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반지하 24만 가구 중 2%만 ‘반지하 탈출’
‘집값 떨어진다’며 물막이판 설치도 안 해
반지하 없앤다더니 침수 시 신속 탈출 도와준다?
이 와중에 5천억 들여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42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 중인(지난 3일 기준) ‘반지하 폭우참사 2주기 추모행동(아래 추모행동)’은 지난 5일 오전 11시,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부와 서울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을 향해 “기후재난과 주거불평등을 심화하는 개발 정책을 중단하라. 기후정의에 기반한 주거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 서울시 24만 가구 중 ‘반지하 탈출’한 가구는 2%뿐
2022년 8월 8일과 9일, 서울시 관악구와 동작구 반지하 주택에서 거주하던 일가족이 빗물에 잠겨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죽음은 ‘반지하 폭우참사’로 불리게 됐다.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정부와 서울시 정책은 후퇴 중이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지난달 2일,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 등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서울시에는 23만 7,619가구(약 40만 명)가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강남 인구수 정도가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관련 기사: 경향신문 ‘서울 반지하 23만 가구 중 주거지원 2%뿐···수해 참사 반복될라’)
정부와 서울시는 반지하 폭우참사가 일어난 이후 반지하 가구에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거나 반지하 주택을 매입하는 등,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그러나 추모행동은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우선 지난 2년간(2022~2023년) 반지하 23만 7,619가구 중 ‘서울시 주거 사다리 지원사업’을 통해 LH, SH가 제공하는 임대주택으로 이주한 가구는 3,290가구밖에 안 된다. 서울시 반지하 가구의 약 1.4%만이 ‘반지하 탈출’에 성공했단 뜻이다.
국토교통부의 ‘비정상거처 이주지원 전세자금 대출’을 받은 906가구와 20만 원의 월세를 최장 6년간 지원하는 서울시 바우처로 이주한 786가구까지 포함해도 지상으로 이주한 가구는 4,982가구, 약 2.09%뿐이다.
‘반지하 탈출’에 성공한 가구 수도 턱없이 적은데, 탈출했다 하더라도 ‘집다운 집’에 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국토부의 ‘비정상거처 이주지원 전세자금 대출’의 경우 보증금 5천만 원을 무이자로 대출해 주는 제도다. 이 돈으로 서울에서 살만한 집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월세 20만 원을 최장 6년까지 지원하는 서울시 바우처도 마찬가지다. 20만 원으로는 쪽방, 고시원 월세도 못 낸다. 이 집행위원장은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주했다 해도 더 좁거나 열악한 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본부장도 “월세 20만 원으로 살 집을 못 구한 사람들은 다시 비적정주거로 가게 됐다. 그들이 나간 반지하 주택에는 더 저렴한 집이 필요한 청년층, 이주노동자 등 또 다른 취약계층이 살고 있다”고 비판했다.
- 물막이판 설치부터 하자는 요구에 “집값 떨어져서…”
반지하 폭우참사가 일어난 직후, 시민사회에서는 반지하 가구에 침수방지시설인 ‘물막이판’이라도 먼저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물막이판 설치는) 임시방편일 뿐이고 온전한 예방책도 아니지만 이것만이라도 우선 실시하자는 거였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작년에서야 전수조사를 시행했다. 반지하 약 24만 가구 중 물막이판 설치가 필요한 침수 위험 가구는 2만 8,537가구라고 집계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정확한 집계인지 의문스러운데, 2만 8,537가구 중 물막이판이 설치된 가구는 1만 5,100가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모든’ 침수 위험 가구 1만 5,100호에 물막이판 설치를 100% 완료했다고 한다. 지난 6월, 환경정의가 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서울시는 이같이 밝혔다. (관련 기사: 오마이뉴스 ‘반지하 폭우 참사 후 2년, 서울시 반지하 침수대책 평가는?’)
2만 8,537가구 중 물막이판을 설치한 가구는 절반뿐인데 서울시는 왜 ‘100% 설치 완료’라고 주장한 걸까. 환경정의가 서울시에 문의한 결과, 건물주가 동의해 준 곳만 설치를 완료했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 집행위원장은 침수방지시설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는 “물막이판 설치가 건물에 심각한 훼손을 가하는 것도 아닌데 건물주 동의를 필수로 하고 있다. 이러지 말고 행정 강제 명령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또 “서울시가 (반지하 주택이 있는 지역을) 침수 위험지구로 지정하면 된다. 그러면 지방자치단체 장이 침수방지시설 설치를 명령할 수 있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재 서울시가 침수 위험지구로 지정한 곳은 7곳뿐이다. 반지하 폭우참사가 일어난 관악구와 동작구는 지정되지 않았다. 이 집행위원장은 “침수 위험지구로 지정하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건물주 민원에 지정하지 않고 있다 한다”고 성토했다.
