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시설 등 취약시설 백신접종 계획에 거리홈리스는 ‘배제’
거리홈리스 10명 중 7명은 백신 미접종, ‘접종 후 쉴 곳 없고, 정보 부족해’
정기적 코로나 검사 요구에 상담·급식소 등 노숙인 지원기관 이용 어려워

“밥 주는 데서 일주일에 한 번 검사하는데 코피가 나기까지 했다. 겁도 난다. 이건 너무하다.”

“거리에서 정보 얻기가 너무 어렵다. 백신에 대한 가짜뉴스도 많다는데 혼란스럽다.”

“접종 후 누울 자리가 있어야 한다. 주거지원을 안정적으로 했으면 한다.”

“이상반응 시 즉각 이용 가능한 의료지원과 쉴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신분증이 없어서 보건소 갔을 때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다. 거리에 있는 사람들, 신분증 있건 없건 맞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거리홈리스 코로나19 예방접종 실태조사’ 참여자들의 요구 

거리홈리스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나마 백신과 관련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노숙인 관련 시설 접근성마저 낮아져 거리홈리스들은 백신접종에서 배제되고 있다. 

홈리스행동은 16일 오전 11시, 서울역 광장 앞에서 ‘거리홈리스 코로나19 예방접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거리홈리스 백신 보장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활동가가 ‘거리홈리스 접종계획 지금 바로 마련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홈리스행동은 16일 오전 11시, 서울역 광장 앞에서 ‘거리홈리스 코로나19 예방접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거리홈리스 백신 보장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활동가가 ‘거리홈리스 접종계획 지금 바로 마련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거리홈리스 10명 중 7명 미접종… ‘이상반응 관리 못 하고 정보 부족해서’

정부는 지난 4월, ‘코로나19 취약시설 대상 예방접종 시행 지침(아래 지침)’에 따라 ‘노숙인 거주 및 이용시설’ 입소·이용자와 종사자를 접종대상에 포함했다. 노숙인 이용시설(종합지원센터, 일시보호시설, 급식시설 등)을 이용하는 거리홈리스 역시 접종 대상에 해당한다. 서울시는 지난 4월 20일부터 거리홈리스 대상 백신접종을 시작했다. 현재 1차 접종이 마무리된 상황이다. 

그러나 1차 접종 기간 동안 홈리스행동은 다수의 미접종 사례를 접수했다. 관내 노숙인 시설이 없어서 백신접종을 받지 못한 경우, 연락처가 없어 백신접종을 거부당한 경우 등이다. 

정부는 지침을 통해 관할 보건소에서 대상자 명단 파악이 어려울 경우, 보건소 방문 접종과 대상자 추가를 유연하게 계획·시행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작 보건소에서는 거리홈리스 백신접종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신분증이 없는 거리홈리스 백신접종 절차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이에 홈리스행동은 1차 접종이 완료된 5월 13일부터 약 2주 동안 서울 시내 주요 공공역사에서 거리홈리스 101명을 대상으로 ‘거리홈리스 코로나19 예방접종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거리홈리스의 1차 백신 접종률은 29.7%(30명)에 불과했다. 지난 5월 27일 기준, ‘코로나19 취약시설’ 전체 대상자의 1차 접종률인 86.3%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다. 

‘귀하는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에 70.3%가 ‘받지 않았다’, 29.7%가 ‘받았다’고 응답했다. 그림 제공 홈리스행동
‘귀하는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에 70.3%가 ‘받지 않았다’, 29.7%가 ‘받았다’고 응답했다. 그림 제공 홈리스행동

이처럼 백신 접종률이 낮은 이유는 정부 계획에서 거리홈리스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탓이다. 조사대상자의 43.7%는 백신접종을 하지 않은(못한) 이유로 ‘접종 후 이상반응 관리가 어려울 것 같아서’라고 답했으며, 33.8%는 ‘백신 예방 접종에 관한 정보가 부족해서’라고 답했다(복수응답 가능). 

홈리스행동은 “열악한 거처 환경, 백신에 관한 정보접근 제약이 접종률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라면서 “정부의 코로나19 예방접종 홍보자료에서는 접종 후 바로 귀가하여 무리하지 않을 것과 이상반응 시 냉찜질 및 해열진통제 복용 등을 권유하지만 모두 ‘거리’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잔여백신 신청을 포함한 백신접종에 관한 정보제공은 대부분 온라인에서 이뤄지고 있다. 백신접종 시에는 연락처 및 주민등록번호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거리홈리스는 본인인증 수단이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다. 조사결과, 신분증을 소지한 경우는 67.3%, 본인명의 스마트폰을 소지한 경우는 10.9%, 스마트폰이 아닌 본인명의 일반 휴대폰을 소지한 경우는 8.9%였다. 공인인증서 및 아이핀 인증이 가능한 경우는 한 명뿐이었다.

