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장애인권 연대하러 일본행
장애인권 투쟁했다고 강제추방
우생학, 식민지 정책 기반 장애인거주시설
국제 연대로 해결해야… “일본은 사과하라”

일본 정부가 지난 22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의 입국을 불허했다. 이에 전장연은 25일 오전 11시, 서울시 종로구 주대한민국일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를 규탄했다.

- 장애인권 연대하러 입국하려는데 장애인권 투쟁했다고 추방

박 대표는 ‘국제앰네스티 2024 편지쓰기 캠페인’ 사례자로 선정됐다. 국제앰네스티 일본지부는 박 대표를 초청해 도쿄와 오사카 등에서 토크쇼, 인터뷰 등을 열 예정이었다.

국제앰네스티의 ‘편지쓰기 캠페인’은 2001년에 시작돼 20년 넘게 진행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인권 캠페인이다.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이 캠페인에는 매년 200개가 넘는 나라에서 5백만 명 넘게 참여한다.

국제앰네스티는 “매년 양심수, 인권 옹호자, 고문 생존자, 위험에 처한 공동체 등 세계적 연대가 절실한 사례를 선정한다. 편지는 전 세계의 감옥과 정부, 인권을 침해당한 이들에게 전달된다”며 “이 캠페인을 통해 수감자가 석방되며, 인권 옹호자에 대한 고문과 사형이 중단된다. 편지가 많이 모일수록 정부, 국가 지도자에게 더 많은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박 대표와 함께 여성 인권 옹호자 마나헬(사우디아라비아), 인권 변호사 당딘박(베트남), 대통령을 비판했다고 투옥된 네스(앙골라),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마리야(벨라루스) 등도 올해 편지쓰기 사례자로 선정됐다. (관련 자료: 국제앰네스티 올해의 편지쓰기 사례자)

그러나 박 대표는 국제앰네스티 일본지부 캠페인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일본 정부가 박 대표의 전과를 이유로 입국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12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아래 집시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박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결국 박 대표는 한국으로 강제 송환됐다.

박경석 대표 옆에 “나의 권리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박탈됐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대표 옆에 “나의 권리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박탈됐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 “제 몽타주부터 해서 모든 자료를…”

박 대표는 22일 오후 12시 20분경,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한국으로 강제 송환되기까지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저만 따로 불러서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입국 경위, (일본에서) 뭘 할 건지, 얼마나 할 건지 등을 물으며 조사했습니다. 마지막에 전과가 있냐고 묻더라고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전과 있습니다. 2001년부터 장애인 인권 활동을 했습니다. 집시법 위반 등 재판을 33건이나 받았고 지금도 재판 중인 게 있습니다. 또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7억 원 이상의 민사소송을 건 게 있습니다.’

그랬더니 제게 문건 하나를 건네면서 묻더라고요. 2012년 6월 7일에 보도된 웰페어뉴스 기사입니다. (관련 기사: 웰페어뉴스, ‘전장연 박경석 공동대표 징역 1년 확정’)

이걸 보여주면서 ‘징역 1년 이상의 선고를 받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왜 묻냐고 물어보니 일본 국내법에 의해 1년 이상의 징역이 있으면 출입을 불허한다는 법률 조항을 제게 보여줬습니다.

일본 ‘출입국 관리 및 난민인정법’

제5조(상륙의 거부)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외국인은 일본에 상륙할 수 없다.
4. 일본 또는 일본 이외 국가의 법령을 위반하여 1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이에 상당하는 형에 처해진 사실이 있는 사람. 다만, 정치범죄로 형에 처해진 사람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그들(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 나리타지국)이 준비한 자료가 많이 있더라고요. 제 몽타주부터 해서 신문 기사, 최근 모든 자료가 있었어요. 그걸 기반으로 제게 질문하고 입국을 거부한다고 통지했습니다.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즉각 했습니다. 제가 억류된 거냐, 구금된 거냐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도 화장실 가는 것 외의 모든 통행을 제지했습니다. 이의신청도 거부됐다고 하면서 퇴거명령서를 갖고 왔습니다. 대여섯 명의 직원이 제게 붙어서 저를 밀어가지고 강제 출국시켰습니다.”

