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선거공보물, 그림투표 용지 제공하지 않아 참정권 심각하게 침해
2020년부터 발달장애인 투표보조도 막혀… “대통령 내 손으로 뽑고 싶다”

원고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가 쉬운 선거공보물과 그림 투표용지가 필요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원고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가 쉬운 선거공보물과 그림 투표용지가 필요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지금껏 받았던 선거공보물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너무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용어와 내용에 관계없는 그림으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쉬운 단어로 발달장애인도 알기 쉽게 설명된 공약 설명, 그와 연결된 사진과 그림을 제공해야 합니다. 어떤 후보가 어떤 정책을 펼치는지 알아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또 사진이나 정당 로고가 있는 쉬운 투표용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것들이 제공되지 않는데, 투표보조인은 발달장애인을 지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원고,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

발달장애인들이 쉬운 선거공보물과 그림투표 용지 등 투표 편의제공을 하지 않는 국가에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8일 오전 한국피플퍼스트(아래 피플퍼스트) 등 발달장애인 권리단체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서문 앞 삼거리에 모여 소송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18일 오전 한국피플퍼스트 등 발달장애인 권리단체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서문 앞 삼거리에 모여 국가를 상대로 한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허현덕
18일 오전 한국피플퍼스트 등 발달장애인 권리단체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서문 앞 삼거리에 모여 국가를 상대로 한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허현덕

원고 박경인 활동가는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글자를 읽고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으나, 너무 어려운 단어나 문장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현재 제공되는 선거공보물에는 어려운 한자어와 개념어 등이 사용되어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누구를 찍어야 할지 마음을 정할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원고 임종운 성동마을이신나는장애인야학 학생은 언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시각적인 이미지로 정당의 로고, 색깔 등으로 구분된 투표용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투표소에서 제공되는 투표용지는 종이에 숫자와 후보 이름만 쓰여 있다. 그는 혼자 투표하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원고들에게 필요한 것은 쉽게 설명된 선거공보물, 그림 투표용지, 투표보조인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 발달장애인에게 제공되고 있는 편의지원은 현재 단 한 개도 없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에 따르면, 시각 또는 신체장애로 인해 홀로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해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동이나 손 사용에 어려움이 없는 발달장애인은 투표보조를 받을 수 없다. 

지난해 3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중앙선관위)에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정당한 편의제공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투표보조원 이외에도 정당의 로고나 사진 등이 부착된 투표용지 등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행사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이후 편의제공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소송대리인 이선민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인권위의 결정에도 중앙선관위는 요지부동이다. 따라서 법원에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해 시정조치를 구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기자회견 참가자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모의투표를 진행하라'라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뒤편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 건물이 보인다. 사진 허현덕
기자회견 참가자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모의투표를 진행하라'라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뒤편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 건물이 보인다. 사진 허현덕

이미 여러 나라에서는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과 그림 투표용지, 투표보조인 등을 제공하고 있다. 

피플퍼스트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장애인 관련 정부 정책이 발표될 때 큰 글씨·쉬운 문체·그림을 곁들인 읽기 쉬운 형태(Easy Read Version)를 따로 만들어서 제공한다. 2010년 총선부터는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약집(easy read manifestos)’을 일반 공약집과 함께 발간하고 있다. 스웨덴도 정책 및 공약 등을 이해하기 쉬운 자료로 제공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도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든 투표자에게 입후보자의 이름과 소속 정당명 및 로고가 있는 투표용지를 제공한다. 정당마다 고유한 색깔과 모양의 로고를 사용하고 있으며 투표용지에는 정당의 로고, 후보자의 사진도 함께 제공된다. 

소송대리인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7조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시설 및 설비, 참정권 행사에 관한 홍보 및 정보전달, 장애 유형 및 정도에 적합한 기표방법 등 선거용 보조 기구의 개발 및 보급, 보조원의 배치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라고 짚으며, 국가의 참정권 보장의 의무를 강조했다. 

김대범 피플퍼스트 활동가는 “지난 2018년 삼청동 주민센터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고,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러나 아무 약속도 지켜지지 않은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라며 소송을 제기하는 심경을 토로했다. 

기자회견에서는 투표소에 가려는 발달장애인이 중앙선관위에 의해 가로막혔을 때,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 그림 투표용지, 투표보조인 등의 도움으로 투표를 할 수 있다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자유와 평등, 참정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지난 10일부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 지원을 촉구하는 국민청원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청원 바로가기)

기자회견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발달장애인이 투표소에 가려고 하지만, 선관위에 가로막힌 모습. 사진 허현덕
기자회견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발달장애인이 투표소에 가려고 하지만, 선관위에 가로막힌 모습. 사진 허현덕
발달장애인은 알기쉬운 선거공보물, 그림 투표용지, 공적 조력인(투표보조인)을 지원을 받아 투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유와 평등, 참정권을 획득할 수 있다. 사진 허현덕
발달장애인은 알기쉬운 선거공보물, 그림 투표용지, 공적 조력인(투표보조인)을 지원을 받아 투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유와 평등, 참정권을 획득할 수 있다. 사진 허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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