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한영교의 시,의적절
좌시: 앉아서 보고만 있지 않겠다

[필자의 말] 노들장애인야학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활동 속에서 마주친 시적인 순간들. 눈부시게 뻐근한 순간들. 이례적으로 아름답고 잔인한 순간들. 사안과 의제를 따라 순간 나타났다가, 순간 사라지는 활동과 투쟁들 사이에서 발견한 시,의적절한 순간들이 두고두고 내게 힘을 주었다. 차별과 혐오에 맞선 자들이 사랑할 만한 세계를 발견하고자 할 때, 살아갈 만한 세계를 발명하려 할 때, 한 줄 쓰임이 있었으면 한다.

서한영교. 사진 필자 제공
서한영교. 사진 필자 제공

- 철창을 끄는 무리들

심장이 메슥거릴 만큼 뛰었다. 한여름 광화문 거리를 철창을 끌며 뛰었다. “시간 없어, 문 닫을 시간이야.” 노들장애인야학(아래 노들야학) 교사들과 사각형 철창 모서리를 하나씩 쥐고 최대 심박수를 갱신하며 뛰었다. 힘껏 끌지 않고서는 움직이지 않는 카트용 5인치 바퀴가 달린 철창 안에는 27년간 노들야학의 교장이었던 그, 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청와대로 가는 길이었다.

- 공감·소통·포용의 복합문화예술공간

그러니까, 철창을 끌고 청와대로 간 2022년 8월 31일. 청와대 복합문화예술공간 조성의 첫 프로젝트 기획 전시로 ‘장애예술인 특별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장애예술인의 전시 공간을 많이 확보하고 전시 기회도 대폭 늘리라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기념할 만한 전시였다. “어렵고 소외된 환경에서도 묵묵히 예술 활동을 해온 장애예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특별하고 소중한 기회”를 선사 받은 그 첫날. 그러니까, 대통령은 취임 후 장애인 예술 활동에 유독 관심을 보였다. 대통령이 장애예술인의 작품을 서초동 자택과 용산 집무실에 걸어놓고, 대통령실 1층 로비에 장애예술가의 작품 열다섯 점을 걸었다.

대통령실은 밝혔다. “‘장애인 예술가들이 소외되지 않고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라는 대통령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고. 무려 국정철학까지 반영된 “‘통합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벽에 걸렸다. 문화체육관광부 박보균 장관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예술 현장에서 함께하는 공감·소통·포용의 순간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대통령이 바뀌니, 장애인은 관심받고, 기회를 받고, 공감·소통·포용 받는 세계가 도래한 듯했다. 하지만 공감·소통·포용의 복합문화예술공간이 내건 “통합과 희망”은 벽에 걸어 감상할 만한, 소란을 일으키지 않을 만한 것들과의 ‘통합’이었고, “어렵고 소외된 환경에서도 묵묵히” 장애를 극복해냈다는 ‘희망’이었다.

철창에 탄 박경석 대표가 청와대에 들어서려고 하자 경찰이 막아섰다. 박 대표가 이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철창에 탄 박경석 대표가 청와대에 들어서려고 하자 경찰이 막아섰다. 박 대표가 이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차별·혐오·배제의 복합차별사회공간

그러니까, 복합문화예술공간에서 첫 전시를 시작하던 같은 날 아침. 용산 대통령실 앞 삼각지역 승강장에서는 삭발을 마친 노들야학 교사의 두상에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는 머리띠가 둘러졌다. 같은 날 오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불법 시위를 일으킨 혐의로 조사를 받으러 남대문경찰서 입구로 들어갔다. ‘장애인을 가두지 말라!’는 피켓이 걸린 철창 안으로 그, 는 들어가 앉아 “철창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를 의미합니다. 차별사회에 갇혀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복합차별사회공간을 상징하는 철창을 끌고 한여름 땡볕 아래로 장애해방 활동가들은 행진했다.

전장연은 대화하자고! 마땅하고 정당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권리를 예산으로 집행하라고!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매일 아침 선전전에, 삭발투쟁에, 오체투지에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기력을 쏟아부으며 ‘대화’하자고 정부에 요청하였으나, ‘권리를 가질 권리’에 대한 요구에 어떤 응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선심 쓰듯 주는 ‘혜택’ 말고, 마땅히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를 이야기했다. 정치적 수단으로 보여주기식 ‘전시’ 말고, 주고받는 ‘대화’를 하자고 이야기했다. 차별·혐오·배제의 복합차별사회공간에 내건 ‘저항과 투쟁’. 그것은 감상할만한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서 가두는 것에 ‘저항’하고, “어렵고 소외된 환경에서도” 맹렬히 싸워나가며 권리를 쟁취하겠다는 ‘투쟁’이었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부는 권리를 향한 투쟁을 돈이나 몇 푼 달라는 투정으로밖에 듣지 않았다.

