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말하지 않은 것들 ③

[검증 대상]

지난달 24일과 25일, 한국 정부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에 출석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심의를 받았습니다. 정부는 위원회에 제출한 국가보고서에서 “2017년 말부터 지방자치단체에 자율권을 부여하여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이용자가 다수 존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 결과 2021년 12월을 기준으로 전국에서 760명이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필수적인 서비스의 대상자와 급여를 꾸준히 확대한 결과, 활동지원 이용 실인원은 2013년도 6만 435명에서 2021년 12만 7363명으로 대폭 증가하였으며, 예산 역시 2013년 3627억 8600만 원에서 2021년 1조 5215억 6000만 원으로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검증 방법]

· 한국 정부가 위원회에 제출한 2·3차 병합 국가보고서(보완보고서 포함)를 참고했습니다.

· ‘유엔 웹 티브이’에 올라온 제27차 장애인권리위원회 598~599차 영상회의록을 참고했습니다.

· 위원회 일반논평을 참고했습니다.

·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 ‘2021년 장애통계연보’, ‘2022년 장애인활동지원사업안내’를 참고했습니다.

· 김성겸 보건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 행정사무관을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 지원에 관한 비마이너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2006년 4월 27일, 장애인들이 활동지원제도화를 요구하며 한강대교를 기어가고 있다. 사진 김유미
2006년 4월 27일, 장애인들이 활동지원제도화를 요구하며 한강대교를 기어가고 있다. 사진 김유미

[검증 내용]

- 2017년부터 지방자치 자율권 부여로 24시간 지원한다?

현재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서비스 하루 최대 시간은 16시간(월 480시간)입니다. 이는 종합조사에서 1구간으로 판정받을 때 제공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에서 1구간으로 판정받은 사람은 11명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하루 24시간 활동지원 이용이 가능한 이유는 나머지 시간을 지자체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서울시 종로구에 산다면 서울시와 종로구에서 추가로 활동지원 시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장애인의 경우, 경기도와 수원시에서 활동지원 시간을 추가로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필요한 만큼 다 주는 것은 아니고 지자체마다 까다로운 선별 기준이 있습니다. 부족한 중앙정부의 활동지원 시간을 메꾸기 위해 중증장애인 대부분은 이처럼 여기저기서 시간을 그러모아 사용합니다. 모으고 모아 하루 24시간이 채워지면 “하루 24시간 지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복지부가 유엔에 제출한 국가보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중증장애인 등이 활동지원이 추가로 필요한 경우 등에 대하여 지원이 가능하도록 2017년부터 지방자치단체에 자율권을 부여했다.”

활동지원서비스는 중앙정부보다 지자체에서 먼저 시작했는데, 이게 무슨 말일까요. 복지부에 물어봤습니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김성겸 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 행정사무관은 “과거 유엔에 2013~2017년까지의 이행 상황을 보고한 후, 이번에는 2017년 이후에 정부가 한 조치에 대해 답해야 해서” 이렇게 썼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착오가 있어 보입니다. 한국 정부는 2008년 협약을 비준하고 2011년 첫 국가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이에 대한 심의는 2014년 9월에 이뤄졌고, 그해 10월 위원회는 한국의 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최종견해를 발표했습니다. 이후 최종견해에서 권고받은 내용을 중심으로 한국 정부는 2019년 1월까지 2·3차 병합 국가보고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당시 최종견해에서 위원회는 “활동지원서비스 등 복지서비스의 대폭 확대”를 한국 정부에 권고했습니다.

- 활동지원서비스, 2006년 지자체에서 먼저 시작

활동지원서비스는 지자체에서 먼저 시행했습니다. 2005년 12월 경남 함안에서 혼자 살던 중증장애인이 겨울에 방안에서 동사한 사건을 계기로 활동지원서비스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됐습니다. 2006년 서울시청 앞에서 장애인들은 활동지원 제도화를 요구하며 43일간 노숙 농성을 하고 한강대교를 6시간 동안 기었습니다. 이 투쟁은 곧 인천과 대구로 이어졌고, 그해 11월 서울, 인천, 대구에서 시범사업이 시작됐습니다. 복지부의 시범사업은 이듬해인 2007년 4월에야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한 달 이용 시간은 최대 100시간에 불과했고, ‘중증장애인이 혼자 사는 상황’을 인정받아 추가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월 최대 180시간에 불과했습니다. 하루 이용 시간이 6시간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장애인들은 활동지원제도 취지에 맞게 필요한 만큼 이용 시간을 확대할 것을 지속해서 요구했습니다.

고 김주영 활동가의 영정사진 옆에 “활동보조 24시간 보장하라!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부양의무제 폐지하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 강혜민
고 김주영 활동가의 영정사진 옆에 “활동보조 24시간 보장하라!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부양의무제 폐지하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 강혜민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집니다. 2012년 10월, 김주영 활동가가 집에 혼자 있던 사이 발생한 화재를 피하지 못하고 사망합니다. 김주영 활동가는 활동지원사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여성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복지부가 제공하던 최대 시간인 180시간에 서울시가 추가로 제공하는 180시간을 합해 월 360시간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중증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을 받고 있었지만 밤 10시 이후엔 활동지원사 없이 12시간을 혼자 있어야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에 대한 요구가 거세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사고 이후 복지부는 활동지원 시간 확대가 아닌 응급알림서비스 도입이라는 꼼수로 장애계의 요구를 피해 갑니다. 응급알림서비스는 화재·가스누출 등 비상시에 응급 호출 버튼을 누르면 연계된 119가 출동하는 서비스입니다.

