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성인지예산 떼서 북핵 막겠다” 발언 파문
장애인 활동지원, 차별금지 등 성인지예산 사업에 포함돼
장애계 “성인지예산 삭감은 장애인 권리 협박하는 것”
윤석열 상대로 전국 1인 시위 이어갈 예정

한 활동가가 ‘국방 예산 증액 위해 성인지예산 삭감하겠다(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아동돌봄 등)’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한 활동가가 ‘국방 예산 증액 위해 성인지예산 삭감하겠다(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아동돌봄 등)’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성인지예산을 떼서 북한 핵위협을 막겠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어난 가운데, 장애계가 윤 후보를 강경하게 규탄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 100여 명은 2일 오후 3시, 서울시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집결해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은 망언을 철회하고 사과하라”라고 성토했다.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당사가 있는 건물에 윤석열 후보 현수막이 크게 붙어 있다. 사진 하민지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당사가 있는 건물에 윤석열 후보 현수막이 크게 붙어 있다. 사진 하민지

- MB 정부 때 만들어진 성인지예산은 ‘예산 평가 제도’… 국방부도 이용 중

“이 정부가 뭐, 성인지감수성 예산이란 걸 30조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돈이면 그중에 일부만 떼어내도 우리가 이북(북한)의 저런 말도 안 되는 핵 위협을 저희가 안전하게, 중층적으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지난달 27일, 경상북도 포항시 유세에서 한 말이다. 발언이 알려지자 각계각층에서 비판이 일었다.

성인지예산 제도는 양성평등기본법 16조에 따라, 예산편성과 집행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예산 평가 제도다. 양성이 동등하게 정책의 수혜를 받았는지 평가해 다음 연도 예산에 반영한다. 국가 재원이 성평등한 방식으로 사용됐는지를 확인함으로써 예산의 불평등한 배분을 예방하는 데 목적이 있다.

즉, ‘성인지예산’이라는 별도 예산 항목이 있는 게 아니다. 성평등 관점에서 분석할 만한 사업을 ‘성인지예산’이라는 항목으로 묶어 분류한 후, 사업 시행을 통해 성평등 효과가 발생했는지를 검토하는 게 성인지예산 제도다. ‘성인지감수성’이라는 정책에 돈을 들였다는 식으로 말한 윤 후보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외국에서는 일찌감치 시행된 제도다. 1980년 호주를 시작으로 현재 미국, 프랑스, 남아프리카, 필리핀 등 60여 개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회계연도에 도입돼 매년 성인지예산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 국방비 증액 위해 (성인지예산) 장애인예산 줄이겠다는, 장애인 생존권 협박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예산 정책 철회 촉구 기자회견’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 국방비 증액 위해 (성인지예산) 장애인예산 줄이겠다는, 장애인 생존권 협박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예산 정책 철회 촉구 기자회견’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성인지예산 주관 부처는 여성가족부가 아닌 기획재정부다. 매년 초, 각 정부 부처는 성인지예산서와 결산서를 작성해 기재부에 제출한다. 기재부는 이를 취합해 조정한 후 국회에 예산안 서류로 제출한다.

경향신문의 지난달 28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지예산 사업 규모는 약 35조 원이다. 기재부가 39개 부처의 341개 성인지예산 사업을 취합한 결과다. 규모별로 보면 보건복지부가 11조 4천억 원으로 가장 많다. 중소벤처기업부(9조 4천억), 고용노동부(6조 6천억), 국토교통부(4조 6천억)가 뒤를 이었다. 여성가족부의 성인지 예산은 8800억 원에 그쳤다.

국방부도 성인지예산 제도를 이용한다. 한겨레의 지난달 28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성고충전문상담관 운영, 군 어린이집 운영지원 등 사업 관련 예산 688억 원을 성인지예산 사업으로 분류했다. 민방위 훈련 사업도 성인지예산 사업에 포함돼 있다. 지난해 행정안전부는 민방위 훈련 예산 87억 원을 성인지예산으로 분류했다.