기자회견 현장.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 현장.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우생학 기반 식민지 정책과 장애인거주시설 문제 규탄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 나리타지국은 지난 11일 발행된 비마이너 기사도 보여주며 박 대표에게 질문했다고 한다. 비마이너는 전장연 ‘일본 AA(Against Ableism, 비장애중심주의 철폐) 특사단’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우생학 전파와 식민지화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다이인(die-in) 행동을 할 계획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관련 기사: 이번엔 ‘일본’… 전장연 “야스쿠니 신사에서 장애인 식민지화 철폐 촉구할 것”)

박 대표는 일본 AA 특사단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투쟁하려고 했던 이유가 있다며 ‘츠쿠이 야마유리원 사건’을 언급했다. 이 사건은 ‘우생사상에 의한 최악의 장애인 혐오 범죄’로 불린다.

츠쿠이 야마유리원은 일본 가나기와현 사가미하라시에 있는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이다. 정원 160명 규모로, 한국 기준으로는 대형 장애인거주시설에 해당한다.

지난 2016년 7월 26일, 츠쿠이 야마유리원에서 근무했던 우에마츠 사토시는 새벽에 시설에 침입해 자고 있던 거주장애인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장애인 19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우에마츠 사토시는 경찰 조사 시 ‘장애인이 없어지면 좋겠다’, ‘중증장애인을 (살해함으로써) 구원했다’, ‘장애인이 제한된 국가 재원을 빼앗는다’는 진술을 했다고 알려졌다.

범행 전에는 당시 중의원 의장(한국의 국회의장)에게 (츠쿠이 야마유리원의) 장애인 수백 명을 말살하겠다’는 편지를 보냈고, 평소에는 ‘장애인은 죽는 게 낫다. 시설을 돌아다니며 수백 명을 죽이겠다’는 이야길 했다고 전해진다.

생존자는 계속 시설에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나기와현이 2017년에 발표한 ‘츠쿠이 야마유리원 재생 기본구상’에 따르면 생존자에 대한 지원은 시설을 개조하거나 그룹홈(소규모 시설)을 정비하는 것에 그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일본에서는 매년 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관련 기사: 일다, ‘지적장애인 집단살상 이후, 시설에 남겨진 사람들’)

박 대표는 “일본에 츠쿠이 야마유리원 대책위원회가 있다. 그들을 만나 시설 문제에 대한 심각함을 공유하고, 우생학을 기반으로 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장애인거주시설 문제와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피켓을 들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우생학으로부터 진행된 식민지 정책은 장애인을 열등한 사람이라고 취급하며 시설에 감금한다. 시설을 폐쇄해야 한다고 일본 정부와 윤석열 대통령, 오세훈 시장에게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최영은 활동가가 경찰이 친 울타리에 권리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최영은 활동가가 경찰이 친 울타리에 권리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인권, 평등, 평화 추방한 것… “일본 정부는 사과하라”

기자회견에서는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연대발언이 이어졌다.

명희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는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은 정당한 인권 활동을 억압하는 행위다. 국제 인권 기준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장애인 인권을 탄압한 억압적 조치에 국제 연대로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솔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이번 일본 방문은 동아시아 지역의 장애인 인권 발전에 기여하는 아주 중요한 일정이었다”며 “일본 정부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유엔인권옹호자선언을 비롯한 국제인권규범을 명백히 위반했다. 깊이 반성하고 박 대표에게 사과하라”고 강조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상임활동가는 “이번 사태는 단순히 박 대표만을 추방한 게 아니라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가 공모해 인권, 평등, 평화를 추방한 것”이라며 “이것이 지금의 장애인 인권 현실”이라고 성토했다.

전장연은 미즈시마 코이치 주한일본대사에게 면담요청서를 제출했다. 일본 AA 특사단은 현지에서 투쟁 중이며 오는 27일,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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