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복지법·장애인차별금지법상 법적 장애인정 소송 전략 
장애 범주 속에서 낙인의 무게 더 가벼워질 수도
장애인운동, 장애 정의에 HIV 감염인 현실 반영해야

17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유리빌딩 6층 프로그램실에서 ‘HIV와 장애인정’을 주제로 전국 활동가 간담회가 열렸다. 이번 간담회는 대한에이즈예방협회대구경북지회, 레드리본인권연대 그리고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최했다. 사진 이가연
17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유리빌딩 6층 프로그램실에서 ‘HIV와 장애인정’을 주제로 전국 활동가 간담회가 열렸다. 이번 간담회는 대한에이즈예방협회대구경북지회, 레드리본인권연대 그리고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최했다. 사진 이가연

올해 4월부터 장애등록 가능한 질환이 확대된다. 그동안 등록되지 않던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 백반증, 강박장애, 뚜렛장애, 기면증 등 10개 질환이 기존 15개 장애유형에 포함되도록 그 기준이 바뀐다. 그러나 이번 장애등록 가능한 질환에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는 포함되지 않았다. 

HIV 감염인도 장애등록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HIV 감염인을 비롯해 관련 인권단체와 장애계가 지난 몇 년간 논의를 진행해오고 있다. 특히 HIV 감염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신체적, 사회적 고통을 어떻게 장애로써 해석할 수 있을지, 그리고 장애인운동과 HIV 인권운동이 어떻게 연대하고 전략적인 접근을 할 수 있을지 다각적 고민이 필요하다. 

논의의 연장선으로 지난 17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유리빌딩 6층 프로그램실에서 ‘HIV와 장애인정’을 주제로 전국 활동가 간담회가 열렸다. 이번 간담회는 대한에이즈예방협회대구경북지회, 레드리본인권연대 그리고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최했다. 

한울 대구경북HIV/AIDS자조모임 해밀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한울 대구경북HIV/AIDS자조모임 해밀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수차례 차별당해보니 ‘장애인정’ 간절해졌다 

HIV 감염인 당사자인 한울 대구경북HIV/AIDS자조모임 해밀 대표는 작년 초, 큰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기 전 까지만 해도 왜 장애인으로서 인정받아야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병원 다인실에 입원했을 때, 이상하게도 그의 식판만 검은 비닐에 싸여 나왔다. 병원에서는 밥을 먹고 난 뒤 식판을 비닐에 씌워 내놓으라는 게 방침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너무 화가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감염경로에 침, 땀, 눈물 등은 해당하지 않음을 수차례 설명하고 항의하자 겨우 시정됐다. 차별을 받아보니 법적 보호막이 꼭 필요하겠다고 느꼈다”라며 “장애인 단체와 교류하며 이제 장애인정의 간절함을 갖게 됐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에이즈예방법보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또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정이 된다면 숨통이 좀 트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작년 9월, 경기도 안성에서 한 HIV 감염인이 손가락이 절단되어 병원에 갔지만, 감염사실을 밝히자 수십 개의 병원으로부터 진료를 거부당했다. 이처럼 감염인이 병원에서 진료나 수술을 받으려 하면 거부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김지영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대표는 건강권과 의료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공익소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대표는 “HIV 감염인에 대한 건강권과 의료접근권 침해가 심각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을 제기해 장애 인정 사례들이 더 많아져, 당사자들을 향한 일상적 차별이 드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HIV 감염인은 일상에서의 차별과 낙인 등으로 인해 사회에서 배제되는 경험이 많아지고, 심리적·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102명의 HIV감염인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약 60%가 불안 및 우울증세를 보였으며,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비용으로 생활하고 있는 감염인은 약 66%에 달했다. 

장애인복지법상 장애가 인정되면 약 40여 개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 김 대표는 “HIV 당사자에게 유일하게 제공되는 건 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기초생활 수급자 특례가 유일하다. 그 외 복지서비스는 전무한 수준”이라며 “현재 장애인복지법에서는 등록장애인에게 소득보장, 고용제도 등이 사회서비스 차원에서 지원되고 있다. 김 대표는 HIV 당사자에게 사회적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고용 및 생계가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김지영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시진 이가연

장애인정 소송 제기 가능… 당사자의 직접 요구 필요해

그렇다면 현재 장애인복지법상 질환자의 장애인정은 어떻게 판단되고 있을까. 예를 들어, 올해부터 장애등록이 가능해진 뚜렛증후군의 경우, 지난 대법원 판례에서 뇌전증장애 및 정신장애와 유사한 장애로 판단되었으며, 복지부 또한 기존 장애유형에 해당하도록 세부 인정 기준을 개정해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현행 장애판정 기준에서는 면역억제제를 투여 받고 있는 신장이식 환자 등에게도 장애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면역기능 저하가 심한 HIV 감염인을 장애인복지법상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HIV 당사자와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보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이번에 장애인정을 하는 질환을 확대하면서 △다빈도 민원 △학회의견 △연구결과 △장애계 요구 △판례 등 지속적으로 장애인정 필요성이 제기된 질환을 대상으로 기준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염 변호사는 이 같은 사실을 강조하며 당사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는 ‘자기옹호’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염 변호사는 “소송이나 진정에 있어 당사자가 나서야 진행될 수 있다. 제도화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노출해야 하는 부분이 불가피하다”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규제와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정 요구를 동시에 추진해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당사자가 직접 목소리 낼 수 있는 계기를 더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차별 발생할 때마다 장애 입증해야… 장애등록 시 명확해져

