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탈시설, 계속해보겠습니다 - 향유의집 폐지가 남긴 숙제
① 아무도 살지 않는 시설의 역사 _ 하(下)

마로니에 8인.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동림, 김용남, 김진수, 방상연, 황정용, 홍성호, 하상윤, 주기옥.
마로니에 8인.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동림, 김용남, 김진수, 방상연, 황정용, 홍성호, 하상윤, 주기옥. 사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 [전편] 장애수당 건드리자 시설범죄 줄줄이

탈시설정책의 초석, 마로니에 8인 투쟁

석암비대위 소속 장애인들은 목소리를 내면 낼수록 자신의 삶에 균열이 나고 있음을 느꼈다.  허가받아야 했던 외출, 4시 30분 이후로는 먹을 수 없는 밥, 의식주를 포함하여 자신의 모든 권리를 쥐고 흔드는 시설장과의 기울어진 권력 관계. 비리세력을 내쫓는다 한들 시설의 규칙과 시간표에 갇힌 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건 일종의 배신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들은 향유의집 앞 ‘3.1 운동 기념탑’이 세워져 있는 조그마한 공원에 모여 언제 끝날지 모를 탈시설 투쟁을 결의한다. 이와 동시에 서울시의 탈시설정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회복지시설 비리 척결과 탈시설 권리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이 결성되었다.

2009년 6월 4일, 석암비대위 중 8명이 “더 이상 시설에서 살지 않겠다, 노숙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도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가 있다”며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당시 이들은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보장 요구안’으로 자립주택 제공 탈시설 5개년 계획 수립, 활동지원 생활시간 보장 및 대상 제한 폐지를 요구했다. 

한편 서울시는 2008년 서울시정개발원을 통해 관할 시설 38개 장애인거주시설의 입소장애인 3,300여 명을 대상으로 탈시설 욕구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응답 가능한 장애인 중 50%가 퇴소를 희망하고, 주거와 활동지원 등이 이루어진다면 70%가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욕구조사 결과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고, 요구안에 대해 수용하지 않았다. 이에 마로니에공원 노숙투쟁(09.6.4~7.6), 탈시설-자립생활 100인 선언(09.6.17), 시장 공관 점거투쟁(09.6.24), 국가인권위원회 점거투쟁(09.7.6~8.4), 오세훈 서울시장 따라잡기 투쟁 등이 62일간 매일같이 진행되었다. 

장애계의 힘찬 투쟁의 결과로 서울시는 2009년 8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장애인 전환서비스 지원센터 신설 △체험홈 및 자립생활가정 도입 △장애인거주시설 신규 설치 시 30인 이하 적용을 발표했고, 이는 2013년 ‘서울시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 1차 계획(2013~2017)’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서울시 탈시설 정책은 이후 전국으로 확산하였다.  

‘마로니에 8인’이라 불리는 시설 거주 장애인 투쟁의 시작과 성과라는 점에서 이는 한국 사회복지시설의 역사, 장애인운동의 역사에 깊게 새겨져야 한다. 이들은 개인의 탈출을 넘어서서 시설수용정책을 거부하며 탈시설-자립생활권리를 외쳐왔다. ‘왜 장애인은 시설에서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장애인이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로 발전시켜 구체적인 탈시설정책의 기본 토대를 마련했다.  

마로니에 노숙농성 28일 째,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탈시설자립생활권리보장을 위한 면담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있는 모습. ‘마로니에 8인’ 홍성호 씨가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에 관한 민원서’를 손에 들고 있다. 사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마로니에 노숙농성 28일 째,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탈시설자립생활권리보장을 위한 면담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있는 모습. ‘마로니에 8인’ 홍성호 씨가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에 관한 민원서’를 손에 들고 있다. 사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두 번의 임시이사회 해산, 탈시설 추진 위한 정이사회 구성까지 

사회복지시설에서 발생한 비리·횡령·인권침해에 대한 사건 해결은 필연적으로 사회복지법인과의 전면전이 된다. 사회복지법인은 이사회 의사결정 없이 사업, 예산집행, 재산취득 및 처분을 추진할 수 없다. 그동안 비리법인 일가는 이사회 구성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게 구성하고 산하 사회복지시설을 이윤추구 수단으로 활용하여 족벌화, 사유화해왔다. 일명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계기로 사회복지사업법에서는 2011년부터 이사 3분의 1을 외부추천이사로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100% 시행되고 있지 않다. 그만큼 법인 이사회를 어떤 임원으로 구성하는지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투명성은 기본이고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갖고 사회복지사업을 추진할 것인지 최종 권한과 책임을 지는 게 이사회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역시도 과거 이사회 구성을 둘러싸고 지난하고도 치열한 투쟁이 있었다.  