윤 후보 측은 ‘성인지예산과 부처예산을 혼돈한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주먹구구식 예산 집행을 구조조정해 국방 등 필요한 사업에 사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 해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명은 논란을 더 크게 키웠다. 성인지예산으로 분류된 사업의 본예산을 삭감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김수정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 성인지예산(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아동돌봄 등) 삭감하겠다?! 장애인생존권 위협하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공약 즉각 철회하라,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약속하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김수정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 성인지예산(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아동돌봄 등) 삭감하겠다?! 장애인생존권 위협하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공약 즉각 철회하라,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약속하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장애인과 여성 목숨줄 끊고 전쟁 부추기는 데 돈 쓰겠다는 건가”

전장연에 따르면 올해 보건복지부가 분류한 성인지예산 사업은 37개다. 장애인활동지원 1조 7천억 원, 장애인일자리지원 1832억 원, 장애아동가족지원 1485억 원, 여성장애인지원 27억 원, 장애인차별금지 모니터링 및 인식개선 26억 원, 장애인건강보건관리사업 13억 원 등이다. 성인지예산 사업의 본예산을 삭감하면 이 사업들 예산이 삭감될 수 있다.

장애계는 특히 활동지원 예산 삭감에 크게 분노했다.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대표는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는 권리이자 목숨줄이다. 생명이 달려 있는 소중한 예산이다. 그걸 대선후보라고 해서 마음대로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없다. 이는 장애인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일”이라며 “모르면 배우면 되는데, 윤 후보는 배우지도 않고 아무 말이나 했다. 그 말 취소하고, 확실하게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 윤 후보와 국민의 힘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규탄했다.

서지원 팀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지원 팀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 팀장은 “성인지예산 제도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아주 기본적 제도다. 윤 후보는 여성차별과 장애인차별을 없애기는커녕 전쟁을 부추기는 데 국민의 세금을 쓸 셈인가?”라고 비판했다.

서 팀장은 또 “여성에게 전가됐던 돌봄노동을 사회화하고, 그 예산을 국가가 책임진 게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이다. 그러나 윤 후보는 여가부를 폐지한다는 공약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걸고 이제는 성인지예산 삭감으로 장애인 생존권마저 위협한다”라며 “여기 차별받는 사람을 똑똑히 보라. 장애인이자 여성으로 살아오며 차별받은 내가 여기에 있다. 성차별과 장애차별을 없애기 위한 최소한의 국가 책무를 더는 후퇴시키지 말라”라고 성토했다.

장애계는 지난해 12월 6일부터 매일 아침 8시, 4호선 혜화역(오이도역 방향) 5-4 승강장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위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대선후보의 권리예산 보장 약속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심상정 정의당 후보밖에 약속하지 않았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권리예산 보장 약속 요구는 무시하면서 되레 삭감을 이야기한 윤 후보를 크게 비판했다. 권 대표는 “어떻게 약자에게 투입되는 예산을 감액해 국방 예산을 늘리겠단 소리를 하나? 장애인이 석 달 넘게 지하철을 타며 권리예산 보장을 약속하라고 목 놓아 외치는데 심상정 후보 말고 누가 왔나?”라며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전 세계가 규탄하고 있다. 그런데 윤 후보는 약자의 삶을 무시하고 국방비 인상 얘기나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누구를 위한 선거인가?”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활동가들이 국민의힘 당사 앞에 있다. 윤 후보를 규탄하는 피켓을 목에 걸었다. 사진 하민지
활동가들이 국민의힘 당사 앞에 있다. 윤 후보를 규탄하는 피켓을 목에 걸었다. 사진 하민지

전장연은 2일부터 9일인 선거일까지, 장애인권리예산 삭감 반대를 위한 전국적인 1인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2일 오후 8시, KBS 본관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4차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약속하지 않으면 3일 오전 8시부터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재개할 거라고 선언했다. 4차 토론회 주제는 복지, 인구, 여성정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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