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학대 피해 쉼터 간 청소년
여가부 “부모에게 쉼터에 있단 걸 알려야”
부모가 데려와서 강제로 끌고 가기도
갈 곳 없는 가정 밖 청소년들
“차라리 길거리가 낫다”
1년간 친구 집과 거리를 전전하던 청소년 ㄱ 씨: 쉼터에 못 가요. 쉼터에 가고 싶지만 부모에게 연락 가는 게 두려워서 갈 수 없어요.
학대를 겪었다 판단해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 ㄴ 씨: (쉼터) 실무자가 학대가 아니라며 원가정으로 복귀하라고 했어요.
청소년 ㄷ 씨: 부모에게 연락이 가거나 원가정 복귀하게 될까 봐 아예 쉼터에 입소문의조차 안 해요.
청소년 ㄹ 씨: 쉼터에 가면 부모에게 연락한대요. (탈가정한 청소년끼리) 쉼터에 가지 말라고 서로 말려요.
부모의 감시, 폭언, 체벌을 피해 탈가정한 청소년 ㅁ 씨: 쉼터에 있고 싶었어요. 그런데 부모한테 내 위치를 알려야 한대요. 고민 끝에 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했어요. 하지만 폭력을 직접적으로 가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무혐의 결정이 났어요. 결국 부모에게 내 위치가 알려졌어요. 부모가 절 강제로 끌고 (원가정으로) 데려갔어요.
아버지 폭력으로 탈가정한 청소년 ㅂ 씨: 쉼터에 입소하고 싶었는데 선택지가 두 개밖에 없었어요. 부모한테 연락하거나 부모를 신고하거나. 결국 신고하지 못했어요. 나중에 아버지한테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려워서요.
탈가정한 청소년 모래(활동명) 씨: 쉼터 입소 승인 여부를 앞두고 제가 쉼터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해 보라는 선생님 앞에서 머리가 하얘져 당장 어제 뺨 맞고 폭언을 들은 이야기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너 같은 애들 받아주려면 대한민국 모든 청소년이 다 쉼터에 살아야 한다고요. 여긴(쉼터는) 다 (부모를 학대로) 신고하고 재판 가고 그런 애들만 있다고요. 잔인한 말과 대비되는 테이블의 꽃무늬 천을 바라보며 할 말을 찾다찾다 저는 신고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렇게 저는, 대체 어떻게 부모님께 그러는지 모를, 막돼먹은 인간이 됐습니다.
위 사례는 22일 오전 10시,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온 증언을 재구성한 것이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아래 청주넷)’ 등 73개 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가족부를 향해 “가정 밖 청소년을 거리로 내모는 청소년 쉼터 입소 절차를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 가해부모 피해 도망쳤는데 가해부모 동의 얻고 도망치라니
흔히 ‘가출 청소년’이라 불리는 가정 밖 청소년. 청소년복지 지원법 상 가정 밖 청소년은 가정 내 갈등, 학대, 폭력, 방임, 가정해체, 가출 등의 사유로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청소년을 일컫는다. 법에는 이 같은 청소년에게 사회적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명시돼 있다.
청소년의 주거권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현재 가정 밖 청소년이 가장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은 ‘청소년 쉼터’다. 청소년 쉼터는 사회복지사업법에 명시된 사회복지시설이다. 여가부 주관으로 2021년 2월 기준 전국 136개소가 있다.
쉼터에 가지 못하거나 가지 않는 가정 밖 청소년의 삶은 어떨까. 국현 청소년 위기 지원 현장 활동가는 기자회견에서 “청소년은 쉼터 이외의 다른 선택지를 자력으로 찾아야 한다. 가정으로 돌아갔다가 탈가정하기를 반복하며 불안정한 삶을 이어 나간다. 헬퍼, 가출팸, 노숙 등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헬퍼’는 가정 밖 청소년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헬퍼들은 청소년에게 선의로 접근하는 척하고 이후에는 대부분 성범죄를 저지른다. 가출팸은 가정 밖 청소년끼리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을 일컫는다. 가출팸에서도 절도, 성매매, 생계형 범죄 등이 일어난다.
전국 136개소나 있는 쉼터에 청소년은 왜 이렇게 들어가기 힘들까. 위 사례에 나오듯 쉼터에 입소하려면 학대, 방임 등 가해행위를 한 부모에게 자신이 머물게 될 쉼터의 위치를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7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연구 조사를 하나 발표했다. 가정 밖 청소년이 쉼터에 입소할 때 부모에게 입소 사실을 통지하는 것에 문제 제기하는 내용이다.
현재 여가부의 ‘청소년사업안내’ 업무 지침에 따라 청소년이 쉼터에 입소하기 위해선 72시간 내에 보호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 청소년은 가해부모의 학대를 피해 도망쳤는데 가해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피해자가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런 업무 지침 때문에 청소년이 쉼터 입소를 포기하고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현 활동가는 “이 때문에 가정 밖 청소년은 차라리 거리에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여가부는 다음 날인 8일, 곧장 설명자료를 발표했다. “민법 914조 ‘친권자의 거소지정권’에 따라 가정 밖 청소년의 입소 사실을 보호자에게 연락하는 것이지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여가부의 입장을 규탄했다. 국현 활동가는 “부모를 피해 집을 나온 청소년 입장에선 (부모에게) 연락하는 것과 동의받는 건 다르지 않다. 여가부는 법도, 지침도 개정하지 않고 ‘쉼터 입소 시 부모 동의는 필요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결국 청소년을 쉼터 밖으로 내쫓고 있다”고 성토했다.
