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시설 진실규명’ 강조하며 출범한 2기 진화위
피해생존자 배‧보상만 하고 시설수용 정책은 그대로?
조사 담당자, 내부 분위기 전하며 “자신 없다”
인권시민단체, 직권조사 촉구하는 세 번째 기자회견 예고

김광동 진화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광동 진화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가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같은 집단수용시설 피해생존자에 대해 “직권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정부의 시설수용 정책’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권고 계획에 대한 질문에도 이상훈 상임위원(제2소위원장)은 “그러한 인식에 기반해 나머지 위원분들을 설득할 자세는 되어 있는데 ‘어제’ 해보니 잘 안돼서 자신 있게는 (답을) 못하겠다”고 답했다.

어제(24일) 열린 55차 전체위원회에서 진화위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표결에 부친 결과 4:3으로 각하 결정이 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상임위원은 제한적인 위원회 조사기간과 함께 “그 이면에는 과거사 문제를 꺼리는 현 정부의 소극적인 분위기가 수용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도 밝혔다. 이러한 내부 분위기는 수용시설 정책에 관한 진화위의 대책 권고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진화위는 25일 오전 10시 30분, 진화위 대회의실에서 조사개시 2주년을 맞이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사진 강혜민 
진화위는 25일 오전 10시 30분, 진화위 대회의실에서 조사개시 2주년을 맞이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사진 강혜민 

- 진화위, 근본적 문제 외면한 채 배‧보상 문제로 매듭?

진화위는 25일 오전 10시 30분, 진화위 대회의실에서 조사개시 2주년을 맞이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2020년 12월 10일, 2기 진화위가 10년 만에 재출범하면서 당시 행정안전부는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등 집단시설수용 사건과 1기에서 규명하지 못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등에 대한 진실규명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2022년 8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첫 번째 진실규명 결정이 나왔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올해 2월에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두 번째 진실규명 결정이 나왔다.

그러나 진실규명 권고와 관련해 진화위는 정부와 지자체의 공식사과, 피해회복에 대한 금전적 지원 등에 초점을 맞췄을 뿐, 수용시설 정책 그 자체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문제 삼지 않았다.

이후 논의는 수용시설에 대한 국가 배‧보상 문제로 빠르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조차도 현재는 피해생존자 개인이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대법원까지 간다면 몇 년이 걸릴지도 알 수 없고, 배‧보상 금액도 알 수 없다. 이러한 문제로 이날 진화위는 보상심의위원회를 통해 보상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또 있다. 지난해 12월 9일로 개별 구제 신청 기간이 끝나 이젠 신청조차 할 수 없다. 진화위 소식을 뒤늦게 알았거나, 수용시설 경험을 스스로 말할 용기가 없어 신청하지 못했다면 국가폭력 피해자임에도 진실규명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

2기 진화위가 10년 만에 재출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의 오랜 싸움이 있었다. 그런데 정작 시설수용 정책의 근본적 문제는 외면한 채 배‧보상 문제로 매듭지으려는 것이다. 시민사회계가 지속해서 ‘피해생존자의 신청이 없더라도’ 진화위가 직접 나서 직권조사할 것을 촉구해 온 이유다.

지난 3월 14일, 진화위 사무실이 있는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인권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직권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지난 3월 14일, 진화위 사무실이 있는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인권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직권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 ‘수용시설 직권조사할 거냐’ 묻자 김광동 위원장 “계획 없다”

그러나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김광동 진화위원장은 “직권조사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등의 조사 과정에서 (조사를) 신청하지 않은 분들의 인권침해 사실이 있다면 보고서에 기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보고서에 남은 기록이 법원에 피해구제를 호소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못한 피해생존자는 법원에 ‘알아서’ 개별 민사소송을 제기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법 개정으로 보상심의위원회가 설치될 경우, ‘진실규명 대상자’는 이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피해생존자는 개별 소송으로 가야 한다. 즉, 김 위원장이 말한 “같은 결과”는 나올 수 없다.

수용시설 조사를 담당하는 이상훈 상임위원은 직권조사가 어려운 이유로 제한적인 조사기간을 들었다. 이 상임위원은 “진화위가 직권조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나, 진화위 종결 시기가 원칙적으로 내년 5월까지이다. 많은 사건이 밀려있어서 직권조사까지 나가기에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면서 “만약 기간 연장이 된다면 조금 유연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진화위는 조사개시 결정일로부터 3년간 활동할 수 있으며, 이후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하여 추가로 1년 활동을 연장할 수 있다.

