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에서 퇴출당한 이들의 유일한 선택지, 노점
코로나19 이후 소득 대폭 감소
단속 걸릴까 봐 재난지원금 신청도 포기
단속 위주 정책 바뀌어야… 노점 문화 연구도 제안돼

한 상인이 길거리 음식을 팔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한 상인이 길거리 음식을 팔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여러 편견과 낙인에 시달리는 노점상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빈곤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사회단체의 조사 결과, 노점상의 월평균 운영소득은 131만 2천 원이었다. 100만 원 이하는 54.9%로 절반 이상이었다. 응답자의 35.8%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단속으로 인해 영업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13일 오후 2시, 서울시 중구 명동성당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시기 노점상의 소득감소와 삶, 그리고 대안’ 토론회에서 발표됐다. 빈곤사회연대, 한국도시연구소, 민주노점상전국연합(아래 민주노련) 주관으로 열린 이번 토론회에서는 조사 결과 발표와 함께, 단속 위주의 정책이 개선돼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토론회 현장. 사회자와 발표자, 토론자 등 총 8명이 앉아 있다. 분홍색 현수막에 빨간 글씨로 ‘코로나19 시기 노점상의 소득감소와 삶, 그리고 대안’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토론회 현장. 사회자와 발표자, 토론자 등 총 8명이 앉아 있다. 분홍색 현수막에 빨간 글씨로 ‘코로나19 시기 노점상의 소득감소와 삶, 그리고 대안’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점상

한국도시연구소는 지난해 9월부터 10월까지, 민주노련과 전국노점상총연합(아래 전노련)에 가입한 노점 중 수도권, 대전, 울산 지역의 상설 노점을 설문 조사했다. 설문에는 총 106명이 응답했다. 이 중 일부는 빈곤사회연대, 민주노련, 전노련 활동가 3명이 노점에 방문해 심층 면접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성별은 여성이 50.9%, 남성이 49.1%다. 평균 연령은 61.5세이며 60대(37.7%), 50대(30.2%), 70대 이상(20.8%) 순으로 비율이 높아 노점상의 고령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품목은 먹거리가 71.7%로 제일 많았고 공산품이 20.8%, 기타 7.5% 순이었다.

미허가 노점이 80.2%로, 허가 노점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서울시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시 노점 수는 계속 감소 중이다. 2020년 기준 허가 노점 비율은 29.3%다. 노점 운영 기간은 ‘20년 이상’이 45.3%로 가장 많았다. ‘10년 이상~20년 미만’이 31.1%로 뒤를 이었다.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노점 허가제가 2000년대 말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도입되면서 노점 신규 진입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노점을 하게 된 주된 이유로는 ‘사업실패 또는 실업’이 62.3%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는 ‘장애나 채무 등 개인 사정으로 일반 취업이 어렵다’가 20.8%로 뒤를 이었다. 한국도시연구소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노점상 ㄱ 씨는 ‘여성분들은 남편이 혼자 벌어서는 안 되거나 남편 사업이 망해서(노점상이 된 사람이 많다). 남편이 망함과 동시에 모든 걸 놔버리는 분들이 계신다. 그래서 (여성이) 가정주부였다가 (노점 운영하러 거리에) 나오는 사례가 있다’고 증언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기존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하는 등 일자리와 사회 양쪽으로부터 지원받지 못한 사람이 자본과 경력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가 노점 운영이다. 이런 점 때문에 노점은 여성 친화적 일자리가 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 사회에 여성이 진입할 만한 일자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층 면접조사에 참여한 여성 6명은 가족 내 주소득자의 실업이나 폐업, 부재로 노점상이 됐다”고 말했다.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몸, 돌봐야 할 가족의 존재도 노점상 진입의 주요한 원인이 됐다. 김윤영 활동가에 따르면 경기도에서 닭튀김을 파는 노점상 ㄴ 씨는 ‘(시부모님까지) 다섯 식구 살았는데 우리 아저씨(남편)가 간에 물주머니가 있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프다. 생계를 못 꾸리게 되니까 내가 그때부터 리어카로 과일부터 팔았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이는 사회가 아동, 환자, 노인의 돌봄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2020년 한 해 동안 노점상의 월평균 운영소득은 131만 2000원이었다. 100만 원 이하는 54.9%로 절반 이상이었다. 평균 채무 금액은 약 7400만 원이었다. 채무가 발생한 이유로는 보증금 등 주거 마련이 35.1%로 가장 높았고 노점 운영비 마련이 15.8%로 뒤를 이었다. 노점상 중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한 수급가구 비율은 9.4%였다. 받고 있는 급여의 종류는 주거급여가 가장 많았다. 김준희 연구원은 “노점상의 소득수준은 낮지만 공공부조를 이용하기에는 소득수준이 높아, 복지 사각지대에 위치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빈곤에 처한 노점상은 생계급여, 기초연금 등 소득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응답했다(62.3%). 공공임대주택 등 주거지원이 36.8%, 정부 지원 저리 대출이 34.0%, 의료급여 등 의료 관련 지원이 28.3%로 뒤를 이었다.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단속 걸릴까 봐 코로나19 지원금도 포기

코로나19 시기, 노점상은 더 가혹한 빈곤에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영업일수가 줄었다는 응답이 84.7%, 영업시간이 줄었다는 응답은 77.6%였다. 35.8%는 단속 때문에 장사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노점 운영소득이 줄었다고 응답한 사람은 96.1%로, 대부분이 소득감소를 경험했다.