지난 2019년 5월, HIV 감염인에 대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사례가 처음으로 나왔다. HIV 감염으로 인해 면역력이 저하되어 시력손실과 편마비가 온 A씨가 재활 치료를 받기 위해 국립재활원을 찾았지만, ‘역격리(감염 우려가 큰 환자를 격리해 보호)가 필요한 응급상황 발생 시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당했다. 

당시 인권위는 “A씨가 등록장애인은 아니지만, 편마비와 시력상실로 일상·사회생활 모든 영역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으므로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의 정의에 포함된다”고 판단해 국립재활원의 행위를 차별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인권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 HIV/AIDS 환자 전체의 장애인정 판단은 보류했다.

이처럼 장애등록이 되어있지 않는 경우, 차별이 발생하더라도 매번 당사자가 장애를 입증해야 하는 과정이 발생한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CRPS나 뚜렛증후군의 경우에도 매번 차별 발생 시 개인이 장애를 입증해야 했다. 장애등록이 가능해지면 명확하게 장애를 입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감염인의 장애인 되기’ 넘는 새로운 장애인운동 가능성

장애계에서는 장애등급제폐지 운동을 통해 장애의 재정의를 요구해오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장애‘등록제’에 대한 문제의식도 제기됐다.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그럼에도 HIV 감염인 장애인정 공익소송을 운동전략으로써 필요하다고 느낀 건 지난 2019년, 레드리본과 대구 에이즈예방협회와의 ‘우리 안의 혐오와 차별 허물기’ 협력사업을 하고 나서다”라고 말했다.  

당시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대구 장애인단체들은 사업을 종료하며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정부와 국회에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인 정의를 보다 사회적이고 포괄적으로 개정해 HIV 감염인이 법정 장애로 인정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국내 장애인단체에 장애정의와 범주를 재정의하기 위한 노력에 HIV감염인의 현실이 반영되고, 내부에서도 HIV/AIDS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해소하는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전 정책국장은 “이는 성명이기도 하면서 장애인운동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당시 협력사업을 하며 ‘장애인은 동정을 받지만, 감염인은 미움을 받는 것 같다’는 차이를 느꼈다. HIV 감염인의 장애인정은 ‘감염인의 장애인 되기’를 넘어, 새로운 운동의 전략으로 고려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들 단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HIV 감염인의 장애인정 차별 사례들을 더 넓혀가기 위한 집단 진정을 오는 4월에 제기할 예정이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각종 복지서비스를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정을 위한 공익소송도 검토 중이다. 

전 정책국장은 “물론 이 과정에서 장애등록제가 가지는 한계와 모순이 드러날 것이다. 바로 그 모순을 건드리면서 장애를 재정의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과 에이즈예방법의 종합적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나 감염인이야, 그게 뭐!’ 조직화 필요해

물론 HIV 감염인이 장애등록을 할 경우, 또 다른 낙인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는 “많은 HIV 감염인들은 약을 잘 먹으면 관리할 수 있고, 비감염인만큼 살 수 있다는 주입을 하며 건강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평소 건강함을 강조하다가 장애등록을 하게 되면 (낙인이) 더 씌어질 것이라는 걱정도 든다.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성연 사무국장은 “‘HIV로 차별받는 것도 억울한데, 장애인으로까지 취급받아야 하나’라는 고민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신장애인의 경우에도 처음 장애등록이 추진될 때 ‘정신질환자인 것도 억울한데 장애인취급 받아야 하나’는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라며 “여전히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많지만, ‘장애인’이라는 큰 범주에 포함되면서 낙인이나 시선이 훨씬 더 가벼워졌다고 생각한다. HIV가 장애 범주 안에 들어오면 일상적·지속적 어려움을 장애 범주 안에서 함께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장애인운동에서는 장애를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보고 규정하는 사회적 장애모델이 주로 강조되곤 한다. 그러다 보면 자칫 HIV 질환자가 갖는 건강과 신체적 조건의 차이에 따른 문제가 가려질 수 있다. 전근배 정책국장은 이에 대한 경계로 “모든 사람들이 가진 생물학적 조건을 단절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회적 현상의 결과만 남게 된다면 장애인 당사자가 자꾸 건강과 문제없음을 이야기하는 문제로 빠지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장애인운동은 질병과 단절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 정책국장은 HIV 감염인의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애인운동이 조직될 수 있던 배경은 ‘나 장애인이야. 그게 뭐!’라는 조직화가 있었다. 그래서 HIV 감염인 또한 교육과 행사, 인식개선을 넘어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나 감염인이야, 그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조직화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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