김광동 진화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광동 진화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수용정책 폐기 위한 종합 대책 권고 묻자 ‘내부 분위기’ 전해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문제를 마냥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순 없다. 시설수용 정책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오늘날에도 많은 문제가 불거지는 장애인거주시설, 외국인보호소, 정신병원 등의 문제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지역사회에서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한곳에 몰아넣었던 과거 ‘부랑아 시설수용’ 정책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근본적 대책 마련을 정부에 권고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김 위원장은 원론적인 답변만을 반복했다.

김 위원장은 “취지는 전적으로 인정하나, 진화위가 수용시설에서 현재 펼쳐지는 인권침해와 관련해선 명확한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서 “조사 과정에서 과거 인권침해와 유사한 내용이 현재 수용시설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당연히 권고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자가 “낱개 사건에 대한 권고가 아닌 종합적 대책 권고가 필요하지 않나”면서 “향후 발표될 진화위 권고에 ‘이 사건은 국가폭력으로, 시설수용 정책을 기본으로 한 정부 정책의 과오다. 이러한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 현재 이뤄지는 모든 시설수용 정책에 대한 검토를 정부에 요청한다’와 같은 내용으로 권고할 계획이 있는지” 재차 질문했다.

김 위원장은 “어떻게 보면 바람직한 권고 방향이다. 과거에 있었던 부당한 수용시설에서의 인권침해와 일맥상통하게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면 당연히 강하게 그런 부분에 대해 지적하고 권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이상훈 상임위원(제2소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상훈 상임위원(제2소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반면, 이상훈 상임위원은 “장애인, 노숙인, 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격리, 배제에 대한 문제는 개인적으로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한 인식에 기반해 나머지 위원분들도 설득할 자세는 되어 있는데 어제 해보니깐 잘 안돼서 자신 있게는 못하겠다. 노력하겠다”며 과거사 문제 해결에 소극적 입장을 취하는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진화위 입장에 대해 인권시민단체는 갑갑함을 표했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2기 진화위는 형제복지원을 필두로 수용시설 문제를 전면 조사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출범했다”면서 “수용시설 피해생존자는 진화위 신청을 비롯해 그 스스로 권리옹호를 하기 어렵기에 당연히 직권조사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발바닥행동 등은 내일(26일) 진화위 앞에서 직권조사를 요구하는 세 번째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김 활동가는 “과거에 설립된 수용시설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인권침해를 낳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더는 발생하지 않기 위해 수용시설 정책을 전면 폐기하는 내용의 권고를 정부에 해야 한다”며 근본적 대책에 대한 권고 필요성을 밝혔다.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시설수용 관련 질의응답 내용을 전문 공개합니다. 

- 비마이너 : 2기 진화위 성과 중 하나로 형제복지원, 선감학원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말씀하셨습니다. 관련해서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시설수용 문제가 국가폭력임을 인정했다는 것, 배·보상 문제도 정말 중요한데요, 정작 권고 내용에 시설수용 정책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 대책 마련을 정부에 요구하진 않았습니다. 시설수용 정책은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고 문제적인데요, 향후에라도 이러한 방향으로 권고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두 번째는 시설수용 피해생존자분들이 신청 마감이 지났다는 이유로 신청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령 진화위를 알았더라도 자신의 피해 내용을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하셔서 신청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민사회계가 지속해서 직권조사를 요청하고 있는데요, 직권조사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직권조사가 어렵다면 그 이유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 김광동 위원장 : 기자님이 말씀해 주신 대로, 현재에도 수용시설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권고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대해서는 저희가 그 취지는 전적으로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 진화위가 수용시설에서 현재 펼쳐지는 인권침해 혹은 유린과 관련해서는 명확한 조사와 근거를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고, 또 그것을 조사하지 않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조사 과정에서 과거에 있었던 인권 침해와 유사한 내용이 현재의 수용시설에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당연히 권고 사항으로 반영시키고자 합니다. 