이후 비슷한 사건이 이어집니다. 2014년 오지석‧송국현 활동가가 죽었습니다. ‘24시간 요구’가 빗발치면서 지자체에서 추가 지원을 통해 24시간을 보장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지자체의 추가 지원으로 24시간이 조금씩 채워질 무렵,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지자체 복지사업 중 유사·중복사업을 통폐합하는 ‘사회보장사업 정비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이로 인해 지자체에서 최중증 사지마비장애인에게 추가로 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잇따라 중단됐습니다. 중앙정부에서 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와 ‘중복’된다는 이유였습니다. 2016년 2월 인천시가 활동지원서비스 중단을 선언하면서, 탈시설 장애인 권오진 활동가의 활동지원 시간은 하루 24시간에서 14시간으로 축소됐습니다. 사지마비장애인이었던 그는 욕창이 심해져 요양병원에 들어가 2018년 6월,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합니다.

2018년 8월 8일에 열린 고 권오진 활동가의 49재 추모제. 영정 속 고인은 420 투쟁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2018년 8월 8일에 열린 고 권오진 활동가의 49재 추모제. 영정 속 고인은 420 투쟁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이후 박근혜 씨가 탄핵당하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회보장사업 정비방안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지역 장애계의 요구로 24시간 제공은 점차 확대됐습니다. 그러나 지자체의 의지와 재정 상황에 따라 이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의 책임을 지자체에 떠넘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중앙정부는 24시간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계의 목소리에 줄곧 “밤에 자는 것도 사회활동이냐”면서 잠자는 시간은 제외하고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복지부가 ‘잠자는 8시간 빼고’ 하루 16시간만 보장하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위원회에 제출한 국가보고서를 보면 복지부는 이제 24시간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듯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복지부에 전화해 물어봤습니다. 복지부 담당자는 바로 “아니요”라고 답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24시간 지원까지 확대하는 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장애유형이나 상황에 따라 24시간 필요한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그에 맞춰 지자체에서 24시간 추가 지원하는 것이다. 24시간 지원이라는 게 장애인 옆에서 밀착 케어하는 것뿐만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서 수시로 24시간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활동지원 16시간 외에 야간순회돌보미, 응급안전서비스가 있다. 활동지원사가 24시간 케어하는 게 이상적이긴 하나, 등록장애인이 200만 명이 넘는다. 이중 활동지원 실제 이용자가 10만 명, 월평균 130시간 이용하는 데에도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이걸 보완적 서비스 없이 활동지원만으로 24시간 지원하는 게 맞냐는 이야기다.” (김성겸 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 행정사무관)

그러나 복지부 공무원이 말한 야간순회방문서비스, 응급안전서비스는 활동지원을 ‘보완’할 수는 있으나 ‘대체’할 순 없습니다. 야간순회방문서비스는 순회돌보미가 심야(밤 10시~새벽 6시)에 중증장애인 집에 방문하여 체위 변경 등을 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이를 두고 한 중증장애인은 “서비스를 받는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서비스”라고 비판했습니다. 중증장애인 혼자 집에 있는 것도 불안한데 한밤중에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온다면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혼자 문을 열어줄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라면 현관 비밀번호를 공유해야 합니다.

응급안전서비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응급상황 시에 호출벨을 혼자 누를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라면 무용지물입니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응급안전서비스 이용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49%였으며 ‘없다’는 51%로 조사됐습니다.

- 예산은 늘었다, 그러나 필요한 만큼은 아니다

결국 예산 문제입니다. 장애인복지 예산은 분명 늘었습니다. 장애인정책국 예산의 경우,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시작되기 전인 2018년 2조 2213억 원에서 올해 4조 873억 원으로, 활동지원예산은 6906억 원에서 1조 7405억 원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 이용 인원은 2018년 7만 1000명에서 올해는 10만 7000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물가 인상에 따른 자연증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또한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 비해 이용할 수 있는 대상자가 너무 적습니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의 32.1%가 ‘일상생활에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인원으로 치면 84만 1966명입니다. 그러나 현재 활동지원을 이용하는 사람은 10만 7000명으로, 실태조사에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힌 사람의 12.7%만 이용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현재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활동지원예산안은 1조 9918억 원으로, 이용 인원만 고작 1만 명 늘렸습니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의 일상생활 지원 필요 정도. 일부 지원 필요 17.2%, 대부분 지원 필요 8.7%, 거의 지원 필요 6.2%로 조사됐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의 일상생활 지원 필요 정도. 일부 지원 필요 17.2%, 대부분 지원 필요 8.7%, 거의 지원 필요 6.2%로 조사됐다.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을 좀 더 세밀히 알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한 이들 중 ‘지원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74.1%, ‘없다’는 25.9%입니다. 일상생활을 지원해주는 사람이 있는 경우, 활동지원사(8.5%), 요양보호사(9.5%) 등 공적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19.8%에 불과했으며, 배우자(38.7%), 부모(20.8%), 자녀(13.3%) 등 가족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특히 자폐성장애와 지적장애의 경우 ‘부모’ 비중이 각각 76.3%와 66.4%로 다른 장애유형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분명 올해 잇따라 일어난 ‘발달장애인 참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검증 결과]

“지자체와의 협력으로 전국에서 760명이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을 받고 있다”는 정부의 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760명이라는 숫자는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일상생활 대부분’ 타인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힌 이들(16만 2622명)의 0.5%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정부가 최대 지원하는 시간은 하루 16시간에 불과하며, 중앙정부가 온전히 24시간을 지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정부의 말이 사실이긴 하나 그 말을 둘러싼 맥락은 삭제한 채 부분적 사실만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절반의 사실’로 판정합니다.

* 이 기사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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