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전 8시, 혜화역 승강장 선전전 35일째
기재부, 전장연에 보낸 답변서에 ‘관련 부처와 협의하라’
장애계 “기재부가 책임 방기하면 장애권리 보장 안 된다”
오이도역 참사 21주기… ‘지하철 여행’ 투쟁하며 기재부 규탄
오는 22일은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한 지 21주기가 되는 날이다. 오이도역 참사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촉발된 사망 사고였다. 참사 이후, 장애인은 거리로 나와 21년간 지하철과 버스를 수도 없이 점거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죽고 싶지 않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끈질긴 투쟁 끝에 지난달 27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이 통과됐다. 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이 의무화됐고 국가 또는 도(道)가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 (광역)이동지원센터의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상이한 운영 기준이 통일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겼다.
그러나 장애인 이동권은 기획재정부에서 막혀 버렸다. 기재부가 예산 반영을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특별교통수단 운영에 국비를 투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탈시설·자립생활 권리 예산, 평생교육 권리 예산 등도 기재부는 ‘관련 부처랑 먼저 논의하라’며 예산 편성 책임을 방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들은 21일, 오이도역 참사 21주기를 맞아 오전 7시경부터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했다. 오후 2시부터는 장애인 활동가 200여 명이 4호선을 타고 오이도역까지 가는 ‘지하철 여행’ 투쟁을 전개하며 기재부에 장애인 권리 예산 편성을 촉구했다.
- “우리가 장애권리 예산 쟁취한다, 기재부는 똑똑히 봐라”
장애계는 21일 오전 7시, 4호선 성신여대역에서 지하철을 점거했다. 당고개역 방향 상선 열차가 1시간가량 지연됐다. 활동가들은 8시경 혜화역으로 와서 매일 진행 중인 출근길 선전전을 펼쳤다. 기재부를 규탄하며 진행하는 혜화역 출근길 선전전은 21일로 35일째다.
오후 2시부터는 혜화역에 활동가 200여 명이 모여 ‘지하철 여행’ 투쟁을 진행했다. 1시 50분부터 활동가, 취재진, 경찰, 서울교통공사 직원 등이 오이도역 방향 승강장에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활동가들은 약 30분간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것으로 지하철 여행 투쟁을 시작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정부도, 서울시도, 어떤 지자체도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국토교통부는 올해까지 저상버스 도입률 47%를 달성했어야 했지만 아직 27.8%에 머물러 있다. 특별교통수단 국비 지원은 기재부 때문에 ‘해야 한다’에서 ‘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며 “이제 약속을 지켜라. 더는 기다릴 수 없다. 헌법에 명시된 장애인의 권리는 기재부 때문에 휴지 조각이 됐다. 그래서 오늘도 지하철을 탄다”고 성토했다.
박경석 이사장의 말대로, 장애인 권리 보장은 기재부 문턱을 넘지 못하는 중이다. 기재부는 장애계가 매일 오전 혜화역에서 기재부를 규탄하는 출근길 선전전을 벌이자 지난 18일, 장애계 요구에 대한 답변서를 보내왔다. 기재부는 구체적 답변을 회피하며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자립생활 권리 등 예산 편성을 위해 관련 부처와 먼저 협의하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장연은 21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예산 반영에 대한 기재부의 책임 없이는 장애인의 기초적 권리조차도 예산 한도 범위 내에서 잘려 나갈 수밖에 없다”고 규탄했다.
정다운 전장연 정책실장은 “2014년부터 기재부를 규탄하는 투쟁을 8년 넘게 하고 있다. 그런데 기재부는 8년간 ‘관련 부처와 먼저 협의하라’는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 하지만 현실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인 국회의원조차도 기재부 눈치를 보고 있다.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 기재부 압박 때문에 ‘해야 한다’가 ‘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올해는 기재부 집중 투쟁을 진행한다. 아무 권력 없는 우리가 장애인 권리를 반드시 쟁취하겠다. 기재부는 똑똑히 봐라”라고 말했다.
- 열차 세 칸 점거하고 영화 상영, 예산 투쟁 교육, 노래 대회 열어
장애계는 짧은 기자회견을 끝낸 후 오후 2시 30분경, 오이도역행 지하철을 탔다. 1호차부터 3호차까지 열차 세 칸을 점거했다.
