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대표단-서울시 실무진 90분 면담
김상한 실장,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또 왜곡
전장연 4가지 요구안에도 답변 ‘지지부진’
서울시 2월부터 ‘탈시설 장애인 전수조사’
회원 명단 제출 요구에 전장연 측 ‘거부’
탈시설 찬반 양측, 조사팀 함께 꾸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단과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 1층 회의실에서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를 비롯해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팀, 탈시설팀 등이 자리에 함께했다. 전장연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단과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 1층 회의실에서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를 비롯해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팀, 탈시설팀 등이 자리에 함께했다. 전장연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한 달 만에 다시 만났다. 90분가량 이어진 면담에서 김 실장은 전장연이 제출한 요구안에 대해 “무리한 요구”라며 사실상 거부했다.

이날 만남은 지난달 2일 전장연 대표단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개 면담 이후 양자 간 실무 협상이 이뤄지는 자리였다. 서울시 쪽에서는 김 실장을 비롯해 장애인복지정책팀, 탈시설팀 등이 참석했다. 한 달 전과 지금, 전장연의 요구사항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시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과 자체 조례를 거스르며 탈시설에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고 있다. 이날 실무 차원의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 이유도 그 연장선에 있다.

- 전장연 “김상한 실장, 유엔 협약 또 왜곡”

전장연은 이날 총 4가지 요구안을 제시했다. 내년도 서울시 장애인권리예산·정책 반영, 지하철 리프트 추락 참사와 ‘엘리베이터 100% 설치’ 약속 미이행에 대한 사과, 기획재정부 장애인권리예산 반영 촉구, 그리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 초청 간담회 추진이다.

지난달 2일 공개 면담에서 김 실장은 “협약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시설에 거주하든 지역사회에 거주하든 주거 형태와는 관계없이 자립생활과 지역사회의 접근이 보장되는 여건을 조성하면 된다”며 “시설 폐쇄가 아니라 시설 여건을 개선해달라는 쪽으로 요청해주시면 탈시설 주장이 더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마이너가 팩트체크한 결과 이는 사실과 달랐다. 유엔 일반논평 5호를 보면 ‘자립적 생활은 모든 거주시설 유형의 외부 생활환경’을 가리킨다. 또 유엔 탈시설 가이드라인은 당사국이 ‘모든 형태의 시설 수용을 폐지하고, 시설 신규 입소를 금지해야 하며, 시설에 대한 투자를 막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 실장의 주장과 달리 유엔 협약은 시설 수용에 단호히 선을 긋고, 시설 환경 개선이 아닌 지역사회 자립에 필요한 공적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관련 기사: [전장연-오세훈 팩트체크①] 탈시설하면 1명당 1억 5,000만 원 들어간다?)

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 1층 회의실에서 전장연 대표단과 서울시 실무진이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 채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전장연 제공
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 1층 회의실에서 전장연 대표단과 서울시 실무진이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 채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전장연 제공

그럼에도 김 실장은 한 달 전과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이날 김 실장은 “협약에서 권고하는 큰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시대적 상황과 재정적 여건을 고려해 차곡차곡 나아가야 한다”며 “시설 폐쇄로 접근하게 되면 여기서 더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실장은 “시설을 새로 짓겠다는 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시설의 여건을 개선하자는 것이고,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에게는 선진화된 시설에서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며 협약과 모순된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활동지원 예산을 탈시설 예산과 동일시하며 비용 절감의 논리를 내세워 예산 증액에 반대하기도 했다. 김 실장은 “탈시설 예산 중 70~80%가 활동지원 예산”이라며 “왜 탈시설을 주장하면서 1조 원에 가까운 활동지원 예산을 증액해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나 활동지원서비스는 기본적인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이 어려운 장애인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서비스다. 활동지원을 이용하는 장애인 가운데 탈시설 장애인은 전국적으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김 실장의) 그런 논리대로라면 이동권과 교육권, 활동지원서비스가 모두 탈시설과 연계되는데 왜 활동지원 예산만 탈시설 예산과 묶어서 보느냐”며 “기획재정부에는 활동지원 예산과 탈시설 예산을 구분해서 전달해달라”고 했다. 현재 전장연이 요구하는 장애인권리예산 중 탈시설 예산(장애인 자립지원 시범사업)은 169억 원으로, 전체의 1.3% 수준이다.

이후에도 김 실장은 전장연 요구안에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서울시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해서는 “내년도 세수 전망이 불확실하다”고 답했고, 엘리베이터 100% 설치 미이행에 대한 사과는 “오 시장이 2024년까지 설치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는 말로 갈음했다. 기획재정부에는 “활동지원 예산을 제외한 요구안을 오는 27일까지 전달하겠다”고 밝혔고, 위원회 초청 간담회 추진은 “서울시 여건에 맞춰 협약을 이행하면 된다”며 응하지 않았다.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오른쪽)이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왼쪽)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지난 2월 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 8층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공개 면담 전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오른쪽)이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서울시, 탈시설 전수조사 두고 ‘전장연 조이기’

서울시는 지난 2월 21일 탈시설 장애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한다고도 밝혔다. 이는 2009년부터 2022년까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탈시설한 1,600명 중 사망자와 서울 외 지역 거주자를 제외한 인원이다. 서울시는 탈시설 과정의 적정성, 생활 만족도 등을 살펴본다며 최근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산하 향유의집에서 탈시설한 장애인 40명에 대한 집중 조사를 벌였다.

이번 전수조사 결과는 ‘제3차 서울시 장애인 거주시설 탈시설화 계획(2023~2027)’에 반영된다. 그러나 여당과 보수 언론은 ‘향유의집이 강제 탈시설을 벌여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왜곡하고 있고, 오 시장은 장애인 거주시설을 방문해 “(시설을 포함해) 선택지가 많으면 좋다”고 말하는 등 협약을 위반하는 발언을 일삼고 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볼 때 이번 전수조사는 탈시설 추진에 힘을 싣기보다는, 기존의 탈시설 정책을 크게 후퇴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2009년부터 추진된 탈시설에 대해 제대로 된 자체 평가가 이뤄진 적이 한 번도 없다”며 “국비와 지방비를 들여 진행하는 사업인데, 성과를 보여줄 만한 자료가 없으니 전체를 살펴보는 실태조사를 진행하자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이미 탈시설 장애인들이 ‘강제 퇴소가 있었냐’는 질문에 ‘없다’는 대답을 몇 차례나 반복했다”며 “조사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적 어려움을 충분히 말씀드렸는데도 장애 자체를 무능력하게 묘사하는 질문이 주어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전장연은 이날 서울시가 유엔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근거해 조사지를 작성하고, 해당 가이드라인 이행을 위한 ‘권리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거주시설에 있는 장애인에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원을 묻는 조사를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김 실장은 “현재 서울시 직원들이 조사하고 있는데, 앞으로 탈시설 반대 측과 전장연이 함께 조사팀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서울시는 전장연에 소속 회원 명단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장연은 “공공기관 단체에 등록되었거나 예산을 지원받는 곳이 아니기에 요구를 이행할 책임이 없다”고 답했으나, 탈시설을 둘러싼 서울시의 압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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