모래 청주넷 돋움위원은 “청소년이 보호자 연락에 동의하지 않았을 때 대안이 없다. 양육자와 한집에서 살 수 없어 뛰쳐나왔는데 그 양육자에게 ‘네 자식 여기 있소’라고 알리는 것에서, 그리고 그것에 대해 청소년의 동의를 구한다는 것에서 정말 아무런 모순이 느껴지지 않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모래 위원은 또한 “여가부 지침 때문에 (쉼터 실무자가) 청소년 입장을 물어보는 과정은 청취가 아니라 심사가 돼버렸다. 이 책임은 쉼터 실무자뿐 아니라 결국 여가부가 가정 밖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부터 비롯됐다. 여가부는 가해부모를 중심으로 생각하며 안일한 입장을 냈다”고 비판했다.
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보호자에게 연락하는 것은 가족과의 갈등, 언어·신체 폭력을 피해 탈가정한 이들의 결정을 도외시하고 쉼터 입소를 가로막는 원인으로 작동한다. 결국 가정 밖 청소년을 위해 마련된 쉼터가 적절한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권 변호사는 또 “여가부는 민법 914조에 따른 친권자의 거소지정권을 말한다. 그러나 민법 912조에선 ‘친권을 행사함에 있어서는 자(자녀)의 복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자의 복리가 고려되지 않은 친권의 부적절한 행사는 제한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 가해부모 신고는 보복당할까 두려워… 현행법 개정해야
가해부모에게 자신이 머물 쉼터의 위치를 알리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다. 청소년이 가해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것이다.
여가부는 24시간 동안 청소년을 일시보호하고 72시간 내에는 보호자에게 연락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즉, 자신의 위치를 알리지 않기 위해 가해부모를 신고하려면 24시간 안에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를 신고하는 일은 청소년 입장에선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피해자임에도 말이다. 국현 활동가는 “친권을 가지고 자신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모를 고소하는 건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용기 내 신고한다 해도 아동학대로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소요된다. 심지어 법적으로 인정조차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의 문턱을 넘기도 어렵지만 쉼터의 문턱도 너무 높다. 청소년은 학대 피해를 증언하는데 쉼터 실무자가 학대가 아니라 판단하며 원가정 복귀를 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청소년의 위기 상황을 가출 자체에 한정 지어 보지 말고 ‘청소년이 겪는 현 상황’을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모래 위원은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아니라 질풍노도의 대한민국이다. 가정 밖 청소년에게 문제아 프레임을 씌우는 것부터 멈춰라. 청소년의 홈리스, 가족 없음, 가정폭력 상태를 직시하라. 쉼터에서 새로운 삶으로 회복할 대안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국현 활동가는 “우리가 거리에서 만나는 많은 가정 밖 청소년은 삶에 희망이 없다고 한다. 우울, 자해, 자살 등의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며 “가정 밖 청소년의 안전한 보호와 지원에 대한 책임을 진 여가부는 청소년의 현실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규정만을 들이밀고 있으니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또한 “규정이 아니라 청소년이 보호체계 밖으로 밀려나 거리에서 버티는 현실을 봐야 한다. 살기 위해 가정을 뛰쳐나온 청소년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청소년이 제도를 신뢰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있단 걸 믿고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난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는 “청소년이 독립적인 인격체임을 인식하고 현행법과 제도를 청소년 인권에 맞게 개정하라. 그것이 정부의 책무”라며 “청소년의 참여권이 확대되고 사회적·정치적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에게 직접 질문해서 당사자의 의사가 예산, 정책, 사회보장, 제도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가정 밖 청소년을 위해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소년복지 지원법에 일종의 방화벽을 마련해야 한다. 청소년이 쉼터에 입소하더라도 부모에게 입소 사실은 고지하되 해당 시설이 정확히 어딘지 알리지 않는 규정이 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실종아동법)에 따르면 쉼터에선 18세 이하의 가출 아동인 실종아동을 발견할 경우 경찰에 신고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신고하지 않은 채 보호할 수 없도록 한다. 즉, 쉼터 실무자에게 가정 밖 청소년을 경찰에 신고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연구 조사에서 가정 밖 청소년을 실종아동으로 간주하고 쉼터 실무자가 경찰에 신고하도록 한 규정 때문에 혼선이 가중된다고 밝힌 바 있다.
권 변호사는 “실종아동법의 목적은 비자발적인 실종을 전제로 실종아동을 조속히 발견해 가정으로 복귀하게 하는 데 있다. 이는 자신의 존엄과 복리를 위해 탈가정하고 자발적으로 쉼터에 입소하고자 하는 대상(가정 밖 청소년)과 본질적 차이가 있다”며 “실종아동법 상 실종아동의 정의에서 자발적 청소년 쉼터 입소자는 아예 제외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주넷 등 73개 단체는 기자회견문에서 “지난해 가출을 경험한 청소년은 10만 명이 넘지만 쉼터 입소 인원은 5천여 명에 그친다. 궁극적으로 청소년에게도 주거가 권리로 보장받을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책임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며 여가부를 향해 △쉼터 입소 관련 청소년의 의사결정을 반영할 방안 마련 △현재의 보호자 연락 지침이 가진 한계 인정, 이에 대한 입법·행정적 해결 방안 마련 △청소년 보호를 위해 아동학대·가정폭력·실종아동 신고 이후 지원 절차 강화 등을 요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