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최태현의 장애와 경계적 사유
장애를 통해 노동을 사유하기 ③

지난 칼럼(▷권리중심 공공일자리와 민주주의의 재생)에서는 ‘권리’의 의미에 초점을 두고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의의를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공공’의 의미에 초점을 두고 이 일자리의 의의를 하나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말 그대로 공공일자리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민간이 아닌 공공, 사적이 아닌 공적 일자리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공공일자리의 정책적 의의를 끌어내려면 우선 ‘공공성’이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공공일자리는 단순히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 사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학자들은 공공일자리의 수식어인 ‘공공(성)’이라는 말을 보통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이해한다. 주체, 내용, 과정이다. 즉 공공성이란 공적인 주체들(정부 혹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함께 공유하는 가치들(자유, 평등, 인권 등)을, 열린 논의를 통해 만들어갈 때 구현되는 이 사회의 특성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공공성이란 정부를 비롯한 행위자들이 공적 주체로서, 중증장애인들의 노동권 보장을 통한 우리 사회 전반의 인권 향상이라는 공적 가치를, 모두가 참여하는 열린 논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나가는 이 사회의 모습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서울시가 올해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를 돌연 폐지하면서, 중증장애인 노동자 400명과 전담인력 105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해고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서울시가 올해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를 돌연 폐지하면서, 중증장애인 노동자 400명과 전담인력 105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해고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 주체

우선 주체의 측면에서 공공 혹은 공적이라는 말은 주로 정부 혹은 국가가 관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공공조직이란 그 소유주가 국가이고 국법에 의해 그 목적과 운영이 규정되어 있는 조직을 말하며, 공무원은 국가가 고용한 근로자들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민간기업이나 시민단체들은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점에서만 보자면 사적이다. 다만 아래에서 보듯이, 이들이 정부와 함께 어떤 사업을 하면 이들 역시 공적 주체가 된다.

주체에 초점을 둘 때 공공일자리란 민간조직이 아니라 국가가 제공하는 일자리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정부가 고용주이며, 정부의 예산으로 보수가 지급되는 일자리이다. 이렇게만 보면 주체의 측면에서 공공일자리의 의미는 깔끔하다. 정부가 사람들을 고용하여 일을 맡기는 사업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공일자리 참여자와 공무원은 사실 본질적으로는 유사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복잡한 문제가 제기된다. 정부가 공공일자리 사업 참여자를 공무원들처럼 직접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민간에 ‘위탁’하여 고용하는 신공공관리적 방식 때문이다. 즉 정부는 사업을 시행하되, 수탁기관(예를 들어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과 계약을 맺고 사업의 구체적인 진행을 맡긴다. 사업의 기본적인 법적 규율과 예산은 정부가 맡고, 장애인들의 개별적인 고용과 관리는 수탁기관이 맡아서 하는 구조다.

이때 공공일자리 참여자들은 과연 정부에 고용된 이들인가, 아니면 수탁기관 내지 수탁기관이 연결해준 민간기업에 고용된 이들인가?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마치 하청이나 파견노동자와 유사하게 회색지대에 속해 있다. 법적으로 정부는 공공일자리 사업 참여자들은 수탁기관에 의해 고용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반면 공공일자리라는 사업의 추진 주체,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돈’이 나오는 곳을 생각하면 공공일자리 사업 참여자들은 실질적으로 정부에 의해 고용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사업의 폐지는 단순히 정부가 활동을 줄인 것에 그치지 않고 정부에 의한 ‘해고’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주체들이 얽힌 복잡한 상황에서 정부는 단순히 위탁계약의 한쪽 당사자에 머물지 않는다. 주체의 측면에서 공공일자리 사업의 공공성은 바로 정부가 사업의 핵심 행위자라는 데서 나온다.

- 내용

둘째로 내용의 측면에서 공공 혹은 공적이라는 말은 특정한 개인이 아닌 많은 이들에게 편익을 주는 가치를 지님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개인만이 취하는 것은 사익이고,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은 공익이다. 자유, 평등, 형평, 인권, 정부의 투명성과 같은 추상적 가치들, 혹은 넓고 평화로운 공원, 맑은 공기, 잘 정비된 대중교통망 등은 특정 개인이 배타적으로 누리는 가치가 아니라 정치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이 누릴 수 있는 가치이다. 이런 가치가 많이 생산될수록 그 공동체는 개개인의 경제적 수준의 차이와 관계없이 전체적으로 좀 더 풍요롭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내용적 측면의 공공성은 그 가치들의 목록과 우선순위를 확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경계가 없다. 모두를 풍요롭게 하는 가치, 그러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활동은 우리가 미처 다 상상할 수 없을 뿐이지 매우 다양하다. 반면에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내용적 측면의 공공성은 늘 논쟁의 대상이 된다. 특정 시대, 특정 사회, 특정 사안에 따라 어떤 가치가 가장 중요한지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의 이동권은 어떤 이들에게는 모든 시민들의 권리를 증진하는 공적 가치로 이해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장애인들만을 위한 사적 가치로 이해된다. 파편화된 개인이 증가할수록 공적 가치는 사적인 가치로 인식되거나 선점되는 경향이 있고, 함께 한다는 감각이 사회에 공유될수록 사적 가치로 보이던 것들에서도 공적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내용의 측면에서 공공일자리의 공공성은 그 사업으로 인한 편익이 단순히 공공일자리 사업 참여자들에게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공익과 관련됨을 의미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전 칼럼에서 지적했던 시민적 권리의 확장이다. 공공일자리 사업은 시민들의 노동으로부터 창출되는 편익을 배타적으로 가져가는 민간기업의 일자리가 아니라, 이 사회의 권리 구현 프레임을 확장시키는 정책인 것이다.

