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의료용 스쿠터가 보행자? 인도 위협”
실제로 도로교통법상 보행자로 규정돼 있어
법원도 “전동휠체어, 장애인 보행권 위한 것
‘추가적인’ 의무 부담한다고 보기 어려워”
장애인들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하라”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활동가가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그의 휠체어에 “차별 확산 방송국. 편견 퍼뜨리는 KBS”라고 적힌 형광색 종이 피켓이 붙어 있고, 그의 뒤로는 ‘국가인권위원회’ 간판이 보인다. 사진 김소영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활동가가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그의 휠체어에 “차별 확산 방송국. 편견 퍼뜨리는 KBS”라고 적힌 형광색 종이 피켓이 붙어 있고, 그의 뒤로는 ‘국가인권위원회’ 간판이 보인다. 사진 김소영

20일 오전 10시 30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앞에서 ‘KBS의 장애인 스쿠터 이용에 대한 차별 조장 규탄 및 차별 진정 기자회견’이 열렸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 장애인들은 “공영방송 KBS가 ‘의료용 스쿠터를 이용하는 장애인 때문에 비장애인 보행자가 위협받고 있다’는 식의 악의적인 보도를 했다”며 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제기했다.

- KBS “의료용 스쿠터가 보행자?… 인도 위협”

지난 7월 22일 저녁 7시 KBS는 ‘뉴스7’을 통해 ‘의료용 스쿠터가 보행자?… 인도 안전 위협’이라는 제목의 뉴스를 보도했다.

요약하면 ‘70대 노인이 탄 의료용 스쿠터가 좁은 인도 위를 달리다 상점에서 나오던 보행자와 부딪혔고, 그로 인해 보행자가 전치 6주의 상해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기자는 “무게가 100kg을 넘고 시속 15km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의료용 전동스쿠터. 차량일 것이란 생각과 달리 교통약자 이동권 보호 차원에서 차가 아닌 보행자와 한 몸, 즉, 보행자로 간주됩니다. 차가 아니다 보니 인도로 다닐 수 있고, 면허증이 없어도 몰 수 있습니다. (중략) 사고 위험은 높은데 사고 발생 시 처벌도, 피해보상도 쉽지 않습니다”라고 보도했다.

KBS 보도 화면. “‘의료용 전동 스쿠터’가 보행자?… 사고 무방비”라고 적혀 있다. 사진 유튜브 ‘KBS News’ 캡처
KBS 보도 화면. “‘의료용 전동 스쿠터’가 보행자?… 사고 무방비”라고 적혀 있다. 사진 유튜브 ‘KBS News’ 캡처

- 법원 “전동휠체어, 장애인 보행권 위한 것… ‘추가적인’ 의무 부담한다고 보기 어려워”

장추련은 “KBS의 뉴스 보도는 의료용 스쿠터가 보행자가 다니는 인도의 안전을 위협함을 전제한다”고 비판하며 “도로교통법상 보행자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차로 오인되어 다른 보행자와의 충돌 등 많은 사건에서 오히려 불리한 대우를 받는 차별 상황이 많이 발생해 왔다”고 지적했다.

2021년에도 횡단보도를 건너다 전동휠체어 이용 장애인과 휠체어 비이용인이 충돌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검찰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에게 과실치상죄(과실 행위로 사람을 상하게 함)를 적용해 최고형인 벌금 500만 원을 구형했다. 이때 과실치상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그러나 수원지방법원은 “도로교통법 제2조 제17호는 전동휠체어를 ‘차마’에서 제외하고 있고, 이는 보행보조용 의자차 없이 독립 보행이 힘든 장애인 등의 보행권을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라며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상대가 보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아야 할 주의의무를 넘어서 ‘추가적인’ 보행자 보호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에 항소했으나 2심에서도 최종 무죄가 선고됐다.

또한 도로교통법 제2조 제10호는 ‘보행자’를 유아차·‘보행보조용 의자차’·노약자용 보행기 등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기구·장치를 이용하여 통행하는 사람 등이라고 규정한다. 행정안전부령인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보행보조용 의자차’에는 수동휠체어, 전동휠체어 및 의료용 스쿠터가 포함된다.

종합하면 KBS의 보도와 달리 의료용 스쿠터 이용자는 인도 통행이 보장된 ‘보행자’이며, 의료용 스쿠터를 이용한다고 해서 다른 보행자보다 특별히 더 주의해야 하거나 차도로 다녀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 장애인들 “사과방송하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하라”

기자회견에 참석한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의료용 스쿠터와 전동휠체어는 보행이 어려운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보조기구이자, 인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명확한 의료용 보조장치다. 그런 휠체어를 KBS는 ‘무기’로 만들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권달주 대표는 “이런 보도로 인해 휠체어를 이용하는 노인이나 장애인이 비장애인에게 혐오 세력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라며 “언론은 먼저 ‘휠체어가 왜 인도로 다닐 수밖에 없는지’를 짚고, 비장애인 시민들에게 의료용 스쿠터나 휠체어가 인도에서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함께 지켜야 할 규칙을 고민할 수 있게 보도해야 한다. 그러나 공영방송인 KBS가 오히려 편향적인 시각으로 보도해 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몸의 신체 일부분과 마찬가지인 의료용 스쿠터와 휠체어를 무기로 편향 방송한 KBS는 반드시 정정보도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진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유진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유진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KBS의 보도는 명백히 장애인차별을 조장하는 보도”라며 “KBS 보도대로라면 의료용 스쿠터나 전동휠체어가 차도로 다녀야 한다는 말인가. 차가 얼마나 빠르고 위험한지 아는가. 그 위험을 감수하고 장애인이 차도로 다녀야 한다는 주장이 말이 된다고 보는가”라며 분노를 표했다.

유 활동가는 “비장애인 위험만을 언급하면서 장애인의 이동권, 접근권, 생명권을 전부 무시하고 차별한 것”이라며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규탄했다.

20일 오전 10시 30분, 인권위 앞에서 열린 ‘KBS의 장애인 스쿠터 이용에 대한 차별 조장 규탄 및 차별 진정 기자회견’ 현장. 사진 김소영
20일 오전 10시 30분, 인권위 앞에서 열린 ‘KBS의 장애인 스쿠터 이용에 대한 차별 조장 규탄 및 차별 진정 기자회견’ 현장. 사진 김소영

- “KBS, 장애인이 인도 다니는 것 ‘특권’처럼 호도해”

조인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KBS는 사고의 원인을 의료용 스쿠터 자체의 위험성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사고는 좁고 울퉁불퉁한 인도 보행 환경에 대한 제도적 미비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 발생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안전을 위해서 이러한 제도적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장애인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조 변호사는 “장애인에게 인도는 단순히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사회참여와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통로”라며 “KBS는 장애인이 보조기구를 이용해 인도를 다니는 것을 마치 특권이나 불법인 것처럼 호도하며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장애인의 이동권과 보행권을 박탈하려 했다. 인권위는 이 사건을 엄중히 조사하고 KBS에 대한 재발 방지 권고를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내려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인권위에 차별 진정서를 내고 있다. 사진 김소영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인권위에 차별 진정서를 내고 있다. 사진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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