전장연 시위로 인해 열차가 무정차 통과될 수도 있다”고 안내방송을 한다. 실제로 지난 8일 오전에는 약 24분간 무정차 통과시키기도 했다. 전장연은 이를 “자작극”이라 규정하며 공사를 규탄하고 있다.
* 시설 관리자의 허가를 받지 않은 것은 철도안전법 위반?
박 변호사는 “지하철 역사는 공사의 소유가 아니며 집회는 허가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공사는 활동가들이 발언을 하거나 구호를 외치면 ‘소란행위’라고 한다. 그렇다면 침묵시위를 하겠다고 했더니 ‘그건 권유행위여서 위법하다’고 했다. 시민에게 장애인 권리보장을 권유하는 게 위법인가? 그럼에도 공사는 ‘불만이 있으면 나중에 소송하라’며 활동가들을 막무가내로 승강장 밖으로 밀어냈다”고 규탄했다.
박 변호사의 말처럼 역사는 공사 소유가 아니다. 4호선의 소유자는 한국 정부와 서울특별시다. 또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별표 2에 따르면 승강장과 환승통로를 포함한 모든 지하 역사는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한다.
민변은 지난 5일, 입장문을 내고 “지하철 역사에서의 기자회견은 공도(公道), 즉 지상의 인도 등에서 이뤄지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게 볼 수 없다. 그럼에도 현재 서울교통공사가 역사 내에서 퇴거를 통보하는 등 전장연에 취하는 행태는 마치 지하철 역사를 점유물 내지 소유물과 같이 취급하는 위법하고 그릇된 인식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헌법 21조에 따라 집회·결사의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 역사 내 집회는 옥내집회라 규정이 없긴 하지만, 공사가 전장연의 집회를 금지하려면 집시법 5조에 따라 전장연이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해야만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자회견과 침묵선전전을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의 위협을 초래하는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철도안전법 48조에 따른 금지행위는 원칙적으로 “철도 보호 및 질서유지를 해치는” 행위여야 한다. 민변은 “모든 행위를 막연하게 금지하는 게 아니라 질서유지를 해칠 정도가 돼야 금지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장연의 기자회견 또는 침묵선전전은 승강장 질서를 해치지 않는다. 소수의 활동가가 승강장에서 침묵선전전을 진행하더라도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민에게는 어떤 불편도 야기하지 않는다”며 “활동가들이 피켓을 들고 침묵선전전을 하는 게 철도안전법 시행규칙에서 금지하는 ‘연설·권유’라는 적극적이고 물리적인 표출행위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 공사의 범죄혐의 “일반교통방해죄, 감금죄, 공무집행방해죄, 명예훼손죄, 모욕죄…”
박 변호사는 공사가 저지른 위법적 행위를 나열했다.
* 일반교통방해죄
공사와 경찰은 혜화역 내부에 울타리를 두르거나 방패를 세워 활동가들의 이동을 연일 차단 중이다. 박 변호사는 이를 두고 “이용객의 이동을 차단한 일반교통방해죄”라고 설명했다.
민변은 “일반교통방해죄는 사유지를 포함해 공공성을 가지고 공중의 왕래에 사용되는 장소라면 성립할 수 있고, 교통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전장연의 선전전 ‘가능성’ 때문에 역사 내부에 펜스를 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 감금죄와 불법체포
공사는 활동가들이 집회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집회를 금지했다. 또한 방패로 활동가들을 에워싸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했다. 박 변호사는 이 같은 행위가 “감금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민변도 “공사가 보안관을 동원해 활동가들을 둘러싸고 가로막는 것은 신체적 활동의 자유를 장소적으로 제한하는 감금죄에 해당”한다고 했다.
민변은 “철도안전법상 질서 침해 행위자를 퇴거시킬 수 있는 범위는 열차 또는 ‘정거장’ 뿐이다. ‘정거장’은 ‘승강장’이고 지하철 역사 전체가 아니다. 철도안전법을 따르더라도 공사에 활동가들을 지하철 역사 자체에서 완전히 퇴거시킬 권한은 없다”며 “공사의 퇴거요구는 적법하지도 않을뿐더러 이에 협조하는 경찰 역시 불법적인 체포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공사는 철도안전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활동가들을 역사 내에서 퇴거시키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경찰은 공사의 초법적인 퇴거요구에 호응해 활동가들을 강제퇴거시킬 경우 불법체포의 직권남용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전했다.
* 공무집행방해죄
박 변호사에 따르면 최영도 센터장은 경찰을 향해 활동가들을 체포할 것을 지시했다. 공사와 경찰은 엄연히 역할이 다른 조직으로, 공사에 경찰을 향해 명령할 권한은 없다. 따라서 박 변호사는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 명예훼손죄, 모욕죄
전장연은 열차 탑승행위를 원천 차단당했는데도 공사는 전장연 때문에 열차를 무정차 통과시키는 거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박 변호사는 “공사는 여러 차례 허위사실을 유포해 전장연의 명예를 훼손하고 전장연을 모욕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한국에는 철도안전법만 있는 게 아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도 있다. 무엇보다 헌법이 있다”며 “자기에게 유리한 법만 지키는 걸 법치라고 할 순 없다. 공사가 활동가들에게 지금처럼 위법하게 대처한다면 민변 집회시위감시단은 모든 법률적 수단을 동원해 그 부당성을 확인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장콜 예산 271억 원 증액 위해 271명 시민과 함께 침묵선전전
공사의 폭력을 직접 겪은 활동가들과 종교인들은 공사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지난 8일 오전, 체포되는 과정에서 다치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이수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개인대의원은 “장애인에게는 이 정부가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같은 공안정부 같다”며 “지금까지 수많은 기자회견을 다녔지만 아무것도 안 했는데 기자회견 자체를 막는 건 처음이다. 민변 변호사들이 있는데도 법이 통하지 않는다. 공사는 사과하라”라고 요구했다.
보현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은 “공사와 경찰은 지난 8일 금요일, 4대 종교가 함께한 기자회견에서도 종교인을 강제퇴거시키고 활동가 8명을 불법연행했다. 백호 서울교통공사 사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오세훈 서울시장 모두 사과하라”라며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 권리향상을 위해 기도하고 지속해서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장연은 특별교통수단 예산 증액분 271억 원 보장을 요구하며 271명의 시민과 함께 대합실에서 침묵선전전을 할 예정이다. 침묵선전전은 매일 오전 8시, 혜화역 지하 1층 대합실에서 오는 20일까지 진행된다. 20일은 국회가 제시한 내년도 예산안 타결일이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12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승강장에서는 공사와 경찰의 불법행위가 너무 많이 일어나서 대합실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기로 했다”며 “전장연은 특별교통수단 예산으로 3,350억 원을 요구했다. 정부는 국회에 470억 원을 제출했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271억 원을 증액해 총 741억 원이 편성된 상태다. 이것만이라도 그대로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에 요구하며 침묵선전전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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