2008년 이사장이었던 이씨가 구속되고 사위 제씨가 이사장직을 맡았으나 비리에 연루되면서 물러난 뒤 서울시와 양천구는 이사를 13명으로 확대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비리로 물러난 제씨의 측근인 윤씨가 이사장으로 선임되었다. 구 비리세력을 비호하던 윤씨를 비롯한 이사들과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이사들은 이사회마다 공방을 치러야 했다. 윤씨는 당시 한빛맹아원 원장이었던 김씨를 법인 사무처장으로 임명했다. 김씨는 2007년 서울시 감사 결과에서 한빛맹아원 건축비 횡령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력이 있었으나, 서울시와 양천구의 묵인하에 2012년까지 사무처장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윤씨는 기존 비리세력이 저지른 사건의 환수금 등에 대한 구상권을 이씨 일가에게 청구해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구 비리 책임자였던 오씨와 이씨를 산하 시설 원장으로 계속 두었다. 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당시 이사회는 전원 사퇴와 시설장 전원도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결의했으나, 문제의 오씨와 이씨는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사진 전원이 총사퇴하자 서울시는 임시 이사회를 파견해야 했다. 2012년 임시이사회가 구성되어 김명실 이사장이 선임되고 학자, 변호사, 시설운영자 등으로 이사회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 임시이사회에 또다시 서울시 추천으로 기존 이사장이었던 윤씨가 이사로 들어와 임시이사회 운영에 난항을 겪었다. 윤씨는 구 비리세력의 측근들과 함께 지속해서 이사회 성립을 방해했고 김명실 이사장 외에 모든 이사가 전원 사임했다. 

이에 김명실 이사장을 비롯하여 새로이 구성된 임시이사회는 비리 연루자인 오씨와 이씨를 해고하고, 법인 사무처장 김씨는 권고사직했다. 이들 중 일부는 파렴치하게도 부당해고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끝내 법인이 승소했다. 임시이사회는 석암재단이 사회복지법인으로 역할을 하기에 부적합하므로 법인 해산 및 산하 시설 시립화를 논의하였으나, 비리세력으로 인한 각종 빚, 소송이 남아있어 당장 법인 해산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하여 정이사회를 구성하여 절차를 밟는 것이 타당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에 2013년 정이사회가 구성되어 박숙경 이사장이 선임되었다. 정이사회는 법인의 빚과 소송 등의 문제를 정비하고 산하 장애인거주시설을 서울시 탈시설 로드맵에 발맞춰 탈시설 및 지역사회 자립지원을 추진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2009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보장을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한 모습. 인권위 외벽에 “오세훈 시장은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생활 보장 약속을 지켜라!”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김유미
2009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보장을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한 모습. 인권위 외벽에 “오세훈 시장은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생활 보장 약속을 지켜라!”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김유미

법인과 시설이 추진하는 탈시설 

프리웰은 법인 차원에서 탈시설 지원을 적극적으로 견인해나갔다. 2013년에 취임한 박숙경 이사장은 법인 산하 시설과 장애인권단체, 공익변호사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탈시설 지원체계를 만들기 위한 정기회의를 진행하는 등 한국사회에서 탈시설 지원의 필요성과 이를 법인과 시설이 추진해가기 위한 방법 등을 함께 고민했다. 

2016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 및 2017년 SH공사를 통해 장애인지원주택 시범사업을 추진하였고, 이는 현재 의사표현이 어려운 발달장애당사자의 탈시설을 지원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또한 법인 차원의 탈시설추진TF를 꾸려 정기적으로 각 시설별 현안과 탈시설추진현황을 지속해서 점검하고 논의해왔다. 향유의집을 폐지하기까지 2018년, 2019년 두 번의 이사회 결의가 있었고, 2021년 1월에 시설폐지를 신청했다. 

향유의집은 설립 이후 2007년까지 구 법인 세력이 돌아가며 시설장을 했고, 미처 청산하지 못한 비리 연루자가 2011년까지 끈질기게 붙어있었다. 비리 연루자들을 모두 청산한 뒤 새로 선임된 원장들은 늦게나마 복지부의 시설운영기준에 맞게 체제 개편을 수행해나갔다. 동시에 탈시설 투쟁의 영향으로 시설 체험홈을 개소하고 지역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연계하여 거주인의 탈시설-자립생활 준비를 시작했다. 

