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못 하니 학교·일터도 못 가는 장애인… 지역사회 살 수 없어 ‘시설행’
장애인들, 혜화역에서 선전전 진행… 장애인 권리 보장 법안 연내 제정 촉구

13일 오전 9시, 전장연은 혜화역 승강장에서 3천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서울교통공사를 규탄하며, 장애인권 관련 법 개정안의 연내 통과를 촉구했다. 사진 이가연
13일 오전 9시, 전장연은 혜화역 승강장에서 3천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서울교통공사를 규탄하며, 장애인권 관련 법 개정안의 연내 통과를 촉구했다. 사진 이가연

“저는 대한민국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습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학교도 못 다니고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마다 (교통수단이 제대로 조성되어 있지 않아) 승객들의 눈치를 많이 받았습니다. 저의 교육권, 이동권, 그리고 시설에 처박혔던 이 세월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습니다.” _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이동을 할 수 없으면 아무 데도 갈 수가 없다. 교육도 받을 수 없고, 사람도 만날 수 없다. 그러한 시간이 한평생에 걸쳐 일어난다면 어떠할까. 장애인에겐 그러한 삶이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집에 처박혀 살거나, 지역사회와 멀리 떨어진 시설에 갇혀 살아야 했다. 20년 전 일어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더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장애인들의 절규였다. 장애인들이 치열하게 버스와 지하철을 멈춰 세웠을 때, 정부와 지자체는 못 이기는 척 매번 ‘이동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번번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장애인들은 올해 초부터 또다시 투쟁을 시작했다. 그 결과는 지난달 23일, 3천만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으로 돌아왔다. 서울교통공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총 7차례에 걸쳐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열차 내 전동휠체어를 타고 승하차를 반복해 시위하는 등의 열차운행 방해를 했다’며 이들에게 3천만 1백 원과 지연손해금(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채무에 붙는 이자)을 청구했다. 

그러나 한평생 갇혀 살았던 삶에 대한 해방이 고작 3천만 원에 꺾일 수는 없다. 꺾이기는커녕, 이들은 이제 지하철과 버스를 가로막으며 ‘단지 이동권뿐만 아니라’ 교육권, 노동권, 나아가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까지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형숙 부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이형숙 부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13일 오전 9시, 전장연 등은 혜화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천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서울교통공사를 규탄하고, 서울교통공사 사장과의 면담과 소송 취하를 요구했다. 또한, 국회에 계류된 장애인권 관련 법안의 연내 제정을 촉구했다. 

- 이동 못 하니 학교·일터도 못 가는 장애인… 지역사회 살 수 없어 ‘시설행’

“교육을 받고, 지역사회에서 일하며, 일상생활을 영위하려면 이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장애인은 버스나 지하철을 지난 20년간 제대로 타지 못했습니다. 지하철을 타려니 엘리베이터가 없고, 버스를 타려니 계단 때문에 못 탑니다. 이동할 수 없으니 교육을 못 받고, 교육을 못 받으니 일을 못 하게 됩니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살 수 없어서 시설에 가게 됩니다. 장애인이 가고 싶은 곳은 시설이 아닙니다. 장애인을 시설이나 가족이 돌보는 것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형숙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회장) 

현재 전장연은 장애인이 교육받으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인평생교육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장애인권리보장법과 탈시설지원법은 지난 11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를 시작했지만, 심사는 연기됐다. 정부가 두 법안에 탈시설에 관한 내용이 많이 실려 법안 통과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이미 총 3개의 법안(더불어민주당 김민석·최혜영 국회의원, 정의당 장혜영 국회의원)으로 발의되어 있다. 최혜영·장혜영 의원 안의 경우, 장애를 사회적 개념으로 규정하고 장애인 등록제 폐지, 탈시설 지원을 위한 서비스 지원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10년 내 장애인 거주시설을 폐쇄하고 정부의 재원 마련 방안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안을 받아 발의한 김민석 의원 안의 경우, 장애를 여전히 의학적 관점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탈시설’이란 단어가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탈시설을 권리로 보지 않고, 욕구조사에 기반하여 자립을 원하는 사람만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욱이 재원을 확보할 근거 조항조차 부재하다. 이에 장애계는 장애인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수 있는 최혜영·장혜영 의원 안의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은 작년 12월 10일,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외 68명의 의원이 공동발의했지만,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법안은 장애인이 독립된 주체로서 탈시설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궁극적으로는 10년 이내에 모든 장애인 거주시설을 폐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모든 장애인에게 평생교육을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장애인평생교육법도 지난 4월 20일,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발의 했으나 여전히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뒤로 지하철이 보인다. 사진 이가연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평생교육법안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법안이다. 당시 유기홍 교육위원회 위원장의 법안 발의로 여야의 다수 의원이 찬성해서 올라간 법안이지만, 왜 이 법을 통과시키지 않는 것인가”라고 물으며 “국회의원들은 늘 장애인을 위한다고 말만 할 뿐 법안을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 교육위원회 두 간사를 만날 일정을 잡아줄 것을 다시 한번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전장연은 이날도 기자회견에 앞서 오전 8시부터 혜화역 승강장에서 출근길 선전전을 진행했으며, 장애인 권리 법안이 제정될 때까지 계속해서 선전전을 하겠다고 밝혔다.

경찰들이 지하철 앞에서 선전전을 하는 이규식 상임공동대표를 둘러싸 막고 있다. 사진 제공 전장연
경찰들이 지하철 앞에서 선전전을 하는 이규식 상임공동대표를 둘러싸 막고 있다. 사진 제공 전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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