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법 시행 15년, 이제는 전면 개정할 때
‘장애’ 정의에 유엔협약 반영
‘장애인 차별하는 이유’됐던 시행령, 삭제
“장애를 이유로”, “정당한 사유” 등도 삭제
국가 의무 분명히 명시하고 처벌은 무겁게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조 (목적)
-수정 전
이 법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수정 후
이 법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받은 장애인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헌법과 국제인권협약에 따라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을 실현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장애계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 전면 개정을 추진 중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는 11일 오후 2시, 서울시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5주년 기념 토크콘서트’를 열고 장애인차별금지법 전부 개정안을 제시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8년, 장애계 활동가들의 투쟁으로 제정됐다. 시행 15년이 지난 지금, 신장된 장애인 권리의식과 달라진 사회상 등이 법에 새롭게 반영될 필요가 있다. 또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데 실질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법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내용도 수정돼야 한다.
이날 토크콘서트에서 공개된 개정안은 차별은 더욱 촘촘히 명시하고 처벌은 더욱 강력히 규정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 법 1조 ‘목적’에 협약 내용 반영
지난해 12월 8일, 한국 정부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 선택의정서를 비준했다. 협약에 비준한 지 14년 만에 이뤄진 선택의정서 비준이었다. 선택의정서는 협약 부속문서로, 당사국이 협약을 위반한 경우 차별받은 당사자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에 개인진정을 할 수 있고 위원회는 당사국의 협약 위반 사실을 직권조사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당사국은 협약 이행의 수준을 높이게 된다.
이에 따라 장애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협약의 내용을 반영했다. 더불어 한국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의 내용도 새로 추가했다. 이 같은 내용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목적을 설명한 1조에 명시됐다. “이 법은 (중략)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후략)”는 “이 법은 (중략) 헌법과 국제인권협약에 따라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을 실현하여… (후략)”로 변경됐다.
우주형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교수는 “1조에서 헌법과 국제인권협약의 기준을 제시한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한국은 아직 협약을 실효성 있게 국내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만큼 법에도 분명하게 규정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우 교수는 다른 법률과의 관계를 명시한 9조에 “이 법의 적용은 우리나라가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 ‘장애’ 정의에도 협약 정의 반영
협약은 장애의 정의를 의학적 관점이 아닌 사회적 관점으로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 차별의 원인은 장애인의 신체가 아니라 사회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개정안 내용을 설명한 김재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손상을 기준으로 정의된 장애를 협약의 규정에 따라 사회적인 기준으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장애계는 ‘장애’와 ‘장애인’의 정의를 명시한 2조 1항을 전면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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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의 사유가 되는 장애라 함은 신체적·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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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에서 장애라 함은 다양한 장벽과의 상호 작용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과 동등한 완전하고 효과적인 사회참여를 저해하는 장기간의 신체적, 정신적, 지적 또는 감각적인 손상 또는 기능 저하를 말한다.
서원선 한국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장애의 정의에 “사회적 차별·편견·부당한 대우를 유발하는 장애나 질병, 예를 들어 후천성면역결핍증(HIV) 등이 추가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우 교수는 “장애의 개념을 정의하는 부분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출발점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먼저 장애 정의와 개념을 사회적 개념 및 인권 개념으로 도입하게 된다면 이후 장애인복지법의 개정을 자연스럽게 견인할 수 있다”며 해당 조항 개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 장애인차별금지법인데 장애인 차별하는 시행령? 관련 내용 삭제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많은 내용이 시행령에 위임돼 이 법이 실효성 있게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 시설물 접근·이용의 차별금지를 명시한 18조가 그렇다. 18조 1항에 따르면 장애인이 시설물에 접근하거나 이를 이용할 때, 시설물의 소유·관리자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제공’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건물 앞에 계단이 있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출입하지 못할 경우, 소유·관리자는 경사로를 설치하는 등 장애인에게 편의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해당 조항에는 소유·관리자의 책임을 면해주는 문구가 있다. 18조 4항 “시설물의 단계적 범위 및 정당한 편의의 내용 등 필요한 사항은 관계 법령 등에 규정한 내용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문구다. 여기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건 ‘시행령에 위임한다’는 뜻이다.
4항에 명시된 “관계 법령”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말한다. 이 시행령에 따르면 바닥 면적이 50m²(약 15평) 미만인 공중이용시설은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면제된다. 소유·관리자가 경사로 등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정리하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시설물 소유·관리자가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지만, 동시에 책임을 면해주기도 한다. 정당한 편의의 내용을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 위임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되레 장애인을 차별하는 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 시행령에서 정한 바닥 면적 기준 때문에 장애인은 대부분의 시설물에 출입하기 어렵다. 편의점의 경우 전국 4만 3000여 곳 중에서 50m² 미만인 곳은 약 8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 편의점의 80%가 ‘노 장애인 존’인 상황이다. 장애계는 이 같은 시행령에 반대하는 투쟁을 해 왔지만 정부는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관련 기사: ‘노 장애인 존’ 만든 국가 상대 손배, 2심도 “국가 책임 없다”)
그래서 장애계는 18조 4항 전체를 삭제하고, 시설물 소유·관리자가 제공해야 하는 정당한 편의의 내용을 일일이 나열했다. △장애인의 접근·이용 및 비상시 대피를 위한 출입문, 위생시설, 피난 및 대피시설 등에 접근하기 위한 시설 및 장비의 설치 또는 개조 △장애인의 접근·이용 및 비상시 대피를 위한 보조인력(지원인력)의 배치 등이다.