특히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재직한 원장 문병수 씨는 향유의집의 본격적인 탈시설 추진을 위한 체계를 구축했다. 이전까지는 이용자 개별이 탈시설 했다면, 이때부터는 시설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전체 거주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탈시설 추진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우선 자립지원팀을 신설하여 이용자 자립지원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하면서 거주인의 탈시설은 속도가 붙었다. 탈시설로 시설 거주인의 수가 줄어들어 한 방당 거주인 수도 1~2명으로 조정되었다. 

향유의집 비리 고발 당시부터 시설폐지 전까지 거주인/직원 수 변화. 제작 하민지
향유의집 비리 고발 당시부터 시설폐지 전까지 거주인/직원 수 변화. 제작 하민지

2018년에 새로 선임된 정재원 원장은 시설 자체적인 탈시설TF를 통해 거주인의 자립지원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했는데, 2020년에 이르러서는 별도의 추진체계 없이도 시설 전체가 거주인의 탈시설자립지원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시설폐지를 차근차근 준비했다. 이 과정에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매칭되어 거주인이 지역사회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2018년에 취임한 김정하 이사장은 정재원 원장과 함께 시설 거주인과 가족, 직원을 대상으로 새로 도입된 서울시 지원주택 사업 설명회를 개최하여 탈시설을 적극 설득했다. 그 결과 2018년부터 2021년 4월까지 거주인 전체 60명 중 43명이 지원주택으로 입주했다. 

향유의집 탈시설 추진 결과(2018.1~2021.4). 제작 하민지
향유의집 탈시설 추진 결과(2018.1~2021.4). 제작 하민지

향유의집이 장애의 정도나 의사능력에 관계없이 모든 장애인의 지역사회 이주를 추진함과 동시에 시설을 폐지하는 결단은 시설 장애인의 인권을 시설 내에서만 한정 지어 고민한다면 결국 근본적인 해방은 없음을 알려냈다. ‘시설이니까’, ‘단체생활이니까’, ‘중증장애가 있으니까’로 정당화됐던 각종 제한은 결국 차별에 불과하며, 보편적인 인권의 보장은 보편적인 사회환경에서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전면화한 것이다. 이는 지역사회 준비, 당사자의 능력 등 갖가지 이유로 탈시설을 반대하는 세력이 더 이상 외면하거나 폄훼할 수 없는 사례가 되었다.  

2019년 12월 2일 향유의집에서 32명이 지원주택으로 출발하기 전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이 활짝 웃고 있으며, 두 손을 번쩍 든 사람도 있다. “함께 살아요, 우리!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주택으로 이사합니다”라고 적힌 긴 현수막 두 개가 위아래로 펼쳐져 있다. 사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2019년 12월 2일 향유의집에서 32명이 지원주택으로 출발하기 전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이 활짝 웃고 있으며, 두 손을 번쩍 든 사람도 있다. “함께 살아요, 우리!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주택으로 이사합니다”라고 적힌 긴 현수막 두 개가 위아래로 펼쳐져 있다. 사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향유의집은 탈시설운동의 역사에 무엇을 남겼나

2021년 4월 30일로 향유의집은 36년 만에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비록 한국사회에서 장애인거주시설의 자체적인 탈시설 추진과 시설폐지는 1%도 채 되지 않는 시도이지만, 반대로 ‘왜 나머지 99%는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해외에서 탈시설 추진이 가능했던 이유는 공공시설이었고 한국은 90% 이상이 민간시설이기 때문에 탈시설 추진이 어렵다며 피해왔다. 그러나 프리웰은 민간법인의 시설폐지를 전제로 한 탈시설 추진이 가능하다는 모델을 제시했다. 물론 탈시설정책에 대한 이해가 높은 공공이사로 구성된 법인이라는 요인이 컸지만 탈시설 추진을 그저 민간법인의 의지에만 맡긴다면 프리웰과 같은 사례는 최초이자 마지막일지 모른다. 
 
따라서 이를 예외적 사례로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한다. 민간에게 미뤄두었던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바로 잡을 기회가 눈앞에 있다. 정부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탈시설지원법(장애인 탈시설 등에 관한 법률안)과 주거서비스지원법(주거약자 주거유지 지원서비스에 관한 법률안) 제정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이후 탈시설로드맵을 포함한 정책을 책임 있게 수행해가야 한다. 정부의 선택은 어차피 한가지다. 지금이든, 나중에 마지 못해서든 탈시설은 필연의 과제다. 이미 시작된 대전환 투쟁은 결국 마지막 한 사람이 지역사회로 나올 때까지 끝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 필자 소개 _ 조아라. 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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