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중심’ 홈리스 대책에서 비롯된 예견된 참사
주거권 침해로 발생한 일, 주거권 보장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60대 후반의 A씨. A씨는 현재 서울역 지하도에서 잠을 잔다. 매 겨울마다 노숙인 응급잠자리에서 잠을 잤지만, 이번 겨울만큼은 거리에서 버틸 계획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응급잠자리를 이용하는 건 고령인 자신에게 너무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임시주거지원을 신청해 고시원이나 쪽방에 들어가면 좀 낫지 않겠냐는 말에 A씨는 금시초문이라며 아들이 있는 자신도 신청할 수 있는지를 되물었다. 노숙인 지원기관이 집결해 있는 서울역에서 10년 가까이 거리노숙을 해온 A씨. 그는 이날 처음으로 ‘임시주거지원 사업’을 알았다.
60대 초반의 B씨는 A씨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건강악화로 더 이상 거리에서 겨울을 나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B씨는 얼마 전부터 서울역 응급대피소(응급잠자리)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최근 응급대피소가 집단감염으로 인해 폐쇄되자, B씨는 임시주거지원을 신청하기 위해 서울시 노숙인기관을 찾았다. 그러나 B씨는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원을 거절당했고, 서울역 지하도에서 잠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다행히 국가인권위원회에 연락하고 민간단체의 연계를 통해 고시원에 입실할 수 있었다. 입실 다음 날 선별진료소를 찾아 검사를 받은 B씨는, 양성 판정을 받고 현재 생활치료센터에 격리돼 있다.
서울역 노숙인 이용시설(서울특별시립다시서기 서울역희망지원센터)에서 시작된 홈리스 집단감염 사태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시설은 최근까지 서울역 인근 거리홈리스에게 상담과 복지연계서비스 그리고 ‘응급잠자리’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발한 이후,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타 기관으로까지 감염이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4일 오전 서울시 브리핑에 따르면, 전날까지 이 시설 관련 코로나19 확진자는 모두 76명(타 시·도 거주자 2명 포함)에 달한다. 지난달 17일에 첫 확진자가 나온 것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 가파른 확산세다. 방역당국은 앞으로 검사 진행에 따라 추가 확진자의 수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설 중심의 홈리스 대책에서 비롯된 예견된 참사
사실 이번 사태는 예견된 참사였다. 작년 말 서울시는 보도자료(2020년 12월 17일자)를 통해 ‘노숙인·쪽방주민 겨울철 특별보호대책’의 시행을 알리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제로 노숙인 응급잠자리를 운영할 계획임을 밝혔다. 노숙인 응급잠자리는 서울시가 매년 혹서기·혹한기마다 거리홈리스 대책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곳으로써 적게는 십여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수면공간과 위생공간을 공유하는 이른바 집단밀집시설이다.
홈리스행동을 비롯한 사회운동단체들은 코로나19가 재유행하는 시기에 감염병 예방에 취약한 응급잠자리 중심의 혹한기 대책은 외려 위기를 심화할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독립적인 위생설비를 갖춘 주거를 홈리스에게 제공하는 방향으로 대책이 재수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집단감염 사태의 진원지인 서울역희망지원센터에서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조차, 서울시는 노숙인 응급잠자리 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알리기 위한 정책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1월 19일,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시가 응급잠자리 855개를 운영하고 있고, 현재 약 300명 정도 여유가 있는 상황임을 강조하였다. 시는 이른바 ‘자활의지’ 심사를 거친 일부의 이용자들만 제한적으로 이용하는 ‘칸막이가 설치된 생활관’의 사진을 보도자료에 첨부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적극적이고 신속한 언론대응 역시 빠지지 않았다. 다음은 지난달 19일 보도된 아시아경제 기사의 일부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현재 센터나 시설에 노숙인분들을 위한 잠자리는 여유 있게 마련된 상태"라며 "다만, 노숙인분들이 센터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한다. 설득해도 센터에 자발적으로 들어오지 않으려고 해 걱정"이라고 했다. (아시아경제, 2021년 1월 19일 자 기사 중에서)
서울시 관계자가 이렇게 투덜대고 있는 새, ‘센터’에서 시작된 집단감염은 노숙인 응급잠자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서대문과 영등포 등 서울역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는 응급잠자리 제공기관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하였는데, 이용한 응급잠자리마다 확진자가 생기는 바람에 5일새 세 차례나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했던 사례까지 있을 정도다.
