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국회서 격리·강박 조사결과 발표 토론회 열어
최장 1151시간 격리·245시간 강박… 인권침해 심각
인권위 조사 결과도 유사 “환자 60%, 격리·강박 사유 고지 안 받아”
정신장애인들 “사망사건 사과하라” 복지부 정책관에 항의
격리·강박 피해 유가족들 “격리·강박 없어질 때까지 투쟁”
최장 1151시간 45분(약 48일) 격리.
최장 245시간 40분(약 10일) 강박.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정신의료기관 격리·강박 등 실태조사’ 결과이다.
보건복지부에서 2024년 8월 발표한 ‘격리 및 강박 지침’은 ‘격리’는 치료 또는 보호의 목적으로 정해진 제한된 공간에 자의적 또는 비자의적으로 혼자 머물거나 행동공간을 제한하는 것, ‘강박’은 치료 또는 보호의 목적으로 억제대나 보호복 등을 이용하여 환자의 신체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현행 지침에 의해 성인 기준으로 격리는 1회 12시간, 강박은 1회 4시간 이하로 처방해야 한다. 전문의의 평가에 따라 연장이 가능하지만, 각각의 최대 허용시간의 두 배를 넘겨서는 안 된다. 즉, 격리는 연속 24시간, 강박은 연속 8시간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전국 388개의 정신의료기관에서 2024년 상반기(1월부터 6월) 동안 연속 최대 허용시간을 초과한 격리 사례는 1482건, 강박 사례는 130건에 달했다.
지난달 24일 오후 1시 30분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정신의료기관 격리·강박 등 조사결과 발표 및 개선방안 논의를 위한 토론회’에서 이 같은 정신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례들이 전해졌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이 주관하고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 서미화·남인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이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선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의 방문조사 결과도 함께 발표됐다.
부천 W(더블유)진병원, 춘천예현병원 격리·강박 사망사건 유가족들도 토론회에 참석해 진상규명과 정책 변화, 보건복지부의 공식 사과 등을 요구했다.
- 국감서 ‘실태조사 실시’와 ‘당사자 참여’ 약속했던 조규홍 복지부 장관
2024년 7월 1일 언론을 통해 ‘춘천예현병원 강박 사망사건’이 알려졌다. 피해자는 무려 251시간 50분(약 11일) 동안 병원 침대에 묶여있다가 숨졌다. 지난해 5월에는 보건복지부 인증 의료기관이자 TV와 유튜브 출연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정신의학과 전문의 양재웅 원장이 운영하는 부천 W진병원에서 강압적인 격리·강박으로 인해 환자가 입원 2주 만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부천 W진병원 유가족과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아래 한정연)은 W진병원·부천보건소·원미경찰서·경기남부경찰청 등 앞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여러 차례 벌였다. 지난해 10월 23일에는 보건복지부를 대상으로 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렸다. 정신장애인들과 유가족의 지속적인 요구에 따라 서미화 의원은 해당 자리에서 ‘W진병원 격리·강박 사망사건’에 대한 책임을 양재웅 W진병원 원장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물었다.
당시 조규홍 장관은 ‘10월 중 정신의료기관의 격리·강박에 대한 실태조사를 할 것’과 ‘실태조사 조사자에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포함할 것’을 약속했다.
- 격리 인원 2만3천여 명, 강박 인원 1만2천여 명… 보호실은 ‘0.33평’
그렇게 실시된 보건복지부의 ‘정신의료기관 격리·강박 등 실태조사’의 결과와 제도개선 방안을 책임연구자인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토론회에서 발표했다.
이 조사는 1차로 보건소가 정신의료기관에 조사표를 전달하여 기입하게 하고, 2차로 보건소가 정신의료기관에 현장 방문하여 사실 확인 및 추가 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보건소에서 조사한 자료를 취합하여 보건복지부로 전달하고, 보건복지부에서 연구진으로 해당 자료를 전달 후 분석을 진행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1월~6월) 동안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 수는 18만3520명이었는데 격리 인원은 2만3389명(12.7%), 강박 인원은 1만2735명(6.9%)에 해당했다. 같은 기간 정신의료기관에서 진행된 격리 시간의 총합을 격리실 인원으로 나눈 값인 1인당 총 격리 시간은 23시간 28분, 1인당 총 강박 시간은 5시간 18분이었다.
환자가 격리·강박 되는 보호실 면적은 최소 1.1㎡에서 최대 36㎡로 조사됐다. 1.1㎡는 불과 0.33평에 해당한다. 보호실 중 절반 이상인 63.9%가 3㎡(약 0.9평) 이상 10㎡(약 3평) 이하로, 열악한 공간에서 격리·강박이 이뤄지고 있는 실태가 드러났다.