- 저항·대항·분노의 복합투쟁예술공간

그러니까, 사람 넷이 밀면서 뛰어도 4.20km/s의 속도가 간신히 나오는 철창을 끌어 마침내 청와대 입구에 도착했을 때. 모두 주저앉았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털린 느낌이었다. “죄송하지만 길을 좀 비켜주시겠습니까?”라는 품위 있고 정중한 문장으로는 입장할 수 없게 경찰이 청와대 입구에서 철창을 막아섰다. “철창은 시위 물품이므로 관내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비켜라! 비켜라! 초대받지 못한 자들이 소란을 일으키는 동안. 비켜라! 비켜라! 무례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 물의를 일으키는 동안. 그때 철창에 갇혀있던 그, 가 소리쳤다. “장애인의 삶을 전시하기 위해 일부러 철창에 들어간 거예요. 이건 현대미술이에요. 현대미술 안 봤어요? 왜 마음대로 시위 물품이라고 합니까? 이건 퍼포먼스, 행위예술이에요.”

현대미술, 퍼포먼스, 행위예술. 마디마디 모두 놀라웠다. 아, 맞아. 이건 현대-퍼포먼스-예술이었다. 퍼포먼스 미학자 다이애나 테일러는 “퍼포먼스는 정치를 지속하게끔 하는 또 다른 수단이다”라고 말한다. 퍼포먼스 예술은 “유동적이고 난잡하며 혼종적인 예술”로 “퍼포머와 관객을 해방하고자 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삶과 예술, 대중과 관객, 정치와 미학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보고 싶지 않은 현실에 직면했을 때 관객이 이를 얼마큼 감당할 수 있을지를 시험대에 올리는”1) 현대-퍼포먼스-예술을 말했다. 해방하고자 하는 예술, 경계를 허무는 예술, 시험대에 올리는 예술, 작품 「철창」은 현대 퍼포먼스 예술의 핵심 문장들과 혈액을 공유하고 있다. “기존의 의미와 관습에 저항한다. 벽을 넘고 프레임을 바꾸면서 한계와 규범에 맞선다. 그리하여 우리가 따르는 단 한 가지 규칙이 있다. 규범을 깨는 것이 곧 퍼포먼스의 규범이다.”2) 이것은 예술이 아닐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몸 안에서 자꾸 찌릿했다.

- 이례적인 감각

청와대 정문 앞, 소란과 설전이 벌어지는 동안 문화재청 직원은 “철창은 입장할 수 없고 휠체어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그, 는 “그런 규정이 어디 있어요. 관람 규정 가지고 오세요”라고 응수했다. 잠시 뒤 관람 규정을 가지고 돌아오겠다는 문화재청 직원은 허탈한 기색으로 돌아와 “관람 가능합니다. 들어가세요”라며 작품 「철창」을 입장시켰다. 무장한 경찰력이 느리게 빠졌다.

「철창」과 청와대 입구를 넘어설 때, 개운하고, 명백해지는 느낌. 이례(異例: [명사] 보통의 경우와 다른 특이한 것)적인 감각. 청와대, 세상을 지배한 자들이 기거하던 대한민국의 자랑과 신념이 깃들어 있는 자리. 그 위대한 것 안으로 소란과 물의를 일으키며, 하찮고 보잘것없이 여겨지는 무리들과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청와대로 입장할 때. 품위 있고 품격 높게 봉황으로 장식된 금빛 구조물을 가로질러 청와대 출입문을 지날 때. 국가적 질서를 부여하는 엄숙한 것들에 낙서를 저지르는 기분으로. 경계선을 겁도 없이 침범하고 횡단하는 기분으로. 불길하고, 불온한 자들과 무리를 이루어 철창을 끄는 기분이란. 정말이지 이례적인 감각이었다.

철창을 탄 채 청와대로 들어서는 박경석 대표의 모습. 사진 강혜민
철창을 탄 채 청와대로 들어서는 박경석 대표의 모습. 사진 강혜민

- 적합한 것들 사이로 들어선 무례함

“아니, 저건 뭐야? 철창? 대체 어쩌자는 거야? 무례하게 뭐 하는 거야”라는 웅성거림과 함께 공감·소통·포용의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걸어가는 이례적으로 무례한 아름다움의 감응. “아름다운 것은 비교 불가능하고 전례가 없으며, 이례적인 존재감으로 세계에 새로운 첫 느낌을 기입한다. […] 전례가 없다는 것을 유일한 전례로 가지는 이례적 감각은 새로움, 새로 태어남의 감각을 운반”하여 아름다움의 경험이 “어떻게 정의로움과 이어지는지”3)에 대해 떠올리며 철창을 끌었다.

초대받지 못한 무례한 철창을 전시하기 위해 청와대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들어갔다. 적절한 습도와 적당한 온도, 적합한 조도까지 쾌적했다. 저 바깥의 불쾌지수를 높이는 온도와 습도, 차별과 폭력의 날씨와는 확연히 달랐다. 정부의 (①호의 ②호위 ③보호)를 받는 예술작품은 무척이나 안전하고 쾌적해 보였다. 적정하고 적당하고 적절한 작품들 사이로 “차별받는 장애인의 삶”을 표현한 현대-퍼포먼스-예술작품 「철창」이 도착했다. 「철창」 주변으로 삭발 투쟁의 잘려 나간 머리카락이 든 하얀 상자들이 줄지어 자리를 잡았다. 쓰러지듯 미술관 뒤편 벽에 기대앉아 작품 「철창」을 마침내 감상했다.

