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30일 271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이학인 전장야협 사무국장이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투쟁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학인 전장야협 사무국장이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투쟁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오늘은 내가 지각이다. 8시가 되니 초조해진다. 혜화역까진 두 정거장이 남았다.

8시 3분, ‘마이크가 안 돼서 건전지와 새 앰프가 오면 선전전을 시작하겠다’는 문자가 단체방에 올라온다. 8시 6분, 전장연 텔레그램창에 ‘271일 차 혜화역 선전전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을 시작한다’는 문자가 올라온다.

8시 7분, 혜화역 5-3칸에서 내리니 선전전이 진행되고 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마이크 없이 생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때, 박옥순 전장연 사무총장이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와 함께 승강장에 나타난다. 박옥순은 몸이 좋지 않아 몇 해 전 제주도로 거처를 옮겨 서울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오래간만에 제주도에서 올라온 박옥순을 본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반가움의 함성을 지르며 그와 짧게 포옹한다. 이제 곧 사무총장 임기가 끝나 전장연 활동을 마무리하는 박옥순을 사람들은 따뜻하게 맞이한다.

잠시 인사를 나누는 사이 앰프와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는 문구가 크게 쓰여있는 초록 피켓이 도착한다. 이번 주부터는 매일 주제를 달리하며 선전전이 진행된다. 오늘(월요일)은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내일(화요일)은 혈우병 희귀질환치료제(헴리브라) 건강보험 적용 촉구, 수요일에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확대, 목요일에는 제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금요일에는 탈시설권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8시 13분, 박경석이 “오늘이 며칠째 선전전일까요?” 묻자 ‘파주 시민’ 정윤상 씨가 “271일”이라고 정확하게 답한다.

박경석이 말한다. “장애인평생교육법을 작년에 ‘연내 제정하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 안 되므로 인해 가슴이 무너진 우리 이학인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 사무국장님이 상황을 설명해드릴게요.”

이학인 전장야협 사무국장이 준비해 온 자료를 보며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투쟁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학인 전장야협 사무국장이 준비해 온 자료를 보며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투쟁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8시 17분, 이학인 전장야협 사무국장이 말한다. “현재 법에는 ‘평생교육은 국가가 진흥해야 한다’고만 되어 있고,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고 되어 있진 않은데요, 저희는 장애인이 평생 동안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기에 그것을 명확하게 국가가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평생교육법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교육을 권리로써 보장하는 법입니다. 그것을 장애인평생교육‘권’이라 하고, 이를 위해 국가의 책무성 강화와 여러 가지 지원 서비스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학인이 갑자기 퀴즈를 낸다. “저희가 2020년부터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됐는데 그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들다방 만 원 쿠폰 쏩니다!” 들다방은 전장연과 노들장애인야학 등 진보적 장애인운동을 하는 단체들이 모여 있는 건물에 있는 카페다. 그곳에선 밥과 차를 판다.

정다운이 손을 든다. “저요! 이학인이 전장야협 사무국장으로 왔어요.” “땡!”

강혜민이 말한다. “장애인권리보장법과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여의도에서 농성에 들어갔어요.” 이학인이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음… 제가 원하는 답은 아니지만, 5천 원짜리 쿠폰 드릴게요. 당시 한국사회에 아주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때 황나라 전장야협 활동가가 외친다. “정답!! 코로나19!!” 이학인이 씨익 웃는다. “정답입니다.” 옆에 있던 정다운이 “아니,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하며 앞으로 나가 따지는 시늉을 하고 옆에 있는 연윤실 전장연 활동가가 ‘난입하려는’ 정다운을 말리는 척한다. 정다운이 “아니, 코로나 아니었으면 투쟁 안 했을 거예요?” 하며 나름 합당한 지적을 하며 따진다.

이학인이 흔들림 없이 말한다. “코로나19로 당시 많은 시설이 문을 닫고, 장애인평생교육 시설들도 대책 없이 문을 닫게 됐습니다. 그곳은 장애인이 교육을 받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공간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지원체계에 대해 고민하면서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국회에 장애인평생교육법이 두 개나 발의됐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2021년 4월엔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교육위원장) 대표발의로, 이듬해 2월에는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당시 교육위원장) 대표발의로 장애인평생교육법이 발의됐다. 즉, 여야 합의가 이뤄진 상황인데도 아직 제정되지 못했다.

이학인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조금씩 눈을 감는 사람이 생긴다. 연윤실이 분홍 토끼인형을 안고 잠시 눈을 감고 서 있고, 다큐인 영상활동가이자 박경석 활동지원사로 동행한 박명훈도 눈이 스윽 감긴다. 박옥순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이형숙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내려오는 눈꺼풀을 어떻게서든 막아보려 한다.

오랜만에 현장을 찾은 박옥순은 생기가 넘친다. 그는 거침없이 발언하는 후배 활동가의 모습이 자랑스러운지 이학인의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는다.

8시 26분, 박경석이 말한다. “우리 박옥순 총장님이 지혜와 소감을 한 번 나눠주세요.” 박경석의 호명에 박옥순이 못 이기는 척 나온다. “동지 여러분” 입을 떼는 순간, 박옥순의 눈이 갑자기 촉촉해진다. “저는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데……” 말을 잇지 못한 채 마이크를 든 손이 잠시 내려간다. 정다운이 “옥순, 우는 거야? 우는 거야? 어우우우 울지 마아”하며 한 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한 손으로는 풍선을 흔드는 시늉을 한다. 과거 아이돌 팬클럽 활동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박옥순 전장연 사무총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옥순 전장연 사무총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옥순 사무총장이 이야기하다가 눈물짓자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가 “울지 마”라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옥순 사무총장이 이야기하다가 눈물짓자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가 “울지 마”라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옥순은 1992~1993년 특수교육진흥법 전면개정 투쟁 당시, 간사로 활동했다. 그가 그때 활동을 잠시 나눈다.

