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스무 번째 맞이한 '홈리스추모제'
166명→295명, 홈리스 사망자 대폭 증가
인권 사각지대 놓인 홈리스 대책 마련해야

​서울역 광장 계단에 홈리스 사망자 295명을 추모하는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설치돼 있다. 빨간 레드카펫 위에 홈리스 이름이 적힌 책 295권과 장미꽃이 놓여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역 광장 계단에 홈리스 사망자 295명을 추모하는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설치돼 있다. 빨간 레드카펫 위에 홈리스 이름이 적힌 책 295권과 장미꽃이 놓여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역 광장 계단에 홈리스 사망자 295명을 추모하는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설치돼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역 광장 계단에 홈리스 사망자 295명을 추모하는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설치돼 있다. 사진 하민지
홈리스 기억의 계단에 이규호님을 추모하는 책이 전시돼 있다. 사진 하민지
홈리스 기억의 계단에 이규호님을 추모하는 책이 전시돼 있다. 사진 하민지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 즈음이면 홈리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제가 열린다. 2001년부터 시작된 홈리스추모제는 올해 스무 번째 해를 맞았다. 

홈리스행동, 나눔과나눔 등 4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2020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아래 추모제기획단)은 14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 계단에 레드카펫을 깔았다. 그 위에는 홈리스의 이름이 적힌 책을 놓았다. 한 권의 책처럼, 저마다의 서사로 살다 삶을 마감한 홈리스의 존엄하고 존중받아야 할 삶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추모제기획단이 ‘홈리스 기억의 계단’에 놓기 위해 준비한 책은 295권이다. 홈리스의 죽음은 작년 166명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 서울역 광장 계단이 모자라 책은 다 놓이지 못했다.

서울역 앞에 설치된 임시 선별진료소. 선별진료소가 설치되느라 홈리스는 머물던 곳에서 쫓겨났다. 사진 하민지
서울역 앞에 설치된 임시 선별진료소. 선별진료소가 설치되느라 홈리스는 머물던 곳에서 쫓겨났다. 사진 하민지

추모제기획단이 ‘홈리스 추모주간’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동안, 서울역 광장의 홈리스는 서 있거나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었다. 앉을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컵라면을 걸어 다니며 먹어야 했다. 그는 13일 새벽, 서울역 앞에 선별진료소가 들어선 이후 머물고 있던 자리에서 쫓겨났다고 말했다. 다른 이는 “선별진료소 세운다고 경찰이 말도 없이 우리 짐을 다 실어갔다. 이건 폭력이다. 있을 데도 없고 갈 데도 없다”며 선별진료소를 향해 성토했다.

방호복으로 중무장한 의료진과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거리두기를 지키며 길게 줄 선 시민. 방역을 위한다는 차가운 질서에 홈리스는 없었다. 그 풍경 속에서 홈리스 295명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추모제기획단은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주간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하민지
추모제기획단은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주간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하민지
정성철 활동가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정성철 활동가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식사, 치료, 집, 장례…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홈리스

기자회견에서는 홈리스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가 제기됐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홈리스가 차별과 혐오로 방치된 상황이 주요하게 거론됐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홈리스의 먹을 것과 먹을 곳에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정 활동가는 “바이러스가 확산되자 무료급식소가 폐쇄됐다. 국가가 홈리스의 먹는 문제를 민간·종교 기관에 맡겨 왔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민간급식소가 문을 닫자 몇 안 되는 공공 무료급식소로 홈리스가 몰렸다. 그러자 서울시는 밥을 먹을 수 있는 대상을 선별하기 시작했다”고 문제제기했다. 

서울시는 실제로 지난 9월부터 서울시립 무료급식장 따스한채움터에서 노숙 이력을 조회하는 전자회원증을 도입하거나 65세 이상은 급식소를 이용할 수 없다는 방침을 내놓기도 했다.

정 활동가는 “방역조치랍시고 서울역사 내 의자를 폐쇄해 홈리스가 밥 먹을 공간이 없었다. 의자가 폐쇄된 곳은 승객이 오가는 2층 대합실이 아니라 홈리스가 여름철 땡볕과 겨울철 칼바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주로 머무는 3층 대합실이다. 부산역에서는 5월부터 야간노숙 금지, 홈리스 강제퇴거 조치를 대놓고 발표하기도 했다”고 성토했다.

