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반복된 서울교통공사 폭력
“휴대전화가 무기 될 수 있다”며 강제퇴거
혜화역, 2시간 동안 비명…
장애인 2명 체포, 박경석 대표는 응급실로

체포되고 있는 유진우 활동가. 사진 하민지
체포되고 있는 유진우 활동가. 사진 하민지

오늘(22일)도 다 끌려 났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22일 오전 8시,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23주기를 맞아 57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을 전개했다. 활동가 70여 명은 4호선 오이도역·동대문역·혜화역으로 흩어져 지하철에 탑승한 후 시청역에서 모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가 폭력적으로 탑승을 거부하고 활동가들을 끌어내서 아무도 시청역으로 갈 수 없었다.

혜화역은 2시간 동안 비명으로 가득했다. “장애인도 시민권 열차에 태워달라”는 구호는 “우리를 쫓아내지 말아라”라는 절규로 바뀌었다. 서울교통공사는 투쟁이 시작되자마자 순차적으로 사람들을 쫓아냈다. 활동가들은 열차에 탑승하겠다는 요구조차 못 하고 쫓겨나야 했다. 이 과정 중 장애인 2명이 체포되고 1명이 119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이송되는 일이 벌어졌다.

2001년 1월 22일, 오이도역에서 70대 장애인 노부부가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했다. 이후 장애인들은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등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23년간 외쳐 왔다. 그러나 2024년 1월 22일, 이동권 보장은커녕 이동 자체가 차단됐다.

혜화역 승강장.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안전문 앞을 막아서고 있다. 이들은 승강장 천장 근처에 “철도종사자의 허가 없는 역사 내 연설, 권유 행위 등은 퇴거조치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커다란 경고 현수막을 붙여 놨다. 사진 하민지
혜화역 승강장.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안전문 앞을 막아서고 있다. 이들은 승강장 천장 근처에 “철도종사자의 허가 없는 역사 내 연설, 권유 행위 등은 퇴거조치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커다란 경고 현수막을 붙여 놨다. 사진 하민지

- 그저 이동하려 했을 뿐인데… 2시간 강제퇴거

8시, 혜화역에 모인 활동가들은 1-1칸부터 6-2칸까지, 한 칸에 한두 명씩 자리했다. 열차가 오면 한번에 탑승해 시청역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강제퇴거는 즉각 이뤄졌다. 최영도 서울교통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장은 눈에 익숙한 활동가들부터 퇴거시켰다. 낯선 사람에게는 ‘순수한’ 승객인지, 기자인지, ‘시위대’인지 등을 물으며 신분을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시위대’나 전장연 활동가가 아니라고 해도 열차에 타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시위대’로 간주하고 끌어냈다.

그러나 승강장에 있던 사람 중 기자, 경찰, 서울교통공사 직원을 제외한 모두가 승객이었다.

경찰들은 승강장에 비치된 의자에 올라가 끌려 나가는 활동가들을 채증했다. 휴대전화 카메라부터 기다란 막대 위에 달린 캠코더까지, 채증 카메라 수십 대가 활동가들을 찍고 있었다. 채증을 지휘하는 경찰이 명령했다. “여러 방향에서 찍으세요. 얼굴, 자세, 행동 다 나오게. 서로 커뮤니케이션(소통) 하면서 여러 각도에서 찍으세요.”

승객을 향한 강제퇴거와 명분 없는 채증이 진행되던 8시 15분, 최 센터장이 기자에게 다가와 말했다. “비마이너죠? 어차피 여기(전장연) ‘계간지’예요. 자, 퇴거시켜. 상관없어”라고 했다. 즉시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에 의해 끌려 나갔고 이후 승강장의 상황은 취재할 수 없었다.

