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진실화해위, 선감학원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선감학원 인권침해 “국가가 책임지고 공식 사과해야”
김동연 경기도지사 “피해자 지원 대책 마련 노력하겠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일 오전 10시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사진 왼쪽)과 김동연 경기도지사(오른쪽)가 이날 자리에 함께했다. 사진 강혜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가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 인근 야산에 암매장된 유해를 발굴한 뒤 선감학원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 판단했다. 선감학원 폐쇄 이후 40년 만에 이뤄진 국가 차원의 첫 진실규명이다.

진실화해위는 18일 전체위원회에서 선감학원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이틀 뒤인 20일 오전 10시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조사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선감학원 수용자 전원을 국가 폭력의 피해자로 인정하고, 이들을 선감학원에 강제 구금한 국가에 인권유린의 책임을 묻고 피해자 지원 대책을 촉구한 것이다.

진실화해위가 9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유해 매장 추정지 시굴 작업에 착수한 결과, 5개 봉분에서 총 68개의 치아와 단추 6개가 발견됐다. 분묘는 모두 15~18세 사이 남성의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강혜민

- 이름도 나이도 알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의 죽음

일제강점기인 1942년 설립된 선감학원은 해방 이후 경기도에서 직접 운영한 부랑아 수용소다. 교화라는 명분하에 빈민들을 교외로 추방하고 격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었다. 수용된 아동 대부분은 17세 이하의 남성으로, 1982년 폐쇄될 때까지 5,000여 명의 아동이 선감학원으로 끌려간 것으로 추정된다.

소년들은 부모 심부름을 가다가, 친척 집에 가다가 공무원들의 단속에 걸려 선감도로 보내졌다. 신문 배달을 하던 중 붙잡히거나, 입은 옷이 남루하다는 이유로 끌려간 경우도 있었다. 강제 노동, 가혹 행위, 성폭력이 만연한 그 섬에서 아이들은 수도 없이 탈출을 시도했다. 파도에 휩쓸려 뭍에 다다르지 못한 유골들은 인근 ‘우물재 산’에 암매장됐다. 이름도 나이도 알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의 죽음이었다.

진실화해위는 9월 26일부터 30일까지 유해 매장 추정지 첫 시굴 작업에 착수했다. 원아대장에 기록된 사망자와 진실화해위 측에서 확인한 사망자 수가 일치하지 않아서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5개 봉분에서 총 68개의 치아와 단추 6개를 발굴했다”며 지난달 시굴 결과를 발표했다. 암매장 유해는 모두 선감학원에 수용된 15~18세 남성의 것으로 추정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선감학원 아동 사망자는 총 29명이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 과정에서 선감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확보해, 원아대장으로 파악한 기존 사망자 24명에 5명을 추가했다. 선감학원 퇴소 사유 중 탈출이 824명(17.8%)에 달한 점으로 미루어볼 때 실제 사망자 규모는 29명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오광석 씨의 인적 사항과 부랑 기간이 적힌 원아대장 사본.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오 씨는 7살 때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한 탑차(일명 양아치 차량)에 덜미가 잡혀 서울 ‘소년의 집’에 끌려갔다. 그곳에 있는 78명의 아이들과 함께 선감도에 수용됐다. 오광석 제공
오광석 씨의 인적 사항과 부랑 기간이 적힌 원아대장 사본.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오 씨는 7살 때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한 탑차(일명 양아치 차량)에 덜미가 잡혀 서울 ‘소년의 집’에 끌려갔다. 그곳에 있는 78명의 아이들과 함께 선감도에 수용됐다. 오광석 제공

- 진실화해위 “선감학원 수용자 전원은 국가 폭력 피해자”

이날 기자회견에는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9명이 함께 자리했다.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몇몇 피해생존자는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 결정문에서 “진실규명 신청인 190명 중 김영배 등 167명은 선감학원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국가기관이 처음으로 선감학원 단속·수용·운영 전반에서 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침해된 사실을 규명한 것이다.

선감학원에 강제 수용된 피해자들은 퇴소 후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신청인 중 99명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50명(51%)이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선감학원을 생각하면 괴로운 느낌이 든다’는 항목에는 89명(87%)이 ‘그렇다’고 답했다.