두 번째, 현재 보건복지부, 경기도(선감학원), 부산시(형제복지원) 등과 관련해서 권고 이행 문제를 협의하고 있고, 일부 진전된 결과로 위로금 내지는 의료지원금이 부여되고 있거나 지급될 계획에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직권조사 확대 부분인데 현재는 직권조사를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확대 조사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어서 형제복지원이나 선감학원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신청되지 않은 분들의 희생, 인권침해 사실이 있다면 조사 과정에 함께 보고서에 담는 방식으로 그분들의 인권 침해 기록을 남기는 방식을 취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그 보고서에 남은 기록이 그분들은 법원에 피해 구제를 호소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상훈 상임위원 : 우리나라 복지 현장을 신청주의라고 합니다. 신청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소외계층 중에는 신청할 능력이나 절차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시설 문제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견됩니다. 과거에 피해를 보셨던 분(시설수용 피해생존자를 지칭) 중에는 신청 절차도 모르고, 방법도 모르는 취약계층이 많기 때문에 사실 신청에 따라 조사하는 것보다는 위원회가 직권으로, 신청하지 못한 많은 소외계층을 조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는 위원회 종결 시기가 원칙적으로 내년 5월까지이기 때문에 많은 사건들이 밀려 있는 상황에서 직권조사까지 나가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만약 아까 위원장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기간 연장이라는 그런 행정 절차가 뒤따른다면 조금 유연하게 그렇게 좀 조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사항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기간 연장이 만약에 된다면 어제 베트남전 같은 경우에서도 조금 더 폭넓게 많은 논의가 이어질 수 있는데 기간에 쫓기다 보니 급박한 분위기가 좀 있었던 것 같고요. 물론 그 이면에서는 과거사 문제를 꺼리는 현 정부의 소극적 분위기, 그런 분위기가 어제 위원회 결정에서도 그대로 수용되지 않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비마이너 : 제가 정부의 수용시설 정책 그 자체를 지적하는 방향으로 권고할 계획이 있느냐고 질문드렸는데요, 위원장님께서 ‘조사과정에서 과거에 있었던 인권침해와 유사한 내용이 현재 수용시설에서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면 당연히 권고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건 그 자체도 중요하겠으나, 직권조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낱개 사건에 대한 권고가 아닌 종합적 대책이라도 권고해야 하지 않을까 물음이 듭니다. 현재 장애인수용시설, 외국인보호소, 정신병원 등 여전히 많은 시설이 운영되고 있고, 이러한 시설 문제의 근본 뿌리를 살펴보면 과거 형제복지원, 선감학원과도 닿아있습니다. 그래서 향후 발표될 진화위 권고에, 가령 예를 들면 ‘이 사건은 국가폭력으로, 시설수용 정책을 기본으로 한 정부 정책의 과오다. 이러한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 현재 이뤄지는 모든 시설수용 정책에 대한 검토를 정부에 요청한다’는 내용으로 권고할 계획이 있는지 다시 질문드립니다. 

- 김광동 위원장 : 매우 고도의, 또 어떻게 보면은 바람직한 권고의 방향인데 우리는 6개월에 한 번씩 단기보고서와 최종 위원회의 종결 시점에 종합보고서 형식으로 권고를 내고 있습니다. 다만 그 권고가 나가는 과정에서 과거에 있었던 부당한 수용시설에서의 인권 침해와 현재 발견되는, 혹은 현재도 알려지고 있는, 우리가 조사에 권한은 없지만 그런 것들이 일맥상통하게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면 당연히 강하게 그런 부분에 대해 지적하고 권고해야 된다는 것은 마땅하다고 판단합니다. 
  
- 이상훈 상임위원 : 조사 담당 부서인 제2소위원장으로서 말씀드리면 시설 문제는 그렇습니다. 시설 문제는 이제 장애인, 노숙인 이런 분들 같은 경우에 같이 지내기에는 굉장히 불편하고, 같이 지내며 돌보기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까 국내 외딴곳에다가 차단시켜놓고 격리하고 배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해외 입양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아라는, 그런 분들을 같이 어떻게 하기에는 비싸고, 또 불편하고 이러니까 해외로 아이들을 보낸 것 같은데 이런 취약계층에 대한 어떤 격리, 배제 방법에 대한 문제점을 개인적으로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에 기반해서 나머지 위원분들도 설득할 자세는 돼 있는데, 어제 해보니까 잘 안돼서 자신 있게는 못하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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