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개발 발표 후 소유주 ‘국가가 사유재산 빼앗는다’ 강하게 반발
시민사회단체, “공공개발에 투기이익 바라는 것 부당”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에 대해 소유주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쪽방주민은 공공개발에 환영한다고 선언했다.

- 동자동 토지주·건물주 “사유재산 빼앗는다” 반발

국토교통부(아래 국토부)는 지난 5일, 동자동 쪽방촌을 공공주택사업으로 정비하겠다고 발표했다. 영등포 공공주택사업처럼 ‘선(先)이주 선(善)순환’ 공공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공공주택 1,250호를 먼저 건설한 후 쪽방주민의 재정착이 완료되면 나머지 부지에 민간주택이 들어선다. 기존 건물이 철거되는 동안 쪽방주민은 게스트하우스, 모듈러 주택(조립식 주택) 등의 임시 거주지에 머무르게 된다. 국토부는 공공주택은 기존 쪽방보다 2~3배 넓어지고 임대료는 현재 임대료의 15% 수준으로 저렴해진다고 밝혔다.

추진위가 배포한 유인물 사진(왼쪽)이다. "우리의 집과 토지를 다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땅 주인 동의 없이 강제로 토지 뺏어가서 공공임대주택 짓고, 쪽방촌 주민들에게 제공한다 합니다"로 시작되는 유인물에는 공공개발을 끝까지 저지하겠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오른쪽에는 추진위가 내건 현수막을 찍은 사진이 있다. 현수막에 '약자보호 명분 내세워 사유재산 탈취하는 정부를 규탄한다'라고 적혀있다. 사진 동자동사랑방
추진위가 배포한 유인물 사진(왼쪽)이다. "우리의 집과 토지를 다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땅 주인 동의 없이 강제로 토지 뺏어가서 공공임대주택 짓고, 쪽방촌 주민들에게 제공한다 합니다"로 시작되는 유인물에는 공공개발을 끝까지 저지하겠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오른쪽에는 추진위가 내건 현수막을 찍은 사진이 있다. 현수막에 '약자보호 명분 내세워 사유재산 탈취하는 정부를 규탄한다'라고 적혀있다. 사진 동자동사랑방

국토부의 발표 이후 개발구역 토지주와 건물주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토지주와 건물주로 구성된 후암특별계획1구역(동자)준비추진위원회(아래 추진위)는 ‘토지와 건물 소유주는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땅과 건물을 현금청산 해야 한다. 모든 수단을 이용해 공공개발 계획을 저지할 것’이라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다. 쪽방이 들어선 건물에 사유재산을 빼앗지 말라는 대형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일부 언론사는 토지·건물 소유주가 헐값에 땅과 건물을 빼앗기는 상황이라고 부풀려 보도하고 있다. 또한 개발구역에 거주하는 소유주를 ‘쪽방촌 주민’으로 잘못 표기해, 마치 쪽방에 사는 주민이 공공개발에 반대한다는 듯 보도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 17일 윤성원 국토교통부 1차관은 “정부가 헐값에 땅을 빼앗는다고 오해하고 있는데, 정당하게 감정평가를 거쳐서 현금으로 보상하는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추진위는 감정평가액이나 공시지가는 시세와 맞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시세에는 개발이익이 반영된다. 사실상 투기적 거래에 의한 가격 상승까지 반영된 시세다. 이걸 공공이 보장하라는 건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주민의견 반영하고 인근 홈리스까지 포괄하라”

이처럼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을 두고 소유주와 일부 언론사의 날조가 계속되자, 쪽방촌 주민은 17일 오전 11시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새꿈어린이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주도의 선순환 개발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김정길 교육홍보이사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대표가 든 피켓에는 '개발 이윤보다 주거권이 먼저다'라고 적혀있다. 사진 하민지
김정길 교육홍보이사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대표가 든 피켓에는 '개발 이윤보다 주거권이 먼저다'라고 적혀있다. 사진 하민지

동자동 쪽방주민이 2012년에 직접 만든 협동조합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김정길 교육홍보이사는 쪽방의 열악한 현실을 지적하며 국토부의 공공개발에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김 이사는 “얼마나 열악한지 안 살아보면 모른다. 바퀴벌레랑 사는 건 예삿일이다. 한파에 정화조가 얼어붙어 악취와 함께 살고 있다. 월세(약 1평에 평균 25만 원)를 수급비(약 50만 원)로 감당이 안 된다. 짐승도 발로 차지 않는데 우리는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있다”며 “(쪽방에서) 살다 보니 나이 들고, 병들고, 가진 게 없었다. 그래도 쪽방촌 주민 모두 가족처럼 뭉쳐서 살고 있다. 쪽방촌 주민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이곳을 개발해준다니 감사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김호태 동자동 사랑방 대표는 공공개발에 쪽방주민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맘대로 개발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 두 단체가 공공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왼쪽 사진에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이 용산구청에 제출할 의견서를 작성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1평 남짓한 방이 매우 좁게 느껴진다. 오른쪽에는 동자동 쪽방촌 공용화장실을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 동자동사랑방
왼쪽 사진에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이 용산구청에 제출할 의견서를 작성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1평 남짓한 방이 매우 좁게 느껴진다. 오른쪽에는 동자동 쪽방촌 공용화장실을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 동자동사랑방

개발구역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서울시 중구 양동 쪽방, 건물이 매우 낡아 ‘거지아파트’라 불리는 갈월동 거주시설, 한길고시원 등이 있다. 이른바 ‘비적정주거지’로 불리는 곳이다. 쪽방과 비슷한 열악한 환경에서 홈리스가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국토부 발표에는 개발구역 인근 홈리스를 공공주택에 입주시키겠다는 계획은 빠져 있다.

2019년부터 민간개발이 시작돼 주민이 쫓겨나고 있는 양동 쪽방촌 주민 강홍렬 씨는 동자동뿐 아니라 양동 주민까지 포괄하는 정책을 촉구했다.

강 씨는 “집주인이 올해 7월까지는 나가라고 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막막하다. 저 같은 사람은 아무 대책 없이 내쫓긴다. 집주인은 기름값이 비싸다며 보일러를 떼버렸다. 난방이 안 돼, 손바닥만 한 전기장판으로 영하 10도의 추위를 견딘다. 이게 사람 사는 건가 싶다. 이런 방에서마저 쫓겨나야 한다”고 성토했다.

이어 “동자동 공공개발 소식을 듣고 반가웠다. 양동 주민이나 동자동 주민 모두 서울시민이고 대한민국 사람이다. 국토부가 발표한 공공주택 1,250호만으로는 동자동 주민도 다 못 들어갈 것 같다. 양동 주민도 들어갈 수 있게 2,000세대 정도로 늘려주기를 제발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상임활동가도 “양동 쪽방과 같은 민간개발 사례를 보면, 쪽방은 공공개발이 아니면 주민은 내쫓길 수밖에 없다. 공공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자동 쪽방 주민은 공공주택 개발을 환여한다는 기자회견을 연 후 용산구청에 쪽방주민 342명의 의견을 모은 의견서를 제출했다. 사진 하민지
동자동 쪽방 주민은 공공주택 개발을 환여한다는 기자회견을 연 후 용산구청에 쪽방주민 342명의 의견을 모은 의견서를 제출했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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