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부동산 투기꾼의 오래된 욕망, 쪽방촌 민간개발 ①
부자들이 쪽방 건물을 매입하는 이유

[편집자 주] 2022년 신년을 맞아, 비마이너는 올 한 해 주목해야 할 이슈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 번째는 문재인 정부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 파기입니다. 이가연 기자가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정말 불가능한지 짚어봅니다. 두 번째는 지난해 8월 발표된 정부의 탈시설로드맵입니다. 허현덕 기자가 탈시설로드맵이 가리키고 있는 시설 소규모화의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세 번째는 동자동 쪽방촌에 도착한 부동산 투기 광풍입니다. 동자동 쪽방 공공개발을 둘러싼 소유주들의 반란을 하민지 기자가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 순 서 》 
①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정말 안 되는 걸까?
② 탈시설로드맵이 꺼낸 위험한 시설 소규모화
③ 부동산 투기꾼의 오래된 욕망, 쪽방촌 민간개발

백광헌 부위원장이 거대한 아파트 앞에 서 있다. 사진 하민지
백광헌 부위원장이 거대한 아파트 앞에 서 있다. 사진 하민지

“이진혁이가 여기 살아요. 기자님, 고개 한 번 뒤로 젖혀 보세요. 꼭대기가 보입니까? 우리는 죽었다 깨나도 이런 아파트에 못 들어갑니다. 이렇게 좋은 데 살면서 왜 그렇게 공공개발을 반대하는지.”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 모임’의 부위원장이자 쪽방주민인 백광헌 씨가 말했다. 이진혁(가명) 씨는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지구에 건물을 가진 소유주다. 지난해 2월 5일, 정부가 발표한 공공개발 정책에 반대하며 민간개발을 강력하게 추진 중이다. 이 씨의 공인중개사무실도 이 아파트 근처에 있다. 그의 사무실과 아파트, 쪽방촌은 비장애인 걸음 기준으로 10분이면 돈다.

토끼굴이라 불리는 쪽방 건물. 자원봉사자가 페인트칠을 해 놨다. 사진 하민지
토끼굴이라 불리는 쪽방 건물. 자원봉사자가 페인트칠을 해 놨다. 사진 하민지

백광헌 부위원장은 쪽방촌을 한 바퀴 돌면서 ‘토끼굴’이란 곳을 보여줬다. “여기 살다가 다른 방으로 이사 갔어요.” 자원봉사자가 알록달록 칠해놨지만 안이고 겉이고 허물어져 있었다. 반사적으로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백 부위원장은 “내가 살았잖아요”라고 했다. 토끼굴 건물주가 의사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쪽방주민은 건물주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말했다.

“민간개발은 절대 안 돼요.” 백광헌 부위원장은 쪽방촌 골목을 걷는 내내 말했다. 토끼굴을 지나, 고개를 뒤로 젖혀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아파트 앞. 거대한 아파트를 마주 보고 있는 쪽방촌 작은 건물들 곳곳에 ‘공공개발 반대’를 의미하는 빨간 깃발 수십 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아파트 앞 쪽방촌 건물에 ‘공공개발 반대’를 의미하는 빨간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아파트 앞 쪽방촌 건물에 ‘공공개발 반대’를 의미하는 빨간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오래된 욕망 (1): 건물주의 현금인출기, 쪽방

쪽방의 열악한 환경과 건물주의 방치는 익히 알려져 있다. 2019년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자동 쪽방촌 건물 70개 중 취사장이 있는 건물은 22개, 샤워실이 있는 건물은 33개, 건물당 평균 17명이 거주하지만 화장실은 2.6개, 그중 3분의 1은 재래식이다.

냉난방이 안 되는 건 물론, 수도나 전기가 고장 나도 주민이 스스로 고쳐야 한다. 건물주가 수리하는 경우 수리비를 주민에게 청구하기도 한다. 정부의 공공개발 발표 이후 이런 행태는 더 심해졌다. 어차피 헐릴 건물인데 왜 고쳐줘야 하냐는 거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쪽방주민들이 ‘건물주들 다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이라 그래요”라고 말했다.

건물주가 월세만 받고 건물을 방치할 수 있는 이유는 쪽방이 대부분 무허가 숙박업으로 운영돼 공중위생관리법,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물주는 보증금도 받지 않고 계약서도 쓰지 않는다. 보증금을 받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쪽방으로 흘러들어 온다. 2020년 한국도시연구소 조사결과에 따르면 쪽방주민 70.1%가 기초생활수급자다.

계약서를 쓰지 않아 강제퇴거가 쉽다. 이진혁 씨는 민간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소유주 중에는 연로한 어르신도 계세요. 쪽방민들이 방에 토하고 똥오줌 싸고 그러면 어르신이 그 뒤치다꺼리를 다 해요. 민간에서 빨리 개발해야 어르신도 좀 편하게 살 것 아니겠어요.”