1호차에서는 박종필 감독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 다큐멘터리 <버스를 타자!>(2002)가 상영됐다. 1-1칸 벽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빔프로젝터로 영화를 틀었다. 1호차에 탄 활동가들은 조용히 영화에 집중했다. 젊은 서울교통공사 직원도 함께 영화를 봤다. 영화 속 풍경은 20년이 지난 지금과 똑같았다. “장애인 이동권 쟁취하여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구호마저 현재와 비슷했다. 지금은 쉰이 되고 예순이 된 활동가들의 20년 전 젊은 모습이 스크린 속에 있었다.
기재부 예산 투쟁 공부교실이 열린 2호차는 1호차보다 소란했다. 3호차에서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리자 몇 활동가들은 3호차로 넘어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내 기재부 투쟁 공부에 집중했다. 정다운 정책실장이 교육을 끝낸 후 시험을 보겠다고 말하자 활동가들은 ‘공부는 그만하고 여행을 즐기자’고 조르는 듯, 애정의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그 시점부터 3호차 노래자랑 대회로 인원이 빠지는 듯했으나 시험이 OX 퀴즈로 즐겁게 진행돼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3호차는 축제 분위기였다. 저마다 노래 실력을 뽐내는 동안 누군가 가져온 알록달록한 미러볼이 열차 내 천장을 반짝였다. 김대범 피플퍼스트 활동가는 가수 이날치의 노래 ‘범 내려온다’를 “예산 내려온다, 권리 내려온다, 집(지원주택) 내려온다, (발달장애인) 참정권 내려온다” 등으로 개사해 부르기도 했다. 간혹 일부 시민이 왜 질서를 안 지키냐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활동가들은 흥겨운 노래를 즉석에서 개사해 “선생님이 타시는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이렇게 만들어졌어요”라고 웃으면서 알려줬다.
- “개새끼라 욕먹지만 기재부가 예산 반영할 때까지 지하철 탈 것”
오후 4시경, 오이도역에 도착한 활동가 200여 명이 우르르 4호선을 빠져나왔다.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오이도역 참사 피해자에게 묵념하고 헌화했다. 이후 기재부를 규탄하는 마무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영봉 포천나눔의집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소장은 “20년 내내 똑같은 싸움을 하고 있다. 우린 늘 같은 얘길 해 왔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 장애권리 보장하는 예산을 편성하라.’ 지난 20년간 수많은 국회의원과 지자체장이 지나가고 대통령도 여러 번 바뀌었는데 장애인의 삶은 달라진 게 없다. 달라질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전에 지하철을 점거했던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아침에 지하철 선전전 하는데 젊은 청년이 ‘개새끼’라고 욕을 하더라. 요즘은 세상 좋아져서 장애인도 살기 좋은데 왜 지하철을 점거하냐고, 언제까지 점거할 거냐고 따져 물었다. 장애인에겐 세상 좋아진 거 전혀 없다. 우리는 아직도 지하철과 버스를 타다가 죽을 걱정을 해야 한다. 언제까지 지하철 탈 거냐면, 기재부가 예산 반영할 때까지 탈 거다”라고 말했다.
전장연은 기재부의 예산 편성 책임을 요구하는 지하철 선전전을 매일 아침 8시 혜화역에서 진행 중이다. 기재부가 장애권리 예산을 제대로 편성할 때까지 선전전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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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 시간대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목발 또는 지팡이를 짚은 장애인이 지하철에서 장애인, 노약자용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할 때마다 발빠른 멀쩡한 일반인들이 먼저 가득 타서 이용할 수도 없는 현실을.
모든 것이 비장애인들에게 맞춰져 있음에도 비장애인들의 횡포에 한줌 남아있지도 않은 장애인 시설마저 이용할 수 없을 때의 울분을 알기나 할까?
너희 비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 장애인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지 비장애인들은 알기나 할까?
장애인들은 수십년, 아니 평생을 참아가며 살아왔지만 비장애인들은 한줌도 안되는걸 배려라고 공치사를 적선하듯 하지만 정작 그들이 조금만 불편하면 그것 마저도 빼앗는걸 주저하지 않는다. 이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