노숙인 지원기관 이용하려면 코로나 검사 결과 제출해야 ‘이용률↓’ 

대부분의 거리홈리스는 그나마 백신 관련 정보를 얻었던 노숙인 지원기관 이용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3개월 간 서울시 노숙인 지원기관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무려 72%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83.6%가 ‘정기적인 코로나 검사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3개월 동안 서울시 노숙인 지원기관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72%,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28%로 나타났다. 어려움을 겪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정기적인 코로나 검사 요구’라고 응답한 비율은 83.6%로 나타났다. 그림 제공 홈리스행동
지난 3개월 동안 서울시 노숙인 지원기관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72%,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28%로 나타났다. 어려움을 겪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정기적인 코로나 검사 요구’라고 응답한 비율은 83.6%로 나타났다. 그림 제공 홈리스행동

올해 초 거리홈리스 집단감염 사태 직후, 서울시는 방역 강화 명목으로 노숙인 지원기관 이용 시 ‘7일 이내 코로나19 검사결과’를 요구하고 있다. 거리홈리스들은 단지 노숙인 지원기관에 상담하러 가거나, 급식을 먹으려 해도 검사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조치가 시행되기 전 서울역 무료급식장 따스한채움터의 1식 평균 이용인원은 318.1명이었다. 그러나 조치가 시행된 후(2월~5월) 1식 평균 이용인원은 107.9명(빵·우유 대체식 제외)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홈리스행동은 “서울시 조치로 거리홈리스의 지원기관 접근성이 매우 낮아졌음을 보여준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조사대상자 중 절반가량(46.5%)이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접종 후 상당 기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꼽았다. 이어서 ‘접종 관련 상세한 안내와 정보 제공’, ‘이상반응 발생 시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 등을 꼽았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활동가가 ‘7일마다 코로나 검사 지금 당장 중단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기자회견에 참여한 활동가가 ‘7일마다 코로나 검사 지금 당장 중단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백신 맞아도 다시 거리로 돌아와야… 별도의 접종계획 마련하라”

홈리스행동은 16일 오전 11시, 서울역 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와 같은 실태조사 결과를 알리며, 거리홈리스 백신접종 보장을 촉구했다.  

김대관 거리홈리스 당사자는 백신접종을 하지 않았다. 접종을 해도 쉴 곳이 없고,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뉴스를 보니 의사들이 접종 후 경과를 지켜보고 쉬라고 했지만, 거리홈리스는 쉴 곳이 마땅치 않아 문제라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안전하게 쉬겠지만 거리홈리스는 접종을 해도 다시 거리로 돌아온다”라며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상담원으로부터 접종 날짜, 시간, 장소에 대한 안내만 듣고, 접종에 대한 두려움을 해결해줄 자세한 정보는 듣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집단감염 사태 후 서울역과 용산역 등 거리홈리스가 많이 밀집해 있는 대합실 내 TV에는 한동안 ‘코레일 홍보방송’만 무음으로 송출됐다. 홈리스행동은 “백신 안정성 이슈가 오갔던 2~4월 동안 거리홈리스들은 백신 정보를 더욱 접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김대관 거리홈리스 활동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옆에 있는 활동가가 ‘여럿 이용하는 시설 말고, 안전하게 지내면서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 보장해야 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김대관 거리홈리스 활동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옆에 있는 활동가가 ‘여럿 이용하는 시설 말고, 안전하게 지내면서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 보장해야 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이번 정부의 접종계획은 시설 중심으로 편성되어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거리홈리스는 배제됐다. 박철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거리홈리스는 관내 노숙인 시설이 없다고 해서, 재가장애인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간다는 이유로 백신접종에서 배제되고 있다”라고 비판하며, 모든 소수자가 백신접종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이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백신인권팀 연구원은 “거리홈리스는 지난 1년간 방역정책에서 소외되거나 방역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큰 위협을 받았다. 백신접종의 불평등은 기존의 불평등 구조 위에서 더욱 심화됐다. 국가가 불평등에 개입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백신이 있어도 거리홈리스가 안전하게 접종할 수 없다”라며 “거리홈리스의 특성을 고려해 감염병 대유행 기간 동안 쉴 수 있는 임시주거지 제공과 접종 후 이상반응 대처 방안 마련, 의료기관에서 충분한 백신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홈리스행동은 △정기적 코로나 검사 요구 등 노숙인 지원기관으로의 접근성을 낮추는 조치 중단 △보건전문가를 통한 충분한 정보제공 및 안내 △‘접종 후 사후관리’ 위한 주거지원 연계 △이상반응 발생 시 인근 의료기관 이용 방안 마련 △거리홈리스 고려한 별도의 접종계획 재수립 등의 요구를 담아 방역당국에 제출했다. 

홈리스행동 등이 서울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이가연
홈리스행동 등이 서울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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