이진혁 씨의 말을 박승민 활동가에게 전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쪽방주민이 실수했다고 바로 쫓아내기 때문에 어르신이 치운 거예요. 아니면 그 방에 사는 주민이 치웠죠. 쪽방이 아닌 전·월세 주택에서, 자기 방에 가끔 실수한다고 쫓아내는 건물주가 누가 있을까요.”

쫓겨난 자리에는 바로 사람이 채워진다. 쪽방 아니면 거리 노숙밖에 선택지가 없으니 쪽방을 택할 수밖에 없다. 한국 복지제도가 주소지를 중심으로 돌아가서 월 50여만 원의 생계급여와 약 30만 원의 주거급여를 받으려면 쪽방에라도 살아야 한다. 쪽방 평균 월세 23만 3천 원(2020, 한국도시연구소). 주거급여는 고스란히 쪽방 월세로 나간다.

백광헌 부위원장은 “건물주는 손해 볼 게 없어요. 다달이 현금으로 월세 받지, 아무 관리 안 해도 쪽방에 살려는 사람은 줄을 서 있지. 누가 쫓겨나거나 죽어서 나가면 바로 다음 날 사람이 들어와요”라고 말했다.

동자동 재개발 구역에 있는 한 건물. 빨간색 배경의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신도시 투기세력 LH 서울역 동자동 공공개발 자격 없다 서울역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 대표 이진혁 외 주민 일동’이라 적혀 있다. 민간개발을 추진하는 소유주 측은 재개발을 민간에서 진행하되, 동자동 쪽방주민에게 공급할 공공주택 건설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알아서 하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 하민지
동자동 재개발 구역에 있는 한 건물. 빨간색 배경의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신도시 투기세력 LH 서울역 동자동 공공개발 자격 없다 서울역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 대표 이진혁 외 주민 일동’이라 적혀 있다. 민간개발을 추진하는 소유주 측은 재개발을 민간에서 진행하되, 동자동 쪽방주민에게 공급할 공공주택 건설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알아서 하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 하민지
민간개발을 추진하는 소유주 측은 지난해 8월,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삭발식을 진행했다. 현수막에는 ‘서울역 동자동 지구지정 계획 즉각 철회’라 적혀 있다. 삭발한 사람들 가슴에는 ‘강제수용 전면 철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들은 삭발 후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서울역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

쪽방은 돈이 된다. 2022년, 서울역 근처 도심 한복판에 냉난방이 안 되고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건물을 그대로 방치해도 돈이 된다. 매달 수천만 원의 현금을 만지는 소유주들 대부분은 공공개발 지구에 살지 않는다.

지난해 2월, 오마이뉴스가 동자동 쪽방촌 일대의 최근 3년간 부동산 거래 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해당 기간 동자동 주민이 아닌 외지인 매입은 85%였다. 외지인 거주지는 다양했는데 서울 강남에 사는 사람의 비율이 높았다. 이들은 청담 아이파크, 잠실 리센츠, 반포 리체 등 매매가 20~30억 원인 고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부산, 강원, 인천의 원정 매매도 확인됐다.

이런 소유주들은 자신들을 ‘동자동 주민’이라 부르며 공공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공공개발을 발표하자마자 건물을 덮는 커다란 현수막을 내걸며 즉각 반발했다. 지난해 8월에는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주민’ 이름으로 공공개발을 규탄하며 집회를 열고 삭발식을 진행했다.

집회 당일 이진혁 씨는 ‘투쟁사’를 낭독하며 “현재 동자동은 개발규제와 쪽방민 지원 확대 정책에 의해 슬럼화돼 주거환경과 치안이 극도로 열악해졌다. 주민대책위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 죽음을 각오하는 마음으로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소유주는 삭발식이 진행되는 동안 “동자동은 우리 땅이다!”라며 울부짖기도 했다.