“1977년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됐는데, 학교 현장에서는 전혀 효력이 없었습니다. 전면개정 투쟁을 하면서 특수교육진흥법을 장애인교육법으로 바꾸자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것은 보편적 인권이기에 ‘특수’라는 말을 빼자는 거죠. 개정안의 주요 요구 중 하나가 의무교육이었는데, 당시 교육법(1997년 폐지됨) 98조에 따르면 장애인은 교육을 유예하거나 면제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이 법을 어기면 보호자는 돈을 내야 했습니다(당시 시행령 102조에 따르면 면제 또는 유예는 교육장이 정하며, 보호자는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의사 진단서 등의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당시 벌금이 5만 원이었는데 이조차 낸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통합교육을 명시하는 것.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용납이 안 됐던 시기니 그 싸움이 되게 컸고요. 이것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실현해나갈 것인가, 할 때 통합교육 보조인력 투쟁을 1995년도엔가 했던 것 같아요.

일반교육에서는 초중등교육만 의무교육인데 장애인교육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어요. 우리는 그때 무조건 ‘만 3세’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저쪽(반대하는 쪽)은 ‘장애 발견 즉시’로 하자고 했고요. 그런데 부모님 중에선 일부러 장애 발견을 ‘안 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잖아요. 자녀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아직도 이름이 잊히지 않는데 교육부에 김원경이라는 장학사분이 핵심적으로 반대를 했어요. 국회 공청회에서 그 사람이 ‘의무교육으로 하면 예산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냐’며 반대하니 한 국회의원이 ‘법은 국회가 만들고 예산은 정부가 만드는데 당신이 그 일에 대해 왜 그렇게 걱정이 많냐’고 이야기한 기억이 있습니다. 결국 13조에 입학 거부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 들어간 게 의미 있는 성과였지만 전면개정임에도 별로 바꾸질 못해서… 아쉬움이 크죠.”

박옥순 전장연 사무총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옥순 전장연 사무총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가 열렬히 환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가 열렬히 환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옥순이 이야기하는 동안 정다운은 ‘기획재정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고 적힌 붉은 부채를 흔들며 계속 환호를 보낸다. 평소 선전전에서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그는 박옥순이 와서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인다. 10분가량 이어진 박옥순의 지난 투쟁 이야기를 사람들이 집중해서 듣는다. 평소에 잘 듣지 못했던 이야기다. 임미경 전장야협 활동가의 두 눈이 박옥순에게 박혀 움직이지 않는다.

8시 47분, 박옥순이 계속 이야기한다. “과거 특수교육진흥법은 정말 빈 껍데기였어요. ‘장애인평생교육권’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우리의 권리 항목이 이렇게 확장됐구나 너무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여기서 타령 하나 불러도 돼요? 창부타령이라고, 낙담한 한 여인이 달을 바라보며 노래합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열망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마음을 담아 불러볼게요.”

노래 간간이 박옥순이 개사했을 가사들이 귀에 들어온다. “이것이 사랑의 근본이라~ 이것이 투쟁의 근본이라~ 이것이 우리의 꿈의 근본이라~ 어이!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네~” 그의 허스키하고 단단한 목소리가 승강장을 채운다.

창부타령을 열창하는 박옥순 전장연 사무총장. 사진 강혜민
창부타령을 열창하는 박옥순 전장연 사무총장. 사진 강혜민
임미경 전장야협 활동가가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는 초록 피켓을 들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임미경 전장야협 활동가가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촉구하는 초록 피켓을 들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8시 56분, 박경석이 말한다. “앗, 5분 남았네요. 2월 1일부터 전장야협 새 사무국장이 되는 유금문 활동가를 모셔서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유금문이 말한다. “아침에 출근하기 힘든 날 듣는 노래가 있어요. ‘화이트 플래그(한국어로 하얀 깃발)’라는 노래인데, ‘백기를 들지 않겠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아침에 들으면 정말 힘이 나요. 특히 마음에 와닿는 게 노래에서 쇠사슬 소리가 나요. 그 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투쟁도, 출근도 잘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데요. 그 마음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유금문의 말에 사람들이 작게 술렁인다. “아니, 쇠사슬 소리를 들으며 출근을…”(정다운, 임미경) “무섭다, 무서워…”(이형숙) (노래 들으러 가기 : 비숍 브릭스(Bishop Briggs)의 화이트 플래그(White Flag))

2월부터 전장야협 새 사무국장으로 취임하는 유금문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2월부터 전장야협 새 사무국장으로 취임하는 유금문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9시 3분, 박경석이 마무리 발언을 한다. “인간은 관계를 맺는 존재인데 우리는 학교에 다니면서 이런 인간관계를 맺죠. 학교 졸업한 후에는 직장에서 맺고요. (장애인수용)시설에서는 관계를 맺을 수 없어요. 관계 맺을 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교육이에요. 인생의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그러한 관계가 없으면 인생은 씁쓸한 여백으로만 남아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현장을 담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사람들 곁에 서서 박경석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담는다. 박경석이 마무리 구호를 제안한다. 카메라가 재빠르게 박경석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전장연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에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송출된다. 오늘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은 박미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했다.

이날 선전전에 참석한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날 선전전에 참석한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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