서울교통공사 직원 두 명이 혜화역 대합실에서 전장연 활동가를 끌어내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교통공사 직원 두 명이 혜화역 대합실에서 전장연 활동가를 끌어내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휴대전화와 삼각대를 든 활동가의 팔과 바지춤을 잡고 끌어내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휴대전화와 삼각대를 든 활동가의 팔과 바지춤을 잡고 끌어내고 있다. 사진 하민지

대합실도 아수라장이었다.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활동가들이 대합실에 머무는 것도 금지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은 “전장연 입장을 대변하는 촬영을 한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휴대전화로 영상 기록을 남기던 활동가는 “휴대전화와 삼각대가 무기가 돼서 시민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활동가들은 강제퇴거의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시청역으로 가기 위해 지불한 승차 요금을 환불해 달라고도 요구했다. 그러나 강경 진압은 계속됐으며 요금 또한 환불되지 않았다. 한 활동가는 대합실 구석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에 의해 강제퇴거당한 후 울고 있는 전장연 활동가. 사진 하민지
서울교통공사에 의해 강제퇴거당한 후 울고 있는 전장연 활동가. 사진 하민지
이형숙 서울장차연 공동대표가 서울시장애인버스로 체포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형숙 서울장차연 공동대표가 서울시장애인버스로 체포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 과정 중 장애인 2명이 체포됐다. 8시 40분경,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의 이형숙 공동대표와 유진우 활동가가 미란다원칙을 고지받고 혜화경찰서로 연행됐다. 이들은 동대문역에서 승차하면서 9분, 혜화역에서 하차하면서 3분간 천천히 이동하던 중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애인 1명이 다쳐 응급실로 이송되는 사고도 있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쇠사슬로 강제퇴거에 저항하자 서울교통공사가 쇠사슬을 거칠게 압수했다. 이로 인해 박 대표는 손목이 꺾이는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119구급차에 실려 간 박 대표는 현재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장애인은 죽고 다치는 지하철… “서울교통공사, 누굴 위한 안전인가?”

같은 시각, 오이도역에서는 리프트 추락 참사 23주기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선영 안산나무를심는야학 교장은 “투쟁으로 엘리베이터가 생겼지만 엘리베이터를 점검하는 날에 우리(휠체어 이용 장애인)는 이동할 수 없다. 또한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노약자분들이 먼저 타서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며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정당한 이야기다. 앞으로 얼마나 더 외쳐야 하는지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공계진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이사장은 “2001년 1월 22일, 오이도역에서 사고가 발생해 사람이 죽었다. 그땐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리프트를 타고 가다가 추락한 사고였다. 이렇듯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불편을 겪어 왔다”며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고 시민이다. 똑같이 대접하라. 다시는 이런 일(추락 참사)이 발생하지 않게 계속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이들 또한 오이도역에서 시청역으로 가려 했지만 서울교통공사의 강경 진압으로 갈 수 없었다. 결국 모두 혜화역 2번 출구로 모여 영하 15도의 추위 속에서 마무리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

들것에 실려 가는 박경석 전장연 대표. 사진 하민지
들것에 실려 가는 박경석 전장연 대표. 사진 하민지

이수미 서울장차연 개인대의원은 “서울교통공사는 안전을 얘기하면서 우리를 쫓아내는데 누구를 위한 안전인가? 오이도역에서 사람이 죽었고 신길역에서도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려다 떨어져 죽었다. 이규식 서울장차연 상임대표는 혜화역 리프트에서 떨어져 다친 적이 있다. 비장애인 시민이 리프트를 타다가 다쳤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며 “왜 장애인만 죽고 다쳐야 하나? 오늘도 박경석 대표가 서울교통공사 때문에 다쳐서 응급실로 실려 갔다. 누구를 위한 안전인가?”라고 성토했다.

배재현 서울장차연 개인대의원은 “서울교통공사는 ‘서울시’라는 이름을 달고 일하면서 서울시민을 겁박하고 폭언을 일삼는다. 오늘은 ‘(서울교통공사가) 하루 종일 (지하철을) 못 타게 하겠다’고 했는데 도대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협박의 권리가 어떻게 서울교통공사에 있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전장연은 오후 5시, 혜화경찰서 앞에서 연행자에 대한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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