온라인 카페 게시글과 댓글을 재구성한 이미지. ‘부자스쿨(가명) 3기 동자동 쪽방촌 임장(매수하려는 부동산에 가서 주변 환경과 입지, 편의시설 등을 직접 확인하는 과정) 과제 올립니다^^ 초역세권, 서울역 입지가 너무 좋아 보이는데 쪽방촌 현실은 참 열악하네요~! 영화 기생충도 생각이 나고 ㅠㅠ 쪽방촌을 둘러 보면서 내 집 마련, 노후 준비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ㅎㅎ’ ‘고수님들~ 질문 드립니다. 동자동 재개발 될 거란 말 많이 도는데, 빌라 하나 매수해서 묻어두는 건 어떨까요?’ ‘강남 다음이 용산이에요. 서울역이 모든 교통의 중심지라 가격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저도 노후용으로 하나 사 놨습니다.’ ‘거기 쪽방촌 허물기 어려울 겁니다. 신중하게 접근하세요.’ 제작 하민지
온라인 카페 게시글과 댓글을 재구성한 이미지. ‘부자스쿨(가명) 3기 동자동 쪽방촌 임장(매수하려는 부동산에 가서 주변 환경과 입지, 편의시설 등을 직접 확인하는 과정) 과제 올립니다^^ 초역세권, 서울역 입지가 너무 좋아 보이는데 쪽방촌 현실은 참 열악하네요~! 영화 기생충도 생각이 나고 ㅠㅠ 쪽방촌을 둘러 보면서 내 집 마련, 노후 준비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ㅎㅎ’ ‘고수님들~ 질문 드립니다. 동자동 재개발 될 거란 말 많이 도는데, 빌라 하나 매수해서 묻어두는 건 어떨까요?’ ‘강남 다음이 용산이에요. 서울역이 모든 교통의 중심지라 가격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저도 노후용으로 하나 사 놨습니다.’ ‘거기 쪽방촌 허물기 어려울 겁니다. 신중하게 접근하세요.’ 제작 하민지
유튜브 채널 영상과 댓글을 재구성한 이미지. ‘부동산 투자, 현장에 답이 있다! 오늘은 동자동 쪽방촌 현장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아, 처참하네요. 쪽방민들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타는 생활 잘할 수 있을지... 그분들은 공기 좋은 데로 이주를 시키고 이곳은 진짜 일을 열심히 하는 젊은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게 개발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이디 즐거운인생의 댓글. 동자동 쪽방촌은 위치로 치면 특특특 A급인데요, 이런 곳에 쪽방촌민들 굳이 사셔야 하나요? 그분들 대부분 수급자에, 돈 있으면 쪽방 살고 없으면 서울역 가서 사시는 분들인데 소셜믹스(사회적 혼합. 아파트 단지 내에 일반 분양 아파트와 공공임대 아파트를 함께 조성하는 것) 당연히 안 될 거구요. 사대문 안에 직장이 있는 워킹 클래스(직장인 계급)가 거주할 수 있게 제대로 개발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제작 하민지

- 오래된 욕망 (2): ‘매력적인’ 투기처가 된 쪽방촌

쪽방촌엔 늘 재개발 이슈가 있다. 개발될 거라는 소문이 언제나 끊이질 않는다. 위치가 대부분 역세권이기 때문이다. 서울역의 경우 기차와 지하철이 있고 인근에 남대문 시장이 있어서 새벽 인력시장이 형성됐다. 사람이 몰려드니 여관, 여인숙, 공장 등이 생겼고 이 건물들이 지금의 쪽방이 됐다. 워낙 도심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국 최대 규모의 쪽방촌이 됐다.

재개발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동자동 쪽방촌은 오랜 시간 ‘매력적인’ 투자처로 꼽혀 왔다. 늘 ‘황금 노른자 땅’, ‘금싸라기 땅’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만큼 민간개발의 기회도 여럿 있었다. 2015년 5월 28일, 동자동 쪽방촌이 민간개발 지역(후암 특별계획구역 1)으로 지정됐다. 그러면서 층고가 최고 18층, 평균 12층으로 상향됐다. 5년 이내에 개발이 진행되지 않으면 기존 지구단위 계획(최고 층고 5층)으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소유주들은 2020년 5월 27일까지 사업을 진행하지 않아 결국 민간개발이 무산됐다.

왜 5년의 기회를 날려 버린 걸까.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소유주 측은 ‘용산구청이 후암동 특별계획구역 연장을 위한 재정비 용역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국토부가 소유주 동의도 없이 공공개발 계획을 기습 발표했다’고 주장 중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소유주와 협의해 민간개발 계획을 잘 진행하고 있었는데 정부가 독단적으로 공공개발 계획을 세웠단 뜻이다.

익명을 요청한 소유주 ㄱ 씨는 다른 얘길 한다. “그때 민간개발 엎어진 건 사실 수익성이 안 나서 그렇게 된 거예요. 경관 때문에 고도 제한도 있고 쪽방 사람도 있다 보니까…” 이 지역은 남산 조망 때문에 최고 층고가 18층까지로 제한돼 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최소 20층은 넘어가야 수익성이 나올 거라 본다.

또한 민간개발을 추진한 소유주들은 수익성을 고려하느라 쪽방주민 이주대책을 아예 세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승민 활동가는 “당시 민간개발 계획을 수립할 때 지금처럼 쪽방주민과 함께하겠다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용산구청의 재정비 용역을 거듭 언급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시가 역세권 활성화 사업을 발표한 만큼 용산구청이 주거지를 상업지구로 용도변경해 주고 용적률도 상향해 줄 거라 기대한 것 같아요. 그러면 수익성 나는 민간개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지난 5년간 여러 제한이 풀리길 기다려 왔을 것 같습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투기세력은 재개발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고 이들은 더 큰 수익성을 겨냥하다 민간개발 기회를 놓쳤다. 정부의 공공개발 발표 이후엔 ‘정부는 민간에 제대로 기회를 준 적도 없다’고 반발했다. 지난달 23일에는 민간개발 정비계획안을 국토부에 제출했다고 전해진다.

▶ (이어서) ②쪽방주민 몰아내고 짓는 아파트, 어떻게 돈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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