김재왕 변호사는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굉장히 많은 내용이 시행령에 위임돼, 이 법의 취지가 무력해졌다는 것”이라며 “시행령에 위임한다는 내용을 삭제하고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우주형 교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5년이 됐다. 그러나 실제 장애인이 느끼는 물리적 장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는 게 진정한 차별 해소지만 법이 (차별행위자의) 방패가 돼 왔다. 이 같은 내용을 삭제하는 게 진정한 평등 조치”라고 설명했다.
- “장애를 이유로”, “정당한 사유” 등 조건 문구도 삭제
장애인차별금지법 32조 3항에는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학교, 시설, 직장, 지역사회 등에서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집단따돌림을 가하거나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 있다. 장애계는 “장애를 이유로”라는 문구에 주목했다. 이 문구는 전체 50개 조항 중에서 21번 등장한다. 법의 목적을 명시한 1조에도 나온다.
이 문구는 장애인을 차별한 사람이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앞서 명시한 32조 3항으로 예를 들면, 장애여성을 향해 비하발언을 해놓고 ‘장애를 이유로 비하발언하지 않았다. 여성이라는 점을 들어 비하발언 한 것이므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게 아니다’라고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장애계는 “장애를 이유로”를 전부 삭제하고 “장애인에게”, “장애인에 대한” 등으로 수정했다. 이렇게 수정하면 여성이라는 점을 들어 비하발언을 했어도 장애인에게 한 발언이므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게 된다.
“정당한 사유”도 삭제됐다. “정당한 사유”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23번 명시돼 있다. 이 문구 때문에 차별행위자는 각종 핑계를 “정당한 사유”로 들며 차별행위에 대한 책임을 피해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18조 3항에는 “시설물의 소유·관리자는 장애인이 당해 시설물을 접근·이용하거나 비상시 대피함에 있어서 피난 및 대피시설의 설치 등 정당한 편의의 제공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소유·관리자가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고, ‘어쩔 수 없었다’며 “정당한 사유”를 설명한다면 장애인 차별이 용인된다.
김재왕 변호사는 “‘장애를 이유로’, ‘정당한 사유’ 등 차별행위 판단에 대한 조건 문구는 그간 차별의 범위를 좁게 만들었다. 개정안에서는 이를 삭제해 차별 판단의 범위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 설명에 따라 18조 3항은 이렇게 수정됐다. “(전략) 비상시 대피할 수 있도록 다음 각호의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
김 변호사는 또 “정당한 사유, 즉 어쩔 수 없이 장애인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사정이 있더라도 최소에 그쳐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차별행위의 내용을 명시한 4조 3항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차별로 보지 아니한다”는 차별판단의 기준을 명시한 5조 2항으로 옮겨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를 예외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그 차별의 정도는 최소한에 그쳐야한다”로 수정됐다.
- 국가의 의무는 더 무겁게, 탈시설 내용도 추가
국가의 의무를 분명하고 무겁게 개정한 내용도 있었다. 8조 1항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중략) 이 법에서 규정한 차별시정에 대하여 적극적인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적극적인 조치”라고만 돼 있고 별다른 내용이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국가와 지자체는 다른 법 핑계를 대며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중앙선관위)는 공직선거법에 장애인편의제공 관련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투표소에서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선거철이 되면 장애인이 참정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관련 기사: 장애인은 참정권 없나? 지선 때도 가로막힌 투표보조, 인권위 진정)
이에 장애계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를 무겁게 명시한 조항을 신설했다. 신설된 8조 3항은 다음과 같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이 법에 반하는 기존의 법령, 조례와 규칙, 각종 제도 및 정책을 조사·연구하여 이 법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시정하여야 한다. 이 경우 사전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중앙선관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취지에 부합하도록 선거사무지침을 의무적으로 개정해야만 한다.
탈시설 관련 내용도 신설됐다. 각종 용어의 정의를 명시한 3조에 탈시설 정의를 다음과 같이 추가했다. ““탈시설이란 장애인 생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개인별 주택에서 자립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김재왕 변호사에 따르면, 이 정의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탈시설지원법안에서 가져왔다.
또한 가족·가정·복지시설 등에서의 차별금지를 명시한 30조에 “장애인 탈시설 등 자립생활지원에 대한 국가의 책무 규정”이 추가된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 자립생활지원 과정에서 국가의 지원책이 없다면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은 매우 어렵다. 관련한 기본적인 규정이라도 넣어 국가가 장애인의 자립생활지원을 강화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처벌도 강화된다. 49조에는 “(전략) 차별을 한 자에 대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장애계는 마지막 서술어를 “처한다”라고 고쳤다. 법원이 차별행위자에게 의무적으로 징역형 또는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장추련은 장애계와 함께 논의해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전부 개정안을 발의할 의원을 찾는 중이다. 현재 21대 국회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우주형 교수는 “21대 국회에서 꼭 결실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