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5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진행
스피커 빼앗기고 기자회견 시작도 못한 채 현장 마무리
“끌려가지 않기 위해” 쇠사슬 감은 박경석 대표
경찰과 공사, 절단기로 쇠사슬 끊다가 박 대표 목 졸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대표의 목이 쇠사슬에 감겨 있다. 우드락피켓 끈도 목에 걸려 있다. 눈에 보이는 쇠사슬과 줄을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잡아 쥔다. 여기저기서 당기니 박 대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케케케켁켁켁. 박 대표의 주변에 있던 활동가들이 비명을 지르며 경찰에게 당장 손을 떼라고 하지만, 경찰은 도리어 더 강하게 밀고 들어온다. 박 대표의 목을 감은 쇠사슬은 그의 옆에 있는 뇌병변장애인 활동가의 몸과 휠체어에도 휘감겨져 있다. 경찰과 공사 직원들, 활동가들, 기자들이 서로를 밀치며 밀고 밀리는 동안, 쇠사슬이 여기저기로 당겨지면서 박 대표의 목을 더 강하게 조른다. 비명이 쇠사슬을 끊어버릴 듯 압도하는 순간, 어디선가 성인 남성 키의 절반에 달하는 커다란 절단기가 천장 위로 번쩍 나타난다. 뇌병변장애인의 다리에는 경련이 일어난다. 덜덜덜덜덜. 경련으로 인한 강한 떨림이 서로 밀고 밀치는 현장 속에서 선명하게 전해진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사이 일어난 일이다.
쇠사슬을 빼앗긴 박 대표의 목덜미에는 붉은 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박 대표는 어지러운지 잠시 이마에 손을 짚고 숨을 고른다. “괜찮냐”는 활동가들의 물음에도 손짓으로 답할 뿐,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우드락피켓도 무거운지 목에서 빼낸다. 라운드 티셔츠의 목덜미를 잡아당겨 목에 닿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한다. 그는 오랫동안 연신 목을 어루만지며 눈을 감았다.
23년 전에도 박 대표는 서울역에서 쇠사슬을 꺼내 들었다. 2001년 2월 6일, 당시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장이었던 그는 야학 학생 몇몇과 서울역 철로를 점거했다.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때 장애인들은 서울시에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에 대한 공개 사과, 모든 지하철 역사에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했다. 경적을 울리며 달려드는 열차를 눈앞에 두고 중증장애인들은 끌려 나가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과 옆에 있는 사람들의 몸을 쇠사슬로 묶었다.
2024년 2월 6일 아침 8시, 1호선 서울역 승강장. 전장연은 ‘5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했다. 23년 전 그날처럼 장애인들은 다시 서울역에 섰다.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400명에 대한 해고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노동능력이 없는 최중증 탈시설장애인’을 지자체가 우선고용하여 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장애인식개선활동이라는 3대 직무를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는 일자리다. 그러나 올해 오 시장이 사업 자체를 없애버리면서 중증장애인 400명은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은 시작하지도 못하고 구호는 외치지도 못한 채 현장은 1시간 만에 끝나 버렸다. 대부분의 스피커는 압수당했다.
박진용 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 부장은 비장애인 활동가들에게 퇴거를 명했다. 그가 “퇴거시켜”라고 하면 공사 직원들이 활동가들을 역사 밖으로 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비장애 남성 활동가 1명이 연행당했다.
이날도 공사와 경찰의 취재 방해는 여전했다. 공사와 경찰은 충돌이 일어나는 현장의 한가운데로 파고드는 취재진을 온몸으로 밀어냈다. 현장에서 끌려 나온 뉴시스 사진기자는 어이없어하는 허탈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쥔 채 바깥에 서 있었다. 설령 안으로 파고들어도 공사와 경찰은 “위험하다”면서 카메라 렌즈를 손으로 가로막았다.
공사는 이제 더는 ‘전장연’을 ‘전장연’이라 부르지 않는다. “‘특정 장애인단체’에게 알려 드립니다. 역사 내에서 철도 종사자의 허락 없이 연설 행위, 고성방가 행위, 소란을 피우는 행위 등은 철도안전법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특정 장애인단체’는 지금 즉시 역사 밖으로 퇴거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서울교통공사에서 ‘특정 장애인단체’에게 알려드립니다.”
아직 빼앗기지 않은 마이크를 쥐고서 박경석 대표가 말했다. “시민들이 묻습니다. 왜 지하철 역사로 오냐고. 2001년에 여기서 장애인이 떨어져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에 침묵할 수 없어서 옵니다. 서울시는 장애인들의 죽음에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이동할 권리는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23년을 외쳐도 이동할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는 부끄러운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해야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중증장애인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더는 시설에 감금하지 마십시오.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는, 헌법의 가치를 지키십시오.”
발언을 하던 박 대표는 간간이 마이크를 무릎 위에 내려놓고 여전히 벌겋게 달아오른 목덜미를 어루만지다가 다시 마이크를 쥐고 말을 이어갔다. “오세훈 시장은 갈라치기 정치, 혐오 정치를 멈추십시오.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겠습니다. 잊히지 않기 위해 싸우겠습니다.”
활동가들이 “투쟁”이라고 외치며 답했다. 그들 손에 쥔 종이는 구깃해졌다. 종이에는 23년 전, 서울역 철로를 점거한 장애인들의 모습이 흑백 사진으로 박혀 있었다. 흑백 사진은 컬러의 현장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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