- 부력의 정치예술

철창에 갇히듯, 차별에 ‘갇혀’있었다던 조각난 이야기들이 「철창」 안으로 ‘떠’ 올랐다. 은유로서의 철창이 아니라 실재하는 차별의 철창에 갇혀있던 조각난 이미지들이 ‘떠’ 올랐다. 작품 「철창」은 마음속 조각나 있던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떠’ 올리게 하는 부력을 지녔다.

조각 1: 사고로 장애를 가지고 난 뒤 5년간 방에 ‘갇혀’ 죽을 생각만 하며 칼로 허벅지를 긁고 담배를 팔뚝에 지져 껐다는 지체장애인 C. 조각 2 : 31년간 방바닥에 가만 누워 라디오에 나오는 노래 가사들을 줄줄 외우며 천장 아래에 ‘갇혀’ 지냈다던 뇌병변장애인 R. 조각 3: 장애인거주시설 안 철창 우리와 같은 구조물에서 8년을 넘게 ‘갇혀’ 지냈다는 17살의 지적장애인 P. 조각 4: 살던 땅에서 끌려와 철창에 갇혀 백인-부르주아들에게 구경거리로 넘겨진 18세기의 파리의 척추장애인 D.

‘갇히다’라는 서술어를 달고 있는 정치적/관계적 존재자들도 함께 ‘떠’ 올랐다. 번식장에 ‘갇혀’있는 비인간 동물들, 벽장(closet)에 ‘갇혀’ 성적지향성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위험에 직면해야 하는 젠더퀴어들, 외국인보호소에 ‘갇혀’ 출국을 기다리는 미등록 이주민·난민들, 이윤 논리에 ‘갇혀’ 유전자 변형을 감내해야 하는 씨앗들. 갇혀있는 지구 거주자들…. 어떤 작품은 부력을 작동시키며 ‘갇혀’있는 지구 거주자들과 더불어 존재한다는 감각을 ‘떠’ 올리게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2022년 8월 31일, ‘장애예술인 특별전’이 열리는 청와대 춘추관을 찾았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철창 안에 갇혀 있고, 그 옆에는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하며 삭발한 활동가들의 삭발함이 쌓여 있다. 사진 강혜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2022년 8월 31일, ‘장애예술인 특별전’이 열리는 청와대 춘추관을 찾았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철창 안에 갇혀 있고, 그 옆에는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하며 삭발한 활동가들의 삭발함이 쌓여 있다. 사진 강혜민 

- 눈부시게 뻐근한 시

철창 안 휠체어에 앉아 있던 그, 가 말했다. “차별과 혐오에 더 이상 좌시(坐視: [명사] 앉아서 보기만 함]하지 않겠습니다.” 꽃가마 대신 철창을 타고 세계의 지하와 지상을 ‘누비며’ 이례적으로 무례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노들야학과 전장연의 찌그러지고 빠그라진 아름다움에 뻐근했다. 퍼포먼스가 끝이 나고 복합문화예술공간 밖으로 나서는데 입 속에서 좌시, 좌시, 시좌4), 좌(左)시… 좌시하지 않겠다, 는 말. 가만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말. 견고한 차별의 세계를 건드리겠다는 말. 두드리겠다는 말. 대혐오의 시대에 반드시 적어두어야 할 시,의적절한 말이었다. 메모장을 꺼내어 앞장 표지에 크게 써두었다. 좌시. 시, 가 한 줄 시작되었다.

   

1) 다이애나 테일러, 『퍼포먼스 퍼포먼스』, 용선미 옮김, 나선프레스, 2021. 
2) 같은 책, 126쪽.  
3) 일레인 스캐리,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관하여』, 이성민 옮김, 도서출판b, 2019, 21~25쪽(번역은 필자). 
4)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김도현의 『장애학의 도전』(오월의 봄, 2019, 10~12쪽)에서는 ‘시좌’에 대하 논하며 “‘보는 자리(position of view)’가 달라지면 풍경 자체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변방 내지 경계에 시좌를 설정”할 때 “훨씬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세계”가 드러나고 “기존에 보이지 않던 세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좌시’하지 않겠다는 ‘시좌’에서 시작되는 세계는 ‘움직이고-건드리고-두드리며 보는 자리’로 이끄는 촉수적 시좌로 이끈다.

필자 소개

서한영교 작가. 노들장애인야학교사. 시를 읽고, 번역하고, 가르치고, 쓴다. 시, 를 살아내고 있는 수상한 자들을 쫓다 보니 노들야학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만났다. 이곳에서 시, 는 종이 위 단어로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일으키는 사건으로 펼쳐진다는 것을 혹독하게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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