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에 갇힌 모든 존재
이들을 위한 탈시설로드맵 수립 요구
이재명 ‘일부 동의’, 권영국 ‘전부 동의’
김문수·이준석은 무응답

지난 4월 24일에 결성된 ‘모두를 위한 탈시설 행동연대(아래 모두탈시설연대)’가 장애인·동물·홈리스 등의 탈시설·주거권에 관해 대선후보에게 질의서를 보냈다. 전부 동의한다고 응답한 후보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일부 동의를 표했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응답하지 않았다.

모두탈시설연대는 지난달 20일 오후 2시,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각 후보의 응답을 발표하며 “어떤 존재도 가두지 않는, 모두를 위한 탈시설 사회로 나아가자”고 외쳤다.

모두탈시설연대 기자회견 현장. 사진 하민지
모두탈시설연대 기자회견 현장.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에 참여한 강아지 밤비 씨. 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의 가족이다. 사진 하민지

- 모두를 위한 탈시설로드맵, 수립하실 건가요?

모두탈시설연대가 각 후보에게 보낸 질문은 △모두를 포함하는 탈시설로드맵을 마련할 것인가 △탈시설권리가 보장된 법률과 정책을 마련할 것인가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주거와 지원서비스를 보장할 것인가 등 총 3가지다.

모두탈시설연대는 “현재 한국엔 탈시설지원법률이 없고 정부가 시행하는 탈시설 정책은 장애인 ·노인 등 일부 시설유형만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다가올 민주주의 사회는 탈시설권리를 다양한 대상에게 확대해야 한다”며 “공약 및 국정운영 계획에서 탈시설권리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권리보장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이재명 후보의 경우 마지막 질문에 ‘지역사회 주거와 지원서비스는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라며 동의를 표했지만 나머지 질문엔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같이 사는 강아지 밤비 씨와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정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전부 동의한다고 한 정당이 하나라도 있는 게 희망적이지만 다른 정당에선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의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피켓에 “청소년에게도 집다운 집을 내놔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피켓에 “청소년에게도 집다운 집을 내놔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아동·청소년 시설을 지역사회 거주전환 전달체계로

이어 대선후보에게 보낸 세부요구안이 공개됐다. 찬송 아동청소년탈시설공동행동 활동가는 “아동·청소년 탈시설로드맵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찬송 활동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가정 외 보호대상아동은 2,065명이다. 이 중 시설보호가 약 40%에 달한다. 청소년 복지지원체계도 시설중심의 일시보호가 대부분이다. 청소년은 원칙적으로 긴급주거지원, 주거급여 등을 이용할 수 없어서 시설에 입소하지 않는 한 거리나 비적정주거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찬송 활동가는 “청소년은 시설권력이 부당해도 대응하기 어렵다. 시설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지 않으면 청소년은 시설에서 내쳐진다.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 아래에서 모멸감을 느끼는 게 시설에서의 삶”이라고 호소했다. 또한 “주거지원제도 밖에 놓인 청소년에게 선택지는 시설뿐이다. 이렇게 시설에서 나온 청소년은 거리에 위험하게 있거나 온라인에서 만난 낯선 사람의 집에 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찬송 활동가는 △시설퇴소·탈가정 청소년 자립 지원하는 지역사회 기반 지원체계 구축 △시설이 아동·청소년의 지역사회 거주전환 전달체계 되도록 아동복지법·청소년기본법 개정 △주거기본법·노숙인복지법 등 주거복지정책 대상에 ‘가정 밖 청소년’ 포함 △시설보호 아동·청소년 수 단계적 감축 위한 로드맵 수립 등을 요구했다.

피켓에 “정신건강복지법,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피켓에 “정신건강복지법,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정신장애인 “탈원화로드맵 수립하라”

정신장애인 탈시설에 대해선 조현정동장애 당사자인 이한결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활동가가 설명했다.

2023년 국가 정신건강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건강 관련 시설에 수용된 정신장애인은 13만 149명이다. 상당한 인원이 시설에 있지만 정신장애인도 지역사회 주거와 자립지원 서비스가 부족해 수용시설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게다가 정신건강 관련 시설은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한 수용시설이 아니라서 시설에서 나온 이후 자립지원 정착지원금 등 탈시설 관련 제도를 이용하기 어렵다.

아동·청소년도 정신건강 관련 시설에 수용되고 있다. 이 활동가는 “최근 입원적합성심사에 참여했는데 심사에 올라온 아동의 나이가 7세였다. 아빠를 때렸다는 이유로, 집에서 통제가 안 된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된 사례”였다고 말했다.

50년간 정신요양시설에 수용돼 휴대전화 없이 살아가는 사례도 있었다. 이 활동가는 “정신요양원장 이름에 ‘천’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시설에 수용된 분들의 성함이 ‘천사, 천오, 천육, 천칠’로 지어졌다”고 증언했다.

이 활동가는 “탈원화로드맵 구축 등 정신건강복지법을 전면 개정하라. 정신적 상태를 경험한다는 이유만으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되고 격리·강박을 겪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추어리에 거주 중인 새벽 씨. 낙엽을 먹고 있다. 사진 새벽이생추어리
생추어리에 거주 중인 새벽 씨. 낙엽을 먹고 있다. 사진 새벽이생추어리

- 비인간동물 “1차적 탈시설부터 이뤄져야”

비인간동물의 경우 “1차적 탈시설 단계적 확산”이 주요하게 거론됐다. 혜리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는 “새벽이생추어리는 2020년에 설립된 단체다. 새벽과 잔디라는 두 돼지가 살고 있다”고 전하며 비인간동물의 탈시설 정책을 요구했다.

새벽 씨는 공장식 축사, 잔디 씨는 실험실에서 탈시설해 사는 생추어리 거주동물이다. 이들은 인근에서 가축전염병이 발생해 직접 감염될 경우 축산업에서 길러지는 동물과 동일하게 살처분 대상이 된다.

혜리 활동가는 “전염병 살처분이라는 국가폭력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가축으로 등록되지 않은 비인간동물의 주거권이 보장돼야 한다”며 “비인간동물 착취 산업 시설로부터의 1차적 탈시설이 이뤄져야 하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생추어리는 착취산업의 피해생존자가 사는 피난처다. 이곳에서의 생존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 노인·홈리스·이주민에게 임대주택을

노인의 경우 ‘탈요양’을 위해 임대주택 공급, 자립정착금 지원, 탈시설지원센터 운영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특히 “노인의 개별적 요구에 맞춘 ‘맞춤형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홈리스의 탈시설을 위해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법(가)”을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현재 국토부 훈령으로 있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을 법률로 승격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홈리스 등 주거취약계층에게 안정적이고 신속하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이주를 지원하는 걸 골자로 한다.

외국인보호소에 감금돼 살아가는 이주민에게도 탈시설이 필요하다. 아정 이주민구금대응네트워크 활동가는 “’재한외국인’의 정의에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자’를 삭제하고 보호일시해제 조치된 이주민에게 공공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부여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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