선감학원이 남긴 잔혹한 기억은 한 개인의 일생을 모조리 집어삼킨다.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오광석 씨는 언론에 ‘선감학원’이 오르내릴 때마다 유년 시절 국가로부터 당했던 폭력의 기억이 떠올라 신체적·심리적 트라우마를 심각하게 겪었다고 2017년 비마이너에 구술한 바 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한 탑차에 덜미가 잡혀 서울 ‘소년의 집’에 끌려간 그는 그곳에 있는 78명의 아이들과 함께 선감도에 수용됐다. 그가 7살 때 있었던 일이다.

선감학원의 하루는 새벽같이 일어나 사무실 앞에 집합하고, 오후 늦게까지 밭을 갈고 연탄을 나르는 일의 반복이었다. 춥고 힘들고 배고픈 그의 어린 시절에는 “자유가 없었다.” 그 대신 무자비한 구타가 있었다. 집합에 늦거나, 인원 보고가 틀리거나, 줄이 안 맞거나, 섬을 도망치다 잡히면 모든 원생이 소위 ‘줄빠따’와 ‘다구리’를 맞았다. (▷내 이름은 오광석, 나는 누구입니까)

오광석 씨가 기자회견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그는 기자와 만나 “선감학원에서 당한 구타와 폭력으로 지금까지 몸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사진 강혜민
오광석 씨가 기자회견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그는 기자와 만나 “선감학원에서 당한 구타와 폭력으로 지금까지 몸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사진 강혜민

오 씨는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비마이너와 만나 “선생과 반장이 통나무를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에 끼워 무릎을 꿇린 다음 내 어깨를 잡고 통나무를 밟으면서 구타했다. 지금도 일을 하다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오를 때가 많다. 이유 없이 선감도에 잡혀가서 폭력을 당했는데도 어디다 하소연하지 못한다. 그때 당한 구타와 폭력으로 지금까지 몸과 마음이 아프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국가 폭력의 상처는 지금도 불쑥불쑥 그의 삶에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피해생존자 김영배 씨는 “피해생존자들이 생활의 안정을 찾기까지 (진실규명을) 기다려 온 시간이 너무 길다. 그에 비해 행정은 너무 늦다. 오늘 발표한 내용이 앞으로도 잘 검토되었으면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사진 오른쪽)이 기자회견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사진 오른쪽)이 기자회견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정부 중앙부처, 경찰, 경기도에 “인권침해 책임지고 공식 사과하라”

진실화해위는 이날 선감학원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했다. 1957년 2월 9일 경기도에서 제정한 ‘경기도 선감학원 조례’는 선감학원을 설치하고 보호수용을 실시하는 법적 근거로 작동했다. 경기도는 1982년 폐쇄 전까지 선감학원을 직접 운영하며 “적법한 절차 없이 인간의 존엄과 신체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진실화해위는 지적했다.

선감학원은 부랑아를 단속하고 감화하기 위해 안산 선감도에 만들어진 ‘부랑아 시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는 “부랑아에 대한 법률적 정의가 내려진 바 없다”며 개념의 모호성을 지적했다. 또한 “공권력이 자의적으로 판정한 부랑아를 시설에 수용하고 박해하는 것은 헌법의 명확성 원칙과 국제법상 인도에 반하는 죄에 해당한다”며 그 위헌성을 짚었다.

또한 진실화해위는 “법무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등 국가 부처와 경찰 역시 선감학원에서 일어난 인권유린에 총체적인 책임이 있다”며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 위원장은 “(과거사정리법 제34조에 따라) 추가로 확인되는 피해자들을 위한 진실규명 활동을 제도화하고 피해 지원 업무를 계속해서 추진할 계획”이라 밝혔다.

이날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직접 기자회견에 참석해 “선감학원은 40년 전 문을 닫았지만, 그동안 국가 폭력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으신 피해생존자와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공식 사과했다. 김 지사는 “선감학원 피해자 생활안전지원금 지급을 검토하고, 희생자 추모 공간과 문화제를 확대 운영하는 등 지원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진실화해위는 앞으로 진실규명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이어나갈 예정이며, 추가 확인되는 수용자 역시 피해자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진실규명 신청은 오는 12월 9일까지 진실화해위나 각 지방자지단체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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