사태가 악화되자 서울시는 1월 25일부터 29일까지 서울역 인근 세 곳의 응급잠자리 운영을 잠정 중단하고, 앞으로 ‘음성’ 판정을 받은 이들에 한해 응급잠자리를 이용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밀접접촉자로 판별되지 않은 홈리스에 대한 대책은 코로나19 검사를 종용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마련되지 않은 셈이다(여기서 자세히 다룰 순 없지만, 이 와중에 서울시가 “만취 노숙인”, “노숙인의 마스크 착용 미흡”, “평시처럼 자유로운 활동이 어려우니 잠적한 것으로 추정” 운운하며 정책 실패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려 했던 사실은 짧게라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글 도입부에서 언급한 거리홈리스 B씨의 사례는 현 서울시의 조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기술 중심의 접근은 과연 근본 대책이 될 수 있을까
노숙인 응급잠자리를 중심으로 집단감염 위협이 확산·심화됨에 따라, 현재 응급잠자리 운영 중단과 더불어 홈리스에게 독립적인 위생설비를 갖춘 안전한 주거를 제공하라는 목소리가 사회운동단체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일에는 서울특별시인권위원회(아래 서울시인권위)까지 나섰다. 이날 긴급성명을 낸 서울시인권위는 “독립적인 위생설비를 갖춘 개별 주거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대책”이라며 “서울시는 정부 및 방역당국과 더불어 노숙인들에 관한 적절한 주거대책을 신속히 마련하여 집단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노숙인 등을 보호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요구와 주문이 반영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안전한 주거의 제공 대신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는 건 ‘신속항원 검사 도입’과 같은 기술 중심적인 처방이 전부다. 그러나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이 지난 2일 발표한 성명(“노숙인 집단감염은 정부와 지자체의 차별적 정책 때문이다”)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현재 정부와 서울시가 검토 중인 신속항원 검사는 정확성이 떨어져 이미 집단감염이 확산일로에 들어선 현 상황에서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설사 검사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진다 할지라도, 감염병 예방에 근본적으로 취약한 장소를 잠자리로 이용해야만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아 집단감염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홈리스의 경우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어 일반적으로 검사 접근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복지서비스 이용의 대가로 주기적인 코로나19 검사를 지속해서 요구하는 건 그 자체로 인권침해적인 처사이자 현실성 없는 공상에 불과하다. 신속항원 검사의 도입을 임시대책으로 간주할 수는 있되, 주거권 침해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대책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백신 접종을 앞둔 상황에서 서울시를 비롯한 행정당국이 기술 중심적인 임시방편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확진 판정을 받은 홈리스를 찾기 위해 공권력까지 동원하고 있는 현실에서, 백신접종이 이뤄진다 한들 접종 후 사후관리가 적절히 이뤄지리라 전망하는 건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거권 보장 외 그 어떤 것도 적절한 대책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정부와 서울시만 깨닫지 못하고 있다.
주거권 침해로 발생한 일, 주거권 보장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현 홈리스 집단감염 사태의 근본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홈리스 당사자들이 응급대피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건 주거권이 박탈된 상태에서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던 탓이다. 그리고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던 건, 정부와 서울시를 비롯한 관계 당국이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위기상황에서조차 ‘시설입소를 통한 자활’이라는 비현실적인 환상에 매몰돼 잘못된 정책 선택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단과 처방이 서로 엇갈린다면 문제는 계속 꼬일 수밖에 없다. 주거권 침해로 발생한 일은 주거권 보장을 통해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정부와 서울시는 여전히 이 같은 상식을 외면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현 상황에 관해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서울시는 최근 응급잠자리 운영을 전면 재개하면서 집단밀집시설 중심의 기존 대책을 그대로 이어갈 것을 분명히 했다.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평소 알고 지내던 홈리스 당사자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내용인즉, 용산역 대합실 내 벤치들이 치워졌고, 이에 여성홈리스가 바닥에 앉아 있자 역무원들이 그이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 뒤 해당 자리에 긴급 소독을 실시하였다는 것이다. 집단감염 사태의 책임을 홈리스 당사자에게 교묘히 전가하는 ‘서울시 관계자’의 망언이 계속되는 한, 주거를 중심에 둔 대책이 아닌 기술 중심적인 임시방편 처방만이 언급되는 한, 이 같은 거리의 ‘계급청소’는 당분간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쓸어내야 할 것은 홈리스 당사자가 아닌 ‘시설입소를 통한 자활’이라는 오래된 망상이다.
* 필자 소개 _ 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