또한 홈리스가 이용할 수 있는 서울 시내 6개 공공병원이 모두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홈리스가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문제, 미수령자가 1%도 안 됐다던 1차 재난지원금을 홈리스는 받지 못하고 강제로 기부 처리된 문제를 연달아 지적했다. 정 활동가는 “뭉쳐야 사는 사람들, 흩어지면 가려지고 지워지고 어쩌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물리적으로 모이지 말라는 이 상황이 굉장히 비참하다”고 말했다.

박승민 상임활동가는 방역에 취약한 쪽방촌 주민을 위해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 하민지
박승민 상임활동가는 방역에 취약한 쪽방촌 주민을 위해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 하민지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쪽방촌 주민이 방역 계층에 취약한 상황을 지적했다. 박 상임활동가는 “지난 9월 말쯤에 주민 한 분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주민에게 취해졌던 조치는 자가격리하라는 권고뿐이었다. 좁은 복도에서 공동으로 화장실과 취사장을 이용해야 하는 쪽방에선 권고를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지원도 없었다”고 문제제기했다.

또한 “최근 서울의료원에서 긴급 대책으로 컨테이너를 이용한 코로나19 치료시설을 준비한다고 하자, 언론에선 이 공간이 치료시설로 부적합하다고 비판했다. 복도가 좁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기에 위험하다는 게 이유였다”면서 “쪽방촌 주민이 일상적으로 처해있는 환경의 위험성을 얘기할 때는 듣지 않던 언론이 뒤늦게서야 서울시 시설에 대해선 목소리를 높인다”고 성토했다.  

김민석 팀장은 홈리스 중에서도 무연고사망자를 위한 공영장례 지원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하민지
김민석 팀장은 홈리스 중에서도 무연고사망자를 위한 공영장례 지원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하민지

대부분의 홈리스는 오랜 시간 가족관계가 단절되어 무연고자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서울시에서 무연고자로 사망한 경우, 경기도 파주시의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 유골을 모시고 있다. 그러나 지인이더라도 보고 싶을 때 찾아가서 마음 편히 볼 수도 없는 실정이다. 

김민석 나눔과나눔 팀장은 “무연고사망자 봉안시설을 정기적으로 개방해야 한다. 봉안시설은 유골을 반환받을 때 혹은 1년에 단 하루 있는 무연고사망자 합동위령제 때만 개방된다. 그날을 제외하면 봉안시설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다. 무연고사망자의 지인, 사실혼 관계의 분들, 친구분들이 추모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상시 개방이 어렵다면 요일을 정하는 등 정기적으로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설에서 사망한 무연고사망자의 경우 시설장이 시설에서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에게 부고조차 알리지 않고 화장하는 사례가 여전하다. 제대로 된 애도, 장례 절차는 없다”고 비판하며 “전국적으로 공영장례 지원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추모제기획단은 이 외에도 △홈리스 주거지원 확대와 공공주도 순환형 쪽방 대책 마련 △명의범죄 피해 홈리스 구제방안 마련 및 공공서비스를 확충하고 홈리스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중단할 것 등을 촉구했다.

추모제기획단은 14일 월요일부터 21일 월요일까지를 홈리스 추모주간으로 정했다. 추모문화제는 동짓날인 21일 오후 7시에 서울역, 용산역, 동자동 새꿈공원 등에서 비대면 영상 중계로 진행된다.

로즈마리 홈리스야학 학생회장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피켓에는 '인터넷 개인방송인(BJ)은 거리홈리스의 처지를 '콘텐츠'로 하는 촬영 즉각 중단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로즈마리 홈리스야학 학생회장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피켓에는 '인터넷 개인방송인(BJ)은 거리홈리스의 처지를 '콘텐츠'로 하는 촬영 즉각 중단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 참석자가 '명의범죄로 인한 세금폭탄 피해 홈리스 구제방안 마련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 참석자가 '명의범죄로 인한 세금폭탄 피해 홈리스 구제방안 마련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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