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대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 최종 선고
전국 버스 10대 중 6대 여전히 장애인이 탈 수 없는데도 ‘유죄’
김두나 변호사 “정당한 집회의 자유 부당하게 제한한 판결”
박 대표 “법률로 우리를 단죄하려 해도 우리의 행동은 정당”
“장애인을 태우지 않는 버스를 잡고 나를 태우라고 한 것이 불법입니까. ‘모든 교통수단을 장애인도 함께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법에는 명시했으면서, 계단이 있는 버스를 붙잡고 나를 태워달라고 한 것이 왜 유죄가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장애인은 탈 수 없는 ‘차별버스’를 막았던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대표가 결국 유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27일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버스를 가로막은 것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아래 집시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라며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 전국 버스 10대 중 6대 여전히 장애인이 탈 수 없는데도 ‘유죄’
지난 2021년 4월 8일, 박 대표는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 버스정류장으로 들어서는 160번 버스의 출입문이 열리자, 버스 기사에게 “나를 태워달라”고 말했다. 해당 버스는 휠체어를 탄 박 대표가 오를 수 없는 계단형 버스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탈 수 없다”는 버스 기사의 대답이 돌아오자, 박 대표는 버스 출입문과 자신의 휠체어를 쇠사슬로 묶은 채 약 15분간 기습 시위를 벌였다. 박 대표와 동행한 20여 명의 전장연 활동가들은 버스를 멈춰 세우고 “장애인 이동권은 자유권이다”, “저상버스 100% 도입 약속을 지켜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선전전을 진행했다.
검찰은 신고 없이 집회를 열고 버스 운행을 방해한 혐의로 박 대표에게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1심에서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박 대표는 이에 항소하고 동시에 ‘집시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2심에서 모두 기각됐다.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박 대표는 버스를 막은 지 4년 만에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의 최종 선고를 받았다.
장애인의 이동권 현실을 들여다보면, 전장연이 오랫동안 요구해 온 ‘서울 지하철 엘리베이터 100% 설치’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2002년에는 2004년까지, 2015년에는 2022년까지, 그리고 2022년에는 2024년까지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들은 모두 파기됐다.
일부 역에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아직까지 ‘살인 기계’라고 불리는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거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인근 다른 역까지 이동해 지하철을 타야 한다.
버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토교통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전국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38.9%에 불과하다. 저상버스 도입률이 가장 높은 서울은 66.7%에 그치며, 울산은 14.6%로 최저 수준이다. 울산의 85%가 넘는 곳을 장애인은 버스로 이동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버스 10대 중 8대는 여전히 장애인이 탈 수 없는 버스라는 뜻이기도 하다.
- 김두나 변호사 “정당한 집회의 자유 부당하게 제한한 판결”
전장연은 대법원판결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발표했다. 박 대표의 변호를 맡았던 김두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오늘 대법원은 박 대표의 행동이 미신고 집회로서 집시법을 위반한 것이고 버스 운행 업무를 위력으로 방해했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평화적으로 이뤄진 집회는 헌법에 따라 보호되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입장에 반하는 것이고, ‘집회를 미리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서 위법한 것이 아니며 미신고 집회 개최를 형사기소의 근거로 삼으면 안 된다’는 유엔자유권위원회의 평화적 집회의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 37호에도 반한다”며 대법원판결의 부당함을 전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이번 판결은 박 대표를 비롯한 장애인권활동가들의 정당한 집회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한 판결”이라며 “박 대표와 활동가들은 물리적인 폭력 없이 짧은 시간 동안 버스 앞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저상버스를 도입하라는 요구를 했을 뿐이다. 그 행동이 다소 불편을 발생시켰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집회는 일정 정도 불편함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편함은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수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우리 헌법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강조했다.
- 박 대표 “법률로 우리를 단죄하려 해도 우리의 행동은 정당”
박 대표는 “2001년도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로 24년간 투쟁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집시법, 철도안전법 등 위반을 이유로 재판을 받는다”라며 “대한민국 사회가 아무리 법률로 우리를 협박하더라도, 그 법률로 우리를 단죄하려 해도 우리의 행동은 정당하다”고 피력했다.
박 대표는 “장애인 이동의 문제가 그렇게 하찮은 것인가. 가치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명백하게 보여줄 것이다. 장애인의 권리는 무겁게 지켜져야 할 대한민국 시민의 권리라는 것을 투쟁을 통해 증명할 것”이라며 “오늘 대법원의 판결은 역사적으로 치욕스럽게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싸워 정당한 권리로 바꿔나갈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