심지어 LH는 반지하 가구를 전세임대로 이주 지원하는데,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된 반지하로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집행위원장은 “서울시가 침수 위험이 있는 주택이라 해서 방지시설을 설치한 곳인데, LH는 ‘물막이판이 설치됐으니 안전하다’며 이주를 지원한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나?”라고 따져 물었다.
- LH, 반지하 매입 0건… SH는 3천 호 매입?
서울시가 반지하 주택을 매입해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공언한 것과 달리, 실적은 형편없다.
우선 지난 2년간 LH가 반지하 주택을 매입한 건은 0건이다. SH의 경우 반지하 주택을 약 3천 호나 매입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이 집행위원장은 “SH는 실적을 부풀렸다”고 했다. 반지하 주택이 있는 다가구주택을 매입하면서, 그 주택에 있는 지상층 호수까지 포함해 실적으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 집행위원장은 “실제로는 매입한 반지하 주택은 약 600호에 불과하다. 그러나 SH는 3천 호를 매입했다며 기만했다”고 비판했다.
이 와중에 매입임대주택 공급은 올해 1200호로 대폭 줄어버렸다. SH는 도심 저소득층을 위한 매입임대주택 공급 실적이 부진하단 핑계로, 연간 5200호 내외로 공급하던 매임입대주택을 대폭 줄였다.
이 집행위원장은 “반지하 가구가 이주해야 할 임대주택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렇게 대폭 줄여놓고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것인가?”라고 규탄했다.
- 서울시 “반지하 주택 침수 시 신속한 탈출 돕겠다”?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고 한 약속을 안 지키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침수 시 신속한 대피와 탈출을 돕는 ‘동행파트너’라는 걸 만들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23일, 서울시청 본관에서 동행파트너 발대식을 열었다. 동행파트너는 서울시가 지역 사정에 밝은 통·반장과 인근 주민, 공무원 등으로 구성한 주민 협업체다.
동행파트너는 장마철 전후에 침수 취약지역을 순찰하고, 위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자력으로 탈출하는 게 어려운 중증장애인, 노인, 아동 등의 안전한 대피를 돕는다고 한다.
조은혜 기후정의동맹 활동가는 “동행파트너가 폭우 대책이 될 수 있는가? 왜 아직도 탈출하고 대피해야 할 집에 누군가 사는 것을 방치하고선 대피를 돕겠다고 하나?”라고 규탄했다.
상황이 이런데,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라는 걸 추진 중이다. 무려 5,501억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다. 스카이 스위트 호텔 건설, 인공 구조물인 ‘서울의 달’ 설치, 여의도공원 내 제2의 세종문화회관 건설 등의 계획이 포함돼 있다.
김 서울본부장은 “기후정의에 역행하는 난개발이다. 서울 곳곳을 파헤쳐 시민을 내쫓고 공유공간을 파괴하는 전시행정이다. 오 시장은 자본을 위한 ‘콘크리트 서울’을 만들려 한다”고 비판했다.
조 활동가 또한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삶의 최소한의 조건을 보장하지 않고 하는 기후위기 대응이란 건 없다. 반지하 폭우참사로 돌아가신 이들을 향한 우리의 애도는 자본주의 체제와 싸워가며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행동은 “이윤에 떠밀리는 도시는 누구도 구출하지 않는다. 만연한 빈곤과 불평등, 이로 인해 위기에 빠진 이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에서부터 기후위기 대응이 시작돼야 한다”며 △기후재난과 주거불평등 심화하는 토건개발 중단 △기후정의에 기반한 주거권 보장 △기후재난과 주거불평등 해결 위한 근본대책 마련 등을 정부와 서울시에 요구했다.
추모행동은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광화문광장, 서울시청 앞 등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7일 오후 7시에는 서울시 중구 서울시의회 인근에서 ‘반지하 폭우참사 2주기 추모문화제’를 개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