운영소득이 줄어든 노점상 중 34%는 대출에 손을 뻗었다. 절약하거나 별다른 방법 없이 견디고 있다는 사람은 30%였다. 빈곤을 버티기 위해 제일 먼저 식비를 줄였다(45.5%). 그래도 모자라 월세, 관리비, 공과금 등 주거 비용을 못 내고 있다(30.3%).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다(23.2%). 김준희 연구원은 “노점상 대부분이 공적지원이 아닌 개인적 노력으로 소득감소에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윤영 활동가는 “노점상이 이용하는 대출은 카드론 등 고리 대출이나 지인을 통한 부채가 많았다. 자꾸 불안정한 대출로 내몰리는데 주거 및 의료지원 등 사회보장제도는 너무 멀다”고 지적했다.

소득감소로 인해 노점 운영 외에 다른 일을 병행하는 사람은 13.2%였다. 마차 보관료, 식자재 등 노점 운영비용을 벌고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쿠팡 물류센터 분류작업, 마켓컬리 새벽배송,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 식당 일자리 등 불안정한 일자리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이 많았다. 한국도시연구원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노점상 ㄷ 씨는 ‘50대 정도까지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계제는 되는데 60대 중반 정도 되는 분들은 본인 몸을 가지고 뭘 할 수 있는 데가 없다. 무릎이 안 좋아서…’라고 증언했다.

정부는 지난 4월, 재난지원금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며 ‘노점상 소득안정지원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9일을 기준으로 신청자는 861명으로, 정부가 추산한 전국 노점상 4만 7865곳의 1.8%에 불과했다. 각 지자체에서도 노점상 재난지원금을 마련했지만 사업자등록, 영업신고, 상인회 가입 등 필수조건이 있었다. 이 때문에 신청률이 심각하게 저조하자 결국 정부는 지난 9월, 사업자등록 요건을 폐지했다.

걸림돌이 없어도 노점상은 소득안정지원금을 신청하기 어렵다. 지자체 단속에 걸려 과태료를 부과하게 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노점상 중 개인정보를 제공하기 싫어서 소득안정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38.2%로 가장 높았다. 김윤영 활동가는 “그간 지자체는 노점상을 쫓아내는 주체였다. 그런데 지자체에 가서 지원금을 신청하라고 하니 노점상은 아예 포기하는 길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자체에서 ‘미허가 노점이라 신청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신청을 포기한 사람은 23.7%였다. 한국도시연구원에 따르면 노점상 ㄷ 씨는 ‘동사무소에 신청하러 갔는데, 어차피 불법 노점이라 안 될 건데 왜 신청하냐며 거부당했다. 어떤 사람은 상인회에 잘 보여서 지급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준희 연구원은 “같은 자격을 갖춰도 소득안정지원금 지급 여부가 지자체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비판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노점상 쫓아내는 ‘도시우생학’… 노점상 문화에 대한 연구도 진행돼야

노점은 보통 ‘거리미화’, ‘도시정비’ 등의 명목으로 강제철거된다. 지자체 정비 사업에서 노점은 거리 환경을 저해하는 요소다. 깔끔한 거리 이면엔 박탈된 노점상의 생존권이 있다. 2010년에 발표된 ‘노점상 관련 보도에서 나타난 언론의 공간인식 분석’에서는 이를 ‘공간의 우생학’이라 부른다. 우월한 유전자만 남긴다는 우생학처럼, 도시에는 소비하는 시민만 남고 ‘열등’하다 여겨지는 노점상은 사라진다. 이렇게 정비된 거리는 ‘정상적인 것’이라 여겨진다. 김윤영 활동가는 “도시공간 변화를 위한 노점상 퇴출 전략은 단지 노점상 자리를 빼앗은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시민의 노점상 편견을 더욱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김윤영 활동가는 노점상 생존권을 위한 과제를 제안했다. 우선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을 통일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유엔 극빈과 인권에 관한 특별 보고관은 코로나19 이후 경제회복에서 권리에 기반한 사회보장 접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비공식 노동자’가 사회보장으로부터 배제돼 있기 때문에 이들의 다양한 현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며 “노점상 재난지원금 지급 시, 여러 노점상이 직면한 현실을 폭넓게 인정하기 위한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 임의 요건을 통해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점상 퇴출과 감축을 방어하는 인권영향평가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서울시의 경우 인권기본조례를 두고 필요할 때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한다. 김윤영 활동가는 “현대화 사업이나 도시개발에 따라 노점상 규모가 줄어들거나 당사자 의견과 상관없이 퇴출당하지 않는지 감시하고, 노점상 수를 감축하려는 시도를 방어할 수 있도록 관련 정책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노점상 수 감축만을 위한 행정 수단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노점상에 대한 심각한 사회적 편견을 생산한다”며 “용역 폭력을 사용한 강제철거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지자체가 접수받은 민원이 노점 단속으로 바로 이어지는 충격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활동가는 “노점상이 가난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점상이 도시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와 문화적 기능도 연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활동가는 “노점은 이미 문화적 힘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에는 노점이 등장한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는 불법이라 불리는 우동 노점에서 경찰과 검사가 술을 마신다. 외국인 관광객도 명동에 와서 다국적 브랜드 매장에 가는 게 아니라 노점에서 파는 다양한 물건과 음식을 구경하고 소비한다”고 말했다.

박 활동가는 “사람들이 왜 노점에서 소비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노점상이 가난해서 도우려고 떡볶이를 사 먹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노점의 먹거리를 좋아한다. 이를 연구해 노점을 하나의 문화로, 중층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노점상 생계보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진행 중이다. 청원인은 “노점상을 우리 사회경제의 주체로 인정하고 거리질서 유지라는 공익적 요소와 생존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병존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청원 배경을 밝혔다.

▷ 노점상 생계보호 특별법 제정에 관한 국회 국민동의청원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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