보건복지부는 △정기적인 실태조사 실시 △지침 및 법 개정 △종사자 대상 교육체계 △인력강화 △모니터링 체계 구축 △CCTV(폐쇄회로텔레비전) 설치 운영 필수화 및 보호실 환경 기준 마련 등을 제도개선 방안으로 제시했다.
- “실태조사만 한 복지부, 실질적 조치는 어디로?”
백 교수의 발표에 대해 김강원 법무법인 디엘지 공익인권센터 부센터장은 “국정감사에서 서미화 의원이 대책 마련을 요구하니까 복지부 장관이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말씀을 하셨었다. 그래서 오늘 현장에서의 실태나 사례들, 대책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토론회에 오신 당사자와 가족분들께서 답답함을 느끼셨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김 부센터장은 “이런 류의 연구나 논의들은 과거에도 얼마든지 있어 왔다. 서미화 의원이나 당사자, 가족들이 요구했던 조사는 ‘단속’을 위한 조사였을 것이다. 현장에서 실제 어떤 위반 사례들이 있는지를 찾아서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고 행정처분을 내리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그런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다시 한번 조사를 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신석철 한정연 상임대표는 두 가지 요구를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에게 전했다. “첫 번째는 부천 W진병원과 춘천예현병원 사건에 대해 복지부에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한다. 두 번째는 국정감사 당시 서미화 의원이 당사자 단체를 반드시 포함시키라고 해서 복지부 장관이 ‘포함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당사자들이 참여는 할 수 있었지만 사실상 ‘들러리’(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했고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할 순 없었다. 앞으로 이 실태조사에 대해 당사자의 참여 권한을 100% 보장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말했다.
김일열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과장은 “복지부에서 한 행정조사 방식에는 당사자 참여에 한계가 있었다. 앞으로 정기적인 실태조사를 할 예정인데 2025년에 하는 실태조사에서는 당사자가 참여하는 기회를 더 가질 수 있도록 조사 단계를 구성할 때부터 상의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공식적인 사과에 대해 김 과장은 “시작하면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며 직접적인 사과 표현을 회피했다.
앞서 이상원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이 환영사를 하기 전, 토론회 참석자들이 “사람 잡는 고문 강박 지금 당장 금지하라!”, “보건복지부 국장은 유가족에게 사죄하라!”고 기습적으로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이 정책관도 아무런 사과 없이 준비해 온 환영사를 읽어 나갔다.
- 인권위 조사 결과도 유사 “환자 60%, 격리·강박 사유 고지 안 받아”
이날 토론회에서는 인권위가 방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보건복지부와 달리 직접 정신의료기관을 방문해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는 격리·강박실 구조 및 환경을 확인하는 현장조사와 의사·간호사·보호사 등 종사자와 입원환자를 면담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방문조사 대상기관은 지역·설립유형·병상규모 등을 고려하여 1차로, 격리·강박 사망사고 및 폭행 유무 및 이전의 방문조사 실시 여부 등을 고려하여 2차로 선정해 총 20곳의 병원이 조사대상이 되었다고 전했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분석된 격리 167건 중 최대 연속 격리 시간은 526시간(약 22일)이었고, 강박 127건 중에서는 최대 24시간 연속 강박 사례가 확인됐다. 특히 양 손목과 양 발목을 모두 묶는 ‘4포인트 강박’이 전체 강박의 80.3%(102건)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면담에 응한 환자 89명 중 25명(39.3%)만이 격리·강박의 사유를 고지받았다고 답했다.
권미진 인권위 장애차별조사2과 조사관은 “격리·강박 지침에는 ‘격리·강박실이 간호사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야 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작년 사망사고가 일어났던 병원은 20m나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중간에 철문이 3개가 있었다”며 “환자의 입장에서 철문을 3개나 뚫고 들어가서 갇힌다는 것은 (격리·강박실이) 스스로 들어가기 싫은 공간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고 환자가 간호사를 부를 때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병원은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권 조사관은 “방문조사 이후 1월과 2월에 2개 병원에 대한 직권조사를 실시했고, 그중 1개 병원은 지난주에 고발 결정이 되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 22일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격리·강박 제도 개선 권고안을 발표했다. △‘격리·강박 지침’ 법령화할 것 △격리·강박 수행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보호사 교육을 강화할 것 △격리·강박실 규격 및 설비 기준을 마련할 것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것 △비강압적 치료를 제도화하고 관련 인력을 충원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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