이러한 내용적 측면의 공공성이 중요한 이유는 공공일자리 사업의 편익과 비용을 대조하여 사업성을 평가할 때 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일자리 사업의 비용은 인건비 등 경상비를 포함한 사업비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편익은?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사업의 편익은 참여자들에게 지급된 임금을 넘어선다. 시장 노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의 노동권이 보장되는 것은 정부의 존재 이유인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기에 참여자 개개인을 넘어 이 사회 전체의 편익이 된다. 중증장애인들의 가능성을 확인해가는 과정이 주는 공화적 가치 역시 편익으로 볼 수 있다. 이 사업의 운영을 통해 우리가 공공성의 의미를 되새기고, 향후 유사한 정책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 역시 이 사업이 가져오는 편익의 일부이다. 이 모든 것을 이 사업의 편익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이 사업이 ‘공공’일자리 사업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무시하면 공공일자리 사업은 정부라는 공적 주체가 제공하는 민간일자리에 불과하다. 반쪽의 공공성인 것이다.

- 과정

셋째, 과정의 측면에서 공공 혹은 공적이라는 말은 무엇이 공적인 것인지를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정책의 쟁점 중 하나는 한정된 예산으로 더 많은 이들을 고용할 것이냐, 아니면 기존의 고용된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할 것이냐의 문제다. 여기서 우리는 ‘공공’의 의미가 내용의 측면에서는 모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자리의 질이 낮아지더라도 더 많은 이들을 고용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공공성이란, 민간일자리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한 이들을 사회적 사각지대에서 끌어내는 것이다. 반면 기존의 고용된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공공성이란, 정부가 자신이 창출한 일자리의 질을 통해 인간에 대한 존중을 보이는 것이다. 또 다른 이들에게 공공성이란 이런 양자택일의 틀을 과감히 깨고 예산을 늘림으로써 중증장애인들의 기본권을 증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 가지 중 어느 입장이 최선인가? 공공성이 내용뿐 아니라 과정에서도 구현되어야 한다는 말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하는 절차가 모든 관련 당사자들에게 열려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즉 정부나 사업 주체나 기업이 닫힌 공간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당사자들 간의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최선의 길을 모색해나갈 때 공공일자리 사업의 공공성이 구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과정의 측면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무엇이 최선인지 늘 명확히 판단하기는 어려우며,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조정하는 방법으로서 열린 토론과 정책실험을 하는 것, 특히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이 자체가 공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행위이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의 활동. 장애인권리옹호 직무인 저상버스 인식 개선 캠페인(2020년 10월 김흥구 작가, 왼쪽), 장애인권익옹호 직무인 공원에 홍보물을 설치하여 UN장애인권리협약을 알리는 활동(2020년 10월 정택용 작가, 오른쪽). 사진 ‘이것도 노동이다’ 사진집 캡처 편집.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의 활동. 장애인권리옹호 직무인 저상버스 인식 개선 캠페인(2020년 10월 김흥구 작가, 왼쪽), 장애인권익옹호 직무인 공원에 홍보물을 설치하여 UN장애인권리협약을 알리는 활동(2020년 10월 정택용 작가, 오른쪽). 사진 ‘이것도 노동이다’ 사진집 캡처 편집.

- 주체, 내용, 과정 모두가 공적인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의 위탁 구조와 공공성 개념의 모호함으로 인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자칫하면 국가가 돈을 대주는 것일 뿐, 사적 일자리와 다름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모호하다는 것이 공적 가치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양한 주체들이 제기하는 다양한 공적 가치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상충하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에, 더욱이 아직 모르는 지점들이 많기 때문에 모호할 따름이다. 우리는 이러한 모호함에 희망이라는 소금을 쳐서 그것을 ‘가능성’이라고 부른다. 더욱이 그 모호함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의미를 둘러싼 공적 담론을 활성화시키는 민주적 장점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공공성의 세 측면인 주체, 내용, 과정은 사실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으로서 한국 정부에게는 장애인의 권익을 증진하는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전 세계적인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장애인의 인권이라는 공공성의 ‘내용’을 명쾌하게 선언한 협약이며, 그 이행을 위한 공적 ‘주체’로서 각국 정부를 지명한 협약이다. 이 협약 안에 이 글에서 말한 주체, 내용, 과정으로서의 공공성이 모두 구현되어 있는 것이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로 한정해 볼 때,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정부라는 ‘공적’ 주체가 제공하면 모두 공공성을 갖춘 일자리라 할 수 있을까? 만일 그 일자리가 장애인들만 모아 분리된 공간에서의 노동을 요구하는 보호작업장이라면 이것이 공공성을 갖춘 일자리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주체의 측면에서는 공적일지 모르지만, 그 내용(실질적 노동권의 보장)과 과정(과연 참여자들이 보호작업장을 원했는가)의 측면에서는 공공성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양한 공공성의 내용과 과정을 관리하는 주체로서, 그리고 복잡한 사업 위탁 구조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권익의 사각지대를 방지해야 할 주체로서 정부는 제도적 정비를 통해 중심추를 잡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이제 걸음을 떼기 시작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공공성이 초기에 잘 정립될 수 있다. 이러한 역할 수행 자체가 공공성의 구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만이 공공성의 구현 주체는 아니다. 공공성은 모두가 함께 모여 지향하는 가치를 논의할 때 구현된다. 모쪼록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을 진행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이 사업의 공공성을 잘 이해하고 이후 귀감이 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소개

최태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다. 『유언을 만난 세계』의 한 사람으로 조금이나마 응답해보고 싶어 경계를 더듬으며 글을 쓴다. 2725sena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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