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도 현수막·마이크 빼앗기고 강제 퇴거당해
전동휠체어 ‘수동’으로 전환해 강제로 끌고 가기도
“프레스존으로 가라”며 언론사 취재 방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서울교통공사와 현장 책임자, 대한민국에 집회 방해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국가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한다. 배상청구액은 1억 원가량이다.

전장연은 27일 오전 8시, 혜화역 5-4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으나 이날도 공사의 방해와 강제퇴거로 역사에서 쫓겨났다. 공사는 기자회견을 시작하기도 전에 역사 내 방송을 통해 기자회견 진행을 방해했다. 현수막과 마이크를 빼앗고, 장애인 활동가의 전동휠체어를 수동으로 바꿔서 강제로 끌고 나가기도 했다. 이러한 강제 퇴거는 50분가량 이어졌다.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공사, 오늘도 현수막·마이크 빼앗아… 전동휠체어 ‘수동’으로 바꾸기도

이날도 30여 명의 활동가들이 강제 퇴거당했다. 공사는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현수막을 펼치기가 무섭게 이를 빼앗기 위해 달려들었다. 공사 측 직원 여러 명이 현수막을 앞으로 잡아당기면서 휠체어에 앉아 현수막 끄트머리를 잡고 있던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그 힘에 딸려 가면서 앞으로 나뒹굴었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딱딱한 뼈가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났다. 이형숙 대표에 의하면 오른쪽 어깨뼈가 바닥에 부딪혔다고 한다. 소아마비로 하체에 힘이 없다 보니 상체의 힘이 작동하는 방향으로 무게 중심이 실리면서 앞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 대표는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진 상태로 5분가량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누워있었다.

이날도 공사의 취재 방해는 극심했다. 공사는 활동가들이 퇴거당하는 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비마이너 기자에게 다가와 “프레스존에 가 있어라”고 하면서 기자를 현장에서 분리하려고 했다. 프레스존은 공사가 혜화역 승강장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공간으로 사건이 발생하는 현장에서 2미터가량 떨어져 있다. 기자가 “취재 중이다. (프레스존으로 이동하라는 것은) 취재 방해다”라고 말하며 거부했지만 공사는 “여기 있으면 위험하다. 프레스 존으로 가라”는 말만 반복했다. 기자가 움직이지 않자 남성 공사 직원이 다가와 “기자면 기자답게 하라”며 소리치고 화를 냈다.

박진용 서울교통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 부장이 기자에게 “프레스존으로 가라”고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진용 서울교통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 부장이 기자에게 “프레스존으로 가라”고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날도 전장연은 현수막, 마이크를 모두 빼앗겼다. 공사는 활동가에게 개별적으로 다가가 퇴거를 지시했다. 활동가들이 거부하면 끌고 나가는 강제 퇴거 상황이 반복됐다.

이형숙 대표를 퇴거하는 과정에선 박진용 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 부장이 공사 직원들에게 전동휠체어를 수동으로 작동하여 밀고 나가는 방법을 직접 알려주기도 했다. 이를 본 기자가 박 부장에게 “공사에서 전동휠체어 수작동방법을 어떻게 아는 건가. 공사 측에서 별도 교육을 받는 건가”라고 묻자 공사 측 직원들이 “취재는 홍보팀 통해 별도로 요청하라”며 가로막아 섰다.

서울교통공사에 의해 강제 퇴거당한 전장연 활동가들이 오전 8시 50분, 혜화역 2번 출구 앞에서 국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서울교통공사에 의해 강제 퇴거당한 전장연 활동가들이 오전 8시 50분, 혜화역 2번 출구 앞에서 국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처벌받지 않는 공사의 불법적 행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강제 퇴거당한 전장연 활동가들은 오전 8시 50분, 혜화역 2번 출구 앞에서 국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번 소송의 피고는 서울교통공사와 당시 현장 책임자였던 최영도 전 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장, 경찰을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국가다. 원고는 총 26명으로 ‘단체 전장연’과 개인 원고 25명이 참여한다. 개인 원고는 전장연 활동가이거나 전장연과 연대하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로, 전장연이 주최하는 집회에 참여했다가 집회 참여를 방해받거나 현행범으로 체포된 적이 있는 이들이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시기는 2023년 11월 30일부터 12월 15일까지 있었던 집회·시위에 대해서다.

지난해 11월 30일, 전장연은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시청역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혜화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려고 했다. 그러나 공사가 이동을 원천 차단하고 강제 퇴거시키면서 지하철에 아예 탑승하지 못했다. 활동가들이 혜화역에서 ‘이동권’이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침묵 선전전을 하는 날에도 공사는 물리력을 이용해 이들을 역사 밖으로 끌어냈다. 공사는 장애인 활동가들이 승강장으로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역사를 차단하고, 현수막과 마이크를 탈취하는 행위를 지속해 오고 있다.

원고 측 변호인단 이도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상근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원고 측 변호인단 이도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상근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원고 측 변호인단 이도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상근변호사는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인권법은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면서 “국가뿐 아니라 개인을 포함한 누구든지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집회 주최자 및 참가자가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 참가의 형태와 정도 등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의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유엔자유권규약 제21조도 ‘평화적 집회의 권리는 인정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별도로 두고 있다. 평화적인 집회‧시위를 방해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 변호사는 공사가 철도안전법을 근거로 원고들에게 퇴거를 요구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현장을 한 번이라도 직접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전장연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침묵 선전전을 하거나, 돌아가며 한 명씩 발언했다. 누구도 역사 내 통로를 막거나 승객들의 승하차를 방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집회 참석자들에 비해 과도한 인원을 배치하여 승객의 통행을 방해하는 것은 공사와 경찰들”이라면서 “최영도 전 고객안전지원센터장은 현장 책임자로서 적절한 중재를 하기는커녕 불법 행위를 지시하고 원고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등 모욕적인 언사를 했다”고 밝혔다.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날도 큰 부상을 당한 이형숙 대표는 “오늘뿐만 아니라 저는 매일 아침 내동댕이쳐지고 있다.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해고노동자 400명의 원직 복직을 요구하는 것이 잘못됐는가”라면서 “공사는 철도안전법을 들이대면서 전장연의 선전전이 불법이라고 하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 규탄했다.

이형숙 대표는 최근 몇 달간 강제 퇴거 과정에서 발생한 공사의 폭력적 진압으로 양어깨를 수차례 다쳤다. 이 대표는 “지난 12월 8일에도 공사의 폭력으로 오른쪽 어깨를 크게 다쳤다. 병원에선 MRI를 찍어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비싸서 찍지 못했다. 이후에도 계속 다치고 있는데 오늘 또 다쳤다”면서 오른쪽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이날 아침에 경험한 공사의 불법적 행태를 질타했다. 공사는 활동가들의 강제퇴거를 취재 중인 비마이너 기자의 양팔을 붙잡고 잡아당기며 현장에서 분리하려고 했다. 기자가 “취재 방해”라고 문제제기하자 공사는 “여기는 위험하니 프레스존에 가서 안전하게 취재하라”면서 현장에선 실랑이가 벌어졌다. 당시 랑희 활동가가 “무엇이 위험하냐”고 묻자 공사는 그를 향해 “(당신이) 이렇게 소리지르는 데 안 위험하냐. 내가 위협을 받는데”라고 되받아쳤다.

기자회견에서 랑희 활동가는 “제가 소리 지른다고 해서 고막이 나간다거나 사람이 쓰러지는 것도 아닌데, 공사는 제가 소리 지르는 것이 위험하니 (기자가 이동을 거부했음에도) ‘저쪽 가서 취재하라’고 한다. 엄연한 취재 방해다”라면서 “지금 공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법에 근거하지도 않은 행위를 해도 처벌받지 않으니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게 지금 혜화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랑희 활동가는 “혜화역에서 시작되는 권리의 박탈은 다른 장소로 옮겨갈 수 있다”면서 “저에게 보장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저 또한 소송의 원고로 참여한다.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 오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장연은 혜화역 승강장에서 2021년 12월 6일부터 매일 아침 8시 지하철 선전전을 하고 있다. 27일로 혜화역 선전전은 538일 차를 맞이한다.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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