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출범 첫 해 시작한 화요집회
매주 모이다 보니 2주년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자리
국회 앞 분향소 투쟁은 90일 차
- ‘빡빡이’ 머리로 시작한 첫 번째 화요집회
2022년 8월 2일, 머리를 깎아 ‘빡빡이’가 된 부모와 자녀들이 국회 앞 T4철폐농성장에 모였다. 첫 번째 화요집회 날이었다.
그 해, 발달장애자녀를 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 활동가들은 안 해본 게 없다. 2018년, 부모연대 투쟁으로 수립된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2018~2022)’이 끝나는 해였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전 인수위원회에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을 막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인수위는 묵묵부답이었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전날인 4월 19일에는 발달장애인과 가족 557명이 인수위원회 인근에서 단체로 삭발했다. 부모가 자녀의 머리를 깎고, 부모들이 서로의 머리를 깎았다.
부모들은 인수위 앞에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구축하라”고 요구하며 15일간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이래도 인수위는 서신 한 장을 보내지 않았다. 부모들의 요구에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윤 정부 출범 직후인 5월, 언론에 알려진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은 6건이나 됐다.
이에 부모들은 대통령실 청사 근처 삼각지역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은 부모들을 거칠게 진압했다. 부모들이 스크럼을 짜서 드러눕고, 죽은 이들을 향해 울부짖은 끝에야 겨우 분향소가 설치될 수 있었다. 여기서 49재까지 지냈다.
부모연대는 반복되는 죽음을 멈추기 위해 매주 모여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기로 했다. 2022년 8월 2일, 삭발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아 빡빡이가 된 부모들이 첫 번째 화요집회를 열었다.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모인 이야기들은 여름의 땡볕과 겨울의 한파를 두 번 지나, 2년간 세상에 퍼져 나갔다.
- 처음엔 “매주 한다고 의미 있을까?” 나중엔 “5천 회, 1만 회까지 하자!”
2024년 8월 6일 오전 11시, 86번째 화요집회 날이자 2주년이 되는 날. 전국에 폭염경보가 발령된 무더운 날이었다.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은 어김없이 T4철폐농성장 앞으로 모였다.
경남, 대구, 경기 등 여러 지역에서 왔다. 장애인콜택시가 하나둘씩 도착하고, 농성장 앞 40여 개 의자는 금세 채워졌다.
낡고 해진 화요집회 현수막이 2년의 세월을 짐작케 했다. 이날은 특별히 2주년을 기념하는 풍선들이 여기저기 붙었다. 숫자 2 모양의 금색 풍선은 폭염 햇빛을 반짝반짝 튕겨 냈다.
사회자인 김종옥 부모연대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말했다. “우리가 2022년에 이렇게 더운 날 화요집회를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많은 분이 오셔서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와 소망을 나눴습니다. 그 이야기가 우리를 든든하게 지키는 울타리가 됐습니다.”
김 위원장은 “화요집회는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격려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우리에겐 그럴 힘이 충분히 있다고 서로 다독이는 시간이었습니다”라고 했다.
처음 화요집회를 시작할 땐 우려가 컸다고 한다. 윤종술 부모연대 대표는 “이거 매주 어떻게 하냐, 매주 한다고 큰 의미가 있냐, 이런 말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화요집회를 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모여 이야기하면 할수록 그 내용이 누군가에게는 계속 전달될 거니까요”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또 “화요집회를 통해서 정부와 언론, 지나가는 시민을 향한 소통의 길을 트고자 합니다. 화요집회로 정책도 바뀔 수 있고, 시스템도 바뀔 수 있지만 우리의 생각도 바뀌어 갑니다. 우리 자녀들이 자립해서 ‘지 인생’ 살아가야 안 되겠습니까. 그날이 올 때까지 5천 회, 1만 회까지 화요집회 힘차게 합시다”라고 독려했다.
- 비장애남매의 이야기,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
전국 각지에서 온 발달장애인, 그 가족, 활동가들의 이야기 나눔이 시작됐다.
엄영희 부모연대 서울지부 은평지회 회원은 장애가 있는 오빠와 살고 있다. 첫째 오빠와 둘째 오빠 모두 장애가 있는데, 둘째 오빠는 39세 때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마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후, 영희 씨는 첫째 오빠의 유일한 가족으로 남았다.
영희 씨가 말했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나네요. 장애오빠가 둘이어서 저는 애당초 결혼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오빠를 이해하지 못하고 화를 낸 적도 많았습니다. ‘나에게 왜 이런 삶이 주어졌을까’ 슬픈 적도 많았습니다.”
영희 씨는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 하나하나 풀어가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답을 찾진 못했으나 오빠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잘 알고, 필요할 때 옆에 있어 주며 살아갑니다. 하늘에 있는 엄마가 걱정하지 않도록 복지혜택이 좋아질 수 있게 화요집회에 왔습니다. 제가 아닌 누구의 도움을 받아도 오빠가 괜찮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 발언도 이어졌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온 장동욱 씨는 올해 34세로, 요양보호사 보조 일자리에 취직했다. 일하다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고 한다. 월급을 어디에 쓰는지 묻자 “그건 비밀이에요”라고 했다.
동욱 씨는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 평소엔 트로트를 좋아하는데, 이날은 발언이 끝난 후 이승기의 ‘내 여자라니까’를 열창했다.
동욱 씨와 같은 곳에서 온 조유승 씨는 올해 25세다. 유승 씨도 요양보호 보조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주말엔 직접 운전해서 가족과 나들이하러 간다. 독립한 ‘나만의 집’에선 빨래, 청소 등을 한다. 직장에서 일할 땐 “시간 잘 맞추고 일도 똑바로 합니다. 여러 사람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유승 씨는 최근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했다. 식단 조절도 하고 운동을 많이 해서 두 달 만에 25kg 정도 감량했다고 한다. 유승 씨는 “처음엔 다이어트를 안 하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아들아 살 좀 빼라. 배가 너무 나왔다’라고 해서 그냥 확 뺐어요”라고 했다.
다이어트를 했지만 여전히 먹는 걸 좋아한다. 직접 요리해서 먹는다고 한다. 김치찌개, 양념불고기, 닭갈비 등의 조리법을 배워 만들어 먹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부모연대 회원들은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고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
- 국회 앞 분향소,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2주년 화요집회를 끝낸 이들은 분향소를 지키러 갔다. 부모연대는 지난 5월 14일, 청주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제를 지낸 후 국회 앞에 분향소이자 농성장을 차렸다. 오늘(12일)로 농성 90일 차다.
부모연대는 농성장을 지키면서 국회 근처에서 매일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낮시간, 언제든 국회 인근을 지나가면 커다란 피켓을 들고 땀을 흘리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부모연대 회원을 만날 수 있다.
다음 달이면 정부와 국회가 내년도 예산을 짜기 시작한다. 부모연대는 농성장을 거점으로 발달장애인 권리 확보를 위한 예산 투쟁에 돌입할 예정이다.
김종옥 위원장은 “여의도 인근을 지나며 많은 시민이 분향소를 마주치실 거예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비극적 참사를 우연히라도 알게 되시는 분이 많아지다 보면 우리의 투쟁이 응원을 받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덥지만 분향소를 매일 지키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또 이렇게 말했다.
“분향소에 선뜻 들어오시기에 마음이 조금 무거우실 수도 있어요. 사회적 참사를 애도하고,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이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마음 보탠다는 생각으로 오셔서 추모해 주시면 좋겠어요.
화요집회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어떤 희망을 품고 사는지 궁금하신 분은 누구라도 오셔서 들어주세요.
우리가 외롭지 않게, 돌아가신 분들이 외롭지 않게, 